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플 창(愴), 목숨 수(壽). 모질도록 슬픈 목숨이다. 영화 ‘창수’의 뜻이다. 동시에 영화가 처한 상황을 대변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개봉 시기가 상당히 늦춰졌으나, 모진 목숨처럼 끝까지 살아남아 4일까지 약 33만 관객과 만났다. 타이틀롤 창수 역을 맡은 임창정은 언론시사회 당시 눈물을 머금기도 했다. 애타게 기다렸던 개봉 순간을 맞이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한 마음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지난해 개봉된 ‘공모자들’보다 앞서 촬영한 작품이니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 싶다.

임창정 개인에게도 창수는 큰 변화다. 질펀한 코미디에 능했던 그의 모습에 슬픔이 더해졌다. 그리고 삼류 양아치의 건들거림도 일품이다. 모질도록 슬픈 목숨을 스크린에 잘 녹여냈다. 분명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맛을 우려낸다. 인터뷰 중에도 그는 창수의 옷을 입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넘기는 특유의 행동이나 창수가 지닌 허세가 자연스럽게 표현됐다. 첫 촬영을 시작한 지 제법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에게서 창수는 여전했다. 임창정 그리고 동시에 창수를 만났다.

Q. 개봉 시기가 상당히 늦춰졌다. 2011년 5월 25일 크랭크인했다. 그럼 첫 촬영을 시작한 지 2년 6개월이 지나서 개봉하게 된 셈이다. 남다른 감회였던지 언론시사회 때 눈물을 머금기도 했다.
임창정 : 2년 6개월 동안 만들어놓고 개봉을 못 한 게 아니라 계속 작업한 느낌이다. 편집실에 모여서 이렇게도 고치고, 저렇게도 고치고. 서로 이야기하면서 웃기도 하고, 때론 좌절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야 다른 영화를 하면 되지만 제작자나 감독은 빨리 개봉해야 다른 영화도 할 수 있고, 생계를 꾸려갈 수 있다. 그래서 감독님께 일거리를 준 적도 있다. 이렇게 형제처럼 다 같이 고민하면서 2년 6개월 동안을 보냈다. 언론시사회 때 세 명 모두 일찍 왔다. 말없이 부둥켜안고 ‘축하한다.’고 했다. 몇백만 들고, 흥행 돼서 축하가 아니라 이 자체, 이 시간이 드디어 왔다는 생각 때문이다. (언론시사회 전) 벌써 우리끼리는 마음 속에서 터진 상태였다.

Q. 끈끈한 뭔가 있었나 보다. 방금 말한 대로, ‘창수’ 마치고 작품 활동을 했고, 바쁘게 활동하다 보면 아무래도 잊히고,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임창정 :
‘창수’란 영화가 어떻게든 매듭을 짓고, 완성하기 위해 중간중간 시간도 많이 포기했다. 그 의미는 기다렸다는 거다. 경제적으로도 십시일반 했다. 너나 할 것 없이 받기로 했던 것 일부를 반납했다. 나 역시 5분의 1만 받고 임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해보자. 자식 10명 있는데 그 중엔 알아서 공부도 하고, 대학도 잘 가는 자식이 있는 반면, 어딘가 모르게 옆에 있어야 할 것 같고, 보살펴 줘야 할 것 같은 자식도 있다. 하지만 결국 다 내 자식이다. ‘창수’는 후자 같은 존재다. 그렇게 키웠더니 이제 장가를 간다는 거다. 그러니 당연히 눈물이 나지 않겠는가. 그런 개념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Q. 그런 의미에서 참 만감이 교차하겠다.
임창정 :
그렇다.

