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자들’ 이현우
어쩌면, 필요한 것은 한 번의 도약대다. 끈질기게 달라붙는 ‘아역배우출신’이란 꼬리표를 잘라낼 터닝 포인트, ‘소년(소녀)’이 ‘진짜남자(여자)’가 될 수 있는 결정적 기회. 냉혹한 쇼비지니스 세계에서 기회는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 도약대를 넘지 못한 채 사라지거나, 도약대에 이르지도 못하고 방황하다 스러져간 많은 아역배우들을 역사는 기억한다. 어린 나이에 연기를 시작한 친구들이 성인의 문턱에서 고민에 빠지는 이유다.신기하게도 이현우에게선 일찍이 연기를 시작한 배우들이 풍기는 조바심 같은 게 보이지 않는다. 이미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통해 한 번의 도약대를 밟았기 때문일까. 그렇다며 갑작스럽게 찾아온 인기에 조금 취한 기운이라도 느껴져야 할 텐데, 그런 분위기도 전혀 아니다. 아마도 이것은, 이현우가 지닌 ‘기술’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조급해하지 않고 달리는 것이 나의 장점”이라고 말하는 이현우는 ‘기술자들’을 통과하며 자신만의 기술/장점을 다시 한 번 연마했다..Q. 오기 전에 인터뷰를 찾아보니, 맥락이 거의 비슷하더라. 소년에서 남자가 됐다는 말, 지겹지 않나? 아직도 소년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게 아쉽거나.
이현우: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어떤 작품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드리느냐에 따라 더 소년 같을 수도, 혹은 더 남자다워 보일 수도 있는 나이 같다. ‘기술자들’ 역시 종배라는 매력적인 인물을 표현하고 싶어서 참여했을 뿐, 남자다움을 특별히 어필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Q. 이현우가 생각하는 남자다움은 뭔가.
이현우: 터프한 사람이 남자답다는 생각은 안 한다. 강해 보이는 사람이 도리어 내면은 여릴 수 있다. 반대로 한없이 애 같고 순수해 보여도 그 안에 강인한 모습을 지닌 사람이 있고. 외면보다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 내 눈에는 더 남자다워 보인다.
Q. ‘기술자들’에서는 어떤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나.
이현우: 그냥 종배의 매력을 어필하고 싶었다. 이현우라는 사람이 종배를 맡았을 때 그 매력이 더 생동감 있게 살아나길 기대했다. 종배에게는 내가 전에 보여주지 않았던 시크하고 시니컬한 부분들과, 한없이 애 같은 모습이 공존한다. 극과 극의 종배를 표현하고 싶어서 외형적인 부분이나 말투, 제스처에 신경을 많이 썼다.Q. 기대했던 것과 비교해서, 종배의 모습이 영화에 잘 표현된 것 같나.
이현우: 기대가 컸던 건지, 아니면 그 이후에 욕심이 커진 건지, 아쉬운 부분이 개인적으로 많이 남는다. 그런데 그게 뭐랄까. 촬영 당시에는 굉장히 열심히 했고 만족하면서 찍었다. 그런데 지금 아쉬움이 드는 것은 영화 촬영 이후 몇 개월의 시간 동안 이현우라는 사람이 많은 것들을 경험해서가 아닐까 싶다. 성숙해진만큼 욕심과 열정이 생긴 거다.
Q. 일찍 연기를 시작한 덕분에 어릴 적 모습이 영상으로 많이 남아 있다. 어떤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는 자신의 얼굴을 보면.
이현우: 아우~ 너무 민망하다. 진짜, 너무너무 민망하다. 하하하.
Q. 다들 그런다. ‘잘 자란 예’라고.(웃음)
이현우: 감사할 따름이다.Q. 누군가 자신의 과거를 기억해 준다는 건, 배우가 갖는 특권인 것 같다.
이현우: 맞다. 정말 그런 생각을 요즘 많이 한다. MBC ‘아빠 어디가’나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보면서, 이게 아이들에게는 좋은 추억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Q. 이현우와 육아예능이라니. 의외다.(웃음)
이현우: 하하하. 예능이나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데, 그건 챙겨본다. 애들이 너무 귀엽다. 또 부모님들마다 아이들 교육 방식이 다르지 않나. 그런 걸 보는 맛도 있다.
Q. 먼 훗날 아이를 낳는다면, 어떤 유형의 아이를 만나고 싶나.
이현우: 삼둥이(대한 민국 만세)? 삼둥이가 너무 귀엽다. 하하하.
Q. 일반화 할 수는 없지만 아역 출신 배우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인 것 같다. 보호 받으며 자란 탓에 세상물정을 모르거나, 반대로 주위의 시선에 실망시키지 않으려 너무 빨리 어른이 되거나. 이현우는 약간 후자 같은 느낌이 있는데.
