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갈비 냄새가 굽이굽이 이어지는 피맛골은 “좁아서, 낮아서 좋았”던 곳이다. 하지만 600년 긴 세월 동안 고관들의 말을 피해 서민들이 다녔던 피맛골은 2003년 재개발이 시작되어 사람들의 추억 속에만 존재하게 되었다. 사라지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뮤지컬 가 탄생했다. 2008년 기획을 시작해, 2010년 9월 4일부터 14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의 제작발표회가 2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렸다. 는 조선시대 서민들의 안식처가 된 공간에서 만큼이나 애절한 김생(박은태)과 홍랑(조정은)의 사랑이야기를 끄집어냈다. 어렵지 않게 한국적 정서와 리듬을 살린 뮤지컬넘버는 드라마틱한 감성을 자극하고, 6년 만에 뮤지컬 무대에 서는 살구나무 정령인 행매, 양희경의 진한 연기는 두 남녀의 사랑에 더 큰 울림을 준다. 아래는 배우 양희경, 박은태, 조정은 외 “창작뮤지컬의 좋은 본보기가 되길 바란다”는 유희성 연출, 서울시 문화예술과 엄연숙 과장, 배삼식 작가, 장소영 작곡가, 이란영 안무가와 진행한 공동인터뷰 내용이다. 한 가지 더 덧붙인다면 는 아이러니하게도 “서울시민과 외국인 관광객을 위해” 재개발 당사자 서울시가 18억을 투자해 세종문화회관과 공동제작한다.
서울시와 세종문화회관이 공동 제작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서울시가 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엄연숙 : 2008년도에 서울을 대표하고 세계적으로 내놓을 수 있을만한 작품을 계획하고 있었다. 장르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뮤지컬이 세계시장에서도 접근성이 용이해 좋다고 판단했다. 는 서울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살리면서도 숨어있는 공간을 찾으려 했던 의도에 잘 맞았다. 특히 서울시민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공감을 받고 공유하기 위해서는 역시 사랑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고 봤다.

“작품을 통해 공간에 담겨있던 삶과 기억을 남기고 싶다”
의도는 충분히 알겠지만, 결국 작품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피맛골 자체가 재개발로 인해서 사라지는 현실인데.
엄연숙 : 더 이상 피맛골을 체험하기엔 어려움이 있지만 흔적으로 남아있는 것들이 설명해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특히 피맛골 근처의 종로, 인사동, 견지동 등을 다니다보면 종로대로와는 다른 느낌들이 있다. 그런 인상들이 피맛골의 흔적을 여전히 느낄 수 있을 것이고, 피맛골 외에도 그런 공간들이 어딘가에 숨어있다, 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 북촌, 삼청동 등 종로 일대에 남아있는 조선시대의 옛 모습이 다시 해석되고 이해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피맛골이라는 공간이 갖는 의미가 작품 내에서 가장 중요하리라 생각된다. 작품은 어떻게 접근해 집필하게 되었나.
배삼식 : 이 작품은 피맛골이 사라져가는 게 아쉽다, 라는 단순한 발상에서 시작됐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물리적인 실체로서의 골목이 사라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공간에 담겨있었지만 사라져버린 삶과 기억들을 작품을 통해 남기고 싶었다. 현재까지 나온 대본에서는 피맛골의 생생함을 이야기한다. 서울은 조선왕조 개국부터 1900년대 초반 식민지 이전까지 600여년이라는 세월동안 골목에 수많은 얘기를 남겼다. 모든 걸 하나에 다 담을 순 없어 아쉽지만 작은 편린이라도 끄집어내어 아주 잃어버려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소박한 생각들이 의 출발점이었다.
유희성 : 세월에 따라 많은 게 변한다.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도 많다. 하지만 변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이 있다. 는 바로 그 점을 인지할 수 있도록 만든 작품이다. 글로벌 시대에서도 잊지 말아야 하는 것, 그런 주제의식을 작품으로 함께 공유할 예정이다. 작품에 주요 모티브가 있었다면.
배삼식 : 하늘 아래 없던 것을 만든 건 아니다. 기본적인 스토리는 김시습의 에 등장하는 ‘이생규장전’ 같이 이승의 사람과 저승의 혼 사이 이룰 수 없는 사랑이야기다. 예전부터 그 이야기가 공연예술로 표현되길 기다려왔다. 피맛골이라는 공간에 나름대로 선배들의 좋은 이야기를 넣어봤다. (웃음) 욕심 같아서는 1년 중 통금이 풀리던 정월대보름의 놀이나 사월초파일에 서울에서 벌어졌던 관등놀이, 서울시내 곳곳에서 열렸던 꽃놀이 장소 등 세시풍속을 넣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다. 능력부족으로 구체화시키진 못했지만 긴 시간을 가지고 준비한다면 가능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600년 동안이나 수도였던 공간,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있겠나. 수정보완작업을 거치면서 우리의 미래이기도 한 과거에 삶의 숨결을 더 넣고 싶다.
유희성 : 는 김생과 홍랑의 죽어서도 절대 잊지 못하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그린다. 가벼운 사랑이 판을 치는 현재에서 이토록 애절한 사랑이야기에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길 바란다.

