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1에서 이어짐) 리드보컬 정봉길은 초등학교 5학년 때 학원에 가기 싫어 버티다 TV에 나온 스매싱 펌킨스의 노래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이후 남들이 잘 모르는 귀한 노래들이나 잘난 척 하기 좋은 노래들을 찾아듣는 취미가 생긴 그는 중학교 때부터 창작의 물꼬를 텄다. 풍덕고 1학년 때 자기만족을 위해 분당 아시아 실용음악학원을 다녔다. 수많은 악기 중 기타를 선택한 것은 가장 쉬워보였기 때문. 기타를 치며 흥얼거리다 쓸 만한 멜로디가 나오면 핸드폰에 녹음을 했던 정봉길에 대해 멤버들은 “음악을 하지 않았으면 서울대에 갔을 수재죠. 고등학교시절 전교 1.2등을 했던 영특한 아이였어요”라고 귀 뜸해 준다.
같은 학원을 다녔던 드럼 정한솔은 어릴 때부터 고집이 강해 선생님이 시키는 것을 하지 않아 욕을 많이 먹고 자랐다. 늘푸른고 2학년 때 그는 기타를 배우고 싶어 학원에 다녔다. 헌데 스틱을 빌려 드럼을 쳐보니 재미있었다. 취미로 치다가 드럼의 매력에 빠져 대학 실용음악과를 가려했지만 실력이 늘지 않았다. 어느 날 연습실에서 정봉길이 자신의 창작곡을 들어봐 달라고 했다. “자작곡을 들어보니 별로였는데 계속 곡을 써가지고 와서 들어보라 했더군요. 하루에 3곡을 들고 온 적도 있었어요다. 2,3달 정도 지나면서 친해졌을 무렵에 좋은 노래를 들고 왔지요. (정한솔)”
밴드의 음악을 풍성하게 이끄는 키보드 고형석은 초등학교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동아방송예술대 작곡과에 재학 중인 그는 작곡, 베이스, 기타, 건반을 두루 섭렵했다. 그는 고2때 ‘이대리’란 트로트 노래를 발표하며 저작권협회에 등록하며 정식 작곡가로 데뷔했던 음악신동이다. 동네에서 열렸던 친구들의 노래 발표회에 베이스연주를 도와주러 갔다가 정봉길과 정한솔을 만났다. “공연 후 정봉길의 집으로 놀러갔는데 노래를 직접 작곡을 했다는 말에 솔깃했고 국내 밴드에는 록을 연주하는 건반연주가 없다는 말을 듣고 밴드에 합류했습니다.(고형석)” 고2때 2개의 손가락을 다친 그는 8개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치며 엄청난 사운드와 퍼포먼스를 구현하는 놀라운 뮤지션이다.
