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준이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 그들은 그저 한 명의 관객에 지나지 않았다. 이상준이 “나다 싶으면 일어나자”는 협박성 멘트와 함께 다짜고짜 무릎에 앉으면 그 사람은 조폭 조직의 송 실장이 되었고, 이상준이 객석을 어슬렁거리다가 느닷없이 얼굴을 들이밀면서 “빵- 터지라우”라고 소리치면 그 사람은 북한의 핵폭탄이 되었다. tvN 의 ‘아3인’ 팀을 이끌고 있는 개그맨 이상준은 무대 위에서든, 아래에서든 좀처럼 뒤로 물러서는 법이 없다. 남한군 예재형에게 지지 않기 위해 매주 거구의 사나이를 데리고 올라오고, 한 관객이 “김일성 고등학교를 나왔다”는 돌발발언을 하면 더 센 애드리브로 받아친다. 이는 2년 전 SBS 이 폐지된 바로 다음 날부터 아이디어를 짜고 부지런히 행사를 다니면서 관객들과 호흡해 온 덕분이다. ‘관객모욕’과 ‘JSA’ 코너는 모두 “행사 가서 반말이나 외모지적을 해도 관객들이 웃는” 이상준의 얄밉지 않은 매력에서 출발한 것이다.
지금은 에서 ‘아메리카노’ 팀과 공동 1위를 하고 있지만 지난 해 ‘아줌마 여기 떡볶이 3인분이랑 인지도 좀 주세요’라는 뜻의 팀명 ‘아3인’을 정할 때만 해도 낮은 인지도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에서 ‘이건 아니잖아’를 비롯한 유행어는 많이 남겼으나 정작 이상준이라는 이름 세 글자는 알리지 못한 채 무대를 떠났다. 이상준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포기해야 하는 것, 더 큰 욕심을 부려도 되는 것과 현재에 만족해야 하는 것을 냉정하게 구분하기 시작한 건 이 때부터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이상준이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솔직히 말하면”이었다. 스무 살 때 품었던 “28살 때 버라이어티 진출”이라는 꿈을 30대에 이루려니 이제 좀 겁이 난다는 것, ‘관객모욕’ 때는 자신이 가장 많이 웃겼지만 ‘JSA’는 ‘아르미 썰(Army, Sir)’의 힘이 더 크다는 사실을 이상준은 시원하게 인정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은 개그맨 하나만 해도 괜찮은 것 같아요. 요즘엔 개그 아이디어 짠다고 행사도 안 다녀요. 옛날엔 사람들이 ‘어? 개그맨이시네요’라고 알아봤는데 요즘에는 ‘어이, 이상준이, 이상준이’라고 불러주세요.” 이상준이 개그 이외의 욕심을 버린 것은 어쩌면 자신을 반겨주는 새 집과 나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들이 생긴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내가 길거리에서 이상준 봤다 싶으면, 동요하지 말고 이름 좀 불러주자.
My name is 이상준.
1982년 7월 7일에 태어났다. 1남 1녀 중 막내다.
집에서는 무뚝뚝한 아들이다. 개그맨 준비한다고 집에 안 들어간 적이 많아서 어느새 사이가 멀어졌는데, 그래도 엄마와 통화할 땐 장난을 많이 친다. 갑자기 전화해서 “엄마, 50만 원 좀 줘봐. 사람 쳤어” 그러면, 엄마가 “그래? 50만 원이면 된대? 그냥 60만 원 주지 왜?”라고 받아친다. (웃음) 하도 그러니까 엄마도 이게 장난인 줄 아신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개그맨이 되고 싶었다. 각자 손을 그려보는 미술 시간이었는데 난 3분 만에 동그라미 하나 그리고 놀고 있었다. 선생님이 이게 뭐냐고 하시길래 주먹 쥔 손이라고 말했더니 “주먹을 쥐었으면 뼈도 튀어나오고 선도 이렇게 있어야지”라고 하시는 거다. 내가 주먹을 쥐었는데 손에 살이 많아서 진짜 동그라미 모양이었다. 선생님이 웃고 지나가시는 걸 보고 와, 남들 웃기는 게 재밌구나 싶었다.
