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방면의 일에 능통한 사람, ‘팔방미인’이다. 구혜선은 연예계 대표 팔방미인으로 꼽힌다. 연기, 연출, 노래, 책, 그림 등 여러 방면에서 그의 이름을 볼 수 있다. 누군가는 말한다. 뭐 하나라도 잘 하라고. 또 누군가는 참 능력이 많다고 얘기한다. 이에 구혜선은 이렇게 답한다. 능력이 많아서가 아니라 남들보다 10년 정도 느린 거라고. “아직도 전공을 못 찾았다”는 게 그녀의 대답이다.

전공을 찾아가는 사이 구혜선은 모든 분야에서 차곡차곡 실력을 쌓아 올리는 중이다. 영화도 벌써 세 번째 연출작을 내놓았다. 엄마의 뒤틀린 사랑을 보여주는 영화 ‘다우더’다. ‘구 감독’이란 호칭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직접 출연까지 했다. “제작비 절감” 때문이라지만, 구혜선의 영화 출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자신의 연출작으로 스크린 데뷔한 셈이다. 과거 구혜선은 ‘감독 구혜선은 배우 구혜선의 스타일을 지향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생각이 바뀌었을까. 감독 구혜선 그리고 배우 구혜선을 만났다.

Q. 이제는 구 감독이란 호칭이 제법 익숙해졌을 것 같다. 벌써 세 번째 연출작이다.
구혜선 :
별생각 없는 것 같다. (웃음)Q. ‘다우더’는 어떻게 구상하게 된 건가. ‘복숭아나무’는 어느 날 샴쌍둥이 꿈을 꾸면서 하게 됐다는 말을 했는데, 이번에도 그런 특이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구혜선 : 어느 날 시집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그 친구들 말이 ‘자기는 독립하고 싶었는데 내 아이는 독립시키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 그런 이야기 하면서 구상한 것 같다.

Q. 본인의 이야기는 아닌가.
구혜선 :
내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어떤 장면들에선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 부모님도 엄격한 편이었고, 우리 엄마를 담긴 했다. 전부 다 내 이야기였으면 눈물을 흘리며, 힘들게 말하지 않았을까.

Q. 흔히 생각하는 모성과 다르다.
구혜선 :
나도 많이 맞고 컸는데, 엄마는 기억 못 한다.(웃음) 바른길로 가라고 매를 드신 거지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어렸을 당시 우리에게는 폭력일 수 있다. 그런 생각의 차이를 극적으로 담아내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렇게 친구들 인터뷰를 했던 것 같다. 극 중 대사 중에 엄마가 산(현승민)에게 ‘(문제) 하나 틀리면 다섯 대’라고 말하는 게 있는데 우리 어렸을 때 흔히 그랬다. 지금 보면 놀라운 이야기지만, 그땐 당연했다. 근래에도 마찬가지다. 시대에 따라 어머니상이 바뀔 수 있다. 자녀를 신경 써서 키운다는 게 강압이 되기도 하고.
Q. 구혜선은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가. 어린 시절 엄마한테 모진 구박을 당했음에도, 딸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지막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구혜선 :
사실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 것보다 낳아봐야 안다는 그런 의미다. 엄마를 용서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그 친구가 부모가 되고, 엄마와 딸의 처지가 바뀌었을 때 분명 엄마 같진 않을 거다. 그런데 그렇다고 문제가 안 생기는 건 아니다. 또 다른 시행착오가 분명 있다. 이해했어가 아니라 앞으로 이해해보고 싶다, 알아보고 싶다는 의미다.

Q. 실제 구혜선은?
구혜선 :
엄마가 되기 이전에 ‘독립체’이고 싶다. 단지 집을 따로 사는 독립체가 아니라 모든 걸 혼자 해낼 수 있을 때를 말하는 거다. (불가능한 거 아닌가.) 사실 지금도 언니한테 의지하고 있기도 하고. 마음으로는 독립하고 싶은데, 그 끈을 놓지 않는 건 오히려 나 같다. 여하튼 나와 어떤 남자가 독립적인 가정을 꾸릴 때 엄마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아이를 낳으면 또 엄마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고. 너무 어려운 문제다. 사실 아직도 그 고민이 있어서 이 영화를 한 것도 있다. 내가 엄마를 할 수 있을까, 그 고민이 있었다. 최근에 ‘엄마덕후들의 모임’이라는 블로그를 보게 됐는데, 나한테는 충격이었다. 나는 엄마한테 짜증만 냈으니까. 근데 한편으론 바람이지만, 내 딸은 내 덕후였으면 좋겠다. (웃음)

