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이라면 할 이야기가 좀 있겠지만….”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장혁은 마치 무술에 푹 빠져 있는 액션 스타처럼 말했다. 하지만 인터뷰가 끝날 때 쯤, 장혁에게 무술을 말한다는 것은 자신의 연기와 인생을 모두 말하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는 것을 알았다. 마치 무도가가 무술을 통해 도를 깨우치듯, 장혁은 연기를 하며 자신의 인생에 정진하고 있었다. 그는 무술을 연기에 녹여 캐릭터를 이해하고, 캐릭터를 분석하며 자신의 인생을 돌아본다. 장혁이 KBS 에서 대길을 연기한다는 것은 자신의 지난 인생 모두를 쏟아내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가 얼마나 대길을 연기하면서 또다시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 확인해보라.
의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어땠나.
장혁 : 요즘은 장르의 경계가 없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영화도 한 작품 안에서 SF, 액션, 멜로, 정치 풍자가 함께 들어있지 않나. 지금은 장르보다 시각, 형식, 시점이 더 중요한 것 같다. 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보통 드라마는 메인 주인공이 이끌고 조연들이 백그라운드에 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는 처럼 다양한 인물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가진 것 같았다. 여기서 대길이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분명히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고. 각자의 입장에 따라 사건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이야기의 초점이 다를 뿐 비슷한 이야기가 균형을 맞추며 흘러가는 식이라서 서로가 주인공이자 서브가 되는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상황 안에서 흘러갈 수밖에 없는 민초들” 그래서 는 캐릭터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 세계의 이야기라는 느낌이 든다.
장혁 :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의 마지막에는 다큐멘터리 형식이 붙어서 이 세계를 객관화 시켰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처음에는 캐릭터의 시점에서 주관적으로 시작했지만 마지막으로는 객관적으로 끝내면서 이 세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거다. 개인적으로 영화 을 좋아하는데, 그 작품에서는 장수나 왕도 사는 지역에 따라 각각 다른 사투리를 썼다. 시점만 바꿨을 뿐인데 기존 사극에서 보지 못한 부분을 보여주게 된 거다. 도 그런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는 어떤 세상을 그리는 이야기라고 보나.
장혁 :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민초다. 민초들이 그 시절의 역사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그 민초들의 역사가 지금까지 흘러왔다는 관점에서 시작하는 게 라고 생각한다. 대길이만 해도 신분제도 때문에 사랑하는 여자와 혼인하지 못했고, 신분제도 때문에 집안이 몰락했다. 그리고 추노꾼이 돼서는 양반 출신이면서도 중인인 최장군과 천민인 왕손이와 함께 어울린다. 그래서 에서는 누가 선이다 악이다 하는 것이 없다. 모두 상황 안에서 흘러갈 수밖에 없는 민초들이기 때문이다.
대길이를 시대적 상황이 만든 인물로 바라보는 건가.
장혁 :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가 의 최대치인데, 최대치는 역사적 상황 때문에 인생이 전혀 달라졌다. 만약 한일합방이 없었다면, 징병 당하지 않았다면, 종군위안부 윤여옥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는 빨치산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람에게 이념은 없다. 다만 살다보니 어디에든 속해야 했고, 나를 따르는 사람들이 생긴 거다. 대길이도 마찬가지다. 태하는 정치적 명분을 걸고 투쟁한다. 노비들은 살기 위해 뭉쳐서 ‘노비들의 세상’이라는 이념을 학습한다. 하지만 추노꾼들은 이념이 없다. 노비 잡아서 하루 연명하고, 다시 언년이 찾고 그렇게 산다. 그리고 그 와중에 밟히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까 짐승 같은 추노꾼이 된 거고, 추노꾼 세계에서 1위도 되고. 언년이 못 찾으면 아마 그렇게 살다 어느 고을에서 칼 맞아 죽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길이는 시대에 떠밀려 산다고만 하기엔 굉장히 복잡한 캐릭터다. 에서 태하가 곧고 올바르고, 왕손이는 가볍다고 할 수 있다면 대길이는 한두 가지 말로 정의할 수 없다. 천하의 잡놈이기도 하지만 순정파이기도 하고, 경박하지만 진지하기도 하다.
