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휴, 미국에서 2주 연속 1위라는 건 대단한 거지.” 특유의 조금은 과장되고 넉살 좋은 말투로 배우 김수로가 자신이 더빙을 맡은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에 대해 평가했다. “관객들이 새해부터 이렇게 검증 받은 작품으로 관람을 시작하면 이제 2011년은 탄탄대로인 거잖아요.” 많은 배우들이 자신이 출연하거나 관여한 작품을 홍보하기 위해 인터뷰를 하지만 이건 좀 노골적이다. 하지만 민망하거나 불편하지 않다. 그건 아마도 괜히 에둘러 표현하기보다는 직설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그의 방식이 이제는 익숙해진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언제나 그랬다. 변화구보다는 직구다. 그것도 한 번 던지고서는 다신 던지지 않을 것처럼 온 힘을 다하는 직구. 아직 배우로서 김수로의 이름이 낯선 시기에도 의 최강 레슬러 유비호의 현란하고 과격한 프로레슬링 기술은 눈에 띄는 것이었고, 최근 준비 중인 연극 의 복싱 훈련은 “살벌한” 수준이다. 심지어 예능인 SBS 에서도 그는 몸을 아끼지 않는 게임 마왕이었다. “기교 부리지 않고 관객들을 상대하려 하니 솔직하게 몸을 던지게 되요. 사실 테크닉은 나이 먹고 보여줘도 되는 거니까 아직은 건강한 육체를 던져서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게 옳은 거 같아요.”
이 150㎞ 직구의 남자가 마찬가지로 시각적으로 숨 쉴 틈 없이 몰아붙이는 스티븐 스필버그와 마이클 베이 같은 할리우드 장인들의 작품에 커다란 동경을 느끼는 건 그래서 필연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작업에 대해서도 “음악을 한스 짐머가 맡았잖아요. 전 세계 영화 팬 중에 한스 짐머 싫어하는 사람 있겠어요?”라고 자랑스러워하는 이 남자는 그래서 드림웍스에 대한 두근거리는 호감을 숨기지 않는다. “드림웍스는 태동 때부터 좋아했어요. 다른 누구보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합류했잖아요. 할리우드 메이저 제작사 중에서는 가장 제 성향에 맞더라고요.” 하여, 이번에 김수로가 추천하는 영화는 드림웍스가 만들어낸 꿈같은 작품들이다. 아마 모두들 한 번쯤은 그 꿈을 함께 꾼 경험이 있을 것이다.
1. (Shrek)
2001년 | 앤드류 애덤슨, 비키 젠슨
“아마 성인들도 애니메이션을 재밌고 떳떳하게 볼 수 있게 된 건 시리즈 때문이지 싶어요. 이 시리즈는 마지막 까지 다 봤어요. 그 중 다들 1편 혹은 2편을 최고로 꼽는데 역시 저는 1편이 가장 재밌었어요. 당시에는 굉장히 쇼킹했잖아요. 동화 속 괴물이 일종의 영웅이 되어서 사랑을 이룬다는 설정이. 그렇게 비트는 재미 때문에 이번 더빙 작업을 수락한 면도 있어요.”드림웍스의 결성만큼이나 의 등장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드림웍스 트리오의 일원이자 디즈니의 주요 인사였던 제프리 카젠버그가 제작자로 참여한 은 명백히 디즈니의 동화적 세계에 대한 도전 혹은 혁명이었다. 늪지대 괴물 슈렉이 왕자 대신 잠자는 숲속의 공주 피오나를 구해 사랑을 이루는 과정은 당시로선 파격 자체였다. 애니메이션이 셀 애니메이션에서 CG 애니메이션으로 판도가 바뀐 것도 이 시작이었다.
2. (Kung Fu Panda)
2008년 | 마크 오스본, 존 스티븐슨
“개인적으로는 보다 재밌게 봤던 영화예요. 워낙 무술 영화를 좋아하니까. 이소룡, 성룡 나오는 영화는 다 좋아하고 소림사 시리즈는 정말 다 섭렵했어요. 내가 또 이소룡의 절권도를 배웠던 사람인데 자체가 그 시절 홍콩 무술 영화에 대한 오마주 같은 거잖아요. 그러니 재밌게 볼 수밖에 없죠. 예고편 보니까 이번에 하는 2편도 정말 재밌을 거 같던데요?”
