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홍대까지 갈 필요가 없다. 안방에서 TV만 틀어도 장기하와 얼굴들과 10cm를 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능 프로그램 MBC 에서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를 패러디한 ‘싸구려 애드리브’를 불렀고, 올해 ‘탄탄대로 가요제’에 10cm를 섭외했다. 인디음악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두 팀만큼은 안다. 그렇다면 다음 주자는 누구일까. 현재 홍대 언저리에서 은밀하게 활동하고 있는 가칭 ‘나는 인디다’ 자문위원단에게 포스트 10cm의 가능성이 보이는 인디뮤지션 후보들을 물어보았다. 자문위원단은 붕가붕가레코드 고건혁 대표, 안테나뮤직 정동인 대표, 루비살롱레코드 이규영 대표, 해피로봇레코드 이소영 대표, KBS 2FM 과 의 윤성현 PD, EBS 박은석 기획위원, 음악웹진 [Weiv] 최민우 편집장, 차우진 음악평론가 등 총 8인으로 구성돼있다. 각자 다른 뮤지션을 골랐지만 음악성과 대중성을 모두 충족시켜야 한다는 기준에는 이견이 없었다. 단, 윤성현 PD의 선택은 나머지 자문위원들의 ‘재결정’을 자극할 정도로 의미심장하니 꼼꼼히 읽어보길.


노리플라이(No Reply), 가요적인 문법+풍성한 사운드
멤버: 권순관(보컬, 건반), 정욱재(기타)
데뷔: 2008년 싱글 앨범
수상: 2006년 제17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 은상, 2010년 뷰티풀 민트라이프 최고의 아티스트상

노리플라이는 김동률이나 이적으로 대표되는 90년대 싱어송라이터와 유사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현재 권순관은 선배 김동률의 권유로 진지하게 유학을 고민 중이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권순관은 “사랑보다는 그리움의 정서”로 곡을 만들어나간다. 1집에서 2집으로 오면서 애잔하게 감정을 깊이 파고드는 노랫말은 변하지 않았지만, 칵스의 숀과 데이브레이크의 김선일이 2집의 세션멤버로 참여하면서 보다 풍부한 사운드가 완성됐다. 추천의 변: 인디 레이블에 소속돼 있지만 노리플라이가 추구하는 음악 장르는 대중적인 것에 가깝다. 가요적인 형태의 곡을 실력 있게 편곡해내는 편이다. 대부분의 가요는 좋은 세션들로 채워지는데, 노리플라이 역시 대중들이 듣기에 화려하고 풍성한 곡을 만든다. (안테나뮤직 정동인 대표)



밤섬해적단, 아슬아슬한 재미가 있는 녀석들
멤버: 폐허(장성건/보컬, 베이스), 권용만(드럼, 코러스)
데뷔: 2010년 1집 앨범 레이블 인혁당(인디혁명당)에 소속된 밤섬해적단의 데뷔앨범 라니, 도통 평범한 구석을 찾아볼 수 없는 팀이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수록곡은 42곡인데 전체 러닝타임은 고작 53분이다. 전곡이 1~2분 내외라는 뜻인데, 그마저도 절반 이상은 욕설이다. 무대에서는 ‘멸공’이라 적힌 헬멧을 쓰고 양쪽에는 성조기를 꽂은 채 김정일, 군대, 대통령, 인디밴드 등 대상과 영역을 가리지 않고 꼬집어 노래한다. 음반만 들어서는 그들의 진가를 백퍼센트 알 수 없다. 공연장에 쳐들어가라.

