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밤을 걷는 선비’ 18회 2015년 9월 3일 목요일 오후 10시
다섯줄 요약
귀(이수혁)는 용상에 앉아 자신이 왕임을 선포한다. 김성열(이준기)은 양선(이유비)의 간호로 깨어나지만, 평정을 되찾은 뒤 자신의 지난 밤을 기억하지 못한다. 귀는 ‘흡혈귀 난동 사건’을 조작한 뒤 직접 군사를 이끌고 가 소탕 작전을 펼친다. 백성들 중에는 귀가 퍼뜨린 유언비어대로, 귀를 구원자로 김성열을 ‘궁에 살던 흡혈귀’로 오해하는 이들이 생겨난다. 쫓겨난 주상(심창민)은 가까스로 죽음을 면하고 검은 도포단을 규합한다.리뷰
세상은 어이없고 기가 막히는 일들로 가득해졌다. 어전회의를 위해 모여 있던 대신들은, “이제 내가 왕이다”라는 귀의 말을 들으면서도 차마 믿지 못했다. 주상은 폐위시켜 귀양 보냈으면서, 중전 혜령(김소은)을 대동하고 들어서며 “그렇지 않소, 중전?”이라고 마치 남편이라도 되는 듯 친근하게 부르는 귀의 모습에 대신들은 자신의 눈과 귀를 의심했다. 귀에게 충성하면서 ‘은전’으로 배를 불리며 누려온 영화의 끝은, 이런 금수만도 못한 꼴을 보는 일이었던가. 귀가 정하면 다 법도가 되는 것인가.
천하의 아첨꾼 영의정조차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적어도, 허수아비 왕 노릇이나마 사람을 통해서 할 것이라는 최소한의 기대가 깨졌기 때문. 영상은 왕실을 몰아내고 자신이 왕좌에 앉는 꿈을 꾸었겠으나, 이는 다 헛꿈이었다. 귀는 직접 왕 노릇을 하며 충성과 함께 전 재산을 바치라고 호령했다. 귀는 너무도 쉽게 왕의 권한을 휘두르며 기분 내키는 대로 저질렀다. 대신들이 반발하자 “그간 걷어 들인 은전을 바쳐라. 은전을 녹여 전쟁을 준비하겠다”고 한다. 어차피 탐관오리 짓으로 모은 재산들이지 않느냐며 비웃었다. 귀는 지난밤 흡혈본능을 사람들 앞에서 보였던 김성열을 ‘궁에서 살다 쫓겨난 흡혈귀’로, 자신은 그 흡혈귀를 처단하고 세상을 다스릴 구원자임을 선포했다. 전쟁의 명분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흡혈귀 난동 사건은, 왕이 된 귀의 첫 ‘작전’이었다. 몇몇 사람을 물어 흡혈귀로 만들어 놓고 이를 김성열의 소행으로 뒤집어씌웠다. 총을 들고 직접 군사를 동원해 흡혈귀를 소탕했다. 백성들 중에는 귀를 따르는 이들도 생겨났다. 그러나 그 장면의 잔인성이란. 총으로 ‘흡혈귀가 된 백성들’의 등을 쏘는 장면들이 하염없이 공포스러웠다. 만족한 귀의 웃음은 피를 빨 때보다 더 소름끼쳤다. 귀는 전쟁 준비를 심심풀이로 여겼다.성열은 심하게 앓는 동안, 안개 속 같은 꿈속에서 부모님의 얼굴을 봤다. 정현세자(이현우)도 스쳐 지나갔다. 꿈길을 걸으면서도 성열은 한없이 서글프고 막막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방안에는 명희가 웃고 있었다. 아, 저 아름다운 미소. 온통 어두운 꿈속에서 명희의 미소만은 환하게 빛났다. 그러나 곧 사람은 모두 사라지고 빈 공간들만 남았다. 그가 걷는 꿈 속 공간은 결국 귀의 지하궁으로 끝났다. 자신의 앞에서 목을 찔리고 피를 흘리는 양선. 꿈조차 피로 물들어 소스라치게 깨어나는 이 악몽의 나날들. 깨어보니 양선이 걱정스레 보고 있었다. 환상 속에서 명희의 미소로 힘을 얻고, 깨어나면 양선의 얼굴을 마주하며 힘을 얻는 성열의 패턴마저 오늘은 쓸쓸하기만 했다. 성열은 간밤에 자신의 한 일이 처음엔 기억 안 나지만, 곧 스스로의 흡혈귀 행각이 떠올라 몸서리를 치며 괴로워했다.
귀는 성열에게 물었다. “너는 다를 거 같으냐? 인간의 피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단 말이냐?” 그 말은 비웃음인 동시에 성열에겐 아픈 자각이었다. 이 유혹을 어찌 이겨낸단 말인가. 백인호의 행방을 묻는 성열은, 그가 죽었다는 것을 알고도 자기 소행인지 자책했다. “언제든 인간을 해할 수 있는 금수, 그게 바로 나다”라는 그의 고백. 그리고 귀와 싸우려면 귀와 같은 존재가 되어야 했다는 ‘비책’의 뜻을 몸소 체험한 후 선언했다. “비책은 파기되었다” 사람들을 구하고 세상을 구할 다른 방법은, 이제 어디서부터 찾아야 하는 것일까. 시간도 묘안도 부족한 이 상황에서.
수다 포인트
– 외로운 선비님의 꿈조차 서럽기만 합니다.
– 귀는 가짜 왕 노릇을 하며 가짜 ‘홍길동’ 흉내까지 내는군요. 그래도 탐관오리들의 은전은 꼭 받아내기를.
-비책은 파기되었으나, 이야기꾼 양선은 여전히 비장의 무기인가요?
김원 객원기자
사진. MBC ‘밤을 걷는 선비’ 방송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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