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노골적일 수 있을까? KBS 은 명문대를 지상가치로 둔 집단이 상징하는 사회의 환부에 현미경을 들이댄다. 강석호(김수로)는 학생들의 천하대 진학만이 학교를 살릴 수 있다 믿고, 차기봉(변희봉)은 주입식 교육만이 살 길이라 부르짖는다. 그나마 학생들을 사람으로 대하는 한수정(배두나)도 결국은 학교라는 거대한 조직을 거스를 순 없다. 이 암담한 학교에서 유일하게 희망적인 것은 아이들뿐이다. 저마다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한 포기의 꿈조차 자랄 수 없을 것 같은 메마른 학교에서 조금씩 자라고 있는 병문고 학생들. 결국 우리는 이 아이들에게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김교석, 김선영 TV 평론가가 답했다. /편집자주

은 그간 맥이 끊겼던 본격 청소년물이다. 일본에서 원작 만화는 물론 드라마까지 이미 성공한 레퍼런스를 갖고 있는 에서 갈등은 별로 중요해보이지 않는다. 대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갖는 수능, 학업, 학교라는 삶의 무게, 중력이 만화 같은 상황 속에서도 오롯이 느껴진다. 게다가 순도 100% 청소년 언어들이 빈번하게 쓰이고 공부 비법이 중간 중간 팁으로 등장하니 눈높이를 이보다 더 노골적으로 청소년들에게 맞춘 드라마도 없었다.

입시 앞에서도 바래지지 않는 풋풋함
을 보면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학교라는 배경과 교복 때문이 아니라 강석호(김수로)식 교육관과 학습법에 대한 거부감 때문일 것이다. 사회의 승자가 되기 전에 하는 불만과 불평은 루저의 몫이라는 이 드라마의 노골적인 시선. 만점, 일류대만이 가치 있고, 주입식, 암기식 교육이 진짜 공부라고도 말한다. 그리고 ‘모든 공부의 기본은 무식한 암기’라는 공부법이나 교육관에 대한 호오와 상관없이 모두가 포기한 꼴통들에게 지금 현재 성적이 어떻든 공부를 해서 시스템 안에 들어오라고, 그 꼭대기에 너도 설 수 있다고 손을 내민다. 누구나 공부를 잘 할 수 있다는 말엔 학업과는 이미 관계가 없어진 시청자들도 솔깃하게 만든다. 나를 믿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든든함. 이 만화 같은 분할화면과 CG를 쓰고, 오윤아, 박휘순 등이 만화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지만 만화 같다, 유치함을 넘어서 청소년들을 사로잡는, 청소년물의 맥을 잇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 지점이다. 또한 청소년들이기에 갖게 되는 고민을 만화적인 극 속에서 현실적으로 설정했다. “우린 아직 학생이니까 공부해야 하잖아”라는 풀잎(고아성)의 지당한 대사는 거의 대부분의 청소년들에게 유효하다. 누구나 다 하는 공부가 소재인 까닭에 청소년들이 갖는 보편적인 정서와 공감을 이끌어낸다. 강석호가 살벌하게 말하고, 중간고사와 같은 미션이 다가올수록 전쟁터와 같은 입시 앞에서 이들은 성장한다. 이들의 성장은 곧 성적이다. 공부하는 과정에서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가 되고, 그런 배경 위로 마른 땅에 풀 한포기 자라듯이 우정, 사랑, 행복, 아픔 그리고 이것들을 아우르는 풋풋함이 피어난다.

의 진짜 주인공들
그래서 김수로와 배두나 오윤아가 KBS 에 주연으로 출연했지만 이 드라마의 실제 꽃은 고아성, 유승호, 이현우 지연으로 이어지는 천하대 특별반 학생들이다. 김수로가 주연임은 확실하지만 주인공이 아니다. 갈등과 위기도 이 드라마의 미덕이 아니다. 친구를 위해 일탈도 해보고, 삐걱거리다가도 서로 대동단결해 강석호(김수로)의 국에 겨자를 푸는 장난도 친다. 이렇게 웃고 떠드는 속에 드러나는 말투와 표정이 바로 청소년의 그것이다. 이 드라마의 핵심은 바로 이 만화 같은 표정에 있다. 친구가 더 잘 외울 수 있도록 염력을 보내는 귀여운 짓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이들이 모여서 장난치거나, 아니 대화만 해도 화면이 화사해진다.

