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가장 소란스러운 인터뷰였다. tvN (이하 )의 MC 지상렬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간식을 사러 나간 가브리엘을 제외한 다섯 명의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숨바꼭질을 하다가 지상렬의 무릎에 앉아 “선생님! 가브리엘 오면 꼭 알려주셔야 되요”라고 신신당부를 하고는 다시 2층 구석에 숨는다. 이렇게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지상렬은 한 손으로는 아이를 안고 다른 아이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능수능란하게 인터뷰를 이어나갔다. 아무리 평소에 아이들을 좋아한다지만 매주 여섯 명의 아이들과 장시간 촬영한다는 건 고도의 체력과 인내심을 요하는 일이다. 의 MC이자 선생님으로서 ‘노총각 육아일기’를 찍고 있는 지상렬의 지난 3개월에 대해 들어보았다.

오늘 가브리엘 생일기념 몰래카메라를 진행하느라 굉장히 진땀을 빼는 것 같다.
지상렬: 에이, 오늘 정도면 양호한 거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애들이 내 얘기는 잘 듣는다”

매주 여섯 명의 아이들과 장시간 촬영한다는 게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인데, 어떻게 감당하고 있나.
지상렬: 다행인 게, 내가 생긴 것과 다르게 애들을 좀 좋아한다. 왜냐면 이건 방송을 떠나서 애들을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거든. 이게 1시간 촬영, 30분 촬영 이런 것도 아니고 한 몇 시간 같이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순간이 오기도 하는데 그 때마다 잘 조절하는 편이다. 일단은 아이들을 좋아한다는 부등호가 더 크니까 ‘왜 이 녀석이 말을 안 듣지?’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런 부분 때문에 희석이 된다. 이제는 아이들이 나를 좋아라 하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 얘기는 잘 안 듣는데, 내 얘기는 잘 듣는다. 사실 처럼 키즈 프로그램 같은 경우 방송에 앞서 아이들과 친해지는 게 가장 중요한데, 그런 과정은 어땠나.
지상렬: 지금 촬영한 지 11주 정도 됐는데, 3주가 지나니까 내가 이 아이들을 알게 됐구나, 라는 걸 느꼈다. 아이들마다 색깔이 다 다르기 때문에 얘는 어떻게 해야 얘기가 잘 통하고, 얘는 어떻게 해야 제어를 할 수 있는지, 그런 것들을 잘 파악하는 게 중요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이 내 말을 잘 들어주더라. 인형, 장난감, 선물 이런 것 이전에 아이들 눈에 익는 게 중요하다. 아이들은 자기를 좋아해서 얘기하는 건지 아니면 짜증나서 얘기하는 건지를 확실히 안다. 어른들보다 더 민감하다. 다행히도 내가 예뻐하는 걸 애들도 아는 것 같아서 보람을 느낀다.

첫 촬영을 하던 날은 어땠나.
지상렬: 어우, 정신없었다. (웃음) 담당 PD도 “나한테 MC 하라고 하면 못하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애들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감당이 안 되는 일이니까. 아이 한 명을 보는 것도 힘든데, 여섯 명을 데리고 촬영한다는 건 능력 밖의 일이다. 한 명 잡아놓으면 다섯 명이 저 쪽에 가 있고.

그야말로 예상 가능한 경우의 수를 모두 벗어나는 상황이다.
지상렬: 가장 웃겼던 건 초반에 예절교육을 배웠던 때였다. 몰래카메라 비슷하게 아이들 앞에 맛있는 음식을 놓고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들기 전에 먹는 게 아니다”라고 말한 다음에 청학동 훈장님과 내가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는 내가 슬쩍 들어가서 “훈장님 안 계시니까 먹어도 된다”고 얘기했더니, 가브리엘과 크리스티나가 먹더라. 훈장님이 돌아오셔서 이거 누가 먼저 먹었냐고 혼내니까 가브리엘이 당황했는지 나를 가리키면서 “너가 먼저 먹으라고 했잖아”라고 하더라. 하하. 자기도 너무 급하니까. 그 이후로도 나한테 몇 번 말을 놓더라. “내가 보기엔 도윤이가 귀엽고 어른들이 굉장히 좋아하는데”

