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서 배우 원빈이 멋진 아저씨였다면, KBS ‘나는 나비’의 배우 김희원은 말 그대로 그냥 ‘아저씨’에 가깝다.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입고 나타난 그를 향해 늘어난 런닝셔츠와 반바지로 갈아입고 오라는 감독의 말에 김희원은 분장실로 향하지 않고 스무 명이 넘는 스태프들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옷을 훌러덩 벗고는 금세 갈아입는다. “취미도 딱히 없고, 촬영이 없을 때는 집에서 쉬거나 대학로에 간다”는 그의 일상은 어쩌면 영화 의 악당 만석이나 의 코믹한 보살 병수보다는 ‘나는 나비’에서 지극히 평범하고 ‘찌질한’ 일상을 살아가는 무성의 모습과 더 닮았는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연극 무대에 서오다 2007년 영화 을 시작으로 영화와 드라마라는 새로운 영역에 발을 디딘 그는 비록 “무엇보다 몸이 힘든” 단막극 촬영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그 순간에 100% 몰입할 수 있는 드라마”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 ‘나는 나비’ 촬영장에서 그를 만나 배우 김희원과 무성의 인생에 대해 들어보았다.

드라마 첫 주연작이다. 어떻게 출연하게 된 건가.
김희원 : 황의경 감독님께서 를 보시고 나를 캐스팅하셨다고 들었다. 의 만석은 악당이고 ‘나는 나비’의 무성은 굉장히 순수한 사람이라 완전히 상반된 이미지인데, 참 신기하다. (웃음) 아마 내가 악역을 희화화시키는 능력을 보신 것 같다. 극장에서 관객들이 만석의 모습을 보고 킥킥대고 웃지 않나.

“찌질한 연기에서 코믹적인 부분이 나올 것 같다”

무성은 어떤 식으로 희화화되는 인물인가.
김희원 : 무성은 굉장히 순수한데 무능력한 남자다. 푼수 같은 홀아비고, 만날 실수하는 교도관이고. 한 마디로 찌질한 거지. (웃음) 그런 찌질한 연기에서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부분이 나올 것 같다. 의 만석 같은 악역이나 의 병수처럼 코믹한 역할은 굉장히 색깔이 뚜렷한데, 무성이라는 인물은 좀 다르다. 시놉시스를 읽으면서 ‘아, 이거 재밌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렇게 무능력한 교도관이 왜 죄수 윤희를 도와주기 위해 온 몸을 던지는 걸까.
김희원 : 처음에는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런데 귀휴(복역 중인 사람이 일정 기간 휴가를 얻는 일)를 나간 윤희를 감시하면서 ‘어라, 이 여자 인생도 나처럼 찌질하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마지못해 도와주는 콘셉트인데, 결국에는 내 생활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가령 어떤 변화?
김희원 : 하루 종일 윤희와 대웅을 지키느라 상처투성이가 돼서 집에 돌아왔는데, 전 부인이 아들이랑 자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보냈을 텐데, 전 부인에게 집 열쇠를 던져주면서 “자주 오진 마라”고 얘기한다. 결국 그 말은 ‘이젠 와도 된다’는 의미다. 윤희 때문에 ‘사는 게 다 비슷하구나, 비록 이 사람도 나랑 이혼했지만 용서하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지.

결국 이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는 용서인 건가.
김희원 :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윤희도 비록 과거에는 아동유괴범이었지만 지금은 그 죄를 진실로 뉘우치고 있고, 무성 역시 윤희를 통해 자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전 부인을 용서하지 않나. 그러고 보니 윤희와 무성 그리고 윤희에게 복수를 하려는 병우까지 세 사람 모두 자식이 있는 부모다.
김희원 : 세 종류의 가정이 있는 셈이지. 병우 쪽이 완전히 파괴된 가정이라면, 윤희네는 이제 곧 파괴될 가정에 속하고. 어떻게 보면 내가 제일 나은 것 같다. 부인도 다시 돌아오려고 하고, 아들도 아직 살아있으니. (웃음)

‘자식’이라는 요소가 극에서 중요한 부분인 것 같은데, 만약 무성이 그냥 노총각이었다면 이야기는 많이 달라졌을까?
김희원 : 아마도. 자식도 자식이지만, 이혼을 하고 혼자 자식을 키운다는 설정이 드라마 색깔에 꽤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단막극은 꼭 한편의 영화 같다”
20년 넘게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 서다가 2007년 영화 을 시작으로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다. 공연과는 또 다른 재미를 느끼나.
김희원 : 가장 큰 재미는 100% 몰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연극이나 뮤지컬은 그 날 100% 몰입을 하면 다음 날 공연에 지장을 주는 경우가 있는데, 드라마나 영화는 촬영하는 그 순간 모든 에너지를 쏟을 수 있어서 좋다. 감정이나 동작 하나하나 세심하게 표현할 수 있는 부분도 매력적이고. 그래서 당분간은 영화나 드라마에 매진하고 싶다. 그 중에서도 단막극의 매력을 꼽는다면.
김희원 : 일단은 몸이 굉장히 피곤하다. (웃음) 며칠 전에 가구 공장에서 극 중 병우와 막 집어던지면서 싸우는 장면이 있었는데, 어깨가 다 멍들 정도였다. 그리고 단막극은 꼭 한편의 영화 같다. 한 시간 안에 마무리되는 이야기니까 사건 전개도 스피디하고.

사실 액션 신보다 음식물 쓰레기를 뒤집어쓰는 신이 더 힘들었을 것 같다. 대본만 읽었는데도 표정이 저절로 일그러지더라. 그 장면 촬영은 어땠나.
김희원 : 어우, (웃음) 진짜 음식물 쓰레기를 뒤집어쓰는데 냄새 때문에 굉장히 힘들었다. 그 장면을 찍고 바로 씻었으면 괜찮았을 텐데, 또 연결되는 장면이 있어서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다보니 점점 쓰레기에서 나오는 물이 머리와 속옷으로 스며들더라. 으, 그 날은 정말 고생했다.

영화 얘기를 해보자. 최근 관객 500만명을 돌파했다. 소감이 어떤가.
김희원 : 복 받은 것 같다. 18세 이상 관람가인데, 500만 명을 돌파했다는 건 놀라운 성적이지. 역대 18세 이상 한국영화 중에서 3위에 들었다는데, 아마 2등까지도 가능하지 않을까. (웃음)

500만 명 돌파하면 너무 좋아서 뛰어다니겠다는 인터뷰 기사를 봤다.
김희원 : 진짜 뛰어야 될 판이다. (웃음) 이정범 감독님이 카메라로 인증샷 찍어주신다고 시내로 나가자고 하시더라. 언제 한 번 날 잡아서 뛰어야 되는데. 하하하.

글. 이가온 thirteen@
사진. 채기원 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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