어려운 현실이나 불량 청소년들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면(그렇다 하더라도) 밝은 햇살, 싱그러운 풀잎 같은 풋풋함은 청소년물의 필수요소다. 에서는 고아성의 맑은 웃음에, 유승호의 삐딱함에 이현우의 미소에, 지연의 앙증맞은 몸짓에 그것이 있다. 이 웰메이드 드라마라 불리기는 힘들겠지만, 확실히 이들의 얼굴만으로도 이 풋풋함이 피어난다. 청소년물이란 청소년만을 위한 장르가 아니다. 그 시절의 추억을 느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환상과 행복, 기억들을 떠올리게 해야 한다. 어두운 현실을 무겁게 그려야만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게 아니다. 의 상황과 캐릭터의 현실은 어둡지만 간질거리면서도 행복한 공기가 가득 차는 것은 이들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풋풋한 젊음이 있기 때문이다.
글 김교석의 강석호(김수로)는 영화 의 현수(권상우)가 만약 학교를 중퇴하지 않고 공부를 했다면, 이라는 가정 하에서 탄생했을 법한 인물이다. 체제 순응형 인간을 양성하기 위한 억압의 교실에서 현수는 쌍절곤을 들었지만, 석호는 ‘사회의 룰을 바꿀 수 있는’ 길은 공부에 더 가까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열심히 공부해서 변호사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사회의 룰을 바꿀 수 없다. “대학 못나온 놈은 잉여인간” 취급을 받던 1970년대 영화 속 현실은 2000년대가 배경인 드라마 속에서 ‘일류대 못가면 루저’인 현실로 더 악화되었다. 갈수록 심화되는 이 학원 잔혹사에서 꿈조차 꿀 수 없는 아이들에게 과연 공부라는 종교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교실 이데아, 신자유주의 세계관의 압축판
첫 회에서 강석호는 병문고 학생들에게 열심히 공부해 국내 최고 명문대 천하대에 들어가 불평등한 사회의 룰을 바꾸는 사람이 되라고 연설한다. 하지만 천하대 특별반 아이들이 배우는 것은 오히려 “규칙이 얼마나 중요하고 무서운 건지” 깨닫는 일이다. 그들을 통해 끊임없이 반복되는 미션과 배틀 구도는 우리 사회의 무한 경쟁 시스템을 그대로 형상화한다. 석호의 말 그대로 “전쟁터”인 교실 안에서 그들이 터득하는 것은 사회의 룰을 바꾸는 법이 아니라 그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이다. 그 제1원칙은 “맡은 바 본분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강석호가 자장면을 배달하던 백현(유승호)과의 첫 대면에서 한 충고도, 학생들과 교사들 앞에서 누누이 반복하는 강조점도 이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다. 결국 에서 희망의 메시지는 이 원칙을 핵심으로 한 신자유주의 시대 최대의 생존법이자 복음, 즉 자기 계발의 서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서사는 병문고 재건 프로젝트와 풍진동 재개발 문제와도 얽혀있다. 먼저 병문고의 재단법인 병문 건설을 합병하고 풍진동 재개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왕봉 건설은 강석호의 표현대로 ‘약자를 먹어치우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적 승자독식사회의 기득권을 대표한다. 강석호는 집값 인상 때문에 재개발을 촉구하는 풍진동 주민들과 자리보전을 위해 왕봉 그룹의 병문고 인수에 찬성하는 교사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왕봉 그룹의 계획을 저지시키기 위해 병문고 재건 프로젝트를 계획한다. 그러나 “강한 자만이 살아 남는다”와 “교육도 시장에서 요구하는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신념을 고수하는 그의 프로젝트 역시 왕봉 건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결국 신자유주의 시대의 맞춤형 서사인 자기 계발의 확장판에 불과할 뿐이다.

신자유주의의 시간을 거스를 수 있을까
세간의 유머로 떠도는 공부 시리즈가 있다. ‘10대, 꿈을 위해 공부에 미쳐라’, ‘20대, 공부에 미쳐라’, ‘30대, 다시 공부에 미쳐라’, ‘40대, 공부 다시 시작하라’, ‘50대, 공부하다 죽어라’ 등 자기계발 서적의 악순환적인 제목을 순서대로 나열한 이 유머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기 계발이라는 말로 포장하여 인간 삶의 모든 단계를 무한 경쟁 논리 안에 포섭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은 이제 그 무시무시한 경쟁 논리가 성장에 더 방점을 찍어야하는 청소년 드라마까지 장악했음을 보여주는 첫 번째 사례다. 물론 반전의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차기봉(변희봉)은 주입식 교육의 신봉자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가 꼬장꼬장하게 고수해온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교육의 가치는 울림을 주기도 한다. 수업료 대신 김치를 받거나 무료로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그의 모습은 교환가치화될 수 없는 교육의 한 가치를 보여주며, 양춘삼(이병준)의 속물주의와 대조된다. “누구든 주어진 시간이” 공평한 그의 40년된 알람시계는 어쩌면 마지막 남은 교육의 평등의 가치를 상징하는 지도 모른다. 같은 맥락으로 한수정(배두나)과 그녀의 동생처럼 어려운 학생들을 지원해주던 전 이사장의 교육 정신이 있을 것이다. 왕봉 그룹에게 밀리고 이제는 병상에 무력하게 누워있지만 그의 교육 철학은 한수정에게 이어질 것이다. 이 희미한 희망을 바탕으로 이 후반에는 다른 반전을 준비하고 있기를 기대한다.
글 김선영

글. 김선영(TV평론가)
글. 김교석(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