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K필름 길영민 대표

영화 ‘국제시장’을 두고 말들이 많은 것 같다. 역사왜곡 논란, 진보와 보수의 충돌, 영화평론가 허지웅 발언을 둘러 싼 공방… 소모전으로 흐르고 있는 이념 대립은 잠시 내려두고, 다른 곳을 바라보려 한다. 바로 ‘국제시장’의 현장에 관한 얘기다. “역시 현장이지 말입니다!”를 외쳤던 ‘미생’ 한석율(변요한)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현장은 중요하다. 하지만 억대 출연료를 받는 스타급 배우들과 달리, 정작 현장 스태프들은 열악한 환경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 사실. 불합리한 처우를 받는 스태프들의 ‘행복할 권리’를 위해 나온 것이 바로 표준근로계약서다.

지난 2월 개봉한 영화 ‘관능의 법칙’이 촬영 단계서부터 표준근로계약을 이행한 영화라면, ‘국제시장’은 기획단계를 포함한 전 제작 과정에서 표준근로계약서를 도입한 ‘첫’ 영화다. 모든 스텝들에게 4대 보험 가입, 하루 12시간 촬영시간 엄수, 초과근무수당 지급 등이 지켜졌다. 제작비 180억 원의 거대 예산이 투입된 영화가 많은 ‘제작사들이 기피’하는 표준근로계약서 이행에 발 벗고 나선 것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니까 이 기획은 시쳇말로 ‘국제시장’을 무조건적으로 ‘빠는’ 글이 아니다. 잘 한 것은 모두가 알고 공유하자고 응원의 글이다. (JK필름 길영민 대표와의 인터뷰는 ‘국제시장’ 개봉 전에 이뤄졌다.)Q 표준근로계약을 도입한다고 했을 때 주위 반응은 어땠나.
길영민: 사실 우리는 ‘해운대’ 때 이미 부분적으로 ‘시급제’를 적용했었다. 차승원 주연의 ‘시크릿’ 때도 촬영·조명·제작·연출 4대 부서는 시급으로 계산했고. 따지고 보면 일찍이 표준근로계약을 적용시킨 셈이다. 그런데 당시엔 우리가 실수하는 ‘관리의 문제’도 있었고, 취지와 맞지 않는 괜한 오해가 스태프들과 생기는 것 같아서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생각을 했다. 영화계 전반적인 계몽이 먼저라고 느꼈다.

Q. 아무래도 충무로 시스템을 하루아침에 바꾸기엔 어려움을 있었을 거다.
길영민:
맞다. 그래서 다시 기존의 일반 영화들처럼 ‘도급 계약’(각 파트별 팀장이 제작사와 ‘통계약’을 맺은 뒤 촬영 기간을 대략적으로 계산, 팀내 스태프들에게 돈을 나눠주는 방식)을 했다. 그래도 촬영기간이 오버되면 추가적으로 돈을 더 지급하긴 했다. 그러다가 ‘국제시장’은 표준근로계약을 제대로 한 번 해보자해서 도입하게 됐다.

Q. 표준근로계약서 이야기가 처음 나온 게 2011년이다. 4-5년이 지나도록 지켜지지 않다가 이제야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실행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길영민:
사실 상충되는 이해관계들이 굉장히 많다. 관리하는 제작사 입장에서는 ‘스태프들이 달가워하지 않는데 누굴 위해 해야 하지?’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형평성을 디테일하게 따져서 지켜주지 못하면 부서 간 팀워크가 깨지는 문제도 있고. 또 시간으로 일일이 관리해야 하는데 그렇게 해서 ‘과연 영화 퀄리티는 지켜질까’하는 고민, 12시간이 넘어가서 만원 받던 스태프가 2만원을 받게 되는데 ‘과연 이 친구들이 일사불란하게 빨리 움직여 줄까’ 하는 소심한 고민 등 여러 생각이 든다.
JK필름 길영민 대표

