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림씨 ‘올 라잇(All Right)’ 스탠바이 할게요. 무대로 올라와주세요!”
가수 김예림. 17일 첫 번째 솔로 미니앨범 를 발표했다. <슈퍼스타 K3>(2011)에서 1993년 동갑내기 도대윤과 ‘투개월’로 한 팀을 이뤄 TOP3의 자리까지 올랐다. 오디션 프로그램 생방송 무대에서 불렀던 ‘여우야’, ‘포커 페이스(Poker Face)’, ‘브라운 시티(Brown City)’ 등의 곡은 음원으로 발매돼 좋은 반응을 얻었다. <슈퍼스타 K3>을 통해 인연을 맺은 심사위원 윤종신을 따라 소속사 미스틱89(MISTIC89)에 둥지를 틀었다. 1년 반만의 컴백에도 실시간 음원차트에서 상위에 랭크되며 완성도 있는 앨범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지난 24일 인터뷰를 위해 텐아시아를 방문한 그녀의 표정에선 스무 살의 풋풋함과 새 앨범에 대한 자신감이 동시에 읽혔다.
[소설 같은 인터뷰]: 취재한 내용을 좀 더 생동감 있게 전달하기 위해 김예림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각색한 1인칭 시점의 소설. 〈편집자 주〉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돼 있더라’라는 말이 이렇게 와닿은 적이 있었던가. 나도 어떻게 하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정말 신기해. 신치림 선배도 그렇지만, 내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롤러코스터의 이상순 선배, 메이트의 정준일 선배, 검정치마의 조휴일 선배까지. 이렇게 많은 뮤지션들이 나의 첫 번째 미니앨범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말이야.
그게 언제였더라. 아, 아마 중학교 1학년 때였던 거 같다. 캐나다로 혼자 유학을 갔었던 시기였지. 저녁에 조촐하게 열린 파티에 참석했는데, 친구들이 계속 노래를 불러보라고 했어. 처음에는 계속 내뺐지, 지금도 부끄러움을 많이 타지만 그때는 더 심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노래를 불렀다, 그것도 무반주로.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 기억도 안 날정도로 긴장했었어. 그게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던 기억.
정말 노래를 잘 불러서였는지는 몰라도 친구들은 칭찬 일색이었어. 그때 부터였을까. 자꾸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진지하게 생각했던 거는 고등학교를 들어가면서부터였지. 부모님은 “다른 일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자주 물으셨어. 그래서 마음 한편에 음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묻어두고 이것저것 해보기도 했지. 그러던 중에 한 번씩 음악을 하면 더 재밌더라. 그런 기분을 느끼고 나서는 계속 무엇인가를 하다가도 결국 음악으로 돌아가게 됐지. 그때 생각했어. ‘아 그냥 나는 음악을 해야겠구나’하고 말이야. 따로 음악을 공부했던 건 아니었어. 거의 혼자서 음악을 듣고 부르고 했던 게 전부였던 거 같아. 부모님께 ‘음악을 하겠다고 말씀을 드려볼까’하고 망설이기도 했지. 사실 학원도 다녀보긴 했는데 한국에 들어왔을 때 1~2달 정도 다니고 말았어.
실제 투개월의 김예림과 도대윤의 페이스북 캡쳐화면
그러던 어느 날, 한국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 K3>가 뉴욕에서 미국예선을 치를 거라는 소식을 접했어. 바로 지원 해야겠다고 생각했어. 나는 가수가 되고 싶었고, 뉴욕은 내가 사는 곳과 무척 가까웠기 때문이지. 처음에는 혼자 나가보려고 했어. 그런데 갑자기 문제가 생겼어. 자미로콰이(Jamiroquai)의 ‘버츄얼 인세니티(Virtual Insanity)’를 부르려고 했는데 이게 혼자서 하기가 애매한 거야. 곡에 리듬감이 있고 펑키한 느낌이 있어서 기타가 필요할 것 같았는데 나는 악기를 못 다루고, 예선 심사장에서도 피아노 반주만 가능하더라고. 그때 도대윤이 떠올랐어. 대윤이가 우리 학교에서 기타를 제일 잘 치는 걸로 유명했거든. 대윤이는 밴드도 하고 있었거든. 큰 맘 먹고 대윤이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어. ‘안녕!ㅋㅋ 갑자기 이상하지만 시간될 때 노래 같은 거 같이 연습해줄 수 있어?’하고 말이야. 그런데 흔쾌히 승낙하는 거야. 처음에는 기타만 쳐주기로 했는데 연습을 하다보니까 화음도 넣고 아예 팀을 만들게 된 거야. 그래서 대윤이와 함께 오디션에 나가게 됐어.아,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덤볐지. 오히려 생방송 무대에 올라서는 긴장도 안했어. 대윤이나 나나, 그렇게 상위권으로 올라갈지도 몰랐고 1위에 대한 욕심도 없었거든. 처음엔 뭔가 ‘투개월’스럽게 해야한다는 생각도 없었어. 그저 우리가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자 했었던 것뿐이지. 사실 어느 그룹의 특색이라는 건 우리가 하는 것들을 대중이 지켜보며 추상적인 색깔을 입히는 것이라 생각했거든. 대윤이와 나는 성향이 많이 달랐어. 음악도 그렇고, 좋아하는 것도 달랐거든.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된 건 우리 둘의 그러한 ‘차이’가 결과적으로는 더 좋은 일이었다는 거야. 작업을 하면서 생각보다 서로 부딪힐 일이 없기도 했지만, 서로 ‘이것도 들어봐’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어.
