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5일과 6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는 쏟아지는 여름 페스티벌에 지친 자들을 위한 콘서트 가 열린다. 여름의 한복판에 쉼표를 남길 이들은 김광민, 이병우, 윤상. 작렬하는 태양 속 가을에나 어울릴법한 이들의 조합이 누군가에게는 답답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음악을 통해 위로를 주고받는” 세 뮤지션의 조합과 그들의 음악은 오히려 신선한 청량감을 선사한다. 지난 26일 CJ E&M에서 열린 쇼케이스에서는 새롭게 편곡된 김광민의 ‘지금은 우리가 멀리 있을지라도’, 이병우의 영화음악 ‘우리’(), 윤상의 ‘사랑이란’ 3곡이 공개되었다. 익숙했던 기존의 곡들은 색다른 편곡으로 새 옷을 입었지만 각자의 모습은 잃지 않았고, 음악을 통해 교감하는 세 뮤지션의 모습은 잠시나마 숨을 멈추고 오롯이 음악에만 집중하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 외에도 하림과 성시경이 히든 멤버로 초대되어 관객을 맞이한다. 특히 전역 후 특별한 공식 행사를 갖지 않은 성시경의 경우 ‘좋을텐데’,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 ‘거리에서’ 등의 곡을 새롭게 편곡해 오래간만에 그만의 목소리를 들려줄 예정이다. 다음은 쇼케이스 이후 가진 공동인터뷰 내용이다. 조근 조근한 말투 안에 은근한 유머를 가진 세 남자와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보자.
어떻게 세 사람이 같이 공연할 생각을 했나.
윤상 : 작년 12월에 학기가 모두 끝나서 올 3월 귀국했다. 이번 공연은 개인적인 사심으로 두 분에게 프러포즈를 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나 김광민, 이병우 두 선배의 음악은 나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내가 말을 걸었을 때 언제나 따뜻하게 답을 해줬다. 7년간 공부한답시고 인간관계도 다 끊어졌는데 (웃음) 든든한 고리를 다시 찾은 기분이다. 잊었던 곡들도 끄집어내서 분위기가 더욱 즐거웠다.
“강력한 록넘버는 없겠지만 편하고 재밌게 즐길 수 있길”
언뜻 보기에는 세 사람의 공통점을 발견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콘서트의 구성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
윤상 : (주위를 둘러보더니) 막내인 제가 얘기를… (웃음) 워낙 솔로로도 2-3시간을 채울 수 있는 분들이라 솔로 무대를 갖고 중간에 같이 연주 하는 것이 취지였는데 얘기를 하다 보니 함께 연주하고 싶은 곡들이 너무너무 많아졌다. 그래서 현재 계속 조정 중인데 아마도 대부분의 곡을 함께 연주할 예정이고, 각자의 곡은 오히려 분위기 전환식으로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세 사람의 음악을 들었을 때는 잔잔한 느낌의 공연이 될 것 같다. 이번 콘서트의 콘셉트가 있다면.
윤상 : 밝고 강한 곡으로만 채워진 건 아닐 거다. 음악적으로 기승전결이 존재하는 공연이 될 것이고, 준비하면서 더 큰 가능성을 느끼고 있다. 두 분은 연주자이기도 하지만 엄청난 작곡가이기도 하다. 새롭게 편곡을 하고 연주를 해도 곡이 좋으니 다 말이 되는구나 싶은 생각이 새삼스레 든다.
김광민 : 빠른 곡도 할 거에요.
이병우 : 아까 나름 기타를 격하게 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잔잔했나 보다. (웃음) 윤상이 유일하게 노래를 부를 텐데 노래와 연주곡의 비율이 어떻게 되나.
윤상 : 노래는 한 3분의 1 정도 부르게 될 거다. 두 분께 한 곡씩만 불러 달라 했는데 사양해주셔서. (웃음) 그리고 전역한 성시경이 곡 때문에 연락이 와서 낼름 섭외했다. (웃음) 이병우 선배와는 2000년 초반 OST로, 김광민 선배에게는 레슨을 받기도 해서 앨범 내기 전에 좋은 형들과 좋은 시간 보내보자고 했다. 못 다루는 악기가 없는 하림도 와서 연주도 같이하고 그 친구 곡을 부르기도 할 거다. 강력한 록넘버는 없겠지만 (웃음) 음악 좋아하는 분들이 편하고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거다.
