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로 복귀
2012년 '가족의 탄생'으로 데뷔
꾸준한 활동 중 '건강 악화' 공백기
"배우 생활 반 포기 상태였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조윤서./ 사진=조준원 기자

"건강상의 문제가 생겼을 때 반 포기 상태였어요. 더는 배우를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죠."

지난 2일 텐아시아 인터뷰룸을 찾은 조윤서는 진짜 고등학생 같았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서 시종 발랄한 모습을 보인 여고생 박보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놀랍게도 조윤서는 올해 서른 살이다. 스물일곱 살에 고등학생을 연기했다. 무엇보다 그는 데뷔한 지 10년이나 된 '중고 신인'이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탈북한 천재 수학자 이학성(최민식)이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고등학교 경비원으로 일하던 어느 날, 수학을 포기한 학생 한지우(김동휘)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조윤서는 박보람 역을 맡아 최민식, 김동휘 사이에서 비타민 같은 존재로 생기를 불어넣었다.앞서 2019년 크랭크인을 앞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제작진은 최민식, 김동휘 등 주요 배우들의 캐스팅을 완료한 상황에서, '보람' 역할과 어울리는 배우를 찾지 못해 고심하고 있었다. 여러 여배우가 오디션장을 빠져나간 이후, 막바지에 나타난 조윤서가 박동훈 감독 눈에 들어왔다. 조윤서는 "그날 감독님이 절 보자마자 '딱 보람이다'라고 생각하셨단다. 제작사 문을 나서기도 전에 '같이 하자'고 이야기하시더라"라고 떠올렸다.

이날 뒷이야기가 있다. 아무리 감독이 찾던 이미지라 해도 연기력을 무시할 순 없었다. 조윤서는 보람 대사만 발췌한 시나리오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다. 첫 완독 이후 감독의 코멘트에 따라 또다시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현장에서 대사를 외울 정도로 반복해서 읽는 동안, 박 감독은 조윤서를 보람 역할로 확신했다.

박 감독이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조윤서에게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그 어떤 작품보다 소중했고, 절실했다. 오랜 공백기를 깰,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배우 조윤서./ 사진=조준원 기자

캐스팅이 확정된 이후 조윤서는 외형부터 10대로 보이려고 단발로 잘랐다. 촬영 때는 메이크업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리고 첫 촬영이 들어가기 전, 매일같이 중학교, 고등학교 주변을 맴돌며 학생들을 관찰했다. 또 평소 알고 지내던 10대 여학생과 수시로 통화하면서 말투를 익히고, 그들의 고민을 공유하면서 '보람'과 어울리는 옷을 입었다.조윤서는 절실함으로 준비한 보람 캐릭터로 명장면도 남겼다. 영화 속에서 보람은 원주율로 만든 곡 '파이송'을 피아노로 완벽하게 연주한다. 이 장면 뒤에도 그의 처절한 노력이 숨어 있었다. 그는 "사실 피아노는 어릴 때 바이엘까지 배운 것이 전부다. 오디션 때 보람 역을 꼭 따내고 싶어서 피아노를 잘 친다고 거짓말했다"라며 "꼭 해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피아노를 못 쳐서 잘리긴 싫었다. 피아노를 전공한 친한 동생에게 부탁했다. 그 동생이 자신도 연습을 많이 해야 칠 수 있는 곡이고, 초보는 힘들 거라고 했다. 그런데도 무조건 하겠다고 밀어붙였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조윤서는 연습실을 대여해서 한 달 반 넘게 피아노에 열중했다. 그는 "매일 6~7시간씩 쳤다. 입시 때도 뭔가를 그렇게 열심히 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영화 속 '파이송'은 조윤서가 대역 없이 소화한 명장면이다. 그는 "지금은 눈 감고도 칠 자신이 있다"라며 웃었다.

"승부욕이 아니라 이제는 책임감이 강해진 것 같아요."

조윤서는 애초 노래하고 춤추는 걸 좋아했다. 그는 "가수를 꿈꿨다. 그런데 제가 다닌 예고에 실용음악과가 없어서 뮤지컬 과를 지원하게 된 것"이라며 연기에 처음 발을 들인 때를 떠올렸다.이어 조윤서는 "그때까지도 연기보다 노래와 춤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러다 연극 주인공을 하면 대학 입시에 유리하다는 말을 듣고 우연히 연기를 하게 됐다"라고 털어놨다.

