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계절마다 다르고 시간대마다 달라지잖아요. 밤바다의 파도가 무섭게 느껴지다가도 환할 때 바다를 보면 평화롭고 마음이 잔잔해져요. 바다에는 너무 많은 게 숨어 있는데, 그런 바다 같은 배우로 대중에게 비치길 바랍니다."
tvN '세작, 매혹된 자들'(이하 '세작')을 통해 섬세한 표정 연기로 시청자의 몰입도를 높인 배우 박예영이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는 말에 "바다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며 이렇게 말했다.지난 28일 서울 역삼동 카페에서 만난 배우 박예영은 자연스러운 앞머리에 포근해 보이는 컬러 의상을 입고 텐아시아를 만났다. '동상궁'의 모습은 어디에 갔나 싶은 정도로 색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종영 인터뷰가 처음이라며 호박파이와 함께 설레는 마음을 전하여 시작 전부터 훈훈한 분위기를 더했다.
박예영은 '세작'에서 두 임금을 모시는 비밀에 둘러싸인 지밀상궁 '동상궁'으로 분했다. 권력과 비밀을 쥔 캐릭터로 조정석과 호흡 맞췄다. 극 중 애절한 감정부터 독기를 품는 연기까지 보여주며 '키플레이어'로 활약했다.
"마지막 촬영 때는 홀가분했습니다. 동료들하고 한마음 한뜻으로 치열하게 찍었죠. 방영 시작할 때부터 시청자와 같은 마음으로 회차를 달리고 있는데요, 마무리까지 잘되고 있는 것 같아 한시름 놓이고 감사할 뿐입니다."
박예영은 자신이 연기한 동상궁에 대해 "4회까진 대사가 거의 없었고 주어진 정보조차 많지 않았다"며 캐릭터를 해석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머리를 싸매다 작가님께 힌트를 요청했더니 '순애보'라는 키워드를 받았다며 "'사랑'에 에워싸인 동상궁 역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섬세한 감정 연기로 시청자에게 호평을 이끈 그에게 비결을 물었다. 박예영은 "대사가 많이 없는 게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다. 특별히 신경 쓰진 않았고 연기를 하면서 생기는 감정들을 따라가다 보니 저절로 표현된 것"이라고 말했다.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밸런스를 맞추는 데 집중했다고도 덧붙였다. 선하지 않은 역할의 특성상 시청자에게 미움받을 각오를 했는데 예상치 못한 칭찬을 받아 감사하고 영광이라며 성의를 표했다."박예영과 동상궁은 사랑에 늘 진심이라는 점이 닮았습니다. 동상궁이 나쁜 선택을 한순간은 많았지만 그에게는 주어진 선택지가 많지 않았죠."
캐릭터에 진심을 더하기 위해 자신과 비슷한 점을 곰곰이 찾아봤다는 박예영. 어린 나이임에도 "진한대군(조정석 분)을 지킬 칼이 돼"라는 말에 죽기보다 싫었던 대전에 가라는 명을 받아들인 동상궁에 대해 애틋함을 표했다. "얼마나 사랑에 진심이었기에 그렇게까지 했을까"라며 동상궁을 헤아렸다.
그는 지금까지 맡은 다양한 역할 중 '동상궁'이 가장 애착 간다고 말했다. "나중에 바뀔 수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동상궁을 꼽겠다"는 박예영. 동상궁이 다음 생엔 사랑 많이 받고 의지할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박예영은 캐릭터에 대한 정보는 많이 없었지만 "사극 자체가 나에게 굉장한 매력"이라고 말했다. 사극을 전부터 바라온 만큼 '세작' 오디션 합격 소식을 듣고는 고민 없이 바로 출연 결정을 내렸다는 박예영. 그는 이 작품을 잘 해내고 싶다는 욕심이 컸다고 밝혔다.
'세작'에 열심히 임한 탓에 사극 말투가 일상에서도 영향을 줬냐고 물었다. 그는 "전혀 그렇지 않다. 사실 분량이 많지 않아 촬영장에 가는 횟수가 적은 편이었다"고 답했다. 임팩트가 컸던 탓에 체감상 분량이 많다고 느껴진 것. 실은 "동료 배우들과 비교하면 현저히 적었다"고 이야기했다. 촬영하러 가는 일정 텀이 길다 보니 갈 때마다 처음 가는 듯 낯설었고 설렘을 느끼기까지 했다며 웃었다.