이현우: 그런 부분도 있고, 더 어리광을 피우는 부분도 있다. 특히 집에서는 완전 애 같다.(웃음) 게으르기도 게으르고. 이런 말하기 그런데, 방 청소도 잘 안 한다. 으하하하. 아무래도 밖에서 보여 지는 모습과 가족이나 친구들 앞에서 보여 지는 모습이 많이 다르다. 그게 나쁜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 환경에 놓여있다 보니 그렇게 되는 부분이 있는데, 적어도 진실 되게 다가가려고 노력은 한다.
Q. 혹시 옷을 허물 벗듯 벗어서 그냥 두는 스타일인가.
이현우: 어떻게 알았지… 그냥 옷걸이 위로 툭~ 하하하하. 이불도 자고 일어났을 때 모양 그대로 하루종이~.
Q. 뭔가 팬들의 희미한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웃음) 이번 작품에서 손가락 타투를 한 것이 이슈가 됐다. 담배 씬도 그렇고.
이현우: 타투는 감독님 생각이셨다. 우리 스타일리스트들이 거기에 ‘어떤 문양을 할지, 반지를 더해서 조금 더 예쁘게 표현해 보자’하는 의견을 보탰다. 담배 태우는 씬 역시 시나리오엔 없었는데, 감독님이 현장에서 만드셨다. 종배에게 ‘나쁜 남자’의 매력을 조금 더 가미하고 싶어 하셨다.Q. 타투와 담배 때문인지, 손이 클로즈업된 씬이 많다. 남자 손이 왜 이리 예쁜가 싶었다.
이현우: 하하하. 사실, 팬 분들이 내 손을 좋아해 주신다.
Q 아, 원래 유명한 손이었나?(웃음) 어쩌다가?
이현우: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무대 인사를 다닐 때 마이크를 든 내 손을 팬 분들이 사진으로 많이 남기셨다.(웃음)
Q. 의외로 남자 손에 매력을 느끼는 여자들이 많다. 이현우도 사람을 볼 때 특별히 눈여겨보는 부분이 있나.
이현우: 특별히 어느 하나에 꽂히는 건 없다. 외적인 부분은 안 본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결국 더 끌리는 건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인 것 같다. 그리고 남자든 여자든 사람마다의 느낌이 있지 않나. 말투에서 풍기는 분위기나 행동에서 형성되는 이미지들…그런 것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 혹은 멀리 해야 하는 사람이 보인다.
Q. 나쁜 남자에 매력을 느끼는 여자들이 꽤 있는데, 같은 남자가 보기에 나쁜 남자는 어떤가.
이현우: 에이, 그냥 나쁜 거다.(웃음) 나쁜 남자가 좋다는 여자들을 보면, 왜 매달리나 싶기도 하다.
Q. 그런데 나쁜 여자에게 끌리는 남자도 많다.
이현우: 그런 케이스도 있던데, 나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이왕이면 착한 여자가 좋다.
Q 2005년 ‘소나기’라는 드라마를 통해 데뷔했으니 벌써 10년차 배우다. 하지만 부모님 뜻으로 연기를 시작한 만큼, 스스로 연기자라고 인식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걸렸을 것 같다.
이현우: 어떤 순간에 훅 왔다기보다, 시간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느낀 것 같다. 요즘 그런 느낌이 조금 더 커지는 시기이긴 하다. ‘기술자들’도 그렇고, ‘연평해전’(6월 개봉예정)을 찍으면서 그런 생각을 특히 많이 했다.
Q ‘연평해전’을 찍으면서 왜 그런 느낌이 크게 왔을까.
이현우: 최종 편집본이 나와 봐야 알겠지만, ‘연평해전’에서 연기한 박동혁이라는 친구는 극을 끌고 가는 캐릭터다. 그렇게 중요한 롤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준비하는 동안 정신적 육체적인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그만큼 나를 혹사시킨 거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 스스로 뭔가 성숙해진 부분이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아까 ‘기술자들’도 지금 와서 보니, 아쉽다고 말씀드린 거다.
Q. 10년간 많은 선택들이 있었을 텐데, 그러한 선택들에 만족하나.
이현우: 만족스럽다. 나는 ‘내가 선택한 게 맞다’고 믿는 성향이 있다. 후회를 안 하는 스타일이다. 가령 엄청난 대작이고 캐릭터가 분명해도 뭔가 끌리지 않은 작품이면 접는다. 그에 반해 크게 주목받지 않는 작은 작품이라도 그게 나에게 크게 다가오면 선택을 한다. 어떻게 보면 약간 단순하다. 많은 걸 재고 따지지 않는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게 뭘까, 어떤 작업이 재미있을까에 집중한다.