Q. 근데 엄마가 되기 전에 결혼해야 하고, 결혼하려면 연애가 먼저다.
구혜선 :
지금은 정말 없다. 그런데 갑자기 내일 생길 수도 있으니까. 여전히 충동적인 뭔가를 믿고 산다. 운명의 누구를 만나서 결혼하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언니가 아이를 낳았는데, 둘째를 가지려면 빨리 가져야 한다더라. 첫 출산은 20대에 하는 게 좋다고. 그런 이야기에 압박이 들었던 때도 있다. 또 아이를 보러 갔는데, 너무 이상한 감정이 들더라. 조카를 보는데도 생각이 안드로메다에 다녀왔는데, 내 딸이면 어떨지.Q. 기회를 아예 만들지 않는 건 아닌지.
구혜선 :
절대 ‘철벽녀’ 아니다. 헤드라인에 크게 써 달라. (웃음) 틈틈이 계속 했다. 최근에 연애를 안 할 뿐이지. 그리고 30살이 되면서 생각이 많아진다. 결혼을 염두에 둬야 하는 것도 부담된다. 언제나 좋은 사람 있으면 만날 생각이 있다.

Q. 개인적으로 궁금한 건 뱀파이어 영화는 언제 볼 수 있는 건가. 장편 연출 데뷔작인 ‘요술’ 때에도 이야기했고, ‘복숭아나무’ 땐 캐스팅 단계라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 작품이 아니더라.
구혜선 :
투자가 안 돼서.(웃음) 그리고 오래 두면 썩는다고, 처음 얘기했던 게 5년 전인데 지금은 (그 시나리오를) 나도 이해하기 어렵다.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보면 ‘왜, 왜’ 이런다. 그때의 상상력이 지금과 종류가 다른 것 같다. 지금 그 이야기를 한다면 손을 봐야 한다. 그리고 이번에 현실 이야기를 처음 한 건데, 그것만 봐도 변화는 분명히 생긴다. 여전히 판타지에 대한 갈망이 있지만, 당시 이야기는 내가 이해를 못 해서.(웃음)


Q. 이번엔 캐스팅이다. 매 작품 ‘절친’ 한 명씩은 같이 했던 것 같은데 이번엔 다 처음 호흡을 맞추는 배우들이다.
구혜선 :
이전에는 나를 많이 신뢰해주는 친구들, 배우들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 물론 친분도 친분이지만, 잘 어울릴 것 같아 제안했고, 그들도 시나리오를 보고 선택한 거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친분은 없지만, 심혜진 선배님이 하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적도 없는 선배와 같이한다는 것, 이게 도전이기도 했다. 그랬는데 잘할 일인 것 같다. 낯선 분들에게 시나리오를 드리는 것에 대해 자신감도 생겼다. 그리고 구혜선은 캐스팅도 쉬울 것 같은데 사실 거절 많이 당한다. 다행히 ‘복숭아나무’도, 이번에도 대답이 빨리 호의적으로 왔다.Q. 그럼 심혜진은 애초 1순위로 생각하던 배우였나.
구혜선 :
맞다. 정말 단순하게 ‘안녕, 프란체스카’ 때문이다. 그때 경이롭게 봤다. 심혜진 선배가 아니면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서늘하게 웃기는 게 정말 어려운 데 심혜진 선배는 그렇게 차갑게 웃길 수가 없다. 선배님은 여자도 되고, 엄마도 되고, 안 어울리는 게 없겠구나 싶었다. 따뜻하면서도 차가운 느낌도 공존하시고. 배우로 거리감을 느낀 것도 처음이었다. 저 멀리서 걸어오는데 엄청난 ‘아우라’가, 이런 에너지는 처음 느껴봤다.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있던 유일한 분이었다. 정말 바람은 또 하고 싶고, 또 하고 싶고, 또 하고 싶다. 그런데 의미만 두고 작업할 수 없으니까, 일단 내가 잘 돼야겠다 싶다.

Q. 그럼 배우 구혜선과 심혜진의 호흡은 어땠나.
구혜선 :
실질적으로 눈을 보고 대사 하는 게 없다. 눈을 안 마주치고 촬영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눈을 마주쳤으면 ‘멘붕’에 빠지지 않았을까. 그래도 모니터로 보고, 실제로도 보는데 범접할 수 없다. 실수 안 하려고 초긴장이었다. 선배님은 모르셨을 거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Q. 어린 산 역할 캐스팅도 고심했을 것 같다. 구혜선의 어린 시절을 연기해야 하는 인물이기도 하고, 심혜진과 함께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다.
구혜선 :
뭔가 느낌이 닮은 것 같다. 나도 어렸을 때 착한 얼굴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 20대 때는 많이 웃고 다녔다. 무표정한 연기를 하는 게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승민이도 웃지 않으면 매섭더라. 무표정한 느낌이 비슷했다.Q. 어린 친구지만, 정말 어린 산 역할을 잘 표현한 것 같다.
구혜선 :
어린아이가 아이가 아니더라. 순간 아역이란 생각을 잊었을 정도다. 정말 잘해서. 나는 저 나이 때 저런 감성이 있었나 싶더라.