우연히 시작한 연기라도 성격상 대충할 건 아니었다. 연극 주인공으로 더블 캐스팅이 된 상황, 조윤서는 "또 다른 주연배우인 친구가 너무 예쁘고 잘하는 거다. 승부욕이 발동하더라. 그 친구보다 잘하고 싶어서 연출 선생님을 괴롭혔고, 대본 분석 방법부터 대사를 외우는 방법, 동선까지 정말 열심히 배웠다"고 말했다. 그렇게 첫 공연을 무사히 마친 조윤서는 단번에 무대의 매력에 빠졌다. 그는 "그때 배우들이 이야기하는 카타르시스를 처음 경험해 봤다"라고 했다.

이후 동국대 연극학과에 들어간 조윤서는 2012년 SBS 드라마 '가족의 탄생'을 통해 데뷔하게 됐다. 조윤서는 극 중 마예리(이채영)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며 눈도장을 찍었다. 생각보다 빠른 데뷔였다. 조윤서는 이후 '연애조작단: 시라노' '응답하라 1994' '천국의 눈물' '오늘부터 사랑해' 등 여러 드라마에서 조연으로 활약하며 연기 스펙트럼을 넓혔다.이 과정에서 데뷔 초기부터 5년 동안 아이돌 연습생 생활도 했다. 비록 앨범 한 장 못 낸 채 아이돌 데뷔는 무산됐지만, 배우로서 두각을 보였다.

그리고 2017년 MBC 드라마 '행복을 주는 사람' 촬영 중에 건강 악화로 중도 하차, 차근차근 밟아 올라온 배우 생활에 제동이 걸렸다. 혈관 질환으로 수술까지 하게 된 조윤서는 갑작스럽게 공백기를 맞이하게 됐다.
배우 조윤서./ 사진=조준원 기자

조윤서는 "제일 힘든 시기였던 것 같다. '배우로 활동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이 컸다"라며 "아프고 나서 마음을 다잡지 못했다. 반 포기 상태였다. 그런데 또 인생의 절반 이상 해왔던 연기를 쉽게 포기하지 못하겠더라. 당시 가족들이 큰 힘이 됐다. 제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존중한다며 응원해 주셨다. 가족들 덕에 조금씩 힘을 내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회복 이후 영화 '창궐' 단역으로 출연했다. 첫 상업영화였다. 조윤서는 "데뷔 이후 단역은 처음이었다. 그때 '단역부터 다시 차근차근 올라가자'고 마음먹었다. 그러면서 드라마 '대군-사랑을 그리다' '마인'까지 출연하며 마음을 다졌다"라고 설명했다.'배우의 끈'을 놓지 않게 한 결정적인 작품이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다. 조윤서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서 최민식 선배 대사 중에 '풀리지 않은 문제가 있을 때 어렵구나 내일 다시 풀어야지 하는 게 수학적 용기다'라는 말이 있다. 그 대사가 제게 큰 위로가 됐다. 데뷔는 빨랐지만, 무명의 시간이 길었고 공백기도 있었다. 풀리지 않는 문제를 붙잡고 늘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화도 나고 지친 상황에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를 만났다. 제게 꼭 '잘하고 있어'라고 얘기해주는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윤서는 "제가 생각할 때 수학과 인생이 크게 다르지 않다. 삶에 대입이 된다. 그런 면에서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수학 영화가 아니라 따뜻한 위로가 있는 작품이다"라고 덧붙였다.

조윤서는 도깨비, 구미호, 좀비처럼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판타지 장르에 출연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제가 만족할만한 연기를 해 보는 게 꿈인데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돌이켜 보면 아쉬운 것만 보인다"라며 "주연에 대한 욕심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보다 먼저 배우로서 인정받고, 꼭 주연까진 아니어도 일 년에 한 두 작품씩 하면서 오래도록 활동하고 싶다. 저는 '뭉근하다'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뭉근한 배우가 되고 싶다"고 소망했다.

"위로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스스로 위로에 서툰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동안 영화, 드라마, 음악을 통해 위로받고, 다시 일어선 사람입니다. 저 또한 배우로서, 그리고 사람으로서 위로해 드리고 싶어요. 위로가 사람을 다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거든요. 누군가를 다시 살릴 수도 있고요."

노규민 텐아시아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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