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누도 잇신 감독은 유난히 한국에서 사랑받는 일본 감독이다. , 등 그의 이름은 청춘과 사랑, 감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설명되곤 했다. 그러나 3월 25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신작 는 이후, 그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유독 도드라진다. 에는 해사한 청춘도, 감수성을 건드리는 음악도, 싱그러운 풍경도 없다. 전쟁이 막 끝난 뒤 황폐한 가나자와 지방은 비바람이 불고 냉기로 가득하다. 그곳에서 결혼한 지 일주일 만에 출장을 떠난 남편(니시지마 히데토시)은 실종되고, 그를 찾으러 떠난 아내 데이코(히로스에 료코)는 자신이 남편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만 깨닫는다. 그저 믿기만 했을 때는 알 수 없었던 혹은 듣지 못했던 비밀들이 하나씩 퍼즐을 맞추듯 드러나면서 데이코는 더욱 혼란스럽다. 그저 남편을 찾으러 떠났던 여자는 점점 더 그에게서 멀어진다.
감독은 장기를 놔두고 특기를 계발하려 했지만
일본 추리소설의 거장 마츠모토 세이쵸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제작된 는 그의 소설이 일본에서만큼 알려지지 않은 한국에선 감독의 이름에 더 눈이 갈 수 밖에 없다. 원작 은 그동안 일본에서 드라마와 영화로 여러 번 리메이크 됐었기에 이누도 잇신 감독은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내 스타일을 살리는 것이 어려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만큼 는 그의 전작들과 많은 면에서 이질적인 한편 일관된 정서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던 전작들의 진지하나 무겁지 않고, 경쾌하나 가볍지 않은 청춘들의 성장담을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그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할 공산이 크다. 남편의 실체를 추리해나가는 데이코의 여정은 감독 특유의 세밀하고 서정적인 장치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고, 전후시대라는 시대적 배경은 낭만이 끼어들 여유가 없다. 또 일본인들의 새 시대를 향한 갈망을 추리소설의 형식으로 풀어냈던 원작을 충실히 살려내는 것에 중점을 둔 영화는 한국 관객과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쉬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맞선 자리에서 수줍게 눈을 내리 깔고 웃는 것 외에는 자신을 드러내지 못했던 데이코가 남편의 비밀을 파헤쳐가는 과정은 그대로 그녀의 성장기가 되기도 한다. 진실에 다가가면서 주변인물들이 죽어나가지만 꿋꿋이 진실을 짜맞춰가는 데이코는 사람들의 배신에 무너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조제가 그랬듯, 사오리가 그랬듯 그녀는 스스로에게서 홀로 설 수 있는 힘을 발견한다.
글. 이지혜 seven@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