2009년 7월 밴드를 결성한 이들은 연습에 몰입했다. 두 달 후, 클럽 프리버드에서 대관공연을 하려던 동아방송예술대 사람들이 공연 2일 전에 한 팀이 부족하다고 해 처음 무대에 올랐다. 공연이 끝나고 클럽에 오디션을 문의하니 “공연 봤는데 음악 좋으니 출연해라”고 해 평일 공연을 시작했다. 이후 오디션인생이 시작되었다. 한 명 빼고 다 미성년자 고등학생이었던 이들은 거짓말을 하고 클럽 FF, 제스등에 나가 연주를 하다 만난 밴드 폰부스 보컬 김광선이 자기네 회사에 “관심 있으면 연락하라”고 했다. 2010년 지산 밸릭 록 페스티발 락큰롤 슈터스타 오디션에 나가 통과했다. “음악에 인생에 걸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지산 측에서 연락이 와 사무적인 내용을 말 하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도 몰랐다. 어리버리하게 보이면 무시할 것 같아 대충 대답했다. 당시 소속사도 차도 없이 갔는데 관객들은 없는 아티스트 팔찌를 차니 기분이 좋았다. 평일에 온 관객 들이 저희 무대를 보고 홍대 클럽에서 봤다며 기억해줘 고무되었다.(정한솔)”
가사 작업에 참여한 베이스 이루리는 작업과정의 갈등으로 울음보를 터뜨리기도 했단다. “1집 때 봉길이가 가사를 한글로 바꾸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았어요. 곡 당 3-4번 이상 가사를 수정했는데 불러보지도 않고 매번 퇴짜를 놔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대판 다투고 내린 적도 있었어요. 인적이 드물어 택시도 없는 동네에서 내렸는데 마침 비까지 내려 전철역까지 비를 맞고 울면서 걸어갔던 기억도 납니다. 결국 대화로 문제를 풀었습니다.(이루리)” “영어가사가 좋고 근사하다고 생각하기에 한글 가사는 솔직히 힘들었죠. 무엇을 해도 100% 완벽할 수는 없고 함께 음악을 하며 부족한 것을 채워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결국 고집을 꺾었습니다.(정봉길)”
1집의 대미는 브리티시 매드체스터 음악의 진수를 들려주는 9분 29초의 롱 버전 ‘5500-2’다. 기호로 구성된 제목은 제목이 떠오르지 않아 멤버들이 애용하는 강남에서 분당으로 가는 노선이 긴 추억의 버스 번호를 차용했다. 첫 정규앨범에 수록된 노래들은 타이틀에 명기한 ‘빛’으로 이어져 있다. ‘빛’은 자신들의 꿈과 사랑을 담은 음악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려는 이들의 음악적 지향점이다. CJ 아지트 ‘튠업’ 5기 우수 신인 아티스트 선정된 이들의 정규 1집은 2011년 발표된 루키밴드 음반 중 최고의 역작이었다. ZIPPO주최 ‘BATTLE OF BANDS’ 1위, 다음뮤직 이달의 앨범과 인디유망주 선정, 싸이월드 뮤직 11월 둘째 주 이 주의 앨범 선정, EBS 올해의 헬로루키 년 말 결선 대상, 2012년 제9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신인상 수상은 그 결과물이다.
2013년 독립한 후 공연을 전면 중단했던 것은 3년 정도 쉼 없이 달렸기에 재충전 시간이 필요했고 앨범 작업 열중하기 위해서였다. “회사를 나온 후 왜 밴드를 하게 되었을까 회의감이 들더군요. 결론은 좋으니까 하는 거죠. 우리 나이 또래들은 다들 갈피를 못 잡는 경우가 상당수입니다. 앨범도 성장하는 것만큼 변화한다고 생각해요. 독립 후, 이런 저런 일 겪으면서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지만 지금은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고 싶은 마음뿐입니다.(정봉길)” 바이바이배드맨은 자립을 통해 특별한 밴드로 거듭나며 새로운 음악여정을 걷기 시작했다. 신보를 발표하며 다시 달리기 시작한 이들의 당면과제는 군 문제. 그래서 가능하다면 군 입대 전에 정규 2집을 내고 싶은 마음이다.
바이바이배드맨 프로필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이루리(베이스), 정한솔(드럼), 고형석(키보드), 정봉길(보컬), 곽민혁(기타)
2009년 밴드 결성
2010년 지산 밸리 록 페스티발 ‘ROCK’N ROLL STAR’ 오디션 합격, 쌈지 사운드 페스티발 ‘숨은 고수’ 오디션 합격
2011년 CJ 아지트 ‘튠업’ 5기 우수 신인 아티스트 선정, EBS 6월의 헬로루키 선정, ZIPPO주최 ‘BATTLE OF BANDS’ 1위, 다음뮤직 이달의 앨범, 인디유망주 선정, 싸이월드 뮤직 11월 둘째 주 이 주의 앨범 선정, EBS 올해의 헬로루키 연말결선 대상
2012년 제9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신인상
2013년 독립제작시스템 구축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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