Q. 인터뷰하면서 계속 드는 생각이데, 의외로 ‘상남자’다운 모습이 많다. 말투도 그렇고.
이현우: 그렇다니까~ 으하하하. 참 아이러니한 게, 어떤 드라마 오디션에서 모 감독님이 그러셨다. “현우 씨는 너무 착해. 나빠져야 할 필요가 있어. 나빠졌으면 좋겠다”고.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맞는 얘기인 것 같기는 한데, 뭔가 마음 한편으로 혼란이 왔다. 나쁜 면모가 연기할 때 필요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닌 본래의 이미지를 버릴 필요는 없는 게 아닌가란 생각을 했다. 본인이 잘 하는 걸 찾는 것도 배우에겐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물론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잘 안다. 어떤 경험이 내 안에 있느냐 없느냐는 캐릭터를 표현함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으니 말이다.
Q. 모순적인 게 ‘배우니까 많은 걸 경험해 보라’고 하지만, 배우이기에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의 한계가 있기도 하다. 주위 시선들 때문에.
이현우: 그런데 나는 웬만하면 많은 것들을 체험해 보려고 하다. 내 나이에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Q. 주의 시선에 억눌러 살지 않는다는 의미인가.
이현우: 그렇다. 나는 배우에 국한되고 싶지 않다. 인간 이현우로 사는 게 먼저다. 지금이야 재미있고 꿈이 있으니 연기를 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 다른 일에 흥미를 느끼면 배우의 삶을 그만 둘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순간순간 느끼는 대로 사는 게 아닌가 싶다. 한 번 사는 인생이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인데, 거기에서 망설이고 남의 눈치 보며 사는 건 너무 억울한 일이다. 그래서 많이 오픈해 두고 편이다.
Q. ‘상남자’가 맞다니까.(웃음) 친구들과 있을 때의 이현우는 어떤가.
이현우: 정말 까불까불하다.(웃음) 얼마나 까불거리면 친구들에게 그런 소리도 들었다. ‘조증’ 있다고. 하하하. 사진 찍을 때도 얼굴을 망가뜨리고, 장난이 아니다. 비속어가 될 수도 있는데… 우리끼린 ‘존못!’, 그러니까 “존나 못생겼다” 그런다. 하하하. 주로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는데, 워낙 오랜 친구들이라 참 편하다.
Q. 무언가 초월적인 기술을 하나 갖게 된다면 뭘 갖고 싶나.
이현우: 이전에는 순간이동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방금 바뀌었다. 타임머신이 있으면 좋겠다.
Q. 타임머신으로 과거로 가서 어린 이현우를 만나면 뭐라고 얘기 해 줄 텐가.
이현우: 음…“고생 많이 할 거다?”(웃음)
Q. 고생했다고 생각하나.
이현우: 물론 대중의 사랑을 받는 배우라는 직업이 축복받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만큼 알려지지 않은 어려움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얘기해 주고 싶은 거다. 어떤 일이 오든 일희일비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라고.
Q. 최근 유승호 박보검 등 93년생 연기자들과 함께 자주 거론된다. ‘공부의 신’에서 함께 연기한 유승호가 마침 제대했는데, 함께 성장해 가는 친구들이 있는 건 어떤 느낌인가.
이현우: 자극이 확실하게 된다. 그렇다고 그 자극이 질투는 아니다. 뭐랄까. 승호의 행보나 선택들을 보면서 많은 걸 배운다. 보검이도 그렇고. 보검이의 경우 사실 사적인 자리에서 먼저 알았다. 대학입시 때 내 바로 뒤에 앉은 지원자가 보검이었다. 당시 보검이가 출연한 영화 ‘블라인드’가 개봉한 후였는데, 영화를 보고 온 친구들이 그랬었다. “거기(‘블라인드’), 너 나오냐”고. 보검이가 나와 ‘닮은꼴’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던 터라, 시험장에서 만나서 괜히 신기하고 친근했다. 대기 순번 기다리는 한 시간 사이에 엄청 친해졌던 것 같다. 이후에 연락하며 지냈는데, 지금은 보검이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어서 기분 좋다. 선도 굵고, 키도 크고, 참 잘 생긴 친구다.
Q. 그들과 다른 이현우의 장점은 뭐라 생각하나.
이현우: 그 친구들이 안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긍정적인 성격이 아닐까 싶다. 조급해 하지 않고 달리는 거. 나름 나의 무기라고 생각한다.
Q. 이현우 인생을 크게 나눈다면, 지금까지가 이현우의 1기가 아닐까 싶다. 지금 막 두 번째 시기가 시작되지 않았나 싶은데, 그런 의미에서 1기를 돌아본다면 뭐라고 표한할 수 있을 것 같나.
이현우: 어쨌든 과거의 내가 쌓여서 지금의 내가 있는 거다. 그러니 내겐 ‘감사한 시간’이다. 나를 만든 경험이 축적된 시간들이니까.
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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