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 성분이 몸 속에 쌓이게 되면 신경이 손상되고 발달 장애가 일어나요. 주로 아기 때 발병하는데, 그 때 못 잡으면…. 아…” 대사에 열중하던 류덕환이 고개를 숙인다. 복잡한 증상과 이름을 지닌 질병의 특징을 숨도 안 쉬고 설명하는 장면이 쉬울 리 없다. 천재의사 한진우에게는 희귀병이 신이 내려준 퀴즈겠지만, 의학용어와 복잡한 증상들이 미로처럼 얽힌 대사를 소화해야 하는 배우들에게는 대본이야말로 ‘신의 퀴즈’일 것이다. 그러나 류덕환도 딱히 당황하지 않고, 동료 배우도 감독도 그에게 뭐라 하지 않는다. 모두가 이 대사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상황, 각자 할 일을 정확히 알고 서로를 믿는 배우들은 그저 조용히 다음 테이크를 준비한다. 메가폰을 타고 이준형 감독의 목소리가 적막한 촬영장에 울려 퍼진다. “자, 바로 갈게요. 카메라!”
지난 7일 탄현의 한 촬영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OCN 촬영은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였다. 현장을 안내해주던 제작이사는 문득 웃으며 이렇게 귀띔한다. “감독님이 엄청 진지한 분인데, 왜 현장에서 그런 농담하잖아요. 첫 촬영에 비 오면 대박이고, 분위기 살벌하면 대박이고. 우리는 두 가지 다 갖췄잖아요. 첫 날 촬영에 태풍으로 비가 억수같이 오는 데, 현장 분위기가 너무 진지한 거야. 하하하. 그런데 더 희한한 건 농담하는 사람도 없지만 자그마한 불평, 불만 하나 하는 사람도 없어요. 저도 이런 현장은 처음입니다.” 과연 매번 시나리오가 놓일 때마다 정신 놓고 탐독한다는 ‘시나리오 마니아’ 박준면도, 한참 깨가 쏟아질 신혼을 반납하고 현장을 사수하는 박다안도, 생애 첫 액션연기를 맞이해 들떠있을 윤주희도, 예명을 버리고 본명을 앞세우며 연기자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김대진도 모두 표정에 진지함이 서려 있다. 마침내 류덕환이 고전하던 대사를 무사히 마치고, 다른 배우들도 차례로 자기 대사를 무난하게 소화한다. “컷, 오케이.” 오케이를 내는 목소리마저 차분하기 그지없는 독특한 현장의 공기. 이 과묵한 수도승들이 한 땀 한 땀 일궈낸 는 매주 금요일 밤 10시, OCN에서 만날 수 있다.
글. 이승한 fourteen@
사진. 이진혁 eleven@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