앞으로도 세 사람의 프로젝트가 계속되는지 궁금하다.
윤상 : 두 분이 워낙 다른 일을 많이 하는 분들이라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콘서트를 계기로 언제든 우리가 원하면 크고 작은 무대에서 계속 연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광민 : 사실 음악작업은 고독한 일이다. 하지만 같이 모여서 하는 건 재밌는 것 같다. 좀 더 여러 사람이 모이면 좋을 것 같다. 서로 만나서 같이 일을 해야 보내는 시간도 많아지고 가까워지니까.
“공연 준비하는 사람이 이렇게 좋아도 되나 싶다”
두 사람에게 프러포즈를 했다고 했는데 김광민과 이병우는 윤상에게 어떤 존재인가.
윤상 : 학창시절 김광민 선배의 1집 가 나왔다. 그 이전 ‘동서남북’이나 ‘위대한 탄생’의 키보드 플레이를 들으며 화성적인 면을 동경해왔다. 막연히 동경만 하다가 형이 유학을 다녀온 이후 만났던 것 같다. 당시 두 분이 세션으로 참여해 발표된 곡들이 많았는데 타이틀곡은 아니었지만 대중음악계에 큰 자양분이 되었었다. 그런 형이 내 데모를 듣고 “누구니, 괜찮은데”라고 얘기했다는 것에 큰 힘을 얻었다. 그 이후 (김)광민이 형에게 나를 제대로 각인시켰다고 생각한다. (웃음) 그리고 광민이 형은 학교 선배이기도 하지만, 나에게 대중음악학교의 존재를 알려준 인물이기도 하다. 서른이 훌쩍 넘어 유학을 가게 된 계기도 두 사람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이병우 선배 역시 이광조의 ‘나의 노래가’ 같은 곡을 들으면서 흠모해왔다.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화성적인 부분에서의 개성과 독특함이 있었다. 특히 작곡가로 데뷔한 故 김현식 선배님의 ‘여름밤의 꿈’을 연주해준 게 이병우 선배였다. 친해지기 전에도 낙원상가에서 만날 때마다 반갑게 인사했던 기억이 난다. (웃음) 프러포즈를 받은 입장에서는 어떤가.
이병우 : 윤상 씨는 나에게 선배라고 하는데 나는 항상 동년배로 생각하고 있었다. (웃음) 김광민 선배는 음악적으로 너무 배울 게 많아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인물이다. 특히 함께 작업할 때 연습실에서 김광민 선배가 한번 치고 가면 모든 게 다 정리가 될 정도다. 내 친구인 윤상은 (웃음) 다른 것보다 그의 음악으로 위안을 받는 부분이 많다. 연주하면서 너무 행복했다. 행복하잖아. 왜 안 행복한 척하나. (웃음)
김광민 : 칭찬만 자꾸 해줘서. 내가 그렇게까지 능력 있는지 모르겠는데. 한때 음악을 듣다가 누구 노랜가 싶으면 다 윤상 거였다. 아주 오래전부터 좋아해 왔다. 그리고 이병우는 뭐 몇십 년 된 친구니까. 근데 그동안 영화음악을 하느라 많이 떨어져 있었고, 영화계 사람들만 계속 만나는 거 같더라. (웃음) 윤상은 제작도 잘하지만 작곡과 편곡도 잘한다. 기계도 잘 만지고. 다재다능하면서 감성이 풍부하다. 우리 세 사람의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한국적이고 슬픈 음악을 한다는 거다. 어릴 때 빠른 곡을 연주해도 자꾸 사람들이 슬프다고 했다. (웃음) 두 사람의 음악에서도 그런 게 느껴진다.
