쟈니즈 일색이다. 당장 7월부터 2013년 상반기까지 꼼꼼히 들어찼다. 음반 시장 이야기가 아니다. 드라마나 잡지 얘기도 아니다. 영화사 토호가 지난 7월 발표한 신작 라인업은 마치 쟈니즈 하반기 계획을 보는 듯했다. 쟈니즈 배우 주연의 영화들이 다수 눈에 띄었고, 그 수가 캐스팅까지 완료된 작품 9편 중 무려 6편을 차지했다. 소위 일본 3대 메이저 배급사로 불리는 토호, 토에이, 쇼치쿠가 연 평균 각각 25편 정도의 영화를 제작, 배급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토호의 2013년 영화 중 20%가 쟈니즈의 것인 셈이다. 이 라인업을 두고 종합 일간지 는 “이건 쟈니즈 탤런트 축제에 다름없다”고 썼다. 게다가 토호는 근래 수년간 3대 영화사 중 거의 독보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2011년 일본영화 흥행순위 톱10은 모두 토호의 작품이었고, 2010년 흥행 1위인 지브리 애니메이션 도 토호 배급이었다. 토호의 이번 신작 발표는 마치 영화계와 J-POP 시장의 두 거물이 손을 잡은 듯한 형세로 보이기도 한다.

‘이벤트 무비’로 채워지는 일본영화의 현실

최근 일본 영화계는 방송국 주도의 제작위원회 시스템이 강화되는 추세였다. 토호는 주로 후지TV와 손을 잡았고, 쇼치쿠와 토에이는 TBS, TV아사히, 니혼TV와 꾸준히 작업을 함께 했다. 제작위원회 시스템은 영화 제작 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1980년대 후반 도입된 방식으로 한 편의 영화를 영화사, 방송국, 출판사, 음반 에이전시 등이 함께 만드는 형태다. 제작 시 손실 부담률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영화의 질이 하향 평준화된다는 단점도 안고 있다. 그리고 2000년 이후 TV 드라마의 인기를 등에 업고 소위 ‘이벤트 무비’가 다수 제작됐다. , , , 등이 그 예다. 방송국의 입김은 절로 세졌고, 드라마와 영화를 함께 기획하는 사례도 늘어났다. 이번에 발표된 KAT-TUN의 카메나시 카즈야 주연 도 TV 드라마에서 시작된 일종의 ‘이벤트 무비’다.

TV 드라마를 영화화하는 케이스가 늘어나는 추세 속에서 TV 드라마의 주인공이 그대로 영화의 주연을 맡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쟈니즈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쟈니즈는 매 시즌 2~3편의 드라마에서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하지만 이번 토호 라인업을 두고 일본 영화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 영화 관계자는 “‘TV 드라마 원작’, ‘코믹스 원작’과 함께 토호가 ‘쟈니즈 기용’이라는 히트 공식 하나를 도출한 듯 싶다”고 했다. 영화가 TV 드라마에 매달리고, 제작위원회 시스템이 평범한 수준의 이야기를 양산하면서 활기를 잃은 근래 일본 영화계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일 것이다. 일본 영화는 최근 양적으로 성장하긴 했지만 이렇다 할 화제작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영화 외적인 영역의 비중이 커지는 제작위원회가 가져 온 부작용이다. 2010년 토호의 차세대 프로듀서 카와무라 겐키가 과 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새로운 바람을 예감케도 했지만, 그로부터 2년여가 지난 지금 일본 영화계의 주류는 여전히 ‘이벤트 무비’다. “만화와 소설, 그리고 드라마의 인기로 간신히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영화전문지 의 말이 과장은 아닐 것이다.피할 수 없다면 제대로 된 협업으로

토호가 발표한 신작 중에는 기대작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쿠타 토마의 은 슈도 우리오의 동명 추리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다. 마츠유키 야스코, 에구치 요스케가 함께 출연하며, 2012년 로 일본 아카데미에서 다관왕을 차지한 나루시마 이즈루 감독이 각본을 맡았다. 아라시의 니노미야 카즈나리가 주연하는 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카메나시 카즈야의 과 사쿠라이 쇼의 는 이미 TV 드라마로 제작돼 방영된 작품들이다. 검증된 각본과 인기 배우의 조합은 사실 나쁠 게 없는 요소다. 오히려 일본의 제작위원회 시스템이 추구하는 모델이다. 하지만 쟈니즈는 본래 J-Storm이란 레이블 아래서 쟈니즈 소속 배우들의 영화를 별도로 제작해왔다. 아라시의 시리즈와 , 그리고 V6의 등이 해당된다. 팬 문화를 바탕으로 한 아이돌 영화가 쟈니즈 영화의 색깔이었다.

하지만 2008년 이후 쟈니즈는 영화 제작 방식을 조금씩 바꿨다. 일본 영화계에서 방송국의 비중이 커지기 시작하면서 쟈니즈 역시 이 대열에 가세한 것이다. 야마시타 토모히사의 , 마츠모토 준의 과 , 나가세 토모야의 등에 쟈니즈는 공동 제작의 형태로 참여했다. 주축이 되어 영화를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방송국 주도의 프로젝트에 제작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비중은 점점 늘어가고 있다. 물론 이는 쟈니즈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인디, 독립영화가 아닌 경우 대부분 일본의 대중영화는 제작위원회 시스템 속에서 만들어진다. 하지만 8~90년대 일본 대중영화가 황금기를 누렸을 때 그 힘은 감독과 제작사의 역량에서 나왔다. 쟈니즈의 영화도 90년대 후반 명확한 타깃과 시장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 빛났다. 쟈니즈와 토호의 협업은 과연 둘의 발전을 위한 길일까.

글. 정재혁 칼럼니스트
편집. 장경진 three@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