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승 PD

[텐아시아=정시우 기자]이견이 있을 수 있나.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하 ‘어벤져스2’)의 흥행돌풍 뒤엔 한국 촬영 분량에 대한 관객들의 호기심이 있었다. 한국의 모습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속에 어떻게 구현됐을지, 그에 대한 관심이 영화 흥행에 기름을 부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놓치고 있는 게 있다. 한국이 등장하는 장면 장면에 국내 스태프들의 손길이 적지 않게 녹아 있다는 사실을. 한국촬영 준비부터 촬영까지, 전 과정을 마블과 함께 한 코리아 유닛 팀. 그 팀을 이끈 이가 바로 이지승 PD다.

그 누구보다 소통이 중요한 PD라는 자리. 뉴욕대 대학원에서 공부하며 익힌 영어 실력은 이지승 PD가 ‘어벤져스2’ 촬영에 탑승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됐을 테다. ‘색즉시공’(02), ‘청춘만화’(06) ‘해운대’(09) ‘통증’(11) 등의 풍부한 프로듀서 경험도 마블이 왜 이지승 PD와 작업하려 했는지 이유가 읽히는 부분이다. 지난 2014년 봄, 한국을 뜨겁게 달궜던 ‘어벤져스2’ 한국 촬영의 숨은 뒷이야기를 이지승 PD를 만나 들어봤다.Q. 지하철 옥에 티가 화제였다. 동체 테두리를 따라 일렬로 배치된 한국지하철 내부와 다르게, 2인 좌석이 전방을 향해 버스처럼 배치됐다. 이를 두고 ‘마블이 사전 조사도 안 했냐’는 말들이 나왔다.
이지승: 아, 그건 꼭 말씀드리고 싶었다. 지하철 씬에서 편집된 장면이 하나 있다. 스칼렛 위치가 염력을 쓰는 히어로 아닌가. 원래 콘티에는 스칼렛 위치가 지하철 중간 통로를 지나가면서 염력을 이용해 패닉에 빠진 서울 시민들을 안정시키는 장면이 있었다. 손으로 염력을 쓰며 걸어가면 서울 시민들이 하나 둘 잠잠해지는 그런 장면이었다. 이게 비주얼상의 문제인데, 시민들이 고개를 앞으로 푹 숙이는 장면을 효과적으로 그리기 위해 좌석 배치를 그렇게 한 거다. 사실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의문을 제기하는 스태프도 있었다. 그런데 결국 캐릭터와 내용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서 지하철 내부를 2인 좌석으로 만든 거다. 완벽한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점도 한 몫 했을 테고. 그런 이유 때문이지, 마블이 한국 지하철을 사전 조사도 안 해보고 그렇게 만든 건 결코 아니다.

Q. 로케이션 과정에서 특히 어려웠던 건 뭔가.
이지승: 강남역 촬영을 위한 사전준비에 많은 노력이 있었다. 강남대로가 촬영지로 결정된 게 12월 말이었다. 이후 본 촬영 3개월 전부터 전담 로케이션팀이 강남 각 상점과 업체들을 일일이 만나 “이 부근에서 촬영을 할 수 있으니 이해 바란다”는 사전양해를 구했다. 상점들이 영화촬영으로 인한 영업의 어려움을 느낄 수 있기에 미리 민원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한 거다. 문래동 철강단지도 강남대로 못지않게 고생을 많이 했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촬영이 진행되는 인근 부근 가게에는 어느 정도의 금액을 치르기도 했다.

