전인권, 큐어, 스웨이드, 스크릴렉스, 이기 팝, 림프 비즈킷, 나인 인치 네일스, 신중현, 메탈리카

2013년에는 약 서른 개 이상의 대형 음악 페스티벌이 전국에서 열렸다. 여기에 실내에서 ‘페스티벌’이란 이름으로 열린 모둠공연들까지 합하면 50개를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1년을 52주로 계산하면 거의 매주 빠지지 않고 음악페스티벌이 열린 셈이다. 특히 여름에는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 ‘현대카드 시티브레이크’, ‘슈퍼소닉’, ‘지산 월드 락 페스티벌’ 5개의 글로벌 형 페스티벌이 열려 축제 성수기 시즌 최다 규모를 찍었다. 이제 페스티벌은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산업으로 떠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페스티벌은 음악의 생생한 열기를 현장에서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 2013년에는 이기 팝, 메탈리카, 뮤즈, 스웨이드, 어스 윈드 앤 파이어, 큐어,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스크릴렉스, 나인 인치 네일스, 스티브 바이, 스테레오포닉스, 위저, 자미로콰이, 나스, 플라시보, 테스타먼트, 마마스 건 등 어마어마한 해외 뮤지션들이 페스티벌을 통해 한국 땅을 밟았다. 텐아시아에서는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해 올해 페스티벌의 인상적인 순간을 뽑았다.

큐어

한경석 (B.GOODE 편집장)
BEST: 큐어(The Cure,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 큐어의 팬이 아니었다면 앙코르 이전 두 시간이 넘게 이어간 큐어의 공연만으로도 낯설고 고통스러웠을 게다. 큐어의 팬이었다면, 왜 우리나라에서는 네 시간, 다섯 시간의 공연이 아니었냐며 불만족스러웠을 게다. ‘안산 록 밸리 페스티벌’에서 큐어의 공연은 누구에게나 불만인, 최고의 공연이었다.

김작가(대중음악평론가)
BEST: 메탈리카(Metallica, 현대카드 시티브레이크). 한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를 넘어, 올 여름 다섯 개 록페스티벌의 대미를 장식하는 최종 보스로 과연 부족함이 없었다. 최근 ‘서머소닉’ 공연을 능가하는 연주와 ‘명곡 대방출’을 방불케 하는 초호화 셋리스트 그리고 지난 2006년 내한보다 오히려 회춘한 제임스 햇필드의 성대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밴드 티셔츠는 물론이고 그들의 로고가 박힌 페스티벌 공식 티까지 모두 솔드 아웃되었다는 전무후무한 사실은 메탈리카의 위상을 보여주는 아주 단편적인 일례일 것이다. 그들과 동시대의 관객들에게는 혈관 구석에 묻혀있던 메탈 키드의 피를 다시 끓게 했을 것이고, 그들을 전설로 인식하는 세대에게는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스포츠의 문구를 록에서도 체감할 수 있음을 일깨워줬을 것이다. “See you very very soon”이라던 그들의 마지막 멘트가 현실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메탈리카

김영혁(김밥레코즈 대표)
BEST: 이기 앤 더 스투지스(Iggy and The Stooges, 현대카드 시티브레이크). 시작부터 끝까지 1시간 가까이 뛰었으니, 올림픽 주경기장 트랙을 수십 바퀴는 돌고도 남을 에너지였다. 이들의 앨범 제목(혹은 곡 제목)대로 “Raw Power”가 무엇인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공연이었다. 돌이켜 보면, 이기 팝의 주름진 알몸과 예측 불가의 액션은 메탈리카의 대형 화면이나 뮤즈의 레이저/로봇쇼보다 더 스펙타클했다. 오늘날 땀과 격정으로 범벅이 된 원초적인 록음악을 라이브로 연주할 수 있는 밴드는 그리 많지 않다.