Q. 그리고 언론시사회에서 ‘창수’ 개봉 때문에 머리를 못 자르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은 영화 개봉을 앞두고 극 중 캐릭터처럼 다시 길렀다는 의미인가.
임창정 :
맞다. 개봉 앞두고 안 만졌다. 개봉 때 팬서비스를 하고자 한다. 무대 인사를 할 때 ‘창수’ 의상을 입고 무대 인사를 할 거다. 영화 시작 전에 제 모습을 보면 재밌을 거고, 영화가 끝나고 나면 극 중 캐릭터가 그대로 나오는 것 같을 거다. 그런 이벤트를 위해 똑같이 기르고 있다. 이번 주말 무대 인사를 하면 자를 수 있다. (웃음).

Q. 흥행이 잘 돼서 무대 인사를 2~3주차에 하게 된다면 머리 자르는 시기가 더 늦춰지겠다.
임창정 : 그렇게 되면. (웃음)

Q. ‘창수’, ‘공모자들’ 등 흔히 예상하는 임창정 모습과는 분명 차별점이 있다. 물론 이전에 코믹한 캐릭터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어쨌든 우리가 기억하는 임창정의 모습은 코믹, 지질, ‘웃픈’ 모습이니까. 이런 선택이 의도적으로 비친다.
임창정 :
일부러 이런 작품을 해야겠다고 한 건 아니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게 아니라 대중, 영화 종사자들이 선택한 거다. 코미디를 많이 하다 보니 지치셨던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작품에서도 보고 싶었던지, 이런 작품에 나를 갖다 놓은 게 아닌가 싶다. 이처럼 내 의도와 상관없이 나를 변화시켰다고 생각한다. 어찌 됐던 요즘은 다양한 장르의 시나리오가 들어오긴 한다.

Q. 그 변화가 굉장히 긍정적이다.
임창정 :
‘공모자들’, ‘창수’ 등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다. 나를 선택해줬던, 어색하지 않게 봐줬던 관객들에게 감사하다.


Q. ‘색즉시공’, ‘위대한 유산’, ‘시실리 2km’ 등 임창정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이고, 인상 깊게 봤던 작품들이다. 이제는 이런 모습은 볼 수 없는 건가.
임창정 :
안 하겠다는 건 아니다. 흐름에 맡기는 편이다. 콘서트 할 땐 기획 등을 주도적으로 하는데 영화는 계획대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작품을 맡겨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하기에도 바쁜데 무슨 선택이냐. (웃음)

Q. 사실 ‘창수’와 ‘공모자들’, 두 영화는 비슷해 보이지만 임창정이 연기한 캐릭터의 결은 확연히 차이가 있다. ‘창수’는 요샛말로 ‘웃픈’ 상황이 밑바닥에 깔렸는데 임창정이 생각하는 창수의 매력은 무엇인가.
임창정 :
창수에게서 보통 남자들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창수의 극 중 대사에 ‘태어날 때도 내 맘대로 못 태어났고, 살면서도 내 인생을 못살았는데 죽을 때는 내 맘대로 해보자. 원하는 대로 살아보고 싶은 게 지금 심정’이란 게 있다. 살면서 억울하지만 참아야 하는 상황이 많다. 폭발하고 싶지만, 지켜야 할 사람이 있기 때문에 하지 못하는 게 아무래도 우리의 보통 남자들인 것 같다. 그런 보편적인 걸 이야기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업이 틀려도, 소위 잘 나가는 사람도 그런 고민은 분명 있을 거다. 또 폭발하고 싶지만 참으면서 살아야 정상으로 보이고, 그렇지 않으면 돈키호테 같다고 비치는 게 현실이지 않나. 그런 속내를 창수가 많이 이야기하는 것 같다.

Q. 극 중 창수는 특유의 걸음걸이와 머리카락을 올리는 특이한 행동을 한다. 그건 직접 설정한 건가. 그리고 직접 설정했다면 왜 그렇게 했는지 궁금하다.
임창정 :
창수는 팔자걸음을 걸어도 되고, 영화처럼 해도 되고, 사실 어떻게 걸어도 상관없다. 그냥 선택일 뿐이다. 다만 창조해내는 데 있어 동네 친한 형의 걸음걸이가 딱 떠올랐다. 그래서 해보니 잘 어울렸다. 머리는 고민이 많았다.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사람이 긴 머리를 할 수 있느냐, 짧은 게 맞는 것 같은데 그러면 너무 평범할 것 같고. 그래서 고민하다 머리가 길어도 픽션이니까 괜찮겠다 싶었다. 아주 잘한 것 같다. (웃음).

