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다양하게 봐요. 음악도 그렇고 영화도 이것저것 가리지 않아요.” 스스로 밝힌 것처럼 유아인의 영화 취향에는 편식이 없다. 으로 연애의 지독함에 공감하다가도 으로 꿈과 현실의 경계를, 로 진실과 비판, 사고의 폭에 대해 묻는다. 그러다 어느새 의 정서에, 의 화려한 액션에 열광하는 이 배우, 종잡을 수가 없다. 마치 드라마에서 영화로 예측 불가능한 선로를 놓은 자신처럼.
청소년 드라마 으로 데뷔한 틴에이저 배우에게 기대했던 해사함을 배반하고 의 종대로 나타났을 때부터 유아인에게선 다음 장면이 예측되지 않았다. 여기저기 동네 강아지처럼 차이던 종대는 강해지고 싶어서 총이 필요했다. 절망의 터널을 길게 헤매던 종대와 대조적으로 한없이 가벼워만 보이던 현규() 역시 유아인에게서 예견하지 못했던 모습이다. 쿨하게 자유연애를 부르짖지만 편의점에서 대신 계산해주는 여자친구 등 뒤로 적립카드를 내미는 찌질한 청춘. 애교와 센스로 무장했으되 박력은 갖추지 못한 초식남. 가장 현재성을 띤 요즘 청년은 그렇게 유아인에 의해 걸어 나왔다. 그래서 의 걸오 문재신 또한 낯설었다. “너무 슬프고 아픈 인물을 연기할 때조차 잘 웃고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던 유아인에게도 세상과 아버지를 향한 분노, 형을 잃은 슬픔을 묻고 사랑하는 여인을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재신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고통 안에 갇혀 있던 재신이 비로소 울부짖고, 웃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재신은 물론 유아인도 “알을 깨고 나올” 수 있었다.
아직은 “남들이 거창하게 보는 게 무섭”고, 스스로 “쪼매난 배우”일 뿐이라고 말하는 그에 대해서는 어떠한 판단도 유보하고 싶다. 로 더해진 인기나 유명세로는 현재의 그도, 앞으로의 유아인도 예상하긴 힘들 것이다. 아니 섣불리 재단하지 않는다면 더 큰 즐거움을 얻지 않을까? 마치 그가 영화를 대하는 태도처럼. “영화를 바라보는 가장 안 좋은 습관이 무조건 결론을 찾아야 된다거나 엔딩이 명확하게 나와야한다고 생각하는 거 아닐까요? 그런 부분에서 좀 더 열린 사고로 대한다면 훨씬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1. (Between Love And Hate)
2006년 | 김해곤
“멜로영화 중에서 를 정말 좋아했는데 그것보다 더 와 닿았어요. 지독한 게 현실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예쁜 것만이 사랑이 아니야, 예쁘지 않아도 괜찮아, 그것 또한 사랑이고 현실은 또 이런 거야라고 말하고 있어요. 물론 영화 속 주인공들의 사랑이 흔하진 않지만 어디선가는 일어나고 있는 일일 테니까요. 근래에도 계속 보게 되는 영화예요. 특히 케이블 채널에서 자주 해주는데 그때마다 돌리지 않고 다시 보게 되더라구요. (웃음)”로맨틱한 데이트와 사랑스러운 고백, 멜로영화 하면 떠올리는 공식을 모두 빗겨간 의 연애는 결코 가볍지 않다. 장난처럼 가볍게 시작했지만 결국엔 어떤 식으로든 만만치 않은 무게를 남기고 마는 여느 연애들처럼.
2. (Inception)
2010년 | 크리스토퍼 놀런
“최근에 본 영화중에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저랑 되게 잘 맞는 영화예요. 항상 그 생각하거든요. 이게 현실이 아닐 수도 있어. (웃음) 그래서 도 좋아했구요. 전 항상 이 세계 자체를 의심하며 사는 애라서 ‘난 이미 죽었는데 꿈꾸고 있는 걸 수도 있어’ 이런 생각을 재미로도 하거든요. (웃음) 은 영화적으로 봤을 때도 누구나 한 번씩은 하는 생각을 그간 봤던 어떤 작품보다 잘 표현한 거 같아요. 특히 자동차가 추락하는 장면을 좋아하는데, 꿈과 현실의 시간차를 표현하는 방식에선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어요.”
