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작가인 길(오웬 윌슨)은 약혼녀 이네즈(레이첼 맥아담스)의 가족과 함께 파리를 방문하지만 여행지의 낭만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길 혼자뿐이다. 게다가 여행 내내 눈엣가시처럼 나타나 잘난 척을 하는 이네즈 친구의 남편, 폴(마이클 쉰)을 보고 있자니 길의 속내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결국 혼자서 파리의 밤거리를 느끼러 나선 어느 자정, 길은 우연히 젊은 부부의 초대로 파티에 참석하게 되고 이들이 이름이 스콧 피츠제럴드(톰 히들스턴)와 젤다 피츠제럴드(알리슨 필)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놀라움을 채 추스르기도 전에 그는 피카소의 아름다운 젊은 연인, 아드리아나(마리옹 꼬띠아르)를 만나게 된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저 멀리서 파리가 날 부르고 있어


사실 에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 소설 쓰기를 갈망하며 뮤즈를 찾아 나서는 길의 모습은 우디 알렌의 전작 를 떠올리게 하고, 낯선 도시에서 느끼는 긴장을 황홀경으로 오해하는 태도는 역시 감독의 지난 작품인 를 통해 이미 제시한 감수성이다. 뿐만 아니라 영화는 주인공이 경험하는 시간 여행을 설명하기 위한 어떤 과학적 근거도 마련하지 않는다. 게다가 과거에 도착한 길이 만나는 예술가들의 모습은 관객들이 알고 있는 정보, 딱 그만큼에 기초해 묘사된다. 덕분에 관객들은 영화와 게임을 벌이는 대신 마치 여행을 하듯 영화가 제공하는 풍경과 유머를 순차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친절하게도 영화는 자신의 장점을 숨기거나 비틀지 않으며,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까지 뚜렷하게 밑줄을 그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의 이러한 태도는 수월하게 보일지언정 소홀한 방식이라 할 수 없다. 우디 알렌이 보여주는 파리의 공간과 시간은 충분히 매혹적인데, 이것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관객은 마치 폴이 그랬듯 자신의 선험적 지식을 계속해서 일깨워야 한다. 말하자면 대중적으로 현학적이라는 모순된 균형이 절묘하게 그 무게 중심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관객은 폴의 입장에서 길에게 동조하는 아이러니 상태에 빠지게 된다. 시간 여행으로 과거를 소환하지만 결국 현재성을 예찬하는 영화의 메시지 또한 아이러니하기는 마찬가지다. 마냥 낭만적으로 보이는 이 영화가 여지없이 우디 알렌의 표식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밝아지고 말랑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노감독은 여전히 팔짱을 끼고 시니컬한 냉소를 거두지 않고 있다. 그래서 파리의 자정을 지켜보는 일은 예쁘고, 즐겁고, 사랑스럽지만 한편으로는 가볍지가 않다. 7월 5일 개봉.

글. 윤희성 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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