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내내 KBS ‘남자의 자격’ 합창단이 연습하던 ‘넬라 판타지아’의 첫 소절이 제 입안을 맴돌았습니다. 왜 그럴 때 있잖아요. 한번 입에 붙은 곡이 생각지도 않게 자꾸 튀어나오는 경우 말이에요. 그런데 저만 그런 게 아니었어요. 남편 또한 틈틈이 휘파람을 부는가하면 딸 아이 방에서는 마치 자신이 소프라노 배다해 씨라도 된 양 따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곤 했거든요. 제가 ‘넬라 판타지아~’하고 흥얼거릴라치면 마치 저 쪽에서 반주를 넣듯 동시에 남편의 휘파람 소리가 들려오다 보니 우연이었지만 뭐라 말하기 어려운 감흥이 느껴지더군요. 취향이 서로 달라 여간해선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 우리 가족으로서는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비단 우리 집의 일만은 아니지 싶어요. 아마 대한민국 곳곳에서 비슷한 장면들이 연출되지 않았을까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선생님의 눈빛을 떠올리며 ‘넬라 판타지아’를 읊조리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을 말입니다. 음악이 사람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는 사실은 2002년 월드컵 때 ‘오 필승 코리아’를 통해 알게 되었지만 오락 프로그램에 등장한 노래 한 곡이 이런 공감대를 만들 줄 누가 알았겠어요.

합창으로 배우는 새로운 음악 공부

그러던 차, 문득 남편이 분명 이 곡을 MBC 에서 오보에 연주로 들은 기억이 있다며 인터넷을 뒤지더군요. 급기야 동영상을 찾아냈고 우리는 다시금 강마에(김명민)의 카리스마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과연 강마에가 “눈 뜨지 마세요. 자,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립니다. 졸졸졸졸 시냇물 소리도 들립니다. 나뭇가지 사이를 파고드는 따스한 햇살도 느껴집니다. (중략) 느껴지세요? 여기는 사람의 때가 묻지 않은 새로운 세계입니다. ‘넬라 판타지아’의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며 오합지졸인 단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있더라고요. 그래요. 그때 심금을 울리던 바로 그 곡이 ‘넬라 판타지아’였어요. 더 나아가 우리는 영화 의 주제곡인 원곡 ‘가브리엘 오보에’도 찾아 들었고 작곡자 엔니오 모리코네에게 3년간의 삼고초려 끝에 부를 수 있었다는 사라 브라이트만의 노래도 들어 봤습니다. 알고 보니 ‘넬라 판타지아’는 우리에게 지극히 익숙한 곡이 맞더군요. 그런데 그처럼 자주 들어온 곡이거늘 왜 이번 합창곡이 유달리 우리의 가슴을 파고드는 걸까요?너무나 예쁜 곡이어서, 망친다 하더라도 예쁠 것 같아서 선택했다는 박칼린 선생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사라 브라이트만의 섬세하고 고운 감성과는 달리 너와 나, 우리가 함께 이상향을 향해 나아가는 파워풀한 느낌으로 재해석하셨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심중을 채 헤아리지 못한 소프라노 솔로의 배다해 씨가 초반 고전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같은 곡이라 해도 지휘자에 따라, 연주자에 따라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확인하는 순간이었어요. 세대도 다르고 생활환경도 전혀 다른 단원들을 하나의 하모니로 어우러지게 하자면 ‘우리, 함께 나아가자’라는 해석이 주효하리라고 판단하신 모양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공감도도 한층 더 높아졌던 것일 테고요. 이보다 더 훌륭한 음악 공부가 어디 있겠습니까.

결과와 상관없이 대회를 지켜볼 게요

허나 이들의 합창은 단지 음악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특히 입사 14년 차의 베테랑이지만 일에 마냥 치어 지내던 제작비 관리 담당 고중석 씨에게 합창은 삶의 새 의미인 동시에 많은 깨달음도 가져다주었다죠? 박칼린 선생님의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다 들어라”는 말씀에 일상에서도 남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니 말이에요. 그런가하면 연습과 경기 밖에 모르던 최강의 파이터 서두원 선수에게도 합창은 세상과 마주하는 새로운 창이 되어주었고요. 또한 아름다운 목소리로 주목 받게 된 배다해 씨와 선우 씨를 비롯한 여러 분들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찾아올 것 같다는 예감이 듭니다. 때 아니게 동요를 부르느라 박자를 놓칠 때마다 만 원 씩 벌금을 내야만 했던 이경규 씨에게도 이번 도전은 뜻 깊었을 거예요. 이미 합창제의 수상 결과는 보도되었지만 아마 저는 방송 당일 무대에 오른 이경규 씨를 친구의 마음으로 조마조마해 하며 지켜보게 될 것 같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하모니를 이룰 수 있게 된 단원들, 초짜 단원들을 기꺼이 이끌어주신 박칼린 선생님. 그리고 또 다른 카리스마 최재림 선생님, 그 외에 도와주신 여러분들, 모두 모두 고맙습니다. 무엇보다 지도자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주신 박칼린 선생님께 거듭, 거듭 존경의 인사를 올리고 싶어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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