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태유나 기자]
영화 ‘남산의 부장들’ 포스터. /사진제공=쇼박스

박 대통령(이성민 분)이 시해되기 40일 전, 박용각(곽도원 분)은 미국 의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다. 그는 한때 정권의 실세인 중앙정보부장이었지만 지금은 버림 받고 도피 중이다. 청문회에서 그는 박 대통령이 한국 민주주의를 비극으로 만들고 있는 자라고 폭로한다. 청와대는 발칵 뒤집힌다.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병헌 분)도 배신한 전직 동료 때문에 난처해진다. 미국에 망명 중인 박용각은 정권의 비리를 폭로하는 회고록 출간을 앞둔 상황. 김규평은 그의 회고록을 중단시키기 위해 미국으로 날아간다.

과거의 동지에서 이젠 적이 되어 마주앉은 두 사람. 회고록 원고를 갖고 있으면 죽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은 박용각은 김규평에게 순순히 원고를 넘기며 “내 다음은 네 차례”라고 경고한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김규평은 청와대 주위를 돌고 있는 탱크와 마주한다. 대통령을 지키려는 경호실장 곽상천(이희준 분)의 극단적인 방식에 김규평은 분노한다. 결국 대통령의 오른팔과 왼팔인 두 사람은 서로에게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기 시작한다.그날 이후 김 부장은 점차 궁지에 몰린다. 대통령의 마음이 김규평에서 곽상천으로 기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듣고 싶은 말만 하는 곽상천과 달리 쓴소리를 하는 김규평이 못마땅해진 것. 여기에 쐐기를 박는 일이 터진다. 어찌된 영문인지 박용각의 회고록이 일본에서 출간됐기 때문이다.

결국 대통령은 김규평에게 분노하며 그의 충언에 귀를 닫아버린다. 김규평은 정권을 지키기 위해 민주주의와 국가발전이라는 대의명분을 잊은 대통령을 보며 굳은 결심을 한다. 1979년 10월 26일, 그는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한다. “각하,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영화 ‘남산의 부장들’ 스틸컷./사진제공=쇼박스
‘남산의 부장들’은 제2의 권력자라고 불리던 김규평이 대통령 시해 사건을 벌이기 전 40일 간의 이야기다. 동명의 논픽션 베스트셀러가 원작이다. 실화를 모티프로 했기에 사건의 과정과 결말이 다 드러나 있지만 영화는 단순히 역사에 기록된 시간을 나열하는 대신 사건 중심 인물들의 내면을 따라가는 데 집중한다. 극적인 설정은 없지만 촘촘하고 세밀한 전개로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우민호 감독의 차가우면서도 세련된 연출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배우들의 묵직한 연기도 빛을 발한다. 이병헌은 눈빛과 호흡만으로도 김규평의 흔들리는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했다. 잦은 클로즈업에서도 연기의 빈틈을 찾기 힘들다. 캐릭터를 위해 체중을 25㎏이나 늘린 이희준은 이병헌과 대립하는 장면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과시한다.

특수 분장을 통해 박정희 대통령의 귀까지 모사한 이성민은 말투부터 분위기까지 엄청난 싱크로율을 자랑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늘어가는 권력욕과 흔들리는 모습도 잘 표현했다. 곽도원도 이병헌, 이성민과 팽팽한 연기 대결을 펼치며 자신의 몫을 톡톡히 해낸다.미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촬영한 이국적인 배경은 영화에 세련된 분위기를 보탠다. 1970년대를 그대로 재현한 미술과 음악도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22일 개봉. 15세 관람가.

태유나 기자 you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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