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이하 )는 쉽지 않은 드라마다. TV만 틀면 손쉽게 볼 수 있는 드라마의 매력 중 하나는 영화나 소설처럼 처음부터 보지 않아도 전사에 대해 비교적 정확하게 유추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TV 드라마의 문법은 가장 대중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는 이야기를 기본으로 하는 전통적인 방식보다는 지우(정지훈)와 진이(이나영)가 ㅉㅗㅈ기는 과정 자체에 공을 들인다. 따라서 극 중간에 유입될 시청자에게는 불친절할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드라마의 호흡에 동의한 시청자가 아니라면 추격전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대체 왜 그들이 도망치는지에 대한 의문을 떨칠 수 없다. 그래서일까? 는 첫 방송을 시작한 이래 꾸준히 시청률이 떨어지는 부진을 보이고 있다. 화려한 캐스팅에 의 제작진까지, 드림팀이 만들고 있는 의 문제점을 위근우 기자와 김선영 TV평론가가 진단했다. /편집자주

KBS (이하 )가 처음 제목인 에 Plan B라는 단어를 추가시킨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중요한 것은 도망이 아닌 플랜 B다. 물론 탐정 지우(정지훈)는 친구 케빈(오지호)을 죽였다는 의혹 때문에 도수(이정진)에게, 그리고 진이(이나영)는 자신도 잘 모르는 이유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들에게 쫓긴다. 하지만 이 쫓고 쫓기는 관계는 흥미롭게도 쫓기는 쪽이 주도하고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해 종종 벌어지는 치열한 추격조차 오히려 쫓기는 지우의 계산 범위 안에 들어가 있다. 가령 히로키(타케나카 나오토)의 일당에게 지우가 붙잡혔을 때 역시 지우를 쫓던 도수 일행, 그리고 나카무라 황(성동일)은 의도치 않게 오히려 지우와 진이의 도망을 돕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것은 엄밀히 볼 때 도망이 아니다. 그저 지우가 만들어낸 플랜 B의 상황일 뿐이다.

떡밥에 떡밥을 부르는 추격전
그래서 수없이 벌어지는 추격전에도 불구하고 전반부 8회까지 의 서사를 이끄는 동력은 갈등이 아니다. 등장인물들은 다른 목적이 있더라도 부딪히기보다는 서로를 이용한다. 양두희(송재호) 회장은 진실의 은폐를 위해, 카이(다니엘 헤니)는 야망과 사랑 모두를 얻기 위해 불안한 연대를 맺고, 그 밑에서 황미진(윤손하)은 히로키를, 히로키는 나카무라를, 나카무라는 장사부(공형진)을 이용하려 든다. 이 복마전 안에서 서사의 얼개를 이루는 건 갈등이 아닌 퍼즐의 중첩이다. 멜기덱이 과연 누구인지, 진이의 보호자들과 케빈을 죽인 이가 누구인지 찾는 미션 안에서 지우가 완성하는 퍼즐은 더 큰 퍼즐로 향하는 힌트가 될 뿐이다. 이러한 수수께끼 안에서 드라마를 이끄는 힘은 눈에 보이는 갈등이 아닌, 아직 일어나거나 밝혀지지 않은 일에 대한 기대감이다. 프로그램 외적으로는 천성일 작가의 전작 가 선취했던 다층적 구조의 매끈한 결합이, 내적으로는 서울과 도쿄, 베이징과 마카오 등을 오가며 정신없이 흩뿌려놓은 퍼즐 조각들이 이러한 기대감을 더욱 강화한다.하지만 떡밥에 떡밥을 부르는 이 점층적인 구조는 지우가 설계하는 플랜 B에 의해 그 긴장감을 잠식당한다. 지우는 자신과 진이, 그리고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사라진 금괴를 둘러싼 퍼즐을 풀어야 하는 입장이지만 동시에 탁월한 퍼즐 설계자이기도 하다. 그는 아직 멜기덱의 실체에 닿진 못했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새로운 음모에 당황하지 않는다. 아무도 믿지 않는 이 탐정은 언제나 그 다음을 준비해 놓는다. 자신의 지인인, 하지만 양두희의 오랜 파트너인 제너럴 위(적룡)에게 도움을 청하러 갈 때, 그는 이미 길 구석구석에 탈출을 위한 칼과 오토바이 키를 준비해놓는다. 그를 함정에 빠뜨렸다고 생각한 순간 플랜 B는 작동하며 결국 그는 멜기덱을 감싼 커넥션의 진실에 한 발 다가선다. 그런 면에서 지우는 종종 초월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채업자들을 이용해 황미진 일당을 잡았을 때 “이것도 계획된 거냐”는 진이의 물음에 “플랜 B”라 대답하고, “널 지킬 자신”이 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건, 실제로 그의 계획이 모두 들어맞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그도 도수에게 붙잡히고, 카이에 의해 진이 부모님 살해 누명을 쓰지만 오히려 이를 통해 도수와 진이가 진실에 접근하도록 이끈다. 말하자면 지우는 두 수 정도 앞서 체스를 두고 있고, 그 때문에 새로운 퍼즐 조각의 등장은 기대만큼 충격적인 효과를 내지 못한다.