추천의 변: 요즘 유머러스하고 일상적인 음악이 많이 사랑받고 있는데, 밤섬해적단은 굉장히 재치 있는 하드코어펑크 밴드다. 정치적인 표현들이 꽤 재밌다. 본인들이 약하니까 일부러 과시하려는 듯한 귀여운 느낌이 드는 욕설이다. 처음엔 낯설고 불편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는데 대중들이 놀라면서도 좋아할만한 팀이다. (붕가붕가레코드 고건혁 대표)

야광토끼, 팝에 대한 촉이 ?! 좋은 멜로디가 ?!
데뷔: 2011년 1집 앨범
수상: 4월 네이버 오늘의 뮤직 이주의 국내앨범 선정, 디지털 뮤직 어워드 탐음매니아상

그룹 검정치마 건반 출신의 야광토끼는 첫 번째 솔로앨범을 발매한 지 2주 만에 네이버 오늘의 뮤직에 소개될 정도로 주목받았다. 2006년에 버클리음대를 그만두고 방황하던 차에 검정치마에 합류하게 됐고 1년 전부터 솔로 앨범을 준비했다. 담백한 사운드와 쉽게 흥얼거릴 수 있는 멜로디가 매력적이다. 사랑에 빠진, 사랑에 아파하는,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여자의 심리묘사에 탁월하고, ‘계속 니 생각이 나’, ‘추억이 될 시간’, ‘조금 씩 조금 씩 다가와 줘’ 등의 후렴구가 마치 메아리처럼 반복되기 때문에 한 번 들으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다.

추천의 변: 요즘 노래에 집중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멜로디에 나름의 미덕이 있다. 팝에 대한 감이나 촉이 좋아서 굳이 인디신이 아니더라도 메인 스트림에서도 어필할 수 있을 것 같다. (음악웹진 [Weiv] 최민우 편집장)

얄개들, 홍대 매니아들이 주목하는 핫한 밴드
멤버: 유완무(기타, 보컬), 송시호(베이스, 보컬), 이경환(기타), 정원진(드럼)
데뷔: 2011년 디지털 싱글 앨범

“옛날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 옛날 것”이었다지만, 팀명부터 의상, 음악 모두 복고풍이다. 올해로 서른 살이 된 얄개들은 20년 지기 동네 친구지만 ‘릴레이 군입대’로 인해 다소 늦은 2009년 초에 그룹을 결성했다. ‘그래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자조적 가사와 그에 못지않은 자기 비하적인 멘트가 오히려 팬들의 호기심과 보호본능을 자극한다. 지난 4월 첫 단독공연에서 티켓이 매진되고 ‘떼창’이 공연장을 가득 채운 걸 보면, “우리는 진짜 팬이 별로 없다”는 멤버들의 신세한탄은 가진 자의 여유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음반이 잘 돼서 에 출연하는 게 꿈이다. 추천의 변: 홍대를 제대로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핫한 밴드다. 허세를 부리지 않은 음악도 좋지만, 공연할 때 시크하게 던지는 농담들이 여성 팬들한테 굉장히 어필하고 있다. 10cm가 기존 인디밴드와는 다른 캐릭터를 만들었던 것처럼, 얄개들도 캐릭터로 승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언젠가는 터질 것 같다. (차우진 음악평론가)



와그와크(WAGWAK), 이미 소녀팬들 확보한 꽃미남 듀오
멤버: 김대현(보컬, 기타), 조상영(퍼커션, 우쿨렐레)
데뷔: 2011년 싱글 앨범
경력: 2010 쌈지사운드페스티벌 숨은 고수

예비역이지만 훈남이다. 조각미남보다는 고운 꽃미남에 가까운 남성 듀오다. 굳이 따지자면 조상영이 조금 더 귀엽다. 군대 가기 전에 20세기 소년으로 활동하다가 제대 후 그룹명을 바꿨다. ‘We Are Not Gay We Are Just Korean’을 줄여 WAGWAK(와그와크)로 정한 것으로 보아 게이로 오해받은 적이 많았던 모양이다. 팬들의 요청으로 직접 만든 프로필도 센스만점이다. 기본적으로는 전자음악과 록을 섞은 트렌디 음악을 표방하는데, 굉장히 빠른 리듬이라 신나게 달리기에 안성맞춤이다.