일반 뮤지컬 티켓이 10만원을 호가하는 것에 비해 는 R석이 5만원이던데 파격적인 가격책정을 한 이유가 있나. 서울시의 지원 덕분인가.
엄연숙 : 많은 대중들이 공연장을 쉽게 찾을 수 없는 건 대부분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다. 한 가족이 공연을 함께 즐기기 위해선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좋은 공연을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 역시 서울시 사업의 일환이다. 공연에 대한 비용이 낮아질 수 있도록 전적으로 나머지 부분은 관에서 부담한다.
유희성 : 는 시민과 관광객이 많이 접근할 수 있도록 서울시에서 처음 제작 지원하는 작품이다. 서울시뮤지컬단장 시절에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매년 송년가족뮤지컬을 했었고, 5만 원 이상의 가격을 책정하지 않았었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지만 관공단체에서 만드는 작품인 만큼 퀄리티 보장과 함께 저렴한 가격으로 사회적 기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공공기관의 목적이라고 본다. 역시 마찬가지다. 낮은 가격으로 인해 트라이아웃 개념이나 퀄리티가 낮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절대 아니다.

“이런 작품이 서로 얼굴 보고 톰, 로라 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오래간만에 연극이 아닌 뮤지컬 무대에 서는 양희경 씨는 어떤 이유로 에 참여하게 되었나.
양희경 : 연극은 자주 했지만 뮤지컬은 6년 만에 하게 됐다. 메일로 작품을 처음 받았는데 내 고향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가회동에서 태어나서 어릴 적 피맛골에서 자주 놀았었다. 잊고 있었는데 작품을 받고나서 피맛골에 대한 매력을 다시 느끼게 됐다. 개인적으로는 옛것이 자꾸만 사라지는 것에 대해 안타깝고 불만도 많은데, 사라져가는 것을 기억하게 만든다는 점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작품을 준비하면서 공정한 세상이 됐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서양에서 건너온 것도, 우리의 향기가 물씬 느껴지는 전통적인 것들도 함께 잘 어우러지면 좋겠다.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살구나무 정령 행매 역을 맡았는데 어려운 점이 있다면.
양희경 : 행매는 중요하고, 잘해야 되는 역이다. 시공을 초월하는 것은 물론, 나이가 있는지 없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다. 수백 살을 먹었나 싶으면 어느새 싹을 틔워 꽃을 맺기도 한다. 사실 그래서 더더욱 매력적인 캐릭터지만, 부담도 많다. 매력은 있지만 부담스러워서 하기 싫었다. (웃음) 특히 행매는 오프닝과 엔딩을 담당해 막을 열고 내리는 역이라 얼마나 소화해낼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지만 몸이 허락하는 한 으스러지도록 해볼 예정이다. 그리고 늙었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접고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들고 뛰고 하질 않더라. (웃음) 안심이 된다.

