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자, 52년 만에 친구 찾아
"피신처였던 친구 자취방"
"아들 역할 톡톡히 했다"
"피신처였던 친구 자취방"
"아들 역할 톡톡히 했다"
배우 김형자가 KBS2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고등학교 동창과 52년 만에 재회했다.
2일 방송된 ‘TV는 사랑을 싣고’는 김형자가 출연해 고등학교 시절 친구를 찾았다.
이날 김형자는 서울로 유학 와서 혼자 살던 고등학교 친구 김옥화 씨를 찾았다. 학창시절 단칸방에 여섯 식구로 북적였다던 김형자는 “방 하나에 혼자 공부하고 밥 해 먹고 사니까 그렇게 부러웠다. 나는 내 방 하나 갖는 게 꿈이었다”고 말했다.김옥화 씨네 가족은 1960년대 쌀가게를 하며 쌀밥을 먹을 정도로 유복했다고 한다. 김형자는 당시 김옥화씨의 교복도 남달랐다며 처음 시판된 라면도 친구 집에서 처음 먹었다고 했다. 그는 “숙제 들고 맨날 걔네 집에 갔다. 라면이라도 좀 얻어 먹어보려고 했다”며 1970년 3월 졸업 후 52년 동안 김옥화 씨를 만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김형자는 군수 딸이었던 어머니와 부잣집 아들이었던 아버지가 6.25 전쟁 당시 피난을 갔던 대전에서 자신이 태어났다고 밝혔다. 딸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실망한 아버지가 ‘아들 노릇을 하라’는 뜻으로 이름을 형자로 지었다고 한다.
김형자는 7살 때 아버지의 외도를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전쟁이 끝나고 아버지가 사업을 하러 서울로 가셨다. 그런데 아버지가 연락이 안 돼서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아버지를 찾으러 갔다”며 “어디를 갔는데 문을 여니까 어떤 여자가 아기를 옆에 두고 누워 있었다. 어머니가 가자마자 고무신으로 그 여자를 막 때렸다. 그 후로 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이혼은 안 했지만 어머니가 아버지를 받아주지 않았다”고 털어놨다.이후 어머니는 홀로 다섯 딸을 키웠다.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간 김형자는 언니의 자취방이었던 판잣집 단칸방에서 가족 6명이 함께 살게 됐다고. 김형자는 돈을 버는 어머니를 대신해 자매끼리 당번을 정해 식사 준비를 하고, 공동 수돗가에서 설거지를 했던 일과 수세미로 피부관리를 했던 기억을 공개했다.
어머니의 고생을 누구보다 잘 알아 일찍 생활전선으로 뛰어들었다는 김형자는 “첫 집 장만은 1974년도였다”며 “처음 집을 살 때 엄마 이름으로 사셨다. 내가 아들 노릇을 톡톡히 하고 살았다”고 회상했다.
추적 중 들려온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김옥화 씨는 학창시절 이후 가정 형편이 힘들어져 꿈도 포기하고 여러 일을 전전했다고. 다른 동창 역시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긴 상황이라 김옥화 씨가 이름을 김영희로 개명했다는 단서만 알려졌다. 그가 9년 전에 요양원에 있었다는 소문도 들렸다.
수소문 끝에 김형자는 김옥화 씨와 52년 만에 만났다. 김형자는 눈시울을 붉히며 “살아있었구나”라고 말했다. 김옥화 씨는 “찾아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김형자는 “이름을 왜 바꿔서 못찾게 만드냐”며 요양원에 있다는 소문에 대해 물었다. 김옥화 씨는 “입원한 게 아니고, 간병을 한다”고 설명했다.
김옥화 씨는 “내가 그렇게 잘해준 것도 없는데 나를 잊지 않고 찾는다는 게 감동이었다”고 말했다. 김형자는 “그때 너희 집이 피신처였다”고 고마워 했다. 김형자 집안 사정을 알고도 모른 척했다는 김옥화 씨는 “고3 때 아버지가 쌀장사 하시다가 사업에 손을 댔다. 공사가 망하는 바람에 다 내려놓았다”며 “집도 없이 보따리만 싸서 서울에 오셨다. 내 자취방으로 와서 깜짝 놀랐다. 그 다음에 나는 결혼해서 일찌감치 돈을 벌었다. 먹고 살기 바쁘니 동창회 그런 건 엄두도 안났다”
이어 “살다보니 김형자가 영화에 나오더라. 수영복 입고 나왔는데 놀랐다”고 덧붙였다. 김형자는 김옥화 씨를 향해 “앞으로 자주 만나자”고 말해 훈훈함을 안겼다.
정태건 텐아시아 기자 biggu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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