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년 전, 비는 MTV 뮤직비디오 어워즈를 연상시키는 시상식에서 상을 받고 감격했다. 물론 한 이동통신사의 광고 속에서였다. 객석을 가득 매운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으며 비가 소감을 말할 때 그곳은 “기적”이나 “가상 뉴스”로 느껴질 만큼 높은 곳이었다. 그러나 “기적은 누가 주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는 이 청년은 결국 그 꿈을 손에 쥐었다. 정체불명의 주문을 외우는 대신 하루 5시간이 넘는 강도 높은 훈련을 견디고, “굶어 죽기 직전의 호랑이”처럼 달려와 2010 MTV 무비 어워즈(이하 MMA)에 선 비. 사막과 면해있어 엄청난 열기를 내뿜는 LA에 내린 단비 같은 신선한 의욕이 여전히 샘솟는 그를 베버리힐스의 포시즌 호텔에서 만났다.

수상 직후 남긴 ‘엉덩이 소감’이 재치 넘쳤지만 (웃음) 다시 한 번 소감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비: 너무 좋다. 엄마와의 약속을 지킨 것이 가장 기쁘다. 십 년 전에 미국에서 좋은 결과물로 상을 꼭 타서 보여주겠다고 했는데, 그 약속이 지켜져서 개인적으로 감동이다. 두 번째로는 앞으로 활동하는데 있어 더 큰 도움 될 것 같다. MMA라는 재밌고 거대한 시상식에서 한 부분을 차지했다는 게 믿겨지지 않고. 어떻게 보면 가상뉴스에 나올 법한 일인데 말이지. (웃음) 그래서 너무 기쁘다.“수달 퍼포먼스를 결국 못해서 아쉬웠다”

MMA에서 객석을 향해 “왜들 그렇게 심각한가? 즐기라”고 말한 것이나 수달 퍼포먼스를 향한 의욕 (웃음) 등 최근의 비는 대중을 대하는 데 있어 힘을 빼고 유머러스해진 것 같다.
비: 이젠 심각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비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지도 10년차고 그간 정말 여러 가지 일들을 겪었다. 그런 과정 속에서 내가 즐기지 않으면 안 된다란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고 대중에게는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솔직한 게 가장 좋은 것 같다. 수달 퍼포먼스도 그 와중에 나온 거고. 사실 1등을 하는 게 내게 무슨 소용이겠나. 물론 너무 감사하고 좋지만 아이돌이나 다른 사람이 타는 게 맞는 거 같고. 아직도 많은 관심을 주는 것에 보답하고 싶었다. 공약이나 서비스라고 할까. (웃음) 그러던 차에 수달 동영상을 보고 고등어를 준비해서 무대에 오르려고 했는데 매니저가 깜빡한 거다. 어쩔 수 없이 다음 주에 하겠다고 했는데 결국 다음 주에는 다른 분이 1등을 해버려서 아쉬웠다. (웃음)

즐기는 게 중요해졌다고 했듯이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았는데도 절제되었던 ‘레이니즘’ 때 비해 최근의 ‘널 붙잡을 노래’나 ‘힙송’ 무대에서는 한층 더 자신감이 발산되더라.
비: 확실히 틀리긴 틀리다. ‘레이니즘’ 자체는 퍼포먼스의 절제랄까? 그런 것도 있었고. 이번에 ‘널 붙잡을 노래’는 발라드에 춤을 가미했지만 노출이 있어서 대놓고 너무 드러내는 것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웃음)

어느 시점 이후, 특히 이후로 비는 해외활동에 더 주력할 거라고 많은 이들이 예상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에서 음반을 내고 가수로서 활발히 활동할 뿐만 아니라 드라마 출연도 결정되었다. 지금의 비에게 한국이라는 곳은 어떤 의미인가?
비: 돈을 벌겠다면 굳이 한국에서 활동 하지 않고, 그 시간에 중국이나 일본, 미국에서 공연을 하고 드라마나 영화를 찍었을 거다. 그런데 사람은 돈보다 원래 자기가 태어난 곳을 잊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하라는 말처럼 자신이 어디서 잘됐는지 잊으면 안 된다. 내 생활의 일부분이고, 내가 잘 될 수 있었던 한국에서 활동 하는 것 자체가 아시아로 퍼질 수도 있는 거고. 최근 활동은 본집에 들어와서 생활한 셈이다. (웃음) 우리 집안 식구들도 못 챙기는데 밖에서 잘 되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 물론 아직까진 미국 문화가 세계의 중심이지만 점점 세계의 중심이 중국, 아시아가 될 거다. 아시아의 문화 중심은 또 한국이고. 내가 언제나 우리 가족을 잘 지키고 있다면 사촌과도 잘 지내게 될 거고, 팔촌도 그럴 것이다. (웃음)“한국에서 인정을 받아야 세계에서도 잘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를 선택한 것인가?
비: 난 재밌게 살고 싶다. 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일단 천성일 작가님, 곽정환 감독님과 너무 작품을 하고 싶었다. 곽정환 감독님은 , 을 할 때 조연출이셨는데 정말 천재라고 할 수 있는 분이다. 그만큼 아이디어와 상상력이 풍부하다. 그리고 이제는 좀 한국말로 대사하고 싶었고. (웃음) 그리고 한국의 팬들에게도 또 하나의 작품을 선사하고 싶었다. 그것이 첫 번째 목적이다.

