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 아이돌그룹 엠블랙 멤버다. 그리고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매력을 전하기도 했다. 이번엔 연기다. 아이돌의 연기 도전이 그리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상당수의 아이돌이 좋은 평가와 함께 ‘연기돌’이란 훈장을 당당하게 가져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준은 연기에 도전하는 다른 아이돌과는 분명 남다르다. 단지 연기 경험이 있어서가 아니다. 이준이 주연한 ‘배우는 배우다’를 보고 나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오래전부터 배우를 꿈꿔왔던 이준은 ‘파격’을 선택했다. 아이돌은 잠시 내려두고, 배우로서 임했다.

‘배우는 배우다’에서 이준이 맡은 역할을 오영. 단역 배우에서 한순간에 스타덤에 오르게 되고, 다시금 추락하는 인물이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 맞게(?) 수위가 상당하다. 이준은 여러 번의 정사신도 소화했다. 그것도 애정이 전혀 없는, 폭행에 가까운 정사신을 말이다. 그리고 연예계의 추악한 단면도 강렬하게 그려진다. 그 가운데 이준이 있다. 물론 ‘배우’로서 있는 거지만. 무엇보다 이준은 역할에 녹아들었고, 관객들의 감정을 오영에게 이끌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드는 생각, 이준의 선택이 놀라웠다. 아이돌에 대한 선입견이 무색해졌다. 그리고 ‘배우는 배우다’ 측은 왜 이준을 선택했는지도 궁금했다. 이준과의 인터뷰를 통해 궁금증을 해소했다.

Q. ‘배우는 배우다’ 출연 자체가 놀랍다. 본인의 결정도 결정이지만 소속사에서 흔쾌히 OK를 한 건지도 궁금하다. 아이돌그룹 멤버인데 노출, 베드신 등은 물론 내용적으로도 파격적이지 않나.
이준 :솔직히 나는 하나도 그런 게 없었다. 연기하고 싶은 거지, 멋있게 보이고 싶지 않다. 언제까지 예쁘고, 멋있는 것만 할 수 없는 일이다. 또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아이돌이 해도 되고, 안 되고를 나누는 게 좀 오글거린다고 생각한다. 극 중 대사에도 있지만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사는 게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신대로 결정했고, 어떤 평가가 나오든 후회는 없다.

Q. 알려졌다시피, 엠블랙 데뷔 전 ‘닌자 어쌔신’으로 먼저 연기 경험을 하지 않았나. 이후로도 기회는 많았을 것 같은데 사실 작품 활동은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이준 : 제의는 있었다. ‘닌자 어쌔신’ 개봉 당시 (엠블랙) 데뷔 때였다. 그래서 영화 관련 인터뷰 등 전혀 참여하지 못했다. 또 활동을 그룹으로서 하다 보니까 그동안 못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들어오는) 대본이 있더라도 불가능했고, 그래서 계속 쉬었다.

Q. 하고 싶었던 게 연기로 알고 있는데, 상황적으로 할 수 없게 되면서 연기에 대한 갈증이나 갈망이 많았겠다.
이준 : 그동안 시행착오가 많았다.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 하면서도 나중엔 또 포기하게 되는 거다. 지금 26세인데 21세부터 지금까지 짧은 햇수 안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다시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다가도 포기하고, 이런 게 오락가락했다.(웃음) 감정 기복이 심하니까 뭔 생각을 하고 사는지도 모를 때도 있었다.

Q.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일련의 시행착오도 있었고, 하고 싶어도 못했던 때가 있다 보니 이번 영화의 제안이 들어왔을 때 파격적인 내용이었음에도 조금은 쉽게 선택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이준 : 그렇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지금까지 좋은 작품들을 할 뻔했는데 못하게 된 것도 있었다. 그룹으로 데뷔했기 때문에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것도 있었다. 이에 미련을 가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영화를 찍었는데 분명 그동안 (연기를) 하지 못했던 갈증, 고민했던 부분 때문에 더 도움이 된 게 있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찍기 위해 일련의 시행착오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하고 싶은데 못하고, 힘들었던 이유가 이 작품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닌가 싶다.


Q. 제작보고회 당시 가장 생각나는 장면으로 베드신을 꼽았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언론은 물론 대중도 그럴 것 같다. 아이돌 멤버인 이준이라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어찌 됐던 그 많은 베드신을 찍은 느낌이 어떤지 궁금하다.
이준 : (베드신을) 찍는다고 하면 좋겠다고 하는데 전혀 좋지 않으니까 부러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웃음) 운동하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연기에 대한 부담감은 물론 육체적으로 힘들다. 굉장히 어려웠던 것은 베드신을 하면서 대사를 치는 거다. 호흡도 호흡이지만 대사가 약간 거칠기도 하면서 연극 같은 느낌도 들어간다. 그래서 어려웠다. 공부한다는 느낌으로 찍었던 것 같다.