Q. 일부에서는 ‘투자자가 허락을 안 해 줘서 못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스태프들 인식이 부족해서 못한다’고 책임을 회피하기도 하고.
길영민:
일단 제작사가 의지를 가지는 게 중요하다. 하겠다는 의지만 확고하게 가지면 스태프들은 설득시킬 수 있다. 이 제도의 실질적인 의도는 이 친구들을 위한 거니까. 문제는 산업구조의 제일 위에 있는 투자사를 설득시키는 것인데, 사실 대형 투자사 입장에서는 엄청난 돈이 아니긴 하다. 크다면 클 수 있지만 명분이 있는 거잖나. 이 비용을 당연히 써야 하는 기본비용으로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다행히 2013년 노사정 합의 후 CJ 등 투자사들도 생각이 바뀐 부분이 있다.

Q. 표준근로계약을 이행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게 뭔가.
길영민:
가장 큰 고민은 형평성을 찾는 문제였다. 영화라는 게 8시간 딱 일하고 끝낼 수가 없다. 가령 엑스트라 100명이 등장하는 촬영이 9시에 시작된다고 치자. 그럼 그 100명의 분장과 의상을 입히기 위해 분장-의상팀은 새벽부터 나와야 한다. 촬영이 시작된 후에도 계속 붙어 있으면서 수정해 줘야 하고. ‘시간’과 ‘시급’과 ‘임금’의 형평성이 맞아야 하는데, 팀별 형평성이 무너지면 불만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내분이 생길 수도 있고. 모든 팀에 공정해야 보너스 이상의 동기부여가 될 텐데, 그러지 못하면 어쩌나하는 게 가장 큰 고민이었다. 현장에 없는 스태프들에 대한 시간 관리도 문제였다. 의상팀-소품 구하러 가고, 미술팀-도면 그리러 딴 데 가 있고, 제작팀-헌팅 가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었다. 그런 식으로 하나의 고민을 해결하면 또 하나가 생기고, 그 고민을 해결하면 또 다른 하나가 생기고. ‘에이, 하지 말자’ 불쑥 생각이 들다가도 ‘아니, 그래도 해야지~’하는 생각이 왔다 갔다 했다.(웃음)Q. 현장 스태프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길영민:
처음엔 긴가 민가 하는 것 같았다. 일단 스태프 입장에서는 인건비에서 4대 보험료가 빠진다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일 게다. 가령 100만원을 받는다면 예전에는 3.3%인 33,000원만 제하면 모두 자기 거였는데, 4대 보험을 적용하면 15%를 세금으로 떼야 한다. 기존보다 돈은 못 가져간다고 생각하면 조세에 대한 거부감이 생길 수 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4대 보험을 하면 그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실업급여도 받고, 퇴직금도 받고, 의료보험이라든지, 다쳤을 때 산제라든지 모든 적용을 받을 수 있거든. 모든 제작사가 못해줘서 그렇지 해주기만 하면 좋은 건데, 당장 받는 돈의 액수를 생각하다보니 “나는 안 할래!”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스태프가 “안 할래!” 해버리면 이건 표준근로계약의 근간이 흔들려 버리는 거고. 제작사 입장에서는 ‘이걸, 우리가 왜 해야 하지?’가 돼 버리는 거다. 결국 서로에 대한 바른 이해와 제도에 대한 명확한 인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막상 표준근로계약을 하니까, 스태프들의 만족도가 높았다.

Q. ‘관능의 법칙’은 표준근로계약을 도입하면서 1억 4천 만원 정도의 예상이 추가적으로 든 것으로 안다. ‘국제시장’은 어땠나.
길영민:
‘통계약’을 했을 때보다 2-3억 정도가 더 들었다. 헤드 스태프를 빼고 계산하면 8-9억 정도의 임금이 드는데, 표준근로계약서를 이행하면서 11억으로 예산이 늘었다. 20% 정도의 임금이 상승한 거다. 중요한 것은 그 혜택을 누가 받느냐인데, 막내급 스태프들에게 가장 큰 혜택이 돌아간다. 근로기준법이 제시하는 최저 임금을 받지 못하던 친구들의 임금이 모두 오른 거다.