당신은 단순한 스타라기보다는 노력의 화신 혹은 입지전적인 성공 신화의 인물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래서 팬들에게는 ‘비느님’으로 불릴 만큼 절대적인 지지를 받지만 일반 대중들에게는 오히려 그것 때문에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비: 사실 그래서 한국 활동을 더 열심히 하는 것도 있다. 너무 멀어지지 않으려고. 물론 인기가 떨어 질까봐, 잊을까봐 그런 건 아니다. 나는 한국에서 연예인이란 직업을 얻었고, 그래서 더 넓은 곳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 모습도 잘 안 보이고, 신비주의로 활동한다는 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더 친숙하고 가깝고, 누가 나에게 말을 걸거나 인사를 하면 다 받아주는 그런 연예인이 되고 싶다. 그렇게 한국에서 인정을 받아야 세계에 나가서도 잘 될 수 있는 거고. 누가 그랬는데 세계 인종은 흑인, 백인, 황인종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 A형, B형, O형, AB형으로 나뉜다더라. 이제는 종전과 같은 인종 구분이 없어 질 텐데 아시아를 대표하고 또 그걸 뛰어넘어 인종에 관계없이 활동할 수 있고 싶다. 일단 그러려면 첫 번째로 우리 가족들 그러니까 한국의 팬들에게 거리감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시아를 대표하고 그걸 뛰어넘는 데에는 아무래도 이번 수상이 크게 작용하겠다.
비: MMA에서 중국 출신의 재키 챈이나 장 쯔이는 수상한 적이 있는데 한국인으로선 최초니까 사실 이것만큼은 되게 자랑하고 싶다. (웃음) 그동안은 늘 굉장히 운이 좋아서 됐다고 했지만 이번만큼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정말 열심히 노력했으니까. 팬 여러분이 주는 상이고, 솔직히 정말 받고 싶었다.“요즘엔 로맨틱 코미디 시나리오를 생각해 본다”

그러나 ‘최고의 액션스타상’ 수상은 당신의 이름값을 높이는 동시에 전형적인 아시아 액션 배우로의 소비를 가속화 시킬 수도 있다.
비: 물론 그런 부분이 걱정이 된다. 아시아 배우하면 액션 영화를 떠올리는 건 너무 스테레오 타입이니까. 근데 그건 어쩔 수 없다고 본다. 그리고 아시아 배우가 가진 무기를 굳이 숨길 필요도 없고. 우리는 액션영화에 타고난 재능이 있고 마셜 아트는 아시아에서 비롯된 문화니까 애써 숨길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나중에 10년이나 20년쯤 지나서 아시아 시장이 좀 더 커진다면 동양 남자와 서양 여자가 사랑하는 로맨틱 코미디 같은 영화도 많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그 때에도 비가 그 중심에 서 있을 수 있을까?
비: 나는 기적은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만드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건 누가 해주는 게 아니라 자신이 만드는 거다. 어느 누구는 내가 너무 빠른 진도를 나가는 거 아니냐고 하고 또 누구는 너무 운이 좋은 거 아니냐고 한다. 다른 누구는 너무 많은 일에 도전하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집중하고 노력하면 다 만들 수 있다. 운이 따라주면 더 좋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아도 할 수 있다고 본다. 사실 요즘은 이런 시나리오도 생각해 보기도 한다. 아시아 남자와 백인 여자가 사랑을 하는 내용인데 어떤 거냐면 남자가 미국에서 생활하지만 영어를 잘 못한다. 그런데 여자에게 영어를 배우면서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이 생겨나면서 사랑을 느끼는 로맨틱 코미디다. 그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이 지금 만들어가고 있는 인맥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계속 아이디어를 던지고, 상의하다보면 나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에는 그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웃음)

글. L.A=이지혜 seven@
사진. L.A=채기원 ten@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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