Q. 그래서 사실 분위기는 분명 누아르인데 임창정의 캐릭터는 코믹하겠거니 생각하게 하는 것도 분명 있다.
임창정 :
알고 있다. 그런데 나름대로 배치가 처음에 웃고, 또 마지막에 행복한 모습으로 끝난다. 그 배치 속에서는 어떻게 놀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어색하고, 당황스러워도 뒤를 위해서 깔아놓은 포석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창수가 웃는 그 자체도 불쌍하게 여겨지는 여운이란 게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그렇게 한 면이 있다.


Q. 첫눈에 반한 미연(손은서)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는 창수의 행동은 이해가 됐나. 개인적으로 미연을 위해 복수를 택하는 결말은 다소 이해하기 어려웠다.
임창정 :
우선 보편적으로 남자들이 여자를 사랑하게 되는 경위와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게 되는 경위는 확연히 다르다. 남자들은 첫눈에 반한 사람을 위해서도 희생할 수 있지만 여자들은 호감이 있어도 좀 더 지켜보는 것 같다. 즉, 남자는 지금 느낌 그대로를 가지고 사랑을 논하게 된다. 영화 속 창수는 한 번도 사랑을 해 본 적 없는 친구다. 그 순수한 친구가 첫눈에 반한 대상인 거다. 그래서 희생할 준비가 다 돼 있는 거다. 물론 냉정하게 보면 바보지만. 그런데 중간에 미연이 사고가 나고, 창수가 궁지에 몰리게 된다. 하지만 결국 나한테 무언가를 느끼게 해줬으니 나도 하고 싶은 대로, 그 친구를 위해 살아보겠다는 다짐을 하고, 그때부터 범인을 쫓게 된다. 원래는 설명이 더 있었지만 아쉽게도 편집과정에서 삭제됐다. 또 창수는 보통 남자들이 대부분 가지고 있는 밉지 않은 허세, 허풍이 있는 친구다. 결말 역시 사랑 때문만은 아니라고 본다. 복수도 하고, 보상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동시에 하지 않았을까. 그게 창수의 세계 안에서 할 수 있는 최고로 멋진 행동인 거다.

Q. 실제 임창정은 첫눈에 반한, 운명적인 여성에게 모든 걸 바칠 수 있나.
임창정 :
마음가짐은 다 그렇지 않나. 없으세요? (Q.솔직히 그렇게 못할 것 같다.) 그건 때가 묻어서 그렇다. 창수는 사랑을 안 해 본 친구다. 우리 어렸을 때를 생각해 보면 된다. 가령 고등학교 때나 풋풋한 마음일 땐 첫눈에 반한 여자에게 목숨도 바칠 기세다. 그게 이틀이 된 여자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못하는 거다. 순수함이 그만큼 없으니까. 못한다는 거에 부끄러울 줄 알아야 한다. 순수함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니까.

Q.정말 맞는 말 같다.’라디오스타’에 출연해 정성화 씨를 직접 추천했다고 했는데 뭔가 확신이 있었나. 그 정도로 친분이 있었는지도 궁금하다.
임창정 :
‘청담보살’ 할 때 딱 세 신 붙었다. 그때 연기 ‘살벌하게’ 하는 친구란 생각이 들었다. 100% 자신 있었다. 원래 상태 역할이 다른 친구였는데 일정 때문에 못하게 됐다. 그래서 곧바로 정성화한테 연락하자고 했고, 그렇게 같이 하게 됐다. 친분은 딱히 없었지만 ‘청담보살’하면서 꼭 한 번 같이 할 거라곤 했다.

