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명이 무대를 향해 “거.지.같.다!”고 외친다. 욕하는 게 아니다. 지난 17일 어린이대공원 돔아트홀에서 열린 인피니트의 팬클럽 창단식, ‘BTD’ 무대에서의 응원 떼창이다. 데뷔곡 ‘다시 돌아와’로 시작된 무대는 팔다리의 각도와 손끝의 움직임까지 딱딱 맞아떨어지는 인피니트 군무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기에 제격이다. 이후 “개인적인 사심을 가지고 태교하러 왔다”는 MC 박경림이 등장하자 “무대 위에서 약간 비열한 모습을 맡고 있다”(L)거나 “복근과 뱃살과 기럭지를 담당하고 있다”(성열)는 자기소개에 이어 팬미팅의 백미인 실루엣 토크로 넘어간다.
멤버 한 명만을 남겨둔 채 실루엣 판 뒤로 가서 음성변조용 특수 마이크를 사용해 해당 멤버에 대해 폭로전을 펼치는 것은 Mnet 에서도 익히 드러났던 인피니트의 특기다. ‘리더 성규의 방식이 마음에 안 들어 소심한 반항을 한 적 있다’는 주제가 주어지자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전원 O 표지판을 들어 올린 뒤 “나이 제일 많다고 다 자기 말 들어야 된다고!” “맞아!” “맞아요!” 라며 숨차게 일러바치는 하극상이 펼쳐지지만 망아지 같은 동생들을 2년간 데리고 살아온 ‘리다규’는 태연하다. 눈빛을 감춘 미소를 머금고 “다시 혼날 때가, 터치할 때가 됐죠. 오늘 밤!”이라 경고하자 “우리가 무슨 아이폰이야?”라는 절규가 울려 퍼지고, 자리로 돌아가기 전 어깨를 푸는 성규의 모습이 의미심장하다.
‘우현이는 가끔 너무 지나치게 사람들을 의식하는 것 같아 창피할 때가 있다’, ‘L은 자신의 얼굴에 대한 엄청난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역시 열렬한 동의를 받은 주제지만 그 어떤 순간에도 “팬 여러분 사랑해요”라고 외치는 ‘남조련’ 우현은 개의치 않는다. 감기몸살로 아침까지 열이 40도를 넘나들었음에도 최근 개발한 하트 3종 세트를 선보이는 우현을 향해 멤버들은 “저게 뭐야! 저게 뭐야!”라며 “정말 여러분은 저러는 게 좋아요?”라며 치를 떨지만 자칭 ‘호애기’ 호야마저 애교를 선보여야 하는 자리가 바로 팬미팅이니 어쩔 수 없다. “동우의 해맑은 모습은 다 계산된 거”라거나, “성종이는 우리 안무보다 걸그룹 댄스에 더 관심이 많다”는 폭로 또한 사실은 애정의 발로다. 연습생 시절 테스트에 떨어진 동우가 마음 고생했던 이야기를 대신 털어놓고, 섹시 댄스를 출 기세인 성종을 위해 알아서 ‘버블 팝’을 불러주는 것은 아직도 제 손으로 화장실을 청소하고 새 앨범 홍보를 위해 번화가에서 춤을 추는 이 ‘아이돌 같지 않은 아이돌’ 특유의 우애다. 화려한 개인기나 폭풍 가창력보다 멜로디와 가사, 노래와 춤, 일곱 명의 개성과 노력이 조화된 그들의 무대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주목하게 만드는 힘은 그들의 소박한 해맑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날 팬미팅이 대규모 무대 장치나 복잡한 프로그램 없이도 인피니트의 무대와 이야기만으로 충분했던 것 역시 ‘겉은 순정만화, 속은 소년만화’인 일곱 남자아이들의 매력 덕분일 것이다.
글. 최지은 five@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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