이병우 : 성장기가 불우해서. (웃음) 그리고 윤상의 유전자에는 자학모드와 개그가 섞여 있다.
윤상 : 형만 그렇게 생각한다.
이병우 : 자학개그를 많이 한다. 굉장히 뛰어나기도 하고!
윤상 : 내 개그가 감동적이었구나. (웃음)
이병우 : 김광민 선배는 자학은 아니지만 어수선한 게 있다. 처음과 끝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다. 근데 피아노에만 앉으면 모든 게 정리가 된다. 그리고 사실 나는 걱정이 많은데 걱정이 없어 보이게 생겨서 걱정이다. 난 너무 힘든데 사람들이 얼굴 좋네, 라는 말을 한다. 매해 10월 말에 솔로 공연을 해왔는데 그전에 공연을 하자고 해서 내 공연은 어쩌나 하는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모두 우정출연 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우정출연 다 준비됐죠? 여기서 박아놔야 된다. (웃음)
그렇다면 걱정 없어 보이는 이병우의 현재 고민은 무엇인가.
이병우 : 요즘 연습을 하다 보면 공연 준비하는 사람이 이렇게 좋아도 되나 싶다. 치열하게 논쟁할수록 결과물이 좋을 때가 있다. 일하는 과정이 너무 잘되고 좋으면 오히려 결과가 안 좋은 경우도 더러 있었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뮤지션들과 함께 해서 그런지 같이 연주하면 우리끼리 너무 좋다.
김광민 : 그래서 결과가 안 좋을 거라고?
이병우 : 조금 걱정도 된다. 연주할 때는 우리가 너무 좋았으니까 다들 좋아할 줄 아는데, 우리만 좋아할 게 아니구나 싶기도 하고.
함께 연주하면서 즐겁고 행복했다고 하는데 연습하면서 특별한 에피소드 없었나.
김광민 : 여러 가지 좋은 점들이 많았다. 특히 오늘 연주한 윤상의 ‘사랑이란’은 원래 나와 윤상 둘이서 하기로 했는데, 이병우가 기타 치는 게 너무 멋있어서 둘이 해라 그러고 있다. 수시로 바뀌기도 하고 그런다.
이병우 : 그게 에피소드에요?
김광민 : 사실은 끝나고 뒤풀이가 더 많다. (웃음)
윤상 : 한번 시작하면 연습이 잘 안 끝난다. 악기가 없는 자리에서까지 연습이 되기도 하고.
세 사람 모두 장르에 구분 없이 다양한 음악활동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있나.
이병우 : 스스로 어떤 일을 개척하기보다는 나에게 오는 걸 받아들이면서 살아왔다. 그래서 새삼 새롭게 생각하는 건 그다지 강하진 않지만 음악을 꿈꾸는 어린 친구들을 위한 교육에 꿈이 있다. 그리고 자선활동을 많이 하고 싶다. 연말에 종종 해왔는데 좋은 일을 한다는 생각보다는 해보니 내 마음이 따뜻해지더라. 그래서 요즘엔 그런 것들에 관심이 많다.
윤상 : 음악 주변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많이 해 와서 뭘 더 해보고 싶다기보다는 오히려 한 가지에 주력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스스로가 대중음악계에 직접 몸을 담고 있기 때문에 현실을 보다 아름답게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 젊은 친구들의 음악과 감성을 생각하면 내 입장에서는 굉장히 많은 차이가 느껴진다. 공감대를 느끼기 힘든 상황이다. 세대의 벽보다 더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런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계속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다. 그런 위치에 설 수 있게 만들어주신 분들을 위해서라도 초심을 잃지 않고 지치지 않는 꾸준한 모습으로 음악을 하는 것이 가장 큰 욕심이다.
김광민 : 같이 연습을 하다 보니 이병우와 윤상은 모두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나는 너무 게으르게 살았구나, 싶다. 오랜 세월 게으르게 살아왔고, 곡도 잘 안 쓰고, 매일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이제 정신 차리고 반성해서 음악을 열심히 해볼까 싶다. (웃음)
글. 장경진 three@
사진. 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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