정원석(대중음악평론가)
BEST: 이기 앤 더 스투지스(Iggy and The Stooges, 현대카드 시티브레이크). 우리는 이 공연 전에 이기 팝에 대해 과연 무엇을 알고 있었는가? 이기 팝을 직접 보지 않고 그와 그의 음악에 대해 섣불리 이렇다 저렇다 말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정말 로큰롤이 지닌 원시성, 충동성, 폭력성, 퇴폐미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전대미문의 퍼포먼스였다. 여름 땡볕에 별다른 조명도, 무대세트도, 영상도 없이 몸으로 때워 가며 잠실주경기장을 그야말로 초토화시켰다. 지금 다시 돌이켜보면 음악공연을 보았다기보다는 ‘거대한 에너지의 분출’ 현장을 목격한 느낌이다. 좋은 뮤지션은 보는 이를 즐겁게 하지만, 위대한 뮤지션은 보는 이를 미치게 한다.

김성환(음악칼럼니스트)
BEST: 이기 앤 더 스투지스(Iggy and The Stooges, 현대카드 시티브레이크). 이기 팝이 이번 행사 모든 공연을 통틀어 최고가 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록 공연이 보여줄 수 있는 진정한 열정과 에너지가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사실 이기 팝의 얼굴과 몸의 주름이 보여주는 나이를 무색하게 시종일관 무대를 넘나들며 펼치는 자연스러운 액션과 객관적인 가창력의 우위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혼신을 뽑아내는 가창은 다른 선후배밴드들이 모두 본받아야 할 귀감이었다. 그의 노래를 알고 있었느냐, 모르느냐는 이 날, 이 무대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이기와 스투지스가 펼치는 로큰롤의 열정 속에 자연스레 동참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진정한 ‘록 스피릿’이란 게 만약 존재한다면, 이 날 난 그것을 본 것 같았다.

이기 팝

송명하(Paranoid 편집장)
BEST: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첫날 라인업 전체. 페스티벌은 말 그대로 축제가 되어야한다. 그리고 그 축제에 있어서 최고의 순간이란 말 그대로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 되어야 할테고. 그런 의미에서 첫째 날 S.L.K., 나티, 스틸 하트, 테스타먼트, 스키드 로우, 들국화로 이어진 라인업을 꼽고 싶다. 너무 올드스쿨 계열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올해 열리는 많은 페스티벌 가운데서 이렇게 응집력 있는 라인업을 타임라인에 따라 즐길 수 있는 건 ‘펜타포트’의 첫째 날 라인업이 유일하다. 그날 우린 S.L.K.의 무대에서 카리스마의 ‘Runaway’를, 또 스틸하트 땐 ‘She’s Gone’을, 스키드 로우와 함께 ‘18 &Life’를 그리고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을 목이 터져라 따라 불렀다. 마치 20년 전의 앨범을 들춰보는 것처럼. 이런 경험을 하는 건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그간 ‘펜타포트’ 진행의 노하우가 만들어낸 쾌거 가운데 하나다.

박현준(경인방송FM ‘박현준의 라디오 GA! GA!’ PD 겸 DJ)
BEST: 폴 아웃 보이(Fall Out Boy,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폴 아웃 보이가 ‘Beat It’을 연주하던 순간! 마이클 잭슨의 살아생전 비폭력적인 록 음악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된 ‘Beat It’을 연주하는 순간 록페스티벌이란 거대한 명제 하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밴드가 가장 이상적인 공간에서 세계적인 명곡을 연주해줌으로서, 페스티벌에 참여한 모든 세대가 함께 어우러질 수 있도록 만드는 최고의 효과를 가져 온 순간이었다. 3일간의 펜타포트 록 페스티발 여정을 마무리하는데 있어서 최고의 선곡, 폴 아웃 보이의 선곡 센스 작렬!