많은 논란이 있었던 ‘어벤져스2′ 한국 지하철 내부 세트
Q. 알려지지 않은 촬영지는 없나.
이지승: 크리스 에반스가 언론에 주로 노출된 게 상암동에서인데, 상암동 촬영을 끝내고 남산으로 갔다. 왜, 영화를 보면 캡틴 아메리카가 세빛섬을 바라보고 있는 뒷모습이 나오지 않나. 그게 사실은 남산에 있는 한 가정집 옥상이다. 그 옥상을 섭외하려고 제작진이 또 엄청난 고생을 했다. 마블 측이 ‘꼭 그 옥상이어야 한다’고 하는데, 옥상 아저씨가 허락을 안 해줘서…(일동 폭소) 정말이지 3개월을 설득했다. 문래동, 강남대로, 남산 가정집 옥상을 섭외하려 고생한 스태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Q. 한국 로케이션 자체가 워낙 이슈여서 촬영 당시 현장엔 구경나온 사람들로 굉장히 북적였다. 그로인한 어려움은 없었나.
이지승: 없지 않았다. 마블이 가장 우선시 하는 첫째가 안전, 둘째도 안전, 셋째도 안전이었다. 시민들과 기자 분들이 오해할 수 있을 정도로 엄격하게 통제한 면이 있긴 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행여 발생할지 모를 사고에 대한 철저한 대비였다. 시민과의 현장거리 유지, 촬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스태프들과의 현장거리 유지 등이 철저하게 지켜졌다. 심지어 리허설 할 때도 전 블록을 통제했는데, 그 말은 또 현장을 통제하기 위한 많은 수의 제작진이 있어야 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매 촬영현장에는 소방차 두 대와 소방요원, 특수안전요원, 앰뷸런스와 두 명의 간호사가 상주했다.

Q. 안전 얘기를 하니까 떠오르는데, 한국 촬영 첫 날 마포대교 인근에서 변사체가 떠올랐고, 둘째 날 북한이 백령도 인근 NLL 이남 해상으로 수백발의 미사일을 발사했고, 셋째 날 충남 태안 지역에서 5.1규모의 지진이 발생 하는 등 하루도 빠짐없이 사건 사고가 발생했다.(웃음) 일각에선 마블이 한국이 와서 스펙터클한 경험들을 한다고 했는데.
이지승: 하하하. 기억난다. 그런데 우리는 그리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새벽에 차량 전복사고가 일어났는데 어떤 분들은 그 차량이 우리 제작진 차라고 말하기도 했다. 전혀 사실무근이다. 우연히 일어난 사고인데,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이다. 어찌됐든 마블 프로듀서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야기가 “돌발 사고에 대비한 백업플랜(Back-up Plan)이 있느냐”였다. 심할 정도로 많이 들었다. 많은 걸 배우고 느낀 부분이다.Q. 수현 씨도 그랬지만, ‘어벤져스2’ 한국촬영 소식이 알려진 후 보안유지 때문에 힘들었던 걸로 안다.
이지승: 내용 유출이나 촬영장면이 SNS를 통해 나가는 것들에 대해 마블이 굉장히 조심스러워했다. 혹시 모를 유출에 대비, 한국-영국 스태프들 모두 비밀유지 서약서를 썼다. 심지어 놀러오는 손님들도 한 분 한 분 다 썼다. 쌓인 계약서만 해도 어마어마하다.(웃음)