Q. 베드신이란 게 여배우도 아주 힘들지 않나. 또 연기 경험이 많지 않아서 여배우와 호흡을 맞춰가는 것도 어려웠을 것 같다.
이준 : 다른 장면들은 합을 맞춰볼 수 있지만 베드신은 따로 연습할 수 없는 일이다. 괜히 잘 못 말했다가 오해를 할 수도 있는 일이고. 그래서 사전에 이야기를 많이 했다. 첫 베드신에서는 사전에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촬영에 들어갔다. 찍는 순간에는 내 맘대로 막 할 거니까 놀라지 말라고 했다. 어느 정도 동선은 있었지만 거의 모든 게 애드리브라고 보면 된다.

Q. 애드리브라고? 베드신에 대한 노하우가 있나 보다.
이준 : 하하. 말이 조금 이상한데 옷을 다 벗기면 편하다. 옷을 벗기는 게 힘들었다. 실제 상황이 아니라 연기인데 그렇다고 부자연스러우면 안 되는 거다. 자연스럽게 최대한 하려고 노력했다. 정말 사람의 옷을 벗기는 게 어렵다는 것을 깨달을 정도였다. 방법을 모르다 보니 한번은 옷을 찢어버리기도 했다. 민망하기도 하고, 여러모로 낯설기도 했다.

Q. 영화 속 베드신이 어렵게 느껴지긴 했다. 멜로 영화 속 베드신도 아니고, 사랑의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찍어야만 했으니까.
이준 : 맞다. 뭔가 서툰 느낌도 있어야 하고, 사랑이 아닌 것도 표현해야 하니까 너무 어려웠다. 화장실에서의 베드신은 거의 폭행에 가깝다. 표현 방법을 도저히 모르겠는 거다. 얼마나 쓰레기가 돼야 이런 짓까지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더러웠다. 그런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했고, 무섭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 신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화장실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게 있는데 그게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나’ 등의 속 감정들을 보여주는 거다.

Q. 연기 경험이 있다고 하지만 원톱으로 영화 한 편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진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많은 부분을 느꼈을 것 같은데 스스로 만족했던 부분은 무엇인가.
이준 : 연기력을 떠나 오영이란 친구의 열정이 보이지 않았나 싶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눈빛 등에서 열정을 느끼게 했다는 점은 만족스럽다. 그리고 다시 해도 지금만큼 못할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도 스스로 ‘다시 하면 이렇게 안 나오겠다’고 생각했다. (웃음)

Q.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시피, 예능 프로그램 ‘강심장’의 출연이 ‘배우는 배우다’로 이어지게 됐다고 말했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들은 바가 있나. 어떤 면에선 김기덕 감독이나 신연식 감독 등 ‘배우는 배우다’ 제작진도 이준을 주인공으로, 그것도 원톱으로 내세운다는 게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 같다.
이준 : 나 역시 궁금하긴 마찬가지다. 내가 이 작품을 선택하기는 쉬웠을지 몰라도, 그분들이 나를 선택한 건 지금도 의문이다. 입장을 바꿔서 내가 김기덕 감독이나 제작사 입장이었다면 솔직히 (나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래서 정말 감사하고, 더 열심히 하자는 마음이었다. 그렇다고 왜 저를 선택하셨어요라고 물어볼 수도 없고.

Q. 평소 김기덕 감독 작품을 좋아했다고 들었다.
이준 : 영화를 굉장히 많이 보고 좋아한다. 김기덕 감독님 작품도 계속 챙겨봤고, 좋아하는 작품도 당연히 있다. 연기자 입장에선 꼭 한 번쯤은 경험해보고 싶은 그런 연기지 않나란 생각이 들었다. 흥미가 많았다.

Q. ‘배우는 배우다’에도 김기덕 색깔이 묻어나는 느낌이었다.
이준 : 많이는 아닌 것 같다. 신연식 감독님과 김기덕 감독님의 조화가 이뤄졌다고 생각한다. 완전히 김기덕 스타일은 아니지만 묘하게 살짝 묻어 있는 그런 영화였다.

