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욱 PD

‘시트콤의 대가’ 김병욱 PD가 다시 현장에서 메가폰을 잡는다. 지난해 초 ‘하이킥’ 시리즈 3편인 ‘하이킥-짧은 다리의 역습’ 이후 1년 반 만에 케이블TV tvN ‘감자별2013QR3′(이하 ‘감자별’, 9월 23일 첫방송)로 돌아오는 것. 1995년 SBS ‘LA 아리랑’으로 첫 시트콤 연출을 선보인그는 어느새 쉰을 넘은 나이지만 시대를 바라보는 통찰력과 감각, 섬세함은 녹슬지 않은 모습이었다.

천문학계에서 새롭게 발견된 행성에 일련번호를 붙이는 방식을 이용해 지은 ‘감자별’이라는 새 작품의 제목은 인생의 불확실성을 뜻한다. ”보통은 별이 둥그런 원 모양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감자처럼 울퉁불퉁하고 찌그러지고 행로 또한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언제든 갑자기 변할 수 있는 인생사를 뜻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의문의 행성 ‘감자별’때문에 벌어지는 노씨 일가의 이야기를 다룬 새 작품은 전반적인 스토리는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이전 ‘하이킥’ 시리즈처럼 이순재, 노주현, 금보라 등 중견 연기자들과 고경표, 하연수, 서예지 등 신인들이 궁합을 이루는 방식은 비슷하다. 지상파에서 케이블TV로 옮겨 오면서 무엇보다 ‘새로움’을 추구하고 싶었다는 그에게서는 시트콤에 대한 숨길 수 없는 무한 애정이 전해졌다.

Q. 다시 시트콤으로 돌아왔다. 다른 장르가 아닌 또다시 시트콤에 도전하는 이유와 이번 ‘감자별’만의 기획의도가 궁금하다.
김병욱 PD: 드라마나 다른 장르 연출에 대한 권유도 있었지만 여전히 애정이 가는 장르는 시트콤이다. 예전 SBS 시절처럼 웃기고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가 충만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Q.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은 베일에 싸여 있는데 대략 어떤 이야기가 전개되나.
김병욱 PD: 일상 속에서 갑작스레 위기가 닥치는 이야기다. 예기치 못한 상황 속에서 각 인물들의 삶이 어떻게 변해가는가를 다루고 있다. ‘감자별’은 극중 특정 인물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행성이다. 결국 이 행성과 해당 인물이 어떤 연관 관계를 지니고 있는지가 이야기의 관건이 된다. 물론 사랑 이야기도 들어간다.

Q. 전작인 ‘하이킥’ 시리즈와는 어떤 면에서 차별성을 띤 작품인가.
김병욱 PD: 하이킥 시리즈를 하면서 흥행 성공과 관계 없이 작품 속에 정치적인 함의가 들어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 순수하게 드라마로 즐기는 작품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감자별’은 무엇보다 코미디로 가득 찬, 편하게 웃을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어보고 싶다.

김병욱 PD

Q. ‘하이킥’에서 ‘감자별’로 바꾼 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김병욱 PD: 우선 방송국이 바뀌어서 그렇다.(웃음) 사실 ‘하이킥’도 시즌 3까지 했으면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창기 SBS에서 시도한 것은 정통 미국식 시트콤에 가까웠다. ‘순풍 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 이어 ‘똑바로 살아라’까지 세 편을 계속 가족 시트콤을 했을 때 좀 한계가 오더라. 그래서 MBC에서 새로 해 본 것이 ‘하이킥’ 시리즈다. ‘하이킥’은 주인공 4명의 멜로가 끝까지 작품을 이끌어가는 동력이 된 작품이다. ‘하이킥’도 시즌 3까지 하니 멜로를 위주로 한 콘셉트도 한계를 보인 것 같다. 이번에는 새로운 걸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무엇보다 컸다.

Q. 기획하면서 전작들에 비해 변화를 준 부분이 있나 .
김병욱 PD: 이전 시트콤은 인물구도나 대략의 에피소드만 짠 상태에서 진행되는 형식이었다면 이번에는 기획 단계에서 결말까지 모두 만들어진 상태다. 중간중간의 이야기가 제법 촘촘하게 이어져야 할 것 같다.

