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유청희 기자]
“‘이별이 떠났다’는 엄마의 이야기이기 이전에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충분히 능력이 있던 여성이 결혼 후 희생 아닌 희생을 하게 되고, 남편의 바람으로 상처와 큰 충격을 받죠. 3년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이 여자가 얼마나 절망했을까’를 고민하며 연기했습니다. 이 고통 속에서 지내다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는 캐릭터가 흥미로웠어요. 내가 표현할 부분이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한국 드라마에서 남자한테 상처 받은 여자는 흔히 새로운 남자에게 구원을 받는다. ‘이별이 떠났다’의 서영희는 달랐다. 자신보다 낮은 위치의 미혼모이자 아들의 연인인 정효(조보아)를 도와주며 스스로 성장했다. 새로운 남자가 아니라 새 직업을 갖고 사회로 나아갔다. 그의 변화는 시청자들에게도 통했다. 지난 4일 ‘이별이 떠났다’는 시청률 9.8%로 종영했다.
‘이별이 떠났다’는 정효를 통해 ‘모성’과 그 숭고함을 찬양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채시라는 모성보다는 한 여성의 성장에 집중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복잡한 내면을 가진 서영희를 위해 채시라는 독한 연기와 함께 문어체 위주의 대사를 외워야 했다. “암기에는 자신이 있어 괜찮았다”다고 했지만, 어두운 방에서 내뱉는 독백과 감정 연기는 힘들 법도 했다. 채시라는 “내가 원래 나레이션은 잘한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대사도 많고 감정 신도 많았어요. 게다가 퍼져있는 것도 아니고 몰려서 나오니까 힘들기도 했고요. 하지만 영희의 감정을 끌어올리려면 얕은 감정으로는 표현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더 좋은 연기는 뭘까, 최선은 뭘까,계속 고민하면서 연기했죠.”커리어우먼으로 변신하는 서영희를 위해 6년 동안 기른 머리도 잘랐다. 대본에도, 소설에도 없는 설정이었단다. 소설의 끝은 원래 영희가 일을 갖는 게 아니라 정효의 아이를 대신 길러주는 거였다. 채시라는 “작가는 ‘그건 내가 할거야. 너까지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아’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제작진은 시청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했고, 영희가 일을 갖게됐다. 공대 출신에 원래 일도 잘했던 캐릭터였으니까”라고 말했다.
“머리를 자르는 건 처음부터 ‘영희가 일을 하게되면 자르자’고 생각해 내가 먼저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자르니까 주위에서 놀라더라고요. 오랜 만에 잘라서 임팩트가 있던 것 같아요. 원래 작품을 위해 머리를 기르고 있었어요. 그런 다음에 캐릭터에 따라 필요하면 삭발을 하는 식이어서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죠.”
“서영희는 그 공감의 정도가 ‘10’, 아니 100이라면 100이고, 1000이라면 1000이었을 겁니다. 결혼을 하면 내 생활이 줄어들고, 아이 위주로 돌아가는 생활에 남편과의 관계도 줄어듭니다. 결혼이 나를 ‘갉아먹는’ 게 아니라 ‘긁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공감할 수밖에 없었죠.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정말 나만 손해였어’라고 비관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행복했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거든요. 영희는 고통이 극대화된 인물이라 ‘나를 갉아먹는 짓’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채시라는 1982년 잡지 ‘학생중앙’의 표지 모델로 데뷔했다. 이후 ‘가나초콜릿’ CF를 시작으로 20대가 되기도 전에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연예계에 입문해 이제는 중견 배우가 됐다. 20대 배우와 50대 배우의 느낌은 어떻게 다를까.
“20대 때는 불확실성이 있었어요. 연기를 하는데 ‘생각’보다는 그냥 동물적으로 과감히 나가는 부분이 강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따라왔죠. 지금은 연륜이 쌓였어요. 정말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 20대들은 절대 갖지 못하는 겁니다. 저희 아버님이 저한테 이럽니다. ‘넌 늙어봤니? 나는 젊어도 보고 늙어도 봤다’라고요.”
“이렇게 하는 것이 더 낫다는 확신이나 자신감, 감정을 끄집어내는 노련함이 수많은 작품을 통해서 생겨났죠. 제 나이는 사실 중간이지 늙었다고는 할 수 없어요. 한창 익어간다고 해야 할까… 70 이상은 되어야 ‘조금’ 늙었다고 할 수 있겠죠. 내가 갖고 있는 조건을 충분히 활용하면서, 얼마든지 내 역할을 리드해 나갈 수 있는 것, 그런 게 지금은 가능해졌어요.”