은 애니메이션의 판도를 바꿨지만 드림웍스의 모든 작품들이 그 영광을 재현했던 것은 아니다. 는 무난했고, 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심지어 는 시리즈의 명성을 깎아먹는 수준이었다. 그 모든 우려를 잠재운 것이 바로 다. 뚱보 팬더 포가 주위의 편견에도 불구하고 쿵푸 마스터가 되는 이 작품은 캐릭터의 귀여움과 드림웍스 특유의 비틀기가 행복하게 결합해있다.3. (How To Train Your Dragon)
2010년 | 딘 데블로이스, 크리스 샌더스
“사실은 기대를 너무 많이 한 감이 있던 영화예요. 다들 굉장히 재미있다고 하기에 거의 만큼 기대를 하고 봤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어요. 물론 그래도 실망스럽지는 않았고요. 기본적으로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이 기본은 하는데다가 제 성향 자체가 이쪽 애니메이션하고 잘 맞더라고요. 어떤 고정관념을 살짝 비틀면서 결국에는 다시 우정 같은 중요한 가치를 강조하는 교화적인 면이 있는데 많은 아이들이 보는 메이저 작품을 만드는 입장에선 당연한 방법 같아요.”
에 대한 대부분의 평가는 비슷하다. 탁월하진 않지만 잘 만들었다. 드래곤과 싸우는 것을 통해 진정한 전사로 인정받는 바이킹 족의 소년 히컵이 이빨 없는 드래곤 투쓰리스와 친구가 되어 전혀 다른 의미의 전사가 되는 과정은 파격적이진 않아도 충분히 귀엽고 흥미롭다. 특히 이후 영화계의 주력 기술로 주목받게 된 3D 화면을 성공적으로 구현한 애니메이션이라는 점도 인상적이다.
4. (Transformers)
2007년 | 마이클 베이
“정말, 이런 영화 한 번 출연해보고 싶어요. 워낙 마이클 베이를 좋아하기도 해요. 가령 은 액션에 있어 더는 나갈 게 없는 작품이죠. 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어요. 정말 광적으로 재밌게 봤죠. 감성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있어서는 끝을 봤어요. 이번에 3편 예고 보는데 ‘저걸 또 어떻게 풀까?’ 하면서 엔돌핀이 돌더라고요. 제일 좋아하는 로봇이요? 당연히 옵티머스 프라임이죠.”CG 기술을 통해 영화의 시각적 한계를 혁명적으로 넓히는 작품들이 있다. 가 그랬고 와 이 그랬으며 이 작품 역시 그러하다. 애니메이션에서나 볼 수 있던 변신 로봇을 완벽한 실사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남성들의 판타지를 충족시켰던 이 작품은 선과 악의 비교적 단순한 구도 안에서 눈을 뗄 수 없는 SF 액션의 향연을 보여준다.
5. (Saving Private Ryan)
1998년 | 스티븐 스필버그
“개인적으로 전쟁 영화중에서는 가장 좋았어요. 구체적으로 표현할 말은 없는데 굉장히 감동적이었어요. 한 사람을 위해 그 많은 구조대원 모두가 희생하는 모습이 인류애가 아닌가 싶었고. 또 초반 전쟁 장면은 정말 끝내줬다고 생각해요. 팔 떨어지고, 이런 전쟁의 참혹한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면서 흡사 전쟁터에 있는 느낌을 줬죠. 숨을 쉴 수 없는, 정말 전쟁 영화다운 전쟁 영화를 봤던 거 같아요.”
4형제가 2차 대전에 참전한 라이언가에서 3명이 죽고 막내 제임스 라이언만이 남았다. 는 제목 그대로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적진에 뛰어드는 특공대의 모습을 그린다. 사실 영화를 다 본 이후에도 영화 속 밀러 대위(톰 행크스)의 고민, 즉 한 명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여덟 명의 군인이 목숨을 거는 것이 온당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해결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모순조차 감동적인 분위기 안에서 녹여 관객에게 납득시키는 건 역시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연출자의 힘이다.
“7일 동안 매일 네다섯 시간씩 녹음실에 갇혀있으면 거의 패닉 상태가 되죠. 계속 커피 마시면서 녹음하다가 마지막에 초재기 들어가고. 제일 힘든 건 말의 길이를 맞추는 거였어요. 와… 정말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니까요.”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을 발산하는, “틀이 있으면 그걸 살짝 벗어나는” 연기를 하던 그에게 공간적으로도 연기적으로도 틀 안에서 표현해야 하는 경험은 고통스러운 동시에 “되게 좋은 공부”가 되었다. “애드리브요? 입모양이 정해져있는데 어떻게 애드리브를 치겠어요?” 그리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드림웍스에서도 보충 더빙 없이 바로 오케이 사인을 보냈고, 무엇보다 그가 만든 결과물은 김수로 스스로 “정말 천재적”이라고 감탄한 미국판 메가마인드 윌 페렐의 그것처럼 목소리와 캐릭터가 일치되어있다. 그래서 궁금하다. 이번의 좋은 공부는 이 직구의 배우에게 어떤 변화를, 새로운 무기를 줄 수 있을까. 물론 150㎞짜리 직구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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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위근우 eight@
사진. 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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