Q. 사실 표준근로계약서에 대한 실효성에 의문을 갖는 스태프들이 상당히 많다. 보여주기 식이라고 비판하는 스태프도 많다. 가령 아직 개봉하지 않은 A주연의 영화 B같은 경우는 표준근로계약서로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통계약’을 한 것보다 임금을 더 못 받아서 스태프들의 불만이 상당하다고 들었다.
길영민: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임금을 보수적으로 맥시멈으로 잡는 경우가 많을 게다. 간혹 12시간을 촬영해야 내가 예상한 돈이 떨어지는데, 감독이 6시간 만에 오케이 하고 촬영을 ‘탁’ 끝내버렸어! 그럼 6시간의 돈은 못 받게 되는 상황이 생기는 거다. ‘국제시장’의 경우 ‘한 달 22회 차’를 보장해줬다. 그러니까 한 달에 10일만 일해도 22일 일한 만큼의 임금을 지급하다는 전제가 있었다. 23일 일하면 22일 플러스 1일 일한 것을 또 따로 지급했고. 그러니까 스태프 입장에서는 적게 일해도 기본적으로 약속된 건 모두 받는 거다. 많이 일하만 일한 만큼 더 지급받는 거고.
‘국제시장’ 스태프들과 배우

Q. 그래서 ‘국제시장’ 스태프들이 계약을 잘 했다는 말들이 나온 것 같다. 야근 철야 작업시, 초과 근무 수당은 어떻게 계산된 건가.
길영민:
시간이 연장되면 1.5배, 시간이 또 넘어가면 2배가 지급된다. 유급휴일도 있었다. 12시간 근무를 하면 그 다음 몇 시간은 쉬어야 한다는, 나름 근로기준법 안에서 지키려 했고. 2014년 근로기준법에서 제시한 최저시급이 5210원, 임단협에서 제시한 최저시급은 5300원 이었다. 우리는 5300원에 맞춰서 계산했다. 그런데 이건 막내급들에게 적용되는 최소한의 시급이고, 여기에서 급이 높을수록 시급을 상향 조정해서 계산했다.

Q. 임금도 임금이지만, 12시간 촬영 후 주어지는 휴식도 정말 필요한 문제였다.
길영민:
외국에는 드라이브가 따로 있다. 일에 전문화가 돼 있는데 우리는 아직 아니다. 그러다보니 스태프들이 밤새 촬영하고, 그 상태 그대로 끝나자마나 장거리 운전을 해서 다음 현장으로 내려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너무 위험한 일이다. 그런 걸 없애고, 휴식을 충분히 주는 게 필요했다. 밥이야 워낙 잘 나오니까. Q. 현장 밥이 가장 맛있다는 얘기는 들었다. 웬만한 ‘집 밥’보다 잘 나온다고.(웃음)
길영민:
하하. 배를 곯는 일은 없으니, 거기에다가 휴식 충분히 주고, 미리 예측할 수 있도록 스케줄 미리 알려주고, 일을 많이 하면 많이 한만큼 수당을 더 챙겨주는, 그러니까 합리성을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Q. 이런 기준이 저예산 영화에도 적용 가능할까.
길영민:
힘든 부분이 많을 거다. 신생 제작사들이나 다른 가치와 기준을 가지고 제각하는 곳에서는 별도의 방안이 필요하다고 본다. 스태프들도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자발적으로 참여해야지 억지로 끼워 맞추려면 힘들 거다.