장혁 : 대길이는 지도층에서 태어났지만 민초들 틈에서 산다. 그래서 평등이라는 것에 대한 이념이 생길 것 같은 인물이다. 따라서 이런 느낌을 대길의 밑바탕에 깔고 간다. 그리고 대길이는 민초가 된 후에는 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상갓집 상주도 울다가 배가 고플 때는 밥을 먹는데 대길이는 오죽하겠는가. 대부분의 날은 먹고 사느라 바빴을 것이고, 어느 날은 웃기도 하고 옛날 얘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생활을 하는 나와 정신적인 부분의 내가 함께 하면서 대길이만의 특징이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그런 특징들이 무엇이라고 보나.
장혁 : 예를 들어 천지호는 정말 잔인하다. 천지호는 사람을 죽인 직후에도 태연한 목소리로 부하를 부를 수 있다. 하지만 대길이는 실력은 더 좋아도 인성은 그렇게 안 된다. 노비를 잡는 추노꾼이라도 어느 날은 노비를 도와주기도 한다. 그건 착해서라기보다는 그냥 어느 날은 기분이 좋으니까, 옛날 그 시절 생각이 나니까 그런 거다. 그날 기분이 안 좋았다면 안 구해줬을 수도 있다. 추노꾼 이대길 안에 도령 이대길이 남아 있어서 마지막으로 짐승의 야성을 붙잡고 있는 거다. 특별히 어떤 인물이라고 콘셉트를 잡기 보다는 이런 인생 속에서 상황 안에서 감정대로 움직이는 거다.
“대길이는 착하다 나쁘다가 아닌 그냥 순수하다”
상황에 따라 말투도 달라지는 것 같다. 추노꾼들끼리 편하게 있을 때는 리듬을 타면서 말하던데.
장혁 : 그건 감독님과 작가님께 허락을 받고 시도해본 부분이다. 느낌을 더 살릴 수 있다면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 하니까. 대길이가 도령이었을 때는 간접 화법이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여자가 있냐고 하면 “없습니다. 그런 사람”하면서 은근히 아버지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식이다. 반대로 대길이는 직접 말을 해야 살 수 있는 사람이니까 직접 화법을 사용한다. 그리고 온갖 일을 겪으면서 말다툼을 해야 할 때가 많다. 그러면 중요한 포인트를 얘기 하는 순간에 내가 치고 들어가 버리면 상대가 말을 못하니까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다. 그러려면 리듬을 타야하고. 하지만 연기나 화술보다 신경 쓰는 건 눈이다. 대길이의 눈은 항상 풀려 있다. 중요한 일이 아니면 시점도 비껴서 본다. 평소에는 그렇게 감정을 숨기고, 절제하고 사는 거다. 그게 대길이가 슬퍼 보이는 이유 같다. 꿈이나 희망을 포기하고 스스로 평소에는 멍하게 살려는 사람 같다.
장혁 : 그 부분에서 영화 에 출연한 경험이 대길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 그 작품에서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희귀병 때문에 당장 내일 죽어도 이상할 게 없었는데, 그러다 보니까 다른 사람이 보기에 예측할 수 없다. 남들은 그 사람이 불행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 사람은 늘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어제도 오늘이고 내일도 오늘인 거다. 세상에 어떤 의무를 부여할 수 없다. 대길이도 비슷하다. 언년이를 찾으려고 오늘도 출동하고, 내일도 출동한다. 그게 이대길의 순수함 같다. 착하다, 악인이다가 아니라 그냥 순수한 거다.
그런 점에서 대길이는 묘하게 아이 같은 부분이 있다. 자기 일에서는 총을 맞은 그 순간에도 상황 판단을 정확히 하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최장군이 훨씬 어른스럽다.
