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방송의 적’은 올해 방송한 예능 프로그램 중 가장 실험적이었다. 남다른 기획 배경이 있을 것 같은데.박준수 PD‘방송국 놈들’ ‘덜덜이’ 같은 유행어를 남긴 케이블TV Mnet의 ‘방송의 적’은 올해 방송한 예능 프로그램 중 가장 재치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로 기억될 것 같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표방한 이 프로그램은 시청률은 평균 1%대에 머물렀지만 음악계, 방송계에 대한 허를 찌르는 풍자와 코믹한 설정으로 마니아 팬을 끌어모았다.
새로 론칭하는 음악 프로그램 ‘이적쇼’를 둘러싼 여러 에피소드를 다룬 이 프로그램에서 호감형 이미지의 엘리트 뮤지션 이적은 속물적이고 여자를 밝히는 캐릭터로, 그를 따르는 존박은 어리바리한 행동을 숨기지 않는 인물로 그려지면서 예능계 새로운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앞서 ‘UV 신드롬’ ‘음악의 신’에 이어 이 프로그램으로 한층 물오른 연출감을 보여준 박준수 PD는 “‘무엇이 더 재미있을까’를 연구하다 나온 프로그램”이라며 “생소할 수 있는 코드를 시청자들이 마음을 열고 받아들여줘서 다행”이라고 연출 소감을 전했다.
박준수PD: 지난해 9월쯤 처음 이적을 만났고 서로 ‘재밌는 방송’을 해 보자는 데 뜻을 모았다. 사실 ‘이적’이라는 인물은 예능적으로 풀어 내 희화화할 만한 부분이 없는 사람이다. 음악적으로도 훌륭하고 성품도 좋고 반듯하다. 앞서 방송했던 ‘음악의 신’의 이상민 씨 이미지와는 반대다. 그래서 이번엔 우리들 얘기를 해 보면 어떨까 싶었다. 방송국과 방송국 사람들의 얘기를 프로그램에 한번 얹어보고 싶었다.
Q. ‘방송국 놈들’이라는 유행어(?)나 방송의 겉과 속이 다른 부분에 대한 풍자도 그런 의도였던 것 같다.
박준수PD: 맞다. ‘셀프 디스’ 같은 지점이 있었다. 흔히 ‘단물 빨고 버린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방송이 이슈되는 게스트들을 이용하는 부분이나 방송 뒤에 숨겨진 여러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한 풍자를 해보고 싶었다. 여기에는 작가들의 공이 컸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유머같은 지점도 빨리 캐치해서 대본에 반영하곤 했다.
Q. 게스트로 나온 쿨케이가 본인의 병역비리 사건을 희화화하거나 가수 김진표가 이혼에 대해 스스럼없이 언급하는 지점은, 보는 사람도 흠칫 놀랄 정도였다.
박준수PD: 카메라 뒤에서는 촬영 전에 고심하는 시간이 꽤 많았다. 게스트들에게 기획의도를 충분히 설명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녹화가 이뤄졌다.
Q. 마지막회 유희열의 변태 연기도 꽤 높은 수위였다.
박준수PD: 유희열은 성적인 농담이나 행동을 하더라도 시청자들이 불쾌하거나 선정적으로 느끼지 않게 하는 특별한 ‘마성’을 지니고 있다. 그만의 장점인데 그런 점이 혼신의 연기와 함께 방송에 잘 드러난 것 같다.
박준수PD
Q. ‘이적쇼’를 기획하던 모든 내용이 결국 이적의 꿈이었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된 것은 처음부터 기획된 건가.박준수PD: 아니다. 방송을 진행하면서 여러 구성안 중 하나였는데 꿈으로 끝맺는 게 가장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Q. 의외의 수확은 역시 존박이다. 타고난 예능감을 예견했었나.
박준수PD: 전혀 몰랐었다. 존박은 사고가 미국식이라 굉장한 프로의식이 있다. 평소엔 조용하다가도 카메라가 돌아가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더라. 무척 능수능란하고 애드리브도 알아서 다 살린다. 타고난 연기감이 있는 친구다.
Q. 보고 있으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부터 허구인지 헷갈리더라.
박준수PD: 자연스럽게 재미있는 장면을 고르는 데 가장 힘썼다. 프로그램 속 에피소드들은 허구지만 현실에 기반하고 있다는 데서 웃음 포인트가 나온다. 설득력이 있으면서도 재미를 주는 장면으로 구성했다.
Q. 류승완 감독, 강풀 작가 등 매회 유명인들이 등장하는 등 섭외의 힘이 컸다.
박준수PD: 이적 씨 측근들부터 리스트를 만들어 그에 맞춰 스토리를 짜는 식으로 진행했다. 주위 사람들을 너무 이용하게 한 것 같아 개인적으로 이적 씨한테 미안한 부분이기도 하다. 매회 나와준 게스트들이 능청맞게 열심히 해 줘서 프로그램의 빛이 났던 것 같다.
Q. 장르 특성상 이적이나 존박의 팬들의 항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박준수PD: 비판 지점은 딱 두 가지였다. ‘이적 같은 아티스트를 어떻게 그렇게 망가뜨릴 수 있냐’는 것과 존박의 분량이 적으면 싫어하더라.
Q. 제일 고맙거나 미안한 게스트가 있다면.
박준수PD: 김완선이다. 당대의 스타인데 야외 펜션에서 촬영을 하는데 장소도 열악한 가운데 늦게까지 기다려주시는 등 끝까지 열과 성을 다해주셨다.
Q. 끝나고 나니 아쉬운 점이 있나.
박준수PD: 연출하면서 고민이 많았던 프로그램이라 후련한 마음이 크다. 다만 프로그램 성격상 초반부터 시청자들에게 편안한 느낌을 주지 못한 부분은 아쉽다.
글. 장서윤 ciel@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