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거란 전쟁'을 둘러싼 논란들
원작자와 제작진의 싸움이 번져가는 것이 우려되는 이유
원작자와 제작진의 싸움이 번져가는 것이 우려되는 이유
KBS 2TV 공영방송 50주년 특별기획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문제는 32부작으로 구성된 '고려 거란 전쟁'이 이제 20회를 넘었으며 아직 방영분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레이스가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갖가지 논란들이 불거지는 것은 치명상이나 다름없다.
◆ '고려 거란 전쟁' 원작자 길승수 작가
"현종의 낙마는 원작 내용 중에는 없다" 원작 및 역사 왜곡 비판
지난 15일 '고려 거란 전쟁'의 원작자이자 소설가인 길승수는 자신의 블로그에 드라마와 관련된 비판을 가했다. 핵심은 '고려 거란 전쟁'이 원작 내용과 다르며 역사 왜곡이 있다는 것이다. 길승수 작가는 '16화 양규의 전사 이후 원작 내용'이라는 제목으로 게재한 글 안에서 "현종의 지방제도 정비도 나오는데, 드라마처럼 심한 갈등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블로그 내용 중 일부)라며 비판했다.
양규 장군(지승현)이 전사한 16화 이후의 전개는 원작자뿐만 아니라 시청자들까지 납득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17화에서 현종(김동준)과 강감찬 장군(최수종)의 갈등은 극한에 달했다. 강감찬이 비리를 저지른 김은부(조승연)의 파직을 현종에게 요구하자, 오히려 현종은 강감찬에게 실망하며 파직을 명하는 모습이 그려졌다.특히 18화에서 현종이 낙마해서 쓰러지는 장면에 시청자들의 원성이 깊어졌다. 길승수 작가 역시 "당연히 18화에 묘사된 현종의 낙마는 원작 내용 중에는 없다"라고 블로그를 통해 지적한 바 있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고려 거란 전쟁'의 전개 방식에 대해 불만을 표하는 댓글과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자'는 의견으로 불붙었다.
◆ KBS의 입장
"이야기 방향성 맞지 않아 새롭게 자문팀 꾸리고 대본 집필" 탄생기 공개
해당 논란이 거세지자, 지난 23일 KBS 측은 '고려 거란 전쟁'의 탄생기에 대해 되짚었다. KBS 측에 따르면, '고려 거란 전쟁'은 2022년 길승수 작가의 소설 '고려 거란 전기'를 검토했고 판권 획득 및 자문 계약을 맺었다고 전했다. 전우성 감독은 드라마에 등장하는 전쟁 씬 및 전투 장면의 디테일을 '고려 거란 전기'에서 참조했다고. 같은 해에 이정우 작가가 합류하면서 소설 '고려 거란 전기'를 검토했고, 이야기의 방향성이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자문팀을 새로 꾸미고 소설과는 다르게 만들었다는 대본을 집필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길승수 작가는 KBS 측의 입장문에 "2022년 6월경 처음 참여했을 때 확실히 제 소설과 다른 방향성이 있었다. 그 방향성은 '천추태후'가 메인 빌런이 되어서 현종과 대립하며 거란의 침공도 불러들이는 스토리였다. 화들짝 놀라서 그런 역사 왜곡의 방향으로 가면 '조선구마사' 사태가 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포기됐는데 원정왕후를 통해 어느 정도 살아남았다"라고 지적했다.
◆ 길승수 작가의 반박에 입을 연 전우성 PD, 이정우 작가
"원작 소설가가 저에 대한 자질을 운운하며 비난하는 것은 분명 도를 넘은 행동"
입장문 발표에도 해당 논란이 잠식되지 않자, 같은 날(23일) '고려 거란 전쟁'의 연출을 맡은 전우성 PD와 대본을 집필한 이정우 작가는 자신의 SNS에 입장을 밝혔다. 전우성 PD는 원작 판권에 대해 언급하며 "드라마 원작 계약은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원작의 설정, 줄거리를 그대로 따르는 리메이크 형태부터 원작의 아이디어를 활용하기 위한 계약 등 다양하다. '고거전' 원작 계약은 리메이크나 일부 각색하는 형태가 아닌 전투 상황의 디테일을 담긴 작품으로, 전투 장면을 생생하게 재현해보고자 길승수 작가와 원작 및 자문 계약을 맺었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하지만 길승수 작가는 이정우 작가의 대본 집필이 시작되는 시점에 자신의 소설과 ‘스토리 텔링의 방향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고증과 관련된 자문을 거절하였고 수 차례 자문에 응해줄 것을 요청하였지만 끝내 고사하였다. 이후 새로운 자문자를 선정하여 꼼꼼한 고증 작업을 거쳐 집필 및 제작을 진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길승수 작가가 저와 제작진이 자신의 자문을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기초적인 고증도 없이 제작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에 당혹감을 느낀다"라고 덧붙였다.이정우 작가 역시 "'고려 거란전쟁'은 소설 '고려 거란 전기'를 영상화할 목적으로 기획된 것이 아니다.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전쟁'은 KBS의 자체 기획으로 탄생했으며 처음부터 제목도 '고려 거란전쟁'이었다. 처음부터 별개의 작품이었기 때문에 사실 원작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원작 소설가가 '16회까지는 원작의 테두리에 있었으나 17회부터 그것을 벗어나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의도를 모르겠다"라고 답변했다.
또한, "원작 소설가가 저에 대한 자질을 운운하며 비난하는 것은 분명 도를 넘은 행동이다. 그런 식이라면 저도 얼마든지 원작 소설을 평가하고 그 작가의 자질을 비난할 수 있다. 다만 그러지 않는 것은 타인의 노고에 대한 당연한 존중 때문이다. 이 드라마를 어떻게 구성하고 이끌어가는지는 드라마 작가의 몫이다. 저는 제 드라마로 평가받고 소설가는 자신의 소설로 평가받으면 되는 일이다"라고 강조했다.
'고려 거란 전쟁'을 둘러싼 비판을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으로 번졌다. 이렇게까지 사건이 커진 이유는 어쩌면 '고려 거란 전쟁'의 전개가 시청자들에게 전혀 설득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한 몫 할 것이다. 특히 픽션 사극이 아닌 대하 사극이라는 지점은 기록된 역사를 최대한 지키면서 어떻게 극적 재미를 줄 것인가에 대해 어느정도 초점이 맞춰져있다. 원작자인 길승수 작가가 짚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원작의 내용을 따르고, 따르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계속된 폭로전과 비난은 작품이 지닌 본질마저 퇴색될 확률이 높다. 아직 방영 중인 '고려 거란 전쟁'을 두고 이른바 진실 공방을 벌이는 것은 옳지 못한 처사로 보인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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