장혁 : 맞다. 일에서 리더는 대길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최장군이 끌어간다. 그리고 대길이가 그런 성격을 가져야 최장군과 왕손이와 함께 각각의 스펙트럼을 가질 수 있다. 각자 다른 모습을 가진 캐릭터가 어우러지는 느낌이 중요하다. 그리고 대길이를 표현하면서 제일 슬펐을 때가 1회에서 강화백이 그려준 언년이의 그림을 보는 장면이다. 용모파기를 그리는데 무조건 10년 전과 똑같은 모습이어야 하는 거다. 무조건 얘여야 하고, 마지막에 내가 봤던 그 모습이어야 하는 거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얘를 잡아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그래도 그림을 보는 순간만은 좋은 거고. 그래서 그림을 갖고 다니고, 낡게 되면 다시 그리고. 대길이는 도령이었던 그 시절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는 부분이 있다.
그러면 대길이는 언년이를 잡아야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까. 대길이는 언년이와 헤어진 그 시절에 인생이 멈춰져 있는 것 같은데.
장혁 : 그거하곤 좀 다르다. 내 입장에서 보면 는 이대길의 성장 드라마다. 사람은 어른이 되도 성장하는데, 대길의 경우는 그게 소통방식에서의 성장이라고 본다. 아직은 대길이 치기어리고, 남들과 소통이 잘 안 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태하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황량하다, 슬프다, 아프다 이런 게 아니라 그 모든 게 쌓여가는 감정으로 달라진다. 그래서 조금씩 대길이가 달라지고 있다고 본다.
그런 식으로 인물의 내면에 깊숙이 들어가려면 시대에 대한 분석이 필수일 것 같다. 시대에 대해 어떤 준비를 했나.
장혁 : 기본적인 토대를 가진 자료는 봤다. 예전에 을 하면서도 상인을 연기해야 하니까 화폐와 보부상, 경감 상인 같은 내용을 공부한 것처럼. 애드립을 하려면 그런 부분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의 역사적 시기는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바뀌는 시기고, 그러다 보니까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 와중에 양반 입장에서는 부동산이나 다름없는 노비들이 자꾸 도망치니까 추노꾼이 생긴 거다. 그 시절에 일종의 용병이면서 탐정인 셈이다. 발자국을 보고 쫓아가고, 필요할 때는 싸우고.
글. 강명석 two@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의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어땠나.
장혁 : 요즘은 장르의 경계가 없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영화도 한 작품 안에서 SF, 액션, 멜로, 정치 풍자가 함께 들어있지 않나. 지금은 장르보다 시각, 형식, 시점이 더 중요한 것 같다. 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보통 드라마는 메인 주인공이 이끌고 조연들이 백그라운드에 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는 처럼 다양한 인물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가진 것 같았다. 여기서 대길이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분명히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고. 각자의 입장에 따라 사건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이야기의 초점이 다를 뿐 비슷한 이야기가 균형을 맞추며 흘러가는 식이라서 서로가 주인공이자 서브가 되는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상황 안에서 흘러갈 수밖에 없는 민초들” 그래서 는 캐릭터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 세계의 이야기라는 느낌이 든다.
장혁 :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의 마지막에는 다큐멘터리 형식이 붙어서 이 세계를 객관화 시켰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처음에는 캐릭터의 시점에서 주관적으로 시작했지만 마지막으로는 객관적으로 끝내면서 이 세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거다. 개인적으로 영화 을 좋아하는데, 그 작품에서는 장수나 왕도 사는 지역에 따라 각각 다른 사투리를 썼다. 시점만 바꿨을 뿐인데 기존 사극에서 보지 못한 부분을 보여주게 된 거다. 도 그런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는 어떤 세상을 그리는 이야기라고 보나.
