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목할 만한 예능
'개그콘서트' 종영 1주년
떠난 뒤 더 잘 된 코미디언
'피식대학', 빈 자리 메웠다
'개그콘서트' 종영 1주년
떠난 뒤 더 잘 된 코미디언
'피식대학', 빈 자리 메웠다
≪정태건의 오예≫
'콘텐츠 범람의 시대'. 어떤 걸 볼지 고민인 독자들에게 정태건 텐아시아 기자가 '예능 가이드'가 돼 드립니다. 예능계 핫이슈는 물론, 관전 포인트, 주요 인물,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낱낱히 파헤쳐 프로그램 시청에 재미를 더합니다.'개콘'은 끝났지만 코미디는 끝나지 않았다.
KBS2 '개그콘서트'가 막을 내린지 정확히 1년이 지났다. 당시 많은 개그맨을 비롯한 방송계에서는 "이러다가 코미디언이라는 직업 자체가 없어지겠다"는 볼멘소리를 내놨지만 현재 코미디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여전히 대중에게 웃음을 주고 있다.
'개그콘서트'는 지난해 6월 26일 방송을 끝으로 종영했다. 지난 20여 년간 전국민의 웃음을 책임졌던 프로그램이었기에 많은 시청자가 안타까움을 드러냈다.1999년 9월 4일 첫 방송된 '개그콘서트'는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이다. 십수년간 전국민을 일요일 밤마다 TV 앞으로 모여들게 했고, 수많은 스타를 배출하며 많은 사랑을 받은 캐릭터와 유행어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재미 없다"는 혹평이 쏟아지며 시청자들에게 외면받기 시작했다. 한때 남녀노소 누구나 따라하는 유행어를 만들었던 '개그콘서트'는 어느샌가 트렌드에 뒤쳐졌다. 이에 편성 시간을 바꾸고, 포맷을 변경하는 등 돌파구를 찾았지만 종영을 막지 못했다.
이로써 지상파 방송국에선 단 하나의 공개 코미디도 볼 수 없게 됐다. 종편과 케이블 채널로 넓혀봐도 tvN '코미디 빅리그'가 유일하다. 방송국은 더 이상 공채 개그맨도 뽑지 않았다. 코미디언이라는 직업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하지만 원로 개그맨 임하룡의 생각을 달랐다. 그는 한 방송에서 "코미디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고 각 분야로 녹아들어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후배들에게 "전에도 '유머 1번지'나 '쇼비디오 자키'가 대단한 인기를 얻었다가 없어지고 나중에 '개그콘서트'가 생겼다. 그렇듯이 새로운 코미디 스타일이 또 나올 거다. 희망을 갖고 실력을 갈고 닦고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당시 막연하게 느껴졌던 대선배의 발언은 최근 후배 개그맨들에 의해 설득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가장 단적인 예가 구독자 130만 명을 보유한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흥행이다.
공개 코미디의 몰락 이후 개그맨들은 대부분 유튜브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유명 개그맨들은 골프 유튜브 채널을 열었고, 신인급 개그맨들은 삼삼오오 뭉쳐 코미디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마저도 '몰래카메라' 콘텐츠가 반복돼 아쉬움을 남겼다.
이에 반해 '피식대학'은 희극 배우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코미디의 계보를 잇고 있다. 과거 '개그콘서트'처럼 일종의 콩트 형식을 활용한 개그 코너를 선보이는데 내놓는 콘텐츠마다 뜨거운 반응을 끌어낸다. 'B대면 데이트', '한사랑산악회', '05학번이즈백', '최준의 니곡내곡' 등 화제의 코너가 연달아 쏟아졌고 카페사장 최준부터 재벌 3세 이호창, 한사랑산악회장 김영남, 부회장 이택조까지 대세 캐릭터도 줄줄이 등장했다.'피식대학'은 출연자들의 뛰어난 연기력, 신선한 아이디어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들이 만든 콘텐츠는 단순한 웃음을 넘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05학번이즈백'은 2030세대에게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한사랑산악회'는 젊은이들이 중장년층의 문화를 이해하게 만들었다. 이에 "세대 통합에 앞장선 '피식대학' 멤버들이 문화체육부 장관상을 받아야 한다"는 댓글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피식대학'은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개그맨들이 뭉쳐 만들었다. 정식 멤버는 SBS 공채개그맨 16기 김민수와 이용주, KBS 공채개그맨 29기 정재형으로 이뤄졌고 동료 개그맨 김해준, 이창호가 힘을 보탰다. 이들은 1년 전만 해도 방송국에서 외면 받던 신인급 개그맨들이었지만 '피식대학'의 성공 이후 도리어 모셔가는 스타로 거듭났다.
앞서 KBS는 '개그콘서트' 종영을 결정한 이유에 대해 달라진 방송 환경, 코미디 트렌드의 변화,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계 등을 꼽았다. 제작진의 책임은 회피했고 모든 원인을 외부에서 찾았다. 하지만 지상파 코미디 프로그램은 수직적인 기수 문화와 강압적인 연출진 등 내부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 과거 일반인 시절 '개그콘서트'에 출연한 문세윤은 "감독님이 엄청 무서웠다. 일반인도 예외 없이 막 대했다"고 회상했다.그렇지만 새 코너가 방송에 나가려면 담당 PD 등 제작진의 심사를 반드시 거쳐야 했다. 연출진의 검열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아무리 좋은 콘텐츠를 짰어도 제작진의 센스가 따라가지 못하거나 사적인 감정이 개입되면 시도조차 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개그맨 이수근은 자신을 전국민적 스타로 만들어준 코너 '고음불가'가 제작진의 반대로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했다며 선배 박준형의 끈질긴 설득으로 기회를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같은 폐쇄적인 구조는 신인 개그맨에게 엄청난 장애물이다. 제작진의 선택을 못 받으면 꿈을 펼칠 기회조차 받질 못한다. 이에 '피식대학' 멤버들도 당시 선배들의 개그를 돕는 조연 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장애물이 사라진 현재 이들은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피식대학'은 매주 일요일 밤 '한사랑산악회' 에피소드를 공개하며 '개그콘서트'의 빈자리를 말끔히 메웠다.
'피식대학'은 임하룡이 말한 새로운 코미디 스타일을 열었고, 선두주자로 앞서가기 시작했다. 반면 코미디의 오랜 전통과 역사를 저버린 방송사는 미래를 이끌어 갈 인재들마저 자신의 손으로 떠나보냈다. "이렇게 웃긴 개그맨들을 가지고 그것 밖에 못 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정태건 텐아시아 기자 biggu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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