JK필름 길영민 대표

Q 6개월간 고용 상태에 있어야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는 고용보험의 경우, 촬영기간이 불규칙한 스태프들에게 필요성이 크게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3개월 만에 촬영이 끝나는 경우도 많으니까.
길영민:
그럴 수 있다. 제작·연출부는 촬영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하나의 작품을 6개월 정도하는데, 촬영·조명 같은 기술 스태프들은 촬영하는 3달만 바짝 하고 빠지는 경우가 많으니까. 물론 기술 스태프들이 제작부보다 1년에 작품을 더 많이 할 수는 있겠지. 어쨌든 문화예술계의 특수성을 고려한 4대 보험 적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Q. ‘국제시장’에 김윤진이 출연한다. 미국 드라마 현장을 경험한 그녀에게 ‘국제시장’의 표준근로계약 이행이 어땠는지 물어봤더니, 상당히 만족하더라.
길영민:
미국에는 스태프들의 스케줄만 관리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 수십 명의 스태프들 스케줄을 ‘시, 분, 초’ 단위로 아주 디테일하게 짠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미뤄졌을 때 누구의 잘못인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책임을 물리기 힘든 우리와는 아주 다른 상황인 거다. 사실 그런 모습이 나는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해운대’ 때 미국에 잠시 갔는데 ‘미국 애들은 왜 저럴까. 우리나라처럼 센스도 없고 눈치도 없고. 빨리 빨리 하지 못하니까 저렇게 관리를 하는 구나’ 생각했었다.(웃음)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작은 고민에서부터 시작 했구나’ 싶다. 그러다보니 전문 조감독, 전문 스케줄러, 전문 포커스 풀러(focus puller) 등 전문직들이 생길 수 있었던 거고.

Q. 우리도 할리우드 시스템으로 갈까.
길영민:
완전히 그렇게 갈 것 같지는 않다. 할리우드 시스템과 우리의 예전 관행이라고 하는 것의 중간 정도? 지금보다는 좋아질 거다.

Q. JK필름의 차기작 ‘히말라야’(황정민 주연)도 ‘국제시장’과 같은 계약형태인가.
길영민:
조금 다르다. 기술직들은 ‘국제시장’처럼 시급제로 가는데, 연출·제작부는 월급제로 한다. 표준근로계약서에 나와 있는 시급제는 현장직에게 해당하는 면이 크다. 그런데 프리프로덕션과 포스트프로덕션은 거의 사무직에 가깝다. 출퇴근이 자유롭고 외근도 잦은 업무라 현장직에 맞춰서 갈 수가 없다. 그래서 “월급으로 하자. 대신 과도한 야근에 대한 기준은 따로 마련해서 그 또한 보상해 줄게” 이렇게 얘기가 됐다. 그렇게 되면 스태프 입장에서도 임금에 있어 최소한의 목적은 달성할 수 있고, 우리 역시 관리가 조금 더 수월해 진다.

Q. 이것이야말로 절충안일 수 있겠다.
길영민:
맞다. 의도 자체가 ‘이렇게 해서 급여를 깎아보자’가 아니라, ‘서로 편하게 일하자’니까, 서로 이해만 되면 큰 불만 없이 절충할 수 있는 것 같다.

Q. 그나저나, JK필름의 흥행 타율이 좋다.
길영민:
좋은 편이다. ‘시크릿’과 ‘7광구’ 빼고는. 하하하.

Q. (웃음) ‘JK필름표 영화’라는 표현이 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길영민:
그런 콤플렉스가 있다. JK필름만의 미덕이 분명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에 반해 조금 더 다양한 느낌의 영화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우리가 영화 한 편 한 편 흥하고 망하고에 워낙 일희일비를 오래 해 왔다.(웃음) ‘댄싱퀸’은 기존 JK필름의 범주에 있는데 느낌은 달랐다고 생각한다. ‘내 깡패 같은 애인’이나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도 달랐던 것 같고. 그런 류의 상업영화들, 그러니까 JK필름과는 조금 결이 다른 영화들을 많이 만들려고 하고 있다.

Q. ‘국제시장’처럼 180억 원이 투여된 작품에서 표준근로계약을 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길영민:
결과가 잘 나와야지.(웃음)

Q. 결과가 좋으면 향후 충무로의 표준근로계약 이행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길영민:
관리가 잘 됐고, 만드는 동안 즐거웠는데, 흥행까지 잘 되면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관리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에 점점 변별력들이 생길 테고. 적어도 ‘역시 작품이 잘 되려면, 감독이 오케이 컷을 뽑아내기 위해서 모든 사람들이 밤낮으로 희생해야 해’ 그런 생각에선 조금씩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현장이지 말입니다!① 영화판의 미생들, ‘국제시장’에 주목한 이유

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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