꿈에 관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사소한 경험들까지 치밀하게 작동원리로 삼아 쌓아올린 의 세계는 공고하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세운 룰은 영화를 완벽하게 지배하고, 보는 이는 그 세계에 완벽하게 동화된다. 당신은 지금 깨어있다고 확신할 수 있나?3. (Josee, The Tiger And The Fish)>
2003년 | 이누도 잇신
“예전에 사랑 얘기를 하게 된다면 같은 영화를 하고 싶다고 많이 말하곤 했어요. 그냥 사랑만 나부끼는 영화가 아니라 사랑을 하는 사람들의 얘기라서 오랫동안 최고로 손꼽았던 영화예요. 사랑할 때는 사랑이 주체인 것처럼 얘기하는데 결국은 개인이 주체가 되는 감정적인 일이잖아요. 아, 엔딩도 너무 좋았는데 예쁘지 않아서 더 예뻤어요. 거짓말하지 않아서 예뻤고, 사랑을 사랑으로서 두고 돌아서는 사람을 진실 되게 그려서 제가 생각하는 진짜 예쁜 모습이었어요.”
이누도 잇신 감독은 극적인 사건이나 반전으로 상황을 정리하는 대신 아주 작은 변화로 훌쩍 자란 청춘들을 필름에 새겨 넣는다. 더 이상 2인분이 아닌 혼자 먹을 생선을 굽는 조제(이케와키 치즈루)의 뒷모습에 머무는 카메라는 어떤 말보다 이별을 극복한 그녀의 홀로서기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4. (Sicko)
2007년 | 마이클 무어
“처럼 사회를 꼬집거나 비판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에도 위험은 있어요. 뭔가를 의심하라고 얘기하지만 그 의심하라는 말 자체를 맹신하게 만들 수도 있거든요. 여유롭게 관찰하고, 진실을 찾아내려고 혹은 열린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이런 영화를 보면서 갖춰야할 자세인 거 같아요. 어, 정말 그래? 9.11 테러가 가짜야? 그렇게 맹신하는 게 아니라 질문하고 판단의 폭을 넓히는 게 중요하죠. 예술작품들은 항상 시대정신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다큐멘터리 같은 경우에는 특히나 더 직접적으로 담고 있기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전 세계 경제와 정치, 군사문제에 미국이 끼치는 영향력은 막대하다. 그러나 그 위엄과는 대조적으로 미국의 의료보험 체계는 완전히 상식 밖이다. 가난하고 병력이 있는 환자들의 치료를 거부하는 보험사와 병원. 그리고 이들과 로비로 얽혀있는 정부. 마이클 무어 감독은 이들의 실체를 발랄하고 날카롭게 폭로했다.
5. (2046)
2007년 | 왕가위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너무 좋아해요. 처음 반했던 건 였지만 랑 중에서 고민하다가 을 택했어요. 아무래도 전 좀 거창한 걸 좋아하는 거 같아요. (웃음) 물론 영화는 어려웠어요. 한번 보고 나서 잘 이해가 안 되기도 했지만 왕가위 감독의 세계를 절대적으로 존경해요. 이 작품이야 말로 어떤 해답이 없죠. 개인이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은 오롯한 감정의 찌꺼기들로 이루어진 거 같아요. 최근 들어서 같은 작품 때문에 그를 저평가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안타깝죠. 그 한 작품을 성패를 대단한 감독의 퇴장쯤으로 여기는 거 같아서요. 그것만으로 그 사람의 방대한 세계를 다 대변할 수 있는 게 아닌데 말이죠.”
장쯔이, 기무라 타쿠야, 장만옥, 양조위, 공리 등 아시아 최고의 배우들을 이 컬트적인 영화에 담을 수 있는 것. 그것은 왕가위 감독의 세계에 대한 존경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사랑해서 함께 있지만 서로를 여전히 알지 못한 채 부유하는 남녀를 옴니버스 식으로 그렸다.
“제가 생각하는 제일 먼 미래는 내일인 것 같아요. 저는 언제라도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무사히 보내고 눈을 떠서 오늘도 또 세상에 있지만 내일 제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이, 이 시간이 더 소중하고 10년 뒤에 뭘 하겠다는 것보다 제가 지금 이걸 하고 있다는 게 더 소중한 거예요.” 이 종영을 맞은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네티즌의 투표로만 결정되는 KBS ‘베스트 커플상’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그를 향한 지지는 여전히 대단하다. 하지만 그가 꿈꾸는 것은 거창하지 않다. 지금의 인기를 발판으로 더 큰 작품을 하겠어, 더 높은 곳에 가겠어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사는 것. 순간의 소중함을 이미 터득한 유아인의 순간들이 쌓인 뒤, 이 배우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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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혜 seven@
사진. 채기원 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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