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노규민 기자]
영화 ‘증인’ 포스터/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순호(정우성)는 한때 민변계의 파이터로 불린 남자다. 하지만 지금은 현실과 타협한 대형 로펌의 변호사다. 아버지(박근형)의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의 신념은 접어뒀다. 오로지 ‘돈’과 ‘출세’가 먼저다.

그런 순호가 로펌 대표의 제안으로 한 사건을 맡게 된다. 앞서 한 할아버지가 비닐봉투를 뒤집어쓴 채 사망했고, 현장에 있던 가정부 미란(염혜란)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다. 순호는 이 살인 용의자의 무죄를 입증해야 한다.유일한 목격자가 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소녀 지우(김향기)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자폐아’라는 이유만으로 소녀를 신뢰하지 못한다. 자폐아 동생을 둔 검사(이규형) 만이 지우를 믿고 있다. 검사의 말에 따르면 자폐아는 거짓말을 못한다. 하지만 순호는 지우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잘못 봤거나, 판단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순호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지우에게 접근한다.

지우는 한번 본 것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포토그래픽 메모리를 지닌 소녀다. 젤리는 파란색, 라면은 오뚜기만 먹는 등 철저하게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어 소통이 쉽지 않다. 특히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한다. 웃는 얼굴인데 나를 싫어하는 친구, 화난 얼굴인데 나를 사랑하는 엄마 등 ‘사람’에 관해 알 수 없어서다. “아저씨도 나를 이용할 겁니까?” 해맑아 보이기만 한 소녀의 입에서 어쩌다 이런 말이 나올까.

영화 ‘증인’ 스틸컷/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순호와 지우, 두 사람의 만남과 소통은 순탄치 않다. 하지만 그 소통의 과정이 관객에게 소소한 재미와 가슴 뭉클한 감동을 안긴다.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따뜻한 시선과 섬세한 연출로 풀어낸 이한 감독은, 자칫 신파로 이어질 수 있는 이야기를 적절한 완급 조절을 통해 균형을 맞췄다. 어쩌면 뻔해 질 수 있는 이야기에 가슴을 저릿하게 하는 대사들로 숨을 불어 넣었다.

지난 몇 년간 ‘더킹’ ‘강철비’ ‘인랑’ 등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보여왔던 정우성은 오랜만에 힘을 빼고 돌아왔다.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캐릭터로 공감을 선사한다. 김향기가 ‘증인’ 인터뷰에서 “우성 삼촌이 순호와 같은 역할을 자주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처럼, 이전보다 더 자연스럽게 캐릭터를 소화해냈다.

김향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지우를 완벽에 가깝게 표현했다. ‘자폐아’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철저하게 지우의 상황에 따라 연기했다. 말투와 행동을 과하지 않게 하면서도 현실을 불안해하는 모습 등을 디테일하게 표현했다. 김향기가 왜 ‘쌍천만 배우’이고 ‘청룡영화제’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는지가 ‘증인’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영화 ‘증인’은 이 한마디 대사만으로도 묵직한 울림을 주고, 깊은 여운을 남긴다. 13일 개봉.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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