추천의 변: 새로운 실험을 정말 많이 하는 친구들이다. 요즘 인디밴드들이 블로그 활동을 열심히 하는데, 그 중에서도 와그와크는 독특한 것들을 시도한다.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괜찮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있는데, 이번 앨범으로 한 번쯤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 같다. (해피로봇레코드 이소영 대표)



최고은, 트렌드에 부합하는 싱어송라이터
데뷔: 2010년 EP 앨범
경력: 올해 6월 헬로루키 선정

뒤늦게 찾아온 첫사랑과의 이별을 기타로 치유했던 것이 음악의 시작이었다. 멀리 떠나는 친구를 위해 만든 ‘Eric`s song’이 작곡의 시작이었다. 학창시절에는 하드코어밴드 보컬이었지만 지금은 어딘가 모르게 쓸쓸하면서도 청자를 부드럽게 감싸 안는 깊고도 진한 목소리로 노래한다. 모든 곡의 가사가 영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오로지 목소리의 질감과 기타 연주에 집중해서 들을 수 있다.

추천의 변: 요즘 인디신의 대세가 싱어송라이터, 포크에 기반한 팝 사운드라는 사실을 고려해봤을 때, 최고은은 현재 트렌드에 잘 부합하는 뮤지션이다. 음악 자체도 대중적으로 안정적인 편이라 지난해 가을에 EP 앨범이 나왔을 때 당시 트렌드를 추구하는 앨범들 가운데 가장 돋보인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10cm도 이런 스타일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EBS 박은석 기획위원)



해브 어 티(Have a Tea), 옆집 남동생 같은 친근함이 강점
멤버: 김덕원(기타), 정민구(기타, 보컬), 원섭(젬베), 신우중(콘트라베이스)
데뷔: 2011년 1집 앨범

앨범 발매과정이 독특한 팀이다. 음반 제작에 필요한 비용을 모금하는 캠페인 ‘Support Your Music’에서 최다득표 뮤지션으로 뽑혔고, 목표 금액인 150만원을 넘어 총 216만 2천원을 후원받았다. 지난해 3인조로 결성됐다가 콘트라베이스의 신우중이 합류하면서 기존의 따뜻한 어쿠스틱 사운드에 묵직함을 더했다. ‘차를 마시자’라는 만화책을 좋아하는 멤버의 ‘Have a Tea 어때?’라는 농담으로 결정된 팀명이지만, 실제로 카페에서 혼자 차 한 잔 마시면서 차분하게 들으면 좋은 음악이다.

추천의 변: 2011 뷰티풀 민트라이프의 Busking in the Park 무대에 섰는데 그 때의 느낌이 좋았다. 마음이 편해지는 공연이랄까. 확 튀는 부분이 있는 건 아니지만 쉽고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팀이다. 옆집 남동생 같은 친근함으로 어필할 수 있을 것 같다. (루비살롱레코드 이규영 대표)



없다
음악이 재밌지 않으면 인기를 얻기 힘든 시대다. 장기하와 얼굴들, 10cm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모았던 건 기본적으로 음악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재밌었기 때문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달이 차오른다’ 안무, ‘싸구려커피’의 옛스러운 랩이 인디 음악을 열심히 듣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신선하게 다가갔고, ‘아메~아메~아메~’로 시작되는 10cm의 ‘아메리카노’는 지금까지 없었던 스타일의 노래였다. 두 팀의 인기에 대적할 수 있는 팀은 현재로서는 없다. 물론 음악을 잘하는 뮤지션들은 많다. 하지만 90년대 싱어송라이터보다 뛰어난 음악적 성취를 이뤘거나, 장기하와 얼굴들과 10cm처럼 재밌는 뮤지션들은 없다. 과거 들국화나 이병우를 좋아했던 사람들이 토이 노래를 듣고 ‘이야, 엄청난 음악이 나왔다’며 열광했다면, 지금은 선배들과 비슷한 정서를 가진 팀은 있을지언정 새로운 자극을 주진 못한다. ( KBS 2FM , 윤성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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