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에 대한 특별하게 평범한 90분" src="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2012120610575733030_1.jpg" width="555" height="370" />
누구나 겪는 일이라면, 죽음 역시 특별한 사건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대면하고 담담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은퇴한 샐러리맨 스나다 도모아키는 자신의 죽음을 부정하거나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려하지 않는다. 아직 살아계신 어머니와 막내딸의 결혼이라는 숙원을 남겨둔 채 말기암 판정을 받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그는 허둥대는 대신 남은 시간을 살뜰하게 사용하려 한다.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다. 미국에서 태어날 손녀를 기다리고, 새로운 종교의 기도문을 외우고, 자신의 소식을 알릴 지인들의 목록을 컴퓨터에 정리해 두는 일은 사실 죽음이라는 근미래의 사건만 가리고 보면 소박하기 그지없는 일과일 뿐이다. 그리고 그 평범하고 일상적인 하루하루를 담은 는 누구나의 죽음을 그려냄으로서 죽음에 대한 특별한 감상을 남긴다.
잘 살기 위한 노력, 잘 죽기 위한 노력
, 죽음에 대한 특별하게 평범한 90분" src="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2012120610575733030_2.jpg" width="555" height="185" />
죽음은 그 자체로 독립될 수 없는 사건이다. 먼저, 삶이 있어야 그 끝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는 죽음을 이야기하기 위해 인물의 인생을 되짚는다.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자녀를 얻고, 여행을 떠나거나 부부싸움을 하기도 하고, 젊음을 바친 회사에서 은퇴를 하고 그러다 인생에서도 퇴장의 신호를 발견하는 그의 수십 년은 낯익은 단계와 이벤트들로 이루어져 있다. 작품의 감독이자 주인공의 딸인 스나다 마미가 일상처럼 기록하고 수집해 온 그의 편린들은 이 남자가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 어떤 취향을 가지고 어떤 표현 방식을 선호하는지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유난할 것 없지만, 그렇다고 똑같을 수 없는 개인의 삶은 가족을 통해 섬세하게 복원된다. 그리고 그 작업은 죽음을 앞둔 남자의 행동을 이해하게 만든다. 잘 살기 위해 노력해 온 사람이 잘 죽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결국 당연한 결정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영화의 이러한 시선은 끝내 인물이 죽음과 질병에 잠식당하지 않도록 고집스러운 균형을 지켜낸다. 판정을 받은 직후부터, 영면에 드는 순간까지 스나다 도모아키는 결코 환자나 노인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그에게서 슬픔과 절망, 불안과 좌절이 엿보이지 않는 것은 그러한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른 느낌과 계획, 생각들이 더욱 두드러지는 덕분이었다. 단 6개월 만에 그의 얼굴은 십수년을 앞질러 늙어버리고, 그의 몸은 낯설 만큼 말라들었지만 영화는 그에게서 여전히 한결 같은 모습들을 발견해 낸다. 시간에 걸쳐 습관과 생활로 빚어진 고유한 흔적은 남자의 아버지에게서도 마찬가지로 남아있었다. 치매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도 폐업한 자신의 병원에 나와 손님을 기다리는 그의 모습은 인생의 켜가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거대한 지층의 단면이야말로 죽음의 문에 새겨진 무늬임을 알게 한다. 그리고 영화는 힘껏 웃으며, 그 무늬를 꼼꼼하게 어루만지는 경험을 공유한다.긴 시간을 함께한 이들만이 나눌 수 있는 감정
, 죽음에 대한 특별하게 평범한 90분" src="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2012120610575733030_3.jpg" width="555" height="185" />
그래서 는 떠나는 사람의 정리인 동시에, 그와 이별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리이기도 하다. 필름은 과거를 오차 없이 기록하지만, 남자의 기억은 미처 기록하지 못한 순간의 감정과, 설명할 수 없는 감격을 고스란히 간직한다. 아내와 처음 만난 날 그녀가 입었던 옷, 어린 손녀가 태어나던 날의 기분은 누구도 완전히 알 수 없는 형태로 남자의 시간 속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그러한 기억과 흔적의 상실을 의미한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역시 이와 유사한 시선을 보여주는 영화다. 가정부로 들어와 세끼 밥을 짓고 청소를 한 것이 삶의 전부인 아타오(엽덕한)의 삶은 단순하지만, 그녀는 주인댁의 아들 로저(유덕화)의 식습관과 가족들의 대소사를 시시콜콜 알고 있으며 로저의 친구들에 관한 별명과 사건들까지도 기억하는 사람이다. 피를 나누거나, 서류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오직 긴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이 서로에게 남기는 흔적은 문자 그대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기에 유의미하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의 죽음은 오직 그 사람만이 알고 있는 한 세계가 사라진다는 아득함을 남긴다.
남자가 죽기 직전, “당신이 이렇게 좋은 사람인 줄 몰랐어요”라고 아내는 고백한다. 그동안 남편으로, 샐러리맨으로, 아버지로 대하던 남자를 드디어 그 이름으로 보게 된 아내에게 남자는 비로소 특별한 사람이 된다. 꼼꼼하고, 고집스럽기도 하고, 유머러스한 남자의 태도는 마지막까지 변함없었지만, 이제 그를 잃게 된 사람들의 마음은 전과 같을 수 없다. 요약하자면 간단한 삶이었고, 세상은 누군가의 죽음 뒤에도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 하지만 그 사람만이 알고 있는 나의 이야기들이 소멸되는 세상에는 나만이 아는 상실감으로 남기 마련이다. 에 쓰여진 이야기는 사실 특별할 것 없는 일들이었다. 하지만 그 사소한 이야기들은 지극히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우리 모두가 시간에 힘입어 특별한 하나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준다. 잘 죽자거나, 잘 살자는 게 아니다. 모든 죽음과 모든 삶을 끌어안아 줄 수 있어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이 영화는 특별하게 평범하다.