Q. ‘어벤져스2’ 한국 촬영의 경제적 가치를 둘러싼 논란도 뜨거운 감자였다. 한쪽에서는 2조원의 가치가 있다고 했고, 한쪽에서는 부품 꿈일 뿐이라 맞섰다.
이지승: 경제적 가치에 대해서는 내가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순간적일 수는 있지만 고용창출이 된 면이 있기는 하다. 그리고 이 영화가 끝나고 자기 생업으로 돌아간 분들도 있지만, 이번 작업을 통해 영화 현장이라는 것에 매료된 스태프들도 굉장히 많은 걸로 안다. 그들이 여기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다른 현장에서 풀어낼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마인드적인 면에서 배운 게 참 많다. 안전의식에서부터 백업플랜에 대한 계획까지, 이런 것들을 공유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것 같다. 또 지금은 많은 한국영화들이 표준근로계약서를 쓰긴 하는데, 우리는 일찍이 전 스태프들이 모두 표준근로계약서를 썼고, 4대 보험에 가입했다. 오버타임 발생시 오버 페이도 지급됐다. 마블이 법적인 문제에 있어 칼 같은 면이 있다. 그런 것들이 추후에 좋은 견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Q. ‘어벤져스2’ 촬영 후 주위 시선을 어떤가. 혹시 이젠 ‘어벤져스 PD’로 불리지 않나.(웃음)
이지승: 진짜 그렇다.(웃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있다. 주위에서 “인센티브 있지 않아? 있지?”라고 물어보는데, 내 대답은 하나다. “야, 있으면 얼마나 좋겠니!”(웃음) 프리랜서 PD이긴 했지만 엄밀히 말해 나는 갑이 고용한 을의 집단(프로덕션 서비스 회사)에서 일을 한 입장이다. 프로덕션 서비스 회사의 1번 롤은 상대가 마블이든 누구든 최대한 서포트 하는 거다. 공동제작 식으로 갔으면 얘기가 달랐을 테지만, 이번엔 지원에 힘을 많이 썼다.Q.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의미있는 경험이었을 것 같다. 언제 마포대교, 월드컵북로 등의 도로가 완벽하게 통제된 곳에서 앞장서서 통솔을 해 보겠나. 많은 PD들이 부러워할 만한 지점이 아닐까 싶다.
이지승: 맞다. 그건 부러워들 할 것 같다. 의도적이진 않았으나, 모든 것이 통제된 도로 한 가운데 서서 마이크로 전 상황을 지시한 적이 있다. 그때 주변을 딱 둘러봤는데, 물론 내 덕으로 된 것은 아니지만, 나를 중심으로 통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묘했다. 그 느낌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거다.

Q. 참, 워쇼스키 남매의 ‘센스8’ 한국 촬영 때도 한국 팀을 관리한 PD가 있었겠다.
이지승: ‘어벤져스2’때 내 밑에 있던 프로덕션매니저가 그 드라마 PD를 했다.

‘어벤져스2′ 한국 촬영 현장
Q.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역시 선점이 중요하다.(웃음) ‘어벤져스2’에 합류한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주위 반응은 어땠나.
이지승: 일단 믿으려 하지 않았다. “어벤져스가 진짜 와?” 이런 반응이 대다수였다. 확실한 건 영화업계 뿐 아니라 매니지먼트 업계에서도 정말 들썩들썩했다. 최고의 톱배우들이 오디션을 봤다. 솔직히 말해 수현 씨가 리스트에 올라있는 게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캐스팅이 됐고, 너무 멋지게 잘 해 줬다.

Q. 또 다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스타트렉3’도 한국 촬영이 예정돼 있다. ‘스타트렉3’ 제작진들이 당신을 찾을 수도 있겠다 싶다. ‘어벤져스2’를 경험한 노하우가 있으니까.
이지승: ‘스타트렉3’가 (한국 촬영을) 하긴 하나? 말들이 조금 있는 것 같던데… 아무튼 찾아 주면이야.(웃음) 그와 별개로 ‘어벤져스2’는 굉장히 특별한 프로젝트였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Q. ‘어벤져스2’과 관련해 못 다한 이야기가 있다면.
이지승: 어떤 기준인지는 모르겠는데 엔딩크레딧에 빠진 한국 스태프들이 몇몇 있다. 정말 들어가야 하는 스태프들도 빠져서 개인적으로도 너무 안타깝다. 엔딩크레딧의 경우 마블이 최종 결정한 사안이긴 하지만, PD로서 마음이 좀 그렇다.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
이지승: 지금 연출작 후반 작업 중이다.(이지승 PD는 지난 2012년 영화 ‘공정사회’로 데뷔식을 치른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사라진 내일’이라고 배성우-박효주 주연이다. 10월 정도에 관객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벤져스2’ 코리아 유닛 PD 이지승 “아이언맨, 한국 촬영 씬 있었다”(인터뷰①)

정시우 siwoorain@
사진. 팽현준 pangp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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