그렇다면 50대인 지금이 20대보다 더 좋을까. 채시라는 “돌아갈 수 없기에 그런 건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세상에는 수많은 인간군상들이 있어서 아직도 해보고 싶은 게 많단다. ‘이별이 떠났다’에서 영희처럼 약자를 돌봐주는 인물을 연기했으니 다시 ‘센 캐릭터’를 할 때가 된 것 같다고도 했다. ‘인수대비’ ‘다섯 손가락’ 등이 그가 꼽은 ‘센 캐릭터’의 작품들이다.
“ ‘천추태후’에서는 말도 타고, 칼도 들고, 활도 쐈습니다. 언젠가 현대물 액션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던 적이 있어요. 기본적으로 운동 신경은 있는 편이라 액션도 가능하고, 멜로도 좋습니다. 이렇게 보면 할 게 정말 너무 많네요. ‘여자 테이큰’ 같은 작품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형사가 나오는 수사물 액션도 좋지만, 일상생활에서 아주 평범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갑자기 변화하고 복수를 꿈꾸는 그런 캐릭터 말입니다. 말해 놓고 보니 정말 괜찮은 것 같네요. 제가 어울릴 것 같나요?”
유청희 기자 chungvsky@tenasia.co.kr
배우 채시라/사진제공=씨제스 엔터테인먼트
‘서울의 달’ ‘여명의 눈동자’ ‘아들의 여자’ ‘천추태후’…. 35년 차 배우 채시라의 필모그라피는 대작, 인기작 등 굵직한 작품들로 빼곡하다.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이별이 떠났다’는 그런 점에서 좀 특별했다. 대작도, 스타 드라마 작가의 작품도 아니었다. 웹소설 원작의 40부작 드라마로, 남편의 외도로 상처를 입고 3년 동안 두문불출한 50대 여성 서영희가 20대 미혼모와 동거하며 변화하는 모습을 연기했다. 2015년 ‘착하지 않은 여자들'( KBS2) 이후 3년 만에 복귀한 채시라를 만났다.“‘이별이 떠났다’는 엄마의 이야기이기 이전에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충분히 능력이 있던 여성이 결혼 후 희생 아닌 희생을 하게 되고, 남편의 바람으로 상처와 큰 충격을 받죠. 3년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이 여자가 얼마나 절망했을까’를 고민하며 연기했습니다. 이 고통 속에서 지내다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는 캐릭터가 흥미로웠어요. 내가 표현할 부분이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한국 드라마에서 남자한테 상처 받은 여자는 흔히 새로운 남자에게 구원을 받는다. ‘이별이 떠났다’의 서영희는 달랐다. 자신보다 낮은 위치의 미혼모이자 아들의 연인인 정효(조보아)를 도와주며 스스로 성장했다. 새로운 남자가 아니라 새 직업을 갖고 사회로 나아갔다. 그의 변화는 시청자들에게도 통했다. 지난 4일 ‘이별이 떠났다’는 시청률 9.8%로 종영했다.
‘이별이 떠났다’는 정효를 통해 ‘모성’과 그 숭고함을 찬양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채시라는 모성보다는 한 여성의 성장에 집중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배우 채시라/사진제공=씨제스 엔터테인먼트
“남다른 이야기에 남다른 캐릭터였습니다. 집 안에 은둔해 있지만 외적인 매력을 잃지 않는 서영희의 모습도 신기했어요. 여기에 모가 나고 발톱을 세운 인물이었죠. 일부러 적나라한 모습으로 정효가 나가떨어지기를 기다린 겁니다. 그런데도 자신에게 계속 의지하는 정효를 보고 ‘보호해줘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보듬게 돼요. 그런 부분이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게 쉽지가 않은데 말이에요.”복잡한 내면을 가진 서영희를 위해 채시라는 독한 연기와 함께 문어체 위주의 대사를 외워야 했다. “암기에는 자신이 있어 괜찮았다”다고 했지만, 어두운 방에서 내뱉는 독백과 감정 연기는 힘들 법도 했다. 채시라는 “내가 원래 나레이션은 잘한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대사도 많고 감정 신도 많았어요. 게다가 퍼져있는 것도 아니고 몰려서 나오니까 힘들기도 했고요. 하지만 영희의 감정을 끌어올리려면 얕은 감정으로는 표현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더 좋은 연기는 뭘까, 최선은 뭘까,계속 고민하면서 연기했죠.”커리어우먼으로 변신하는 서영희를 위해 6년 동안 기른 머리도 잘랐다. 대본에도, 소설에도 없는 설정이었단다. 소설의 끝은 원래 영희가 일을 갖는 게 아니라 정효의 아이를 대신 길러주는 거였다. 채시라는 “작가는 ‘그건 내가 할거야. 너까지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아’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제작진은 시청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했고, 영희가 일을 갖게됐다. 공대 출신에 원래 일도 잘했던 캐릭터였으니까”라고 말했다.