아무래도 프로그램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건 아이들 사이의 러브라인인데, 가끔 방송의 재미를 위해 그것을 더 끄집어내야 하는 동시에 흥미 위주로 흘러가지 않게 조절하는 게 쉽진 않을 것 같다.
지상렬: 일부러 러브라인을 만든 적은 한 번도 없다. 나도 그런 걸 별로 안 좋아하고. 그냥 내버려둬도 난 얘를 좋아하고 얘는 누굴 좋아하고, 이런 게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우리 어렸을 때도 얘랑 짝꿍하고 싶고 쟤는 죽어도 싫고 이런 게 있지 않았나.

말 그대로 ‘쟤는 죽어도 싫다’는 표정이 가끔 보이는데, 그럴 때 그 아이가 상처를 안 받게 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겠다.
지상렬: 한 번은 깜짝 놀랐던 게 내가 보기엔 도윤이가 귀엽고 어른들이 굉장히 좋아하는데 여자 아이들 사이에서는 도윤이가 가장 인기가 없다. 본인도 그걸 알고. 어른들과 아이들이 보는 눈이 많이 다르더라. 그런데 상처 안 받게 한다고 안 받을 순 없다. 그 나이 때는 그게 전부니까.

촬영 도중에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다거나 다른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걸 잘 달래서 이끌고 가는 노하우가 좀 생겼나.
지상렬: 달래는 게 어느 정도 한계는 있는 것 같다. 애들은 말 그대로 솔직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타협은 없다. 대신 설명을 해줘야 한다. 왜 지금 이걸 하면 안 되는지. 그것도 하루 만에 설명하려 하면 안 되고, 계속 생활을 하면서 쌓여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이들도 이제 지상렬 선생님이 어떤 걸 얘기하는구나, 나름대로 머릿속에 파일이 생겼을 거다. 그런데 말을 안 듣는다고 헛! 이러면서 겁을 주면 애들이 저 사람은 무서운 사람이구나, 이렇게 생각하면서 말도 안 한다. “너무 똑똑한 아이보다는 사람 냄새나는 쪽으로”

이제는 서로 진심이 통한다는 걸 느끼나.
지상렬: 많이 느낀다. 비록 나이는 40살 가까이 차이나지만 서로 대화가 된다. 촬영 없는 날도 별 일 없는지 보고 싶다.

프로그램 안에서 MC이자 선생님 역할을 동시에 소화해야 하는 위치다.
지상렬: 그렇다. 근데 좀 모자란 선생님이지. 흐흐.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단지 뭐랄까, 너무 영리하고 똑똑한 아이보다는 바르고 듬직하고 사람 냄새나는 쪽으로 바꿔주고 싶다는 생각은 갖고 있다.

그런 바람과는 다르게, 아이들이 자신이 곤란해지는 상황이 오면 순식간에 거짓말을 하더라. 그 상황에서 윽박지르지 않고 대화로 풀어가면서 결국 아이들이 “사실은요…”라고 실토하게 만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지상렬: 난 원래부터 솔직한 스타일을 좋아하고, 아이들과 생활할 때도 솔직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솔직한 에너지가 아이들한테 전달되는 것 같다. 거짓말 하지 말라는 소리는 절대 안 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깨닫게 만들어주는 스타일인데, 본인의 유년 시절도 이와 비슷했나.
지상렬: 그렇다. 부모님이 방목해서 키우셨다. 어렸을 때 아버지한테 늘 들었던 얘기가 공부는 못해도 되니까 남한테 해코지는 하지 마라, 알아서 시간표 짜서 다녀라, 였다. 그 부분에 대해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항체가 생겼다.

아이들에게도 그런 항체를 만들어주고 싶나.
지상렬: 그럼. 넌 이거 해야 돼,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인터뷰, 글. 이가온 thirteen@
인터뷰. 위근우 기자 eight@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