장혁 :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민초다. 민초들이 그 시절의 역사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그 민초들의 역사가 지금까지 흘러왔다는 관점에서 시작하는 게 라고 생각한다. 대길이만 해도 신분제도 때문에 사랑하는 여자와 혼인하지 못했고, 신분제도 때문에 집안이 몰락했다. 그리고 추노꾼이 돼서는 양반 출신이면서도 중인인 최장군과 천민인 왕손이와 함께 어울린다. 그래서 에서는 누가 선이다 악이다 하는 것이 없다. 모두 상황 안에서 흘러갈 수밖에 없는 민초들이기 때문이다.
대길이를 시대적 상황이 만든 인물로 바라보는 건가.
장혁 :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가 의 최대치인데, 최대치는 역사적 상황 때문에 인생이 전혀 달라졌다. 만약 한일합방이 없었다면, 징병 당하지 않았다면, 종군위안부 윤여옥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는 빨치산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람에게 이념은 없다. 다만 살다보니 어디에든 속해야 했고, 나를 따르는 사람들이 생긴 거다. 대길이도 마찬가지다. 태하는 정치적 명분을 걸고 투쟁한다. 노비들은 살기 위해 뭉쳐서 ‘노비들의 세상’이라는 이념을 학습한다. 하지만 추노꾼들은 이념이 없다. 노비 잡아서 하루 연명하고, 다시 언년이 찾고 그렇게 산다. 그리고 그 와중에 밟히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까 짐승 같은 추노꾼이 된 거고, 추노꾼 세계에서 1위도 되고. 언년이 못 찾으면 아마 그렇게 살다 어느 고을에서 칼 맞아 죽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길이는 시대에 떠밀려 산다고만 하기엔 굉장히 복잡한 캐릭터다. 에서 태하가 곧고 올바르고, 왕손이는 가볍다고 할 수 있다면 대길이는 한두 가지 말로 정의할 수 없다. 천하의 잡놈이기도 하지만 순정파이기도 하고, 경박하지만 진지하기도 하다.
장혁 : 대길이는 지도층에서 태어났지만 민초들 틈에서 산다. 그래서 평등이라는 것에 대한 이념이 생길 것 같은 인물이다. 따라서 이런 느낌을 대길의 밑바탕에 깔고 간다. 그리고 대길이는 민초가 된 후에는 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상갓집 상주도 울다가 배가 고플 때는 밥을 먹는데 대길이는 오죽하겠는가. 대부분의 날은 먹고 사느라 바빴을 것이고, 어느 날은 웃기도 하고 옛날 얘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생활을 하는 나와 정신적인 부분의 내가 함께 하면서 대길이만의 특징이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그런 특징들이 무엇이라고 보나.
장혁 : 예를 들어 천지호는 정말 잔인하다. 천지호는 사람을 죽인 직후에도 태연한 목소리로 부하를 부를 수 있다. 하지만 대길이는 실력은 더 좋아도 인성은 그렇게 안 된다. 노비를 잡는 추노꾼이라도 어느 날은 노비를 도와주기도 한다. 그건 착해서라기보다는 그냥 어느 날은 기분이 좋으니까, 옛날 그 시절 생각이 나니까 그런 거다. 그날 기분이 안 좋았다면 안 구해줬을 수도 있다. 추노꾼 이대길 안에 도령 이대길이 남아 있어서 마지막으로 짐승의 야성을 붙잡고 있는 거다. 특별히 어떤 인물이라고 콘셉트를 잡기 보다는 이런 인생 속에서 상황 안에서 감정대로 움직이는 거다.
“대길이는 착하다 나쁘다가 아닌 그냥 순수하다”
상황에 따라 말투도 달라지는 것 같다. 추노꾼들끼리 편하게 있을 때는 리듬을 타면서 말하던데.
