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미의 행보는 참 흥미롭다. 대중의 입장에서도, 취재하는 기자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내 깡패 같은 애인’, ‘도가니’ 그리고 개봉을 앞둔 ‘깡철이’ 등 상업성 짙은 영화에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고, ‘로맨스가 필요해 2012’, ‘직장의 신’ 등 때론 안방극장을 찾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홍상수 작품을 비롯해 ‘카페 느와르’ 등 작은 또는 예술 영화에서도 쉽게 그녀를 만날 볼 수 있다. 이런 정유미의 행보, 또래 여배우들과 비교해 분명 이색적이다. 이에 정유미는 “그건 기자님 생각”이라고 핀잔을 놓는다.

어찌 됐던 정유미의 매력은 여기에서 나온다. 어떤 작품에서도 자신만의 색깔이 확실하다. 기억에 남을 만큼. 그리고 제법 강단도 있다. 홍상수 감독이 정유미를 자주 찾는 이유도 그런 매력 때문은 아닐까. 그녀는 “다른 배우들이 거절했나? 말을 잘 들어서인가”라고 농담 섞인 말을 건넨다. 하지만 분명한 건 홍상수 작품에 가장 많이 출연한 배우란 사실이다. ‘우리 선희’ 등 장편과 단편, 총 6편을 작업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물었다. 홍상수에 대해.

Q. 최근 들어 홍상수 영화에 가장 많이 출연하는 배우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홍상수 영화라고 했을 때 떠올려지는 배우는 사실 유준상, 김상경 등 남자 배우가 아닌가 싶다.
정유미 : 그건 기자님 생각이다. 사람마다 다를 거라 본다. 나 역시 처음부터 (홍상수 영화에) 어울리는 배우는 아니었는데 하다 보니 지금은 익숙하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동시에 어떤 누군가는 정말 새롭다고도 한다. 그런 생각 없이 그때그때 영화에 맞게 할 뿐이다.

Q. 홍상수 영화 중 이름이 들어간 작품이 총 4편이다. ‘오! 수정’,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그리고 정유미가 주연한 ‘옥희의 영화’와 ‘우리 선희’다. 그런 점에서 조금은 남다른 의미일 수도 있겠다.
정유미 : 그것도 기자님 생각이다.(웃음) 그 점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했던 적은 없다. 고맙고, 좋기도 하지만 다 같이 만든 건데 주인공으로 비치는 것에 대한 부담도 따른다. ‘우리 선희’의 경우 선희도 선희지만 ‘우리’도 주인공인 영화다. 그렇지 않나?

Q. 이선균과는 홍상수 영화에서만 3번 호흡을 맞췄다. 누구보다 더 편하겠다.
정유미 : 항상 아쉽다. 촬영 일수로만 치면 한 달도 안 된다. ‘첩첩산중’ 4일, ‘옥희의 영화’ 6일, 이번에 2일이다. 그래서 이 호흡이 너무 아깝다. 뭘 챙겨주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가만히 있는 오빠를 보면서도 자극을 받게 된다. 재밌고 긴 걸로 해보고 싶다. 진짜 잘할 수 있는데….

Q. 이번엔 이선균과 함께하는 장면에서 NG를 많이 냈다고 하지 않았나. 그건 왜 그랬나.
정유미 : 나도 모르게 쌓인 부담감이 드러났나 보다. 너무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그냥 가서 열심히 촬영하다 왔다면, 이번엔 오랜만에 감독님, 오빠랑 하는 거라 ‘잘해야지’란 마음을 먹었다. 그런 마음이 부담감으로 왔던 것 같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마음이 콩밭에 있었던 것도 한 이유다. 그러다 보니 말렸다. 잘하려다 보면 계속 실수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에 딱 그랬다. 이런 경우가 한 번도 없었다. 감독님과 오빠도 ‘황당하네’라고 하더라.