그래서, 제작진의 플랜B는 준비되어 있을까
주요 인물들이 서울에 모인 지금, “쌓는 건 어렵지만 무너뜨리는 건 쉽다”는 카이의 말은 이 드라마가 경청해야 할 잠언일 수 있겠다. 전반부에 해당하는 지금까지 드라마는 아시아 곳곳을 돌며 캐릭터의 성격과 관계망을 충분히 설명했다. 그렇게 포개놓은 다층적인 서사가 어떻게 서로 맞물리며 거대한 퍼즐을 완성시킬지에 후반부 의 성패는 달려있다. 그 예측 불가능한 서사의 쾌감과, 모든 것을 예측하는 초인적 주인공의 활약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과연 그 우려를 비웃을 제작진의 플랜 B는 준비되어 있을까.
글 위근우

KBS 에서 도망 노비 태하(오지호)는 ‘쫓기고 있느냐’는 언년(이다해)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도망가는 것이 아닙니다. 누굴 찾기 위해 달려가는 것이지요.” 의 추격극이 흥미로웠던 것은 이처럼 쫓기는 자의 입장을 능동적으로 뒤바꿈으로써 추격전 자체를 훨씬 역동적으로 표현해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같은 제작진의 또 다른 추격극 (이하 )에는 결정적으로 빠져있는 것이다. 는 애초에 도주하는 자의 절박한 당위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누가가 아니라 왜가 중요”하다는 미진(윤손하)의 대사와는 달리, 추격극에 긴박함을 불어넣을 “왜”가 두드러지지 않는 것이다. 대신 이 드라마가 집중하는 것은 추격전 자체가 주는 순수한 유희의 쾌감이다. 쇼처럼 전시되는 추격전
가 횡으로 질주하는 추격의 메커니즘과 수평으로 뻗어가는 인간 군상들의 다양한 드라마를 일치시키는 전략으로 액션과 이야기 모두에 공을 들였다면, 에서 이야기는 더 다양한 추격전과 액션을 끌어내기 위한 도구의 성격이 더 강하다. 육하원칙을 싫어하는 도수(이정진)처럼, 에서 중요한 것은 “왜”가 불러오는 이야기의 긴장감보다는 “어디서”와 “어떻게”가 보여줄 수 있는 액션 쾌감의 최대치다. 예컨대 4회에 키에코(우에하라 다카코)의 콘서트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지우(정지훈)와 히로키(다케나카 나오토) 부하들의 추격전은 이 드라마의 그러한 성격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추격전은 마치 하나의 쇼나 퍼포먼스처럼 전시되며, 해외 5개국을 넘나드는 방대한 공간은 그를 위한 화려한 무대를 제공한다. 불교 사원, 도로 위, 시장, 창고 안, 전철 역, 공연장, 수영장, 집 안 등 드라마 안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공간은 이야기 전개의 배경이 아니라 추격전을 위한 무대가 되며, 그 공간의 특성을 활용한 액션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그러한 연출이 주는 활극의 시각적 쾌감은 분명 의 핵심이다.

문제는 가 여러 장르적 요소를 혼합한 복합장르물이라는 데 있다. 이 작품은 추격극인 동시에 코미디이며 지우와 진이(이나영)의 멜로드라마이자 금괴를 둘러싼 미스터리물이다. 하지만 이야기에 소홀했던 는 결과적으로 이러한 다양한 장르적 요소들의 균형을 맞추는 데 실패했다. 캐릭터 구축보다 액션에 집중한 탓에 인물들은 보이지 않고 복근지훈, 기럭지나영 등 액션 스타인 배우들만 남았으며, 자연스럽게 인물들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멜로도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정교한 플롯으로 뒷받침되지 않은 미스터리 역시 별다른 극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지우의 말대로 “한 사물을 10초 이상 집중을 못하고 주위를 계속 두리번”거리는 ‘도망자들의 강박증’은 어쩌면 이 드라마 자체의 한계를 표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작 블록버스터와 B급 장르의 불균형
의 혼성 장르적 성격은 ‘Plan.B’라는 부제처럼 B급 드라마 분위기를 풍긴다. 전작들에서 주류 사회에 대한 비판 정신을 보여주었던 곽정환 감독의 B급 정서는 이 작품에서는 주로 오락극의 요소로서만 쓰이고 있다. 이 드라마의 절대 권력이자 악의 축은 글로벌 자본이지만 이야기를 추동하는 동력 역시 그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 금괴를 쫓는 자본주의적 욕망이다. 공적 수사망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다루는 탐정 지우는 대길(장혁)의 안티히어로적 매력을 거세한 코미디 액션 스타에 더 가깝다. 문제는 B급 장르의 오락적 기능에만 충실한 이 드라마가 실은 톱스타 캐스팅, 높은 제작비, 해외 로케이션, 화려한 마케팅 등 전형적인 대작 블록버스터의 공식을 따르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B급 정신을 품은 블록버스터는 칭송받지만, 외형이 B급 같은 블록버스터는 외면 받는다. 결과적으로 볼 때 진지한 이야기의 강박을 벗어던지고 순수 오락극의 쾌감에 집중한 의 실험은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글 김선영

글. 김선영(TV평론가)
글. 위근우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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