들국화

김학선(보다 편집장)
BEST: 스토리 오브 더 이어(Story of the Year,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그들은 인천에서 자신들의 이름값을 증명해보였다. 우리가 유튜브에서나 봐야 했던 미친 에너지와 무대 액션을 직접 눈으로 확인케 해주었다. 그 격정적인 무대에서 자신들이 갖고 있던 서정성을 함께 보여준 것도 높이 살만했다. 어두워진 좀 더 늦은 시간에 무대가 올랐으면 더 환상적인 무대가 됐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김두완(음악칼럼니스트)
BEST: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 시작부터 끝까지, 나인 인치 네일스는 파격을 일삼고 환희를 일구어냈다. 트렌트 레즈너의 완벽주의적 성향은 공연에서도 빈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한명륜(대중음악평론가)
BEST: 스테레오포닉스(Stereophonics,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을 ‘안산 브리티시 록 페스티벌’로 이름을 바꾸는 건 어떨까. 페스티벌 무대마다 특성이 있게 마련이다. 평가라고 하면 어감이 이상하지만, 비교적 더 와 닿았던 무대를 꼽는 기준이라면 아무래도 그 특성과 조화를 잘 이뤘던 뮤지션과 밴드를 꼽아야 할 터다. 지산 시절부터, 공연을 진행해 온 엔지니어 팀은 브리티시 록의 사운드 속성, 특히 고역대를 기분 나쁘지 않으면서도 디테일하게 구현하는 데 노하우가 있음을 입증했다. 스테레오포닉스의 사운드는 윤곽이 뚜렷하지 않았던 베이스를 제외하면 최상이었다. 물론 첫째 날 밤의 큐어에서의 사운드 운용력도 좋았지만,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둘째 날에 구현해 낸 사운드가 더 발전적이었다.



이세환(소니뮤직 차장)
BEST: 스크릴렉스(Skrillex,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 우주에서 온 덥스텝 외계인 스크릴렉스는 진흙 밭에서 지친 다리를 90분간 춤추게 했다. ‘안산밸리’를 거대한 클럽으로 만들어버리고, 록 마니아들을 댄서들로 만들어버린 주술사 스크릴렉스!

임슬기(PAPER 에디터)
BEST: 허츠(Hurts,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 시작부터 강렬함보단 기묘함에 끌렸다. 라이브로 본 허츠의 무대는 앨범에서는 느낄 수 없는 섬세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보컬 티오 허츠크래프트의 꿀렁꿀렁 하는, 하반신이 프리한 춤사위가 매력적이었다. 반쯤 감긴 눈으로, 하얀 장미꽃을 관객들에게 던질 때는 교주 같은 느낌이 감돌기도 했다. 황홀경에 빠진 처자들의 ‘떼창’이 이어졌던 새벽의 무아지경 무대.

박수정(텐아시아 기자)
BEST: 자우림(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데뷔 17년차 밴드의 연륜을 느낄 수 있었다. ‘파애’ ‘이카루스’에서 ‘하하하쏭’ ‘고래사냥’에 이르기까지 점점 흥이 오르는 기승전결의 세트리스트로 영리함을 보였다. 특히 앙코르곡으로 ‘일탈’을 불러 관객들을 축제의 절정으로 치닫게 하고, 곧바로 9집 타이틀곡‘스물다섯 스물하나’로 마무리 분위기를 잡았다. 축제의 여운을 느끼면서 타이틀곡을 각인시키는 홍보까지 일석이조였다.

신중현

권석정(텐아시아 기자)
BEST: 신중현 그룹(현대카드 시티브레이크). 사실 신중현이 록페스티벌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 걱정이 조금 앞섰다. 아무리 전설이라고 해도 그의 나이 75세다. 최근 은퇴를 번복하고 돌아온 그의 공연을 본 관객들이라면 노쇠한 목소리에 실망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날 신중현은 요 몇 년간 지켜본 공연 중 가장 좋은 컨디션을 보여줬다. 수만 명의 젊은 관객들이 앞에 있어서일까? 그는 70대 노장이 아닌 혈기 넘치는 로커의 모습이었다. 가녀리게 떨렸던 신중현의 목소리는 곡이 거듭될수록 점점 또렷해졌고 ‘미인’에서는 쩌렁쩌렁했다. 특히 ‘미인’의 합창은 한국 록의 고전이 록페스티벌에서 울려 퍼지는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신대철과 신윤철이 주고받는 기타 솔로도 압권이었다. 거장을 소환하는 것이 록페스티벌의 미덕이라면, 이날 신중현 그룹의 공연은 그 미덕의 최대치를 보여줬다.

정리.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예스컴엔터테인먼트, 현대카드,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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