장혁 : 그건 감독님과 작가님께 허락을 받고 시도해본 부분이다. 느낌을 더 살릴 수 있다면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 하니까. 대길이가 도령이었을 때는 간접 화법이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여자가 있냐고 하면 “없습니다. 그런 사람”하면서 은근히 아버지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식이다. 반대로 대길이는 직접 말을 해야 살 수 있는 사람이니까 직접 화법을 사용한다. 그리고 온갖 일을 겪으면서 말다툼을 해야 할 때가 많다. 그러면 중요한 포인트를 얘기 하는 순간에 내가 치고 들어가 버리면 상대가 말을 못하니까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다. 그러려면 리듬을 타야하고. 하지만 연기나 화술보다 신경 쓰는 건 눈이다. 대길이의 눈은 항상 풀려 있다. 중요한 일이 아니면 시점도 비껴서 본다. 평소에는 그렇게 감정을 숨기고, 절제하고 사는 거다. 그게 대길이가 슬퍼 보이는 이유 같다. 꿈이나 희망을 포기하고 스스로 평소에는 멍하게 살려는 사람 같다.
장혁 : 그 부분에서 영화 에 출연한 경험이 대길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 그 작품에서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희귀병 때문에 당장 내일 죽어도 이상할 게 없었는데, 그러다 보니까 다른 사람이 보기에 예측할 수 없다. 남들은 그 사람이 불행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 사람은 늘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어제도 오늘이고 내일도 오늘인 거다. 세상에 어떤 의무를 부여할 수 없다. 대길이도 비슷하다. 언년이를 찾으려고 오늘도 출동하고, 내일도 출동한다. 그게 이대길의 순수함 같다. 착하다, 악인이다가 아니라 그냥 순수한 거다.
그런 점에서 대길이는 묘하게 아이 같은 부분이 있다. 자기 일에서는 총을 맞은 그 순간에도 상황 판단을 정확히 하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최장군이 훨씬 어른스럽다.
장혁 : 맞다. 일에서 리더는 대길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최장군이 끌어간다. 그리고 대길이가 그런 성격을 가져야 최장군과 왕손이와 함께 각각의 스펙트럼을 가질 수 있다. 각자 다른 모습을 가진 캐릭터가 어우러지는 느낌이 중요하다. 그리고 대길이를 표현하면서 제일 슬펐을 때가 1회에서 강화백이 그려준 언년이의 그림을 보는 장면이다. 용모파기를 그리는데 무조건 10년 전과 똑같은 모습이어야 하는 거다. 무조건 얘여야 하고, 마지막에 내가 봤던 그 모습이어야 하는 거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얘를 잡아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그래도 그림을 보는 순간만은 좋은 거고. 그래서 그림을 갖고 다니고, 낡게 되면 다시 그리고. 대길이는 도령이었던 그 시절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는 부분이 있다.
그러면 대길이는 언년이를 잡아야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까. 대길이는 언년이와 헤어진 그 시절에 인생이 멈춰져 있는 것 같은데.
장혁 : 그거하곤 좀 다르다. 내 입장에서 보면 는 이대길의 성장 드라마다. 사람은 어른이 되도 성장하는데, 대길의 경우는 그게 소통방식에서의 성장이라고 본다. 아직은 대길이 치기어리고, 남들과 소통이 잘 안 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태하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황량하다, 슬프다, 아프다 이런 게 아니라 그 모든 게 쌓여가는 감정으로 달라진다. 그래서 조금씩 대길이가 달라지고 있다고 본다.
그런 식으로 인물의 내면에 깊숙이 들어가려면 시대에 대한 분석이 필수일 것 같다. 시대에 대해 어떤 준비를 했나.
장혁 : 기본적인 토대를 가진 자료는 봤다. 예전에 을 하면서도 상인을 연기해야 하니까 화폐와 보부상, 경감 상인 같은 내용을 공부한 것처럼. 애드립을 하려면 그런 부분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의 역사적 시기는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바뀌는 시기고, 그러다 보니까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 와중에 양반 입장에서는 부동산이나 다름없는 노비들이 자꾸 도망치니까 추노꾼이 생긴 거다. 그 시절에 일종의 용병이면서 탐정인 셈이다. 발자국을 보고 쫓아가고, 필요할 때는 싸우고.
글. 강명석 two@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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