Q. 홍상수 영화 속 이선균과 정유미는 언제쯤 사랑이 이뤄질까? 이번에도 과거에 사귀었다 헤어진 걸로 나오지 않나.

정유미 : 감독님이 쓸까요? 사실 선균 오빠가 항상 먼저 캐스팅된다. 그리고 주인공이긴 한데 ‘옥희의 영화’, ‘우리 선희’ 등 제목 때문에 조금은 (포지션이)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다음엔 ‘우리 선균이’도 만드시라고 감독님께 이야기했다. 그리고 내가 (오빠를) 잘 쫓아다닐 수 있다. 정말 잘할 수 있다.(웃음).

Q. 그리고 또 하나. 옥희는 영화과 학생이었고, 선희는 영화과를 졸업하고 유학을 준비생이다. 순서만 놓고 봤을 때 다음 홍상수 영화에선 감독 데뷔하는 거 아니냐.
정유미 : 그럴 날이 올까요. 언젠가 그럴지도, 또 나를 찾아줄지 모르겠다. 그런데 왠지 계속 학생일 것만 같은 느낌이다.(웃음)

Q. 홍상수 감독은 왜 정유미를 쓸까? 그리고 정유미는 왜 홍상수 영화에 출연할까.
정유미 : 이번에도 내가 필요한가? 다른 배우들이 거절했나? 뭐 그런 생각 한다.(웃음) 그런데 늘 좋다. 분량이 늘어나고 할 때도 있지만 이틀 정도 촬영이고, 물리적으로 큰 부담은 없다. 너무 말을 잘 듣고 그래서 그런가.

Q. 홍상수 영화의 힘은 어디에 있나. 한 번 연을 맺으면 계속 가는 것 같다. 그리고 다른 배우들도 매번 좋다는 말만 하니까.
정유미 : 다른 현장도 그렇지만 이 현장만의 매력이 있다. 짧게 해서 아쉬운 것도 있고, 한편으론 정확히 끝나서 좋기도 하다. 집중해서 만들고, 그 안에서 희한한 게 있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데서 경험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또 짧게 했는데 영화로 나오면 큰 선물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과정 자체가 매일 좋을 순 없겠지만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것도 고맙고. 어찌 됐든 감독님 영화가 나오고, 그 안에 내가 있고, 그런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Q. 홍상수 영화에 출연하기 전부터 홍상수 영화들을 좋아했나.

정유미 : 아니요. 친구들이나 선배들이 좋아했다.(웃음) ‘잘 알지도 못하면서’인데 우연히 제의가 왔고, 사실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진짜 그렇게 찍는단 말이야? 뭐지?’ 그랬다. 그래도 그 제목만(당시엔 제목이 먼저 나왔다.)으로도 힘이 생겼고, 그 작업이 힘겨웠지만 뿌듯하고 재밌었다.

Q. 그럼 지금은 홍상수 영화를 좋아하나.
정유미 : 내가 나온 감독님 영화만 좋아한다. (웃음)

Q. 혹시 본인이 출연한 것을 제외하고 다른 작품은 아예 안 보는 거 아니냐.
정유미 : 아니다. ‘하하하’도 봤고, ‘해원’도 시사회 가서 봤다. 그래도 내가 나온 게 제일 재밌다. ‘다른 나라에서’도 분량이 많진 않지만 내가 나오기 때문에 재밌다. ‘내 것’이란 생각이 든다. 감독님도 아마 알고 계실 거다.(웃음)

Q. 그런데 한 감독과 비슷한 방식으로 작업하다 보면 어느 순간엔 식상하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적은 없었나.
정유미 : 전혀 없다. 날마다 새롭다. 어떤 게 던져질지 모른다. 대중들에겐 비슷한 캐릭터로 보일 수 있겠지만 배우인 나한테는 날마다 다르다. 아침마다 대본 주는 건 똑같지만 무슨 말을 줄지 모르는 것 아니겠나. 그리고 365일 계속 찍는 것도 아니고, 2년에 한 번 정도다. 주인공이 될지 몰랐지만 주인공일 때도 있고, 잠깐 나올 때도 있고. 그런 익숙함에서 오는 새로움이 분명 있다. 작업 방식, 스태프 등은 똑같지만 내가 연기하는 거나 마음 상태 등은 그때그때 다르다.