글. 윤희성 nine@
편집. 장경진 three@
누구나 겪는 일이라면, 죽음 역시 특별한 사건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대면하고 담담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은퇴한 샐러리맨 스나다 도모아키는 자신의 죽음을 부정하거나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려하지 않는다. 아직 살아계신 어머니와 막내딸의 결혼이라는 숙원을 남겨둔 채 말기암 판정을 받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그는 허둥대는 대신 남은 시간을 살뜰하게 사용하려 한다.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다. 미국에서 태어날 손녀를 기다리고, 새로운 종교의 기도문을 외우고, 자신의 소식을 알릴 지인들의 목록을 컴퓨터에 정리해 두는 일은 사실 죽음이라는 근미래의 사건만 가리고 보면 소박하기 그지없는 일과일 뿐이다. 그리고 그 평범하고 일상적인 하루하루를 담은 는 누구나의 죽음을 그려냄으로서 죽음에 대한 특별한 감상을 남긴다.
잘 살기 위한 노력, 잘 죽기 위한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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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그 자체로 독립될 수 없는 사건이다. 먼저, 삶이 있어야 그 끝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는 죽음을 이야기하기 위해 인물의 인생을 되짚는다.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자녀를 얻고, 여행을 떠나거나 부부싸움을 하기도 하고, 젊음을 바친 회사에서 은퇴를 하고 그러다 인생에서도 퇴장의 신호를 발견하는 그의 수십 년은 낯익은 단계와 이벤트들로 이루어져 있다. 작품의 감독이자 주인공의 딸인 스나다 마미가 일상처럼 기록하고 수집해 온 그의 편린들은 이 남자가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 어떤 취향을 가지고 어떤 표현 방식을 선호하는지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유난할 것 없지만, 그렇다고 똑같을 수 없는 개인의 삶은 가족을 통해 섬세하게 복원된다. 그리고 그 작업은 죽음을 앞둔 남자의 행동을 이해하게 만든다. 잘 살기 위해 노력해 온 사람이 잘 죽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결국 당연한 결정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영화의 이러한 시선은 끝내 인물이 죽음과 질병에 잠식당하지 않도록 고집스러운 균형을 지켜낸다. 판정을 받은 직후부터, 영면에 드는 순간까지 스나다 도모아키는 결코 환자나 노인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그에게서 슬픔과 절망, 불안과 좌절이 엿보이지 않는 것은 그러한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른 느낌과 계획, 생각들이 더욱 두드러지는 덕분이었다. 단 6개월 만에 그의 얼굴은 십수년을 앞질러 늙어버리고, 그의 몸은 낯설 만큼 말라들었지만 영화는 그에게서 여전히 한결 같은 모습들을 발견해 낸다. 시간에 걸쳐 습관과 생활로 빚어진 고유한 흔적은 남자의 아버지에게서도 마찬가지로 남아있었다. 치매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도 폐업한 자신의 병원에 나와 손님을 기다리는 그의 모습은 인생의 켜가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거대한 지층의 단면이야말로 죽음의 문에 새겨진 무늬임을 알게 한다. 그리고 영화는 힘껏 웃으며, 그 무늬를 꼼꼼하게 어루만지는 경험을 공유한다.긴 시간을 함께한 이들만이 나눌 수 있는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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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는 떠나는 사람의 정리인 동시에, 그와 이별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리이기도 하다. 필름은 과거를 오차 없이 기록하지만, 남자의 기억은 미처 기록하지 못한 순간의 감정과, 설명할 수 없는 감격을 고스란히 간직한다. 아내와 처음 만난 날 그녀가 입었던 옷, 어린 손녀가 태어나던 날의 기분은 누구도 완전히 알 수 없는 형태로 남자의 시간 속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그러한 기억과 흔적의 상실을 의미한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역시 이와 유사한 시선을 보여주는 영화다. 가정부로 들어와 세끼 밥을 짓고 청소를 한 것이 삶의 전부인 아타오(엽덕한)의 삶은 단순하지만, 그녀는 주인댁의 아들 로저(유덕화)의 식습관과 가족들의 대소사를 시시콜콜 알고 있으며 로저의 친구들에 관한 별명과 사건들까지도 기억하는 사람이다. 피를 나누거나, 서류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오직 긴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이 서로에게 남기는 흔적은 문자 그대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기에 유의미하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의 죽음은 오직 그 사람만이 알고 있는 한 세계가 사라진다는 아득함을 남긴다.
남자가 죽기 직전, “당신이 이렇게 좋은 사람인 줄 몰랐어요”라고 아내는 고백한다. 그동안 남편으로, 샐러리맨으로, 아버지로 대하던 남자를 드디어 그 이름으로 보게 된 아내에게 남자는 비로소 특별한 사람이 된다. 꼼꼼하고, 고집스럽기도 하고, 유머러스한 남자의 태도는 마지막까지 변함없었지만, 이제 그를 잃게 된 사람들의 마음은 전과 같을 수 없다. 요약하자면 간단한 삶이었고, 세상은 누군가의 죽음 뒤에도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 하지만 그 사람만이 알고 있는 나의 이야기들이 소멸되는 세상에는 나만이 아는 상실감으로 남기 마련이다. 에 쓰여진 이야기는 사실 특별할 것 없는 일들이었다. 하지만 그 사소한 이야기들은 지극히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우리 모두가 시간에 힘입어 특별한 하나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준다. 잘 죽자거나, 잘 살자는 게 아니다. 모든 죽음과 모든 삶을 끌어안아 줄 수 있어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이 영화는 특별하게 평범하다.
글. 윤희성 nine@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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