“머리를 자르는 건 처음부터 ‘영희가 일을 하게되면 자르자’고 생각해 내가 먼저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자르니까 주위에서 놀라더라고요. 오랜 만에 잘라서 임팩트가 있던 것 같아요. 원래 작품을 위해 머리를 기르고 있었어요. 그런 다음에 캐릭터에 따라 필요하면 삭발을 하는 식이어서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죠.”
배우 채시라/사진제공=씨제스 엔터테인먼트
결혼 후 1남 1녀를 둔 채시라는 행복한 가정 생활로 유명하다. 그러나 극 중 서영희는 상처 받은 인물이다. 극 초반 ‘결혼은 나를 갉아먹는 짓이야. 여자만 빼고 모든 게 다 변해버려. 변하지 않은 여자만 남겨지는 거야’ ‘여자는 엄마가 되면 이름이 다 지워져’ 등 단정적인 대사를 내뱉는다. 자신과는 다른 상황에 처한 인물에게 공감하기가 어땠을까. 채시라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혼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공감할 수밖에 없는 문장”이라고 했다.“서영희는 그 공감의 정도가 ‘10’, 아니 100이라면 100이고, 1000이라면 1000이었을 겁니다. 결혼을 하면 내 생활이 줄어들고, 아이 위주로 돌아가는 생활에 남편과의 관계도 줄어듭니다. 결혼이 나를 ‘갉아먹는’ 게 아니라 ‘긁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공감할 수밖에 없었죠.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정말 나만 손해였어’라고 비관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행복했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거든요. 영희는 고통이 극대화된 인물이라 ‘나를 갉아먹는 짓’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배우 채시라/사진제공=씨제스 엔터테인먼트
실제 엄마와는 너무 다른 극 중 서영희의 모습에 자녀들이 낯설어 하지는 않았을까. 그는 “아이들이 ‘잘했다’ ‘엄마 예쁘다’고 말해줬다”며 웃어보였다. 이어 “집에서 화를 안 내는 편이긴 하지만 화를 내야 할 때는 낸다”며 “부모로서의 일관성도 중요하지만, 엄마도 개인의 여러 다양한 모습을 보이면서 아이들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채시라는 1982년 잡지 ‘학생중앙’의 표지 모델로 데뷔했다. 이후 ‘가나초콜릿’ CF를 시작으로 20대가 되기도 전에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연예계에 입문해 이제는 중견 배우가 됐다. 20대 배우와 50대 배우의 느낌은 어떻게 다를까.
“20대 때는 불확실성이 있었어요. 연기를 하는데 ‘생각’보다는 그냥 동물적으로 과감히 나가는 부분이 강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따라왔죠. 지금은 연륜이 쌓였어요. 정말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 20대들은 절대 갖지 못하는 겁니다. 저희 아버님이 저한테 이럽니다. ‘넌 늙어봤니? 나는 젊어도 보고 늙어도 봤다’라고요.”
배우 채시라/사진제공=씨제스 엔터테인먼트
50대가 되니 확신이 생겼다는 채시라. 그는 “지금은 하나를 가지고도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게 됐고, 여유롭고 능수능란하게 표현할 수 있어 좀 더 확실성이 생겼다”고 설명했다.“이렇게 하는 것이 더 낫다는 확신이나 자신감, 감정을 끄집어내는 노련함이 수많은 작품을 통해서 생겨났죠. 제 나이는 사실 중간이지 늙었다고는 할 수 없어요. 한창 익어간다고 해야 할까… 70 이상은 되어야 ‘조금’ 늙었다고 할 수 있겠죠. 내가 갖고 있는 조건을 충분히 활용하면서, 얼마든지 내 역할을 리드해 나갈 수 있는 것, 그런 게 지금은 가능해졌어요.”
그렇다면 50대인 지금이 20대보다 더 좋을까. 채시라는 “돌아갈 수 없기에 그런 건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세상에는 수많은 인간군상들이 있어서 아직도 해보고 싶은 게 많단다. ‘이별이 떠났다’에서 영희처럼 약자를 돌봐주는 인물을 연기했으니 다시 ‘센 캐릭터’를 할 때가 된 것 같다고도 했다. ‘인수대비’ ‘다섯 손가락’ 등이 그가 꼽은 ‘센 캐릭터’의 작품들이다.
“ ‘천추태후’에서는 말도 타고, 칼도 들고, 활도 쐈습니다. 언젠가 현대물 액션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던 적이 있어요. 기본적으로 운동 신경은 있는 편이라 액션도 가능하고, 멜로도 좋습니다. 이렇게 보면 할 게 정말 너무 많네요. ‘여자 테이큰’ 같은 작품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형사가 나오는 수사물 액션도 좋지만, 일상생활에서 아주 평범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갑자기 변화하고 복수를 꿈꾸는 그런 캐릭터 말입니다. 말해 놓고 보니 정말 괜찮은 것 같네요. 제가 어울릴 것 같나요?”
유청희 기자 chungvsky@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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