Q. 언론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우린 다 너를 믿는데 넌 너를 못 믿는 것 같다’는 홍 감독님의 말을 전했다. 지금까지 쭉 이야기하는 걸 보면 그 말의 의미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
정유미 : 현장에서 계속 ‘안돼요’, ‘못해요’라고 한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투정이었다. 개인적인 사정도 있었고, 뭔가 겉돌고 있었다. 그래서 약간 반항했다. 처음에만 그랬고 나중엔 잘 찍었다.(웃음) 감독님 영화를 오래오래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내 딴에는 주인공이 되는 건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Q. 개인적인 느낌일 수도 있는데 ‘우리 선희’는 이전과 달리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한 것 같다. 촬영하면서는 어땠나.

정유미 : 전체는 잘 모르겠다. 내가 출연한 장면에서도 충고를 해주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그 대사들이 되게 와 닿는 말이었다. 대본을 받으면 매번 그렇다. 다 기억할 순 없는데 한 개 이상은 좋은 말이 있다. 역할을 떠나서 내 개인적으로도 자극되는 말들이 있다.

Q. 영화를 봤을 때는 어떤 기분이 들었나.
정유미 : 보는 사람마다 다를 텐데 누구나 같은 경험은 있을 거로 생각한다. 내가 했던 말이 다른 사람한테 전해지고, 그게 다시 나한테 돌아오고.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사는 것 같다.

Q. 평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남들이 내린 나에 대한 평가가 간혹 나와는 다를 수도 있다. 그리고 잘못 판단할 수도 있는 일이다. 특히나 연예인들은 더더욱 그런 점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 같다.
정유미 : 연예인들은 아무래도 더 많은 시선을 받으니까. 또 쉽게 판단을 내리는, 그런 상황에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Q. 본인 스스로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말해줬으면 좋겠는가.
정유미 : 충고나 이런 건 아닌데 예전에 드라마를 안 한다는 말이 돌았던 적이 있다. 처음 드라마 할 때 어려웠고, 헤매기도 했다. 그런데 재밌더라. 영화는 준비를 많이 할 수 있고, 거기에서 나오는 좋은 게 있지만 드라마는 그렇지 않다. 일단 뛰어들었으면 그 시스템에 맞게 해야 한다. 그랬는데 그 안에서 희한한 게 나오더라.

또 (드라마가) 끝남과 동시에 모든 게 끝나는 것 같아서 좋더라.(웃음) 왠지 연기만 하면 되는 것 같았다. 영화는 개봉할 때 기억을 꺼내야 하지 않나. 어찌 됐던 재밌기도 하고, 좋았다. 드라마를 하고 싶다고도 했다. 그런데 뭐가 잘 맞지 않아서 드라마를 못하게 된 건데 일부에서 (‘안 한다’, ‘재미없다’ 등) 판단해 버리는 거다. 지금,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리고 작품을 보고 정유미의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이 있다. 만나본 사람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드라마만 본 사람은 내가 우울한 사람인지 안다. 그런 것은 오해 아닌 오해다. 그런데 사람마다 다르니까 요즘엔 ‘에라~’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로맨스가 필요해’나 홍상수 영화를 찍은 줄 모르는 사람도 있고, ‘직장의 신’을 통해 처음 본 사람도 있고 하니까. 그러니까 오히려 더 자유로워진 것도 있다.

Q. 말이 나와서 말인데 최근 ‘직장의 신’도 그렇고, 과거에 했던 드라마 ‘케세라세라’나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 등을 보면 (우울한 이미지)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좀 밝고, 명랑한 또는 사랑스러운 그런 역할을 하고 싶진 않은가.
정유미 : 무조건 상업영화나 공중파를 찾거나, 그런 것 때문에 말이 안 되게 움직이고 싶진 않다. 순서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성이나 인지도가 중요하다는 건 안다. 함께 한 영화를 많이 사람이 봐주면 당연히 좋다. 그런데 그게 안 되는 것 같다. 할 수 있는 한 말이 되게 움직이고 싶다. 가령 드라마 시놉시스가 왔는데 재미가 없는 거다. 그 상황에서 공중파 편성 확정됐다고 (출연하라고) 추천하면 나 스스로 동의가 안된다. 좀 기다리더라도 그렇게 갈 생각이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제공. 호호호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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