'세작'에서 호흡을 맞춘 조정석과는 5년 전 영화 '뺑반'을 함께하기도 했다. 박예영은 "그땐 서로 인지는 했지만 호흡 맞출 일은 거의 없었다"고 밝혔다. 다시 만난 조정석에 대해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좋은 사람"이라며 "'세작'을 통해 호흡 맞춰보니 상대에게 자유로운 연기를 펼칠 수 있도록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것에 감사함과 존경심을 표했다.
신세경에 대해서는 "더 많이 만났으면 좋았겠지만 맞대면 한 장면은 두 신밖에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찰나였지만 "세경 배우와 나눈 대화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며 다음 작품을 통해 '길게, 자주' 재회하고 싶다고 소망했다.
박예영이 독립 영화계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지라 특정 장르를 선호해온 건지도 궁금했다. 그는 "독립 영화와 드라마 모두 차등 없이 좋다"고 답하며 광활환 연기에 대한 열의를 비췄다. 이어 "독립 영화를 사랑하지만, 사극이 없다든지 특성상 제한이 있다"며 공포물과 판타지물에 도전해 보고 싶다 소망했다. 조만간 절대 악을 지닌 '빌런' 캐릭터도 맡고 싶다고 덧붙였다.
드라마도 영화만큼 사랑한다는 박예영은 "어느 장르나 작품은 늘 나에게 새로운 도전이고 소중한 기회다"라고 말했다. 지나온 작품들은 배우로서의 박예영을 한 발짝 더 나아가게 하는 양분이 됐다.
박예영 배우 하면 쿠팡플레이 '안나(ANNA)'(이하 '안나')를 빼놓을 수 없다. 관객은 물론 전문가에게도 연기력을 인정받아 지난해 '제21회 디렉터스컷 어워즈'에서 올해의 새로운 여자배우상을 받았다. '안나'가 연기 인생에 큰 터닝 포인트가 되지 않았냐고 물었지만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어느 하나 특정할 것 없이 "모든 작품을 심도 있게 고민하고 임할 때마다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박예영은 '안나'를 통해 소중한 인연을 얻었다고 말했다. 가수 겸 배우 수지다. 그는 수지를 "워낙 좋은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작품이 끝나고 함께 프라하 여행을 다녀왔다고도 전했다. '안나'가 공개된 지도 2년여 간의 세월이 흘렀는데 여전히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며 우정을 자랑했다.
박예영은 2013년 영화 '월동준비'로 데뷔해 독립 영화 위주로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아왔다. 그는 "여러 작품을 소속사 없이 해왔다"며 홀로 치열히 배우 생활한 사실을 밝혔다. 지금은 소속사가 있지만 '세작'의 오디션을 본 당시까지 회사가 없었다. 그래선지 "소속사 없고 인지도 낮은 저를 캐스팅하신 감독님 생각에 막중한 책임감이 생겼다"고 밝혔다.
2021년 방영한 JTBC '구경이'부터 2022년 공개된 ENA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까지 소속사 없이 기차와 버스를 이용해 바삐 촬영하러 다녔다는 박예영. 그는 매년 두 작품씩 활동하며 "체력적으론 힘들었어도 여행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왕복했다"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자랑했다.
'세작' 후 차기작이 정해져 있냐는 말에는 "이전에 촬영을 마친 독립 영화가 공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제목은 '언니 유정'. 박예영은 '세작'을 마친 "지금은 휴식을 즐기는 중"이라며 스노보드에 빠진 근황을 전했다. 그래도 올해가 가기 전 좋은 작품을 만나고 싶다고도 밝혔다.
박예영은 12년이란 긴 시간 동안 어떤 동력으로 꾸준히 연기할 수 있었을까. 그는 "지난해 영화제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소름이 돋았다며 "감독님들이 나를 어떻게 알고 투표를 해주신 건지 신기했다"고 이야기했다. 수상에 이어 이번엔 배우 인생 첫 종영 인터뷰까지, 생각지도 못한 '깜짝 선물'이 계속해서 그를 작품 활동하게 만드는 동력이 됐다.
이소정 텐아시아 기자 forusojun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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