술주정 연기를 하다가 학교 공연에 캐스팅 됐다.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스태프 전공이라 제작실습 수업에서 무대 세트를 만들고 있었는데, 연기 전공 학생들이 다 똑같이 비틀거리는 술주정 연기를 하니까 교수님이 나한테 한 번 해보라고 하셨다. 강의실 벽에서 소변보는 시늉을 하다가 한 쪽 발을 들었다. 소변이 그 쪽으로 흐를 테니까. (웃음) 난 웃기려고 한 건데 교수님이 어떻게 소변의 동선까지 다 생각했냐고 감탄을 하셨다. 공연 때 그 역할을 진짜 나한테 맡기셨다.
같은 학교에 다녔던 예재형이 그걸 보더니 같이 개그하자고 제안했다. 처음엔 지하철에서 지나가는 커플 붙잡고 개그를 하다가 ‘밥’이라는 학교 동아리를 만들어서 한 학기에 한 번씩 공연을 올렸다. 그 때 했던 개그는 지금 생각하면 정말 재미없는데, 그 때는 ‘혹시 이거 누가 뺏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일주일 내내 잠도 못 잤다. 하하.
tvN ‘JSA’ 때 입는 인민군복에서 냄새가 난다. 한 달에 한 번씩 세탁을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 메이크업도 묻어있고 툭 치면 먼지도 나고, 진짜 군대온 것 같은 느낌이라 싫다. 객석에 내려갔을 때 혹시 사람들이 이상한 냄새 난다고 뭐라 할까봐 진짜 걱정이다.
처음으로 1등 하던 날 솔직히 1위를 예상했다. 객석에서 ‘핵폭탄’을 데리고 왔는데 그 날 따라 관객 분이 위 아래로 검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계셔서 계속 잠수부대라고 놀렸다. 심지어 예재형이 데리고 온 송 이병은 또 북한 사람처럼 생기셔서 그거 갖고도 계속 장난을 쳤다. 이번에는 1등 한 번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등 하면 눈물 날 줄 알았는데, 슬픈 것보다 큰일 났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걸 어떻게 지킬까 하고.
순위를 발표하는 순간만큼은 개그맨들이 예민해진다. 1위를 하면 축하해주고 꼴찌를 하면 위로를 해주지만, 다들 자기가 1등하고 싶고 꼴등 안 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
아직도 카메라 앞에만 서면 괜히 소심해진다. 편한 사람들 앞에서는 막말하면서 편하게 웃기는데, 선배들이나 나보다 잘 나가는 사람들 앞에서는 주눅이 들어서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사람들이 날 많이 좋아해줘서 여기저기서 날 섭외하면 ‘내가 최고다’, ‘떳떳하다’는 생각이 들 텐데, 아직까지는 그런 위치가 못 되는 것 같다.
주유소나 술집 벽에 붙어있는 광고를 찍고 싶다. 술이나 엔진오일 광고를 찍으면 주유소나 술집에 포스터가 붙을 텐데, 그러면 어딜 가도 내 얼굴이 보일 거 아닌가. TV에 많이 나오는 광고보다 벽에 포스터가 많이 붙는 광고가 더 좋다. (웃음)
만약 에 출연하게 된다면 ‘옹달샘’ 팀에 껴서 개그를 해보고 싶다. 이 사람들은 진짜 무슨 생각으로 이런 개그를 짜는지 신기하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개그를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변기수 형, 김재우 형과도 해보고 싶다. 아, ‘옹달샘’이 1순위라고 하면 기수 형이 삐치니까 1위 변기수, 2위 옹달샘, 3위 김재우로 결정하겠다. (웃음)
글. 이가온 thirteen@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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