Q. 최근 드라마 ‘내생애 봄날’에서는 또 전혀 다른 모습이더라.
구혜선 :
정말 금방 크는 것 같다. ‘다우더’ 찍었을 때가 중2였다. 그리고 최근에 드라마를 보는데 여자가 된 것 같더라. 나도 깜짝 놀랐다. (드라마를 봤나 보다?) 심혜진 선배님도 나오고, 승민도 나온다. 그래서 ‘내 생애 봄날’ 팀이 VIP 시사회에 다 왔다. 그때 수영 씨가 ‘헤어롤’을 말고 온 거다. 준혁 씨가 친구인데, 준혁 씨한테 ‘수영 씨 너무 사랑스럽다’고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웃음)


Q. ‘요술’ ‘복숭아나무’는 소재의 독특함을 내세웠다. 그에 반해 ‘다우더’는 소재보다 표현이 독특하다고 할까. 이전에는 ‘은유’였다면, 이번엔 ‘직유’ 같다.
구혜선 :
내 영화를 다 보신 분들은 표면만 변했지, 속은 같다고도 하더라. (웃음) 그런데 방금 얘기한 것처럼, 지금까지는 돌려서 하다 이번에는 직접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하고 나니 재밌더라. 그런 부분은 변한 것 같다. 그리고 이전에는 긍정적으로 영화를 표현했다면, 지금은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동안 상업영화를 흉내 내려고 했던 것 같다. ‘복숭아나무’는 상업영화를 흉내 낸 독립영화 같다. 자꾸 상업영화를 흉내 내고, 그 틈에서 뭘 하려다 보니 긍정성을 줘야 한다는 강압 같은 게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냉정해진 것 같다.

Q. 분명 ‘복숭아나무’ 때는 고집을 많이 부렸다고 했다. 그럼 이번에는.
구혜선 :
진짜 별생각 없이 즐겁게 찍었다. 금액도 적은 금액이고. 총 1억 예산인데, 영화 한 편을 찍기엔 적은 예산이다. 그래서 배우들에게도 죄송함과 감사를 표했고. 반면 ‘복숭아나무’는 직접 제작했고, 이번엔 그 대신 배우로 출연했다. 그거라도 해야 투자자한테 덜 죄송하고. (웃음) 총 8회 차인데 고집을 부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 회가 더 늘어나면 안 되니까. 밤새지 않고, 즐겁게 찍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대 때 너무 열심히만 하다 보니 잃어버린 게 많더라. 그래서 상처받을 일도 아닌데 상처받게 되고. 그래서 마음을 내려놓고, 할 때 하자 이런 주의다.

Q. 이전보다 뭔가 여유가 생긴 것 같다. 계속 열심히 안 했다고 하는데, 그게 곧 여유를 의미한 게 아닌가 싶다.
구혜선 :
맞다. 그런 것 같다. 현장에서 스태프에게 ‘어~ 열심히 하네’ 그러면, ‘저 오늘 열심히 안 했어요’ 이런 분위기다. 그렇게 주고받다 보면 모두 열심히 하는 게 보인다. 치열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다.

Q. 아무래도 세 번째 연출이라서 현장이 익숙해진 것도 있겠다.
구혜선 :
그것도 맞다. 열심히 하는 후배들이 와서 ‘감독님~’ 부르면 귀엽기도 하고.

Q. 맨 처음 질문했던, 구 감독이란 호칭이 익숙해진 거네.
구혜선 : 그런가. 기사 보고 알았는데, ‘현기증’ 이돈구 감독이 동갑이더라. 이제 특수성이 없어지고 있다. 어린 감독이었는데 이제 그것도 아니고, 여자 감독도, 배우 감독도 많다. 그쯤 되면 잘해야 할 텐데. (웃음)

Q. 연출도 연출이지만, 직접 출연까지 했다. 그리고 이번 영화가 구혜선의 스크린 데뷔다. 자신의 연출작으로 데뷔한다는 게 묘한 기분일 것 같은데.
구혜선 :
원래 하고 싶었다. 사실 나는 운이 좋게 계속 주인공을 해 왔다. 지금에서 이야기하는 건데, 뭔가 주인공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주인공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때 단순하게 ‘영화감독을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어렸을 때 생각인데, 그게 실현될지 몰랐다. 결과를 떠나 뭘 한 것 같긴 하다. 목표하에 있었던 일을 해낸 것 같은 느낌이다. 연출하면서 연기 안 한다고 했고, 할 줄 몰랐고, 데뷔작이 될 줄도 몰랐다. 그런데 하고 나니까 시원하다.