김생과 홍랑 역을 맡은 박은태, 조정은은 주로 라이선스 작품을 많이 했다. 에 어떻게 접근하고 있나.
박은태 : 뮤지컬을 시작한지 얼마 안됐고, 창작 초연이다 보니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과거 자료도 많이 찾아보고 있는데, 아직 공연까지 2달여의 시간이 남아 있으니 그 기간 동안 캐릭터를 확고히 굳혀나가야 할 것 같다. 계속 연습하고 대본 숙지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우선을 즐겁게 할 거고 이 작품을 통해 한 단계 성숙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조정은 : 우선은 홍랑에게 내 생각을 많이 고집하기 보다는 창작이니만큼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을 작가, 연출을 포함해 스태프들이 생각하는 다양한 그림에 포함시키고자 한다. 사실 이 작품을 하기 전에는 피맛골에 대해 잘 몰랐는데 연습을 하면서 반성 아닌 반성을 하고 있다. 관객들도 피맛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예전 서울예술단원 시절 이런 한국적인 작품을 많이 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때 생각이 많이 나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양희경 : 사실 이런 작품이 서로 얼굴 보고 톰, 로라 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웃음) 우리 DNA에는 이런 정서가 다 있기 때문에 우리 걸 편하게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창작극이 좋다. 외국의 낯선 정서와 풍물을 접하라고 한다면 그게 더 어색할거다.

오늘 공개된 네 곡의 넘버(피맛골, 한천년, 푸른학은 구름 속에 우는데, 아침은 오지 않으리)를 들어보면 웅장함과 동시에 한국적인 미가 느껴진다. 어떤 부분에 초점을 두고 작곡에 임했나.
장소영 : 뮤지컬은 서양에서 왔기 때문에 서양음악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서양음악만으로는 표현되지 못하는 한국만의 정서가 있다. 특히 피맛골이라는 길은 서민과 함께한 길이었고 남과 여, 시대와 시대를 이어주는 교량적인 역할을 했다. 거기서 착안해 서양음악에 국악기와 민속음악 리듬을 섞었다. 그동안 음악적으로 이런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특별히 기억되는 게 없었을 정도로 뮤지컬에서 공연화되기 쉽지 않다. 특히 이번 작품은 공모로 진행되었는데 힘들었던 만큼 보람으로 남는 작품이 될 거라 생각한다. 음악과 함께 안무에도 퓨전적인 요소가 있을 것 같다.
이란영 : 개인적으로 춤을 접하게 된 계기가 초등학교 때 한국무용 때문이었는데, 처음으로 한국적인 작품을 하게 돼서 스스로도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장소영 작곡가만큼 나 역시 고군분투중이다. 특히 뮤지컬에서 한국적인 느낌을 살리면 간혹 관객들이 촌스럽다거나 가무극 같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에 어려운 점들이 많다. 시대를 초월하는 스토리인 만큼 한국무용 외에도 다양한 장르의 춤을 선보일 예정이다. 관객들에게 신선함으로 다가가면 좋겠다.

무대는 어떻게 구현되나.
유희성 : 조선시대의 피맛골을 재현하는 것이 아닌, 이미지와 정서를 이용해 무대는 모던하게 표현된다. 하지만 과거급제자 홍생의 시가행진인 유가행렬 장면은 43명의 배우들과 20여명의 전통예술팀이 사실에 가깝게 선보일 예정이다.

열흘이라는 굉장히 짧은 기간 동안 공연한다. 이후 일정은 어떻게 되나.
엄연숙 : 올해는 라는 작품을 관객들에게 소개하는 것에 목적을 두었다. 또 다른 완성을 위해 계속 만들어가야하고, 내년 내후년에도 서울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계속 공연될 예정이다.

사진제공. 세종문화회관

글.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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