Q. 단역에서 스타가 되고, 다시 추락하고. 이런 경우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것 같다. 여러 이유로 스타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경우가 많지 않나. 이번 영화를 하면서 마음가짐을 다시 곧추세우는 계기가 됐을 거란 생각이다.
이준 : 오영과 닮진 않았지만 항상 그 마음이 있다. 우리 직업은 관심을 받고, 사랑을 받는 직업인 동시에 그만큼 등을 돌리는 것도 한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조심하면서, 긍정적으로 살아보려고 노력했다. 또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이름의 한자도 베풀 선이다. 그 이름 생각하면서. (웃음) 어찌 됐던 그런 놈은 아니지만 ‘절대 이러면 안 되겠구나’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었다.


Q. 사실 모든 연예인이 ‘자기는 바뀌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을 한다. 그런데 자기도 모르게 바뀌는 것 같다. 자신은 바뀌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그대로라고 해도 주변에서 다르게 대해준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변하기도 한다.
이준 : 아! 그…그런가요.

Q. 그래서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자신만이 아니라 좀 더 넓게 보는 눈도 가져야 할 것 같다.
이준 : 맞다. 남들이 하는 말에 귀담아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몇 년 동안 내 모습을 보면 신인 때보다 지금이 더 착하다.(웃음) 확신한다. 그리고 (주변 때문에 바뀌게 되는 경우를) 겪어 보면 그때 말씀드리겠다.

Q. 원래 배우를 꿈꿨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연기에 대한 욕심도 많고. 그리고 한예종 현대무용 전공인데 비의 한 마디에 자퇴했다는 인터뷰 기사도 봤다.
이준 : 비 형의 한마디에 자퇴한 건 아니고, 연기를 위해 결단한 거다. 사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가짐으로 자퇴했다.

Q. 어떤 계기가 있었던 건가.
이준 : 더 나이 먹기 전에 해보고 싶었다. 스무살이면 성인이고, 자기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나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을 책임져야 할 나이다. 똑같은 일을 해도 청소년과 성인이 다르지 않나. 그래서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으로 그렇게 했다.

Q. 엠블랙 팬들에겐 미안한 거 아니냐. 엠블랙 팬들은 배우 이준이 아니라 엠블랙 이준을 더 좋아할 수도 있는 건데.
이준 : 어리신 분들은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아니 나이와 상관없이 충격을 받을 수 있겠지만 진짜 드디어 원하는 일을 했는데 나를 싫어할까 싶다. 순간의 충격이지 다음부터 괜찮을 것 같다.

Q. 연기할 때보다 가수로서 무대에 설 때 큰 재미를 못 느끼는 게 아닌가 싶다.
이준 : 팬들하고 호흡하고 그런 것들은 즐겁다. 성적을 떠나 다 좋은 추억으로 있다. 그냥 두 가지 모두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만족하고 있다.


Q. 배우의 정의를 내린다면.
이준 : 말 그대로 배우인 것 같다. 연기를 하는 사람. ‘정상을 날든, 바닥을 기든 배우는 배우다’라고 포스터에 문구가 있는데 맞는 것 같다. 어느 위치에 있던, 단역이든 주연이든 연기를 사랑하는 마음과 자세는 똑같다. 연기를 사랑하는, 자기가 좋아서 하는 사람이 배우라고 생각한다. 잘하고 못하고는 그다음이다.

Q. 이준 만의 연기관이나 배우 관이랄 게 있을까.
이준 : 닮고 싶은 사람은 있다. 그런데 내 색깔은 확실히 찾지 못한 것 같다. 많이 연습해야 할 것 같다. 나랑 잘 맞는 게 뭔지 많이 해보고 있는 것 같다. 연기함에 있어 확신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물론 ‘배우는 배우다’는 확신하고 했지만 어찌 됐던 자신에게 확신이 생길 때 (연기관 또는 배우 관이) 잡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작품을 하든 말든 시나리오를 많이 보고 있다.

Q. 닮고 싶은 배우는 누구인가.
이준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그 배우의 작품을 많이 봤는데 정말 다 다른 모습이었다. 제일 부러웠던 건 김기덕 감독님께서 ‘진심을 다하면 심장 소리가 들린다’고 했는데 그게 들렸다. 그런 내공을 닮고 싶다. 별다른 표정이 아닌데도 공감을 하게 만드는. 그런 것들이 신기하다.

Q. 가수와 배우, 앞으로 어떻게 활동을 해 나갈 것인가.
이준 : 그룹도 소중하다. 엠블랙이란 그룹이 있는 한은 같이 활동할 계획이다. 하지만 영원할 순 없으니까. 엠블랙이 해체된다면 그땐 각각 제 갈 길을 가지 않을까. (솔로 계획은?) 재미없다. 다섯 명이 할 때가 재밌는 것 같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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