투개월 방송화면 캡처" /><슈퍼스타 3K> 투개월 방송화면 캡처
<슈퍼스타 K3>가 끝난 후에 고민을 많이 했어. 대윤이와 나는 나이가 어리기도 했고, 미래가 걸려있는 선택을 그때 바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어. 함께 <슈퍼스타 K3>에 출연했던 버스커버스커, 울랄라세션 오빠들이 큰 인기를 얻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도 많아졌지. 물론 오빠들이 잘 될거라는 사실은 이미 짐작했어. 오빠들의 노래 대부분이 옛날에 나온 곡들이라 데뷔 전에 들어봤는데 하나 같이 다 좋았거든. 특히 버스커버스커 오빠들은 원래 그룹의 음악적 색깔을 그대로 담고 데뷔해서 더 좋았어. 그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조바심 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어차피 계속해서 음악을 하겠다고 결심을 한 이상에야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제대로 준비해서 시작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그때 종신 샘(윤종신 선생님)께서 “우리 소속사로 오라”고 제안하셨어. 정말 좋았어. 믿음직스러웠거든. 종신 샘의 옛날 노래도 즐겨 들었고 최근 ‘월간 윤종신’도 계속 들으면서 ‘정말 재밌는 걸 하신다. 나도 저렇게 재밌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음악적인 것뿐만은 아니었어. 워낙 프로듀서 마인드가 강한 분이고, 마치 아버지처럼 우리를 이끌어 주실 것이라 생각했어. 우리의 미래를 생각해 주시는 마음도 그렇고, 이제 가수로서 첫 발을 내딛는 나와 대윤이에게 가장 중요한 건 그런 부분이었지. 종신 샘과 만나고 나서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었어. 지난 번 레이블 콘서트를 함께 하면서 그런 생각은 확신으로 바뀌었어. 오랜만의 무대이기도 했고, 3일 간의 콘서트를 일정을 소화하면서 하루하루가 내게는 도전이었어. 레이블 콘서트를 하고 나서 종신 샘이 갑자기 이러시는 거야. “너, 노래가 갑자기 확 늘었다?” 물론 가창력만 말씀하시는 건 아니었어. 표현력이 좋아졌다는 거지. 그리고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네가 스스로 부딪혀 나가면서 배우는 게 좋겠다”고 말이야.
생각해보면 내가 가끔 ‘애늙은이’라는 소리도 듣고, 나이에 비해 감정표현이 좋다고 하시는 데는 유년기의 경험이 크게 작용한 것 같아. 어릴 적부터 이곳저곳 많이 다녔거든, 이사도 많이 다녔고. 혼자서 무엇인가를 경험할 기회가 많았어. 혼자 홈스테이를 하면서 유학도 갔었고, 한국에 들어와서는 대안학교에 다녔던 적도 있어. 초등학교 6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 학생까지 있는 곳이었는데, 그런 경험들이 내가 좀 더 일찍 철이 드는데 도움이 된 거 같아.
김예림 1집 미니앨범 커버사진
사실 이번 앨범의 제목 는 종신 샘의 아이디어에서부터 출발했어. ‘목소리’의 의미를 넣고 싶다고 하셨거든. 근데 앞에 붙일 형용사도 종류가 많잖아, ‘A’, ‘THE’, ‘HER’ 등이 있지. ‘A’를 넣게 된 데는 나의 의견이 적극 반영됐어. 내 노래를 처음 듣는 분들도 있을 테고 신인이기도 하니까, ‘2013년에 나온 어떤 목소리 중의 하나’라는 의미를 담고 싶었어. 앨범에 수록된 5곡이 모두 다르다는 점도 컸어. 아직 나만의 색깔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없기에 다양한 시도를 하고 싶었거든. 처음에 가이드 보컬을 들을 때는 그냥 흘러나오는 음악처럼 들었어. 과연 ‘나를 여기에 대입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지. 그런데 작업을 하면서 내 나이 때에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의 범위 내에서 노래를 소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 물론 곡을 해석해내는 것이 쉽지는 않았어. 모두 밝은 느낌 속에 조금씩 어둡고 뒤틀린 감성과 표현하기 어려운 디테일이 담겨있었거든. 정말 내게 무리하게 새로운 무엇인가를 요구하신 게 아니라서 가능했던 일이지.특히 종신 샘은 나를 정말 꿰뚫어보고 계시더라고, 나를 가장 오래 본 분이기도 했고. ‘올 라잇’같은 경우에는 철저히 나를 위해 쓰신 곡이라고 하셨어. 내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나만이 낼 수 있는 어떤 느낌을 담아서 쓰신 것 같았어. 녹음을 할 때는 이런 말씀까지 하시더라. “너 여기서 이 톤을 내야 돼!” 내가 안 보여드린 톤까지 알고 계신거지. 또 나만 알고 있는 혹은 나도 잘 모르는 부분들도 알고 계신 듯했어. 예를 들어서 어떤 단어의 발음 하나라든지 아주 세세한 것들을 캐치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끌어내려 하셨어. 제작자로서 나를 그만큼 파악하고 계셨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어.
아직도 이번 앨범에 대해서 좋은 평가를 해주시는 게 얼떨떨해. 나는 이제 첫 발을 내딛었다고 생각해. 무리하게 색다른 무언가를 할 생각도 없어. 음악을 잘하고 싶고 오래하고 싶으니까,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하나씩 배워나가려고 해. “어떤 음악을 하고 싶어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지만, 사실 나는 특정 장르로 나의 가능성을 제한하기 보다는 어떤 것이든지 나만의 목소리로 소화해내는데 집중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 물론 작곡도 배우고 있고 가사는 이미 써둔 것도 여럿이야, 노력을 게을리 하겠다는 의미는 아닌 거지. 하지만 사람이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 어렵게 잡은 기회인만큼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조금씩, 그렇게 나만의 속도로 가고 싶어. 음악도 인생도.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사진제공. 미스틱89, 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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