Q. 엔터적 요소 충만한 작품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 그런 점을 감안해 지상파 채널에서 케이블로 옮겨온 것인가.
김병욱 PD: 확실히 지상파에서 달가워하지 않은 요소들을 충분히 넣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젊은 친구들이 좋아하는 면을 포착해 그들에게 소구하기 쉬운 면이 있다.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이 시대의 사회문화적인 이슈들을 체험하면서 많이 반영하려고 한다.

Q. 앞선 작품에서 많은 스타 연기자들이 배출됐다. 이번 작품에서 주목할 만한 배우나 캐릭터가 있다면?
김병욱 PD: 나진아 역의 하연수는 본인이 가진 색깔이 참 좋은 친구다. 기획사에서 만들어진 인물이 아니라 스스로 모든 걸 헤쳐온 사람이 가진 강단이나 순수함이 있다. 서예지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른바 ‘학원 연기’ 같은 정형화된 연기가 싫은데 두 사람은 자연스러운 매력을 지니고 있다.

진구는 연기를 워낙 잘하는 친구라 주문을 따로 할 필요가 없었다. 고경표는 사실 더 인지도 있는 배우를 캐스팅했다 취소하고 바꾼 경우다. 고경표의 캐릭터(노민혁)는 연기 진폭이 굉장히 커야 하는데 이 친구는 코미디도, 정극도 모두 가능한 부분이 강점인 것 같다. 캐릭터 면에서는 ‘하이킥’ 1이나 2처럼 모두 흥하기도 하고, 잘 안 될 때는 한두 캐릭터만 잘 되고 실패하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모든 캐릭터에 나름대로 공을 많이 들였다.

Q. 노주현과는 SBS ‘똑바로 살아라’ 이후 10년만의 조우다.
김병욱 PD:
노주현·이순재 선생님, 줄리엔 강과는 모두 세 번째로 같이 작품을 하게 됐다. 셋의 스타일을 잘 알기 때문에 대본도 세 사람에 맞게 쓰면 예상했던 대로 나오더라. 그런 점이 재밌어서 연습 때 많이 웃곤 했다.

김병욱 PD

Q. 이전 작품에서는 배우들의 본명을 썼던 반면 이번에는 극중 이름을 쓰는 점이 달라진 것 같다.
김병욱 PD: 시트콤은 동시대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 동안 실명을 많이 선호했다. 현실에 기반한 블랙코미디적 요소가 없으면 시트콤은 존재 가치가 없어진다는 생각에 가능하면 지명, 학교명 등도 웬만하면 그대로 썼다. 그런데 ‘하이킥 3′까지 하다보니 극중 인물과 자연인으로서의 배우를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더라. 예를 들어 신세경 씨의 경우 (특히 러브라인 때문인지) 시청자들의 욕을 많이 먹은 케이스다. 또 이번 ‘감자별’은 사실 허구적인 드라마에 가까운 부분이 많아 배우에 대한 동일시가 조금 불편한 부분이 있었다.

Q. 전작에서는 새드 엔딩이 많이 그려졌다. 이번에는 어떤가.
김병욱 PD: 열린 결말로 보시면 될 것 같다. 슬픈 구석도 있지만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구체적인 신은 아직 나오지 않았도 ‘이 정도면 어떨까’하는 선에서 논의가 진행된 부분이 있다.

Q. 지상파 시트콤은 최근에는 계속 침체기를 겪고 있는 것 같다.
김병욱 PD: 지상파에서는 소위 흥행 성공의 기준인 시청률 15% 정도를 충족시켜야 하는 공식 같은 부분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30~50대 주부 시청자들을 잡아야 하고 그런 면에서는 어쩔 수 없이 들어가야 하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면 시트콤의 경우 가족에 관한 에피소드가 들어가야 하는 부분이 그렇다. ‘하이킥 3′에서도 그런 딜레마를 느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상파에서 시트콤은 갈수록 10%대를 담보하기 힘든 장르가 되고 있는 것 같다.

Q. 근 20년간 시트콤이라는 한 장르만을 열심히 파고 들게 한 시트콤만의 매력은 뭔가
김병욱 PD: 시대의 분위기와 함께 한다는 점이다. ‘감자별’도 그렇지만 그동안 내가 추구해 온 작품은 그저 코미디라고 보기엔 슬프고 힘들어보이는 지점이 있다. 각 캐릭터들의 절박한 부분이 나오면서 느껴지는 절절함이 엔터테이닝한 요소들과 어우러져 균형감을 주는 것 같다.

글. 장서윤 ciel@tenasia.co.kr
사진제공.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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