Q. ‘공모자들’ 당시 촬영 중 위험했던 순간이 많았다고 여러 차례 말했었다. 이번엔 그런 장면은 아니지만 참 많이 두들겨 맞는 것 같다. 맞느라 고생 좀 한 것 같다.
임창정 :
안 부러진 게 다행이다. (웃음) 극 중 2층 계단에서 떨어지는 장면이 있는데 정말 내가 한 거다. 안전장비라곤 나무박스 하나뿐이었고. ‘창수’가 ‘공모자들’ 전에 촬영했는데 그 덕분에 ‘공모자들’이 좀 수월했다. 그리고 위험하다고 느끼는 건 검증을 다 해준다. 또 정말 위험한 것은 스턴트가 다 한다. 다만 될 수 있는 한 흉내를 내려고 하는 거다. 웬만하면 말린다. ‘공모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분들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 현장에서 보면, 사람이 저렇게 해도 되나, 정체가 뭐지, 몸이 쇠로 이뤄졌나 싶을 정도다. 스태프란 이름으로 있지만 새삼 다시 한 번 감사하다.


Q. 가수 임창정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가수 은퇴한다고 했을 때 정말 아쉬웠는데 다시 활동을 시작했고, ‘나란 놈이란’, ‘문을 여시오’ 등이 정말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솔직히 이 같은 반응을 예상했나.
임창정 :
절대, 절대. 사실 내년 3월 전국 투어 콘서트를 계획 중이다. 많진 않겠지만 나를 좋아했던, 임창정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팬들에게 다시 들려주고 싶었다. 그러면 규모를 떠나 전국 투어를 하자, 그게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수익을 얻고 그런 개념이 아니다. 그리고 내년 전국 투어를 하려면 타이밍상 이때쯤 디지털 싱글을 내고 활동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내년쯤 정규 앨범을 만들고. 그런 의도였는데 이게 뭔 일인가 싶다. (웃음). 웃으면서 사니까 좋은 일들이 생긴다.

Q. 정말 기분 좋겠다. 의도했던 것보다 훨씬 더 터졌으니 말이다.
임창정 : 날아갈 것 같다. 어떤 의미에선 웃을 수 있게 허락해준 거다. 지금 내 인생을 판단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앞으로 50대의 임창정, 60대의 임창정이 계속 있을 텐데 죽기 바로 직전의 임창정이 내 인생에는 주인공인 것 같다. 지금의 나는 그때 임창정의 추억거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은 이 행복감을 실컷 즐기려고 한다. 앞으로 살면서 오만가지 일이 있을 텐데 좋은 일이 있을 때 겸손하게 아껴서 즐길 줄 아는 현명함과 지혜를 배워가는 단계인 것 같다.

Q. 이 같은 인기의 이유, 본인 스스로 생각했을 때 뭐라고 생각하나.
임창정 :
글쎄. 편안함인 것 같다. 물론 어색하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겠지만 ‘쟤는 어디가 갔다 놓아도 봐줄 만하다’는 말을 듣는 것 같다. 진지하게 ‘나란 놈이란’을 부르다가 ‘문을 여시오’로 코믹댄스를 하는데 ‘그것도 어울리네’란 말을 해 준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코믹 영화를 하다가 ‘공모자들’ 나와도 의외로 잘 어울린다고 해주시고.

Q. 앞으론 가수와 연기, 둘 중 하나를 섣불리 은퇴한다고는 못할 것 같다. (웃음) 이제 다시 두 분야에서 활동하게 됐으니 어떻게 병행해 갈 것인지 궁금하다.
임창정 :
즐기면서 할 거다. 그때는 즐기는 방법도 몰랐고,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은 무대에 오르면 ‘벌써 끝난 거야. 잘 놀았다’ 이러고 내려온다. 즐길 줄 안다면, 오랜 시간 같이할 수 있을 거라 본다. 이런 식으로 조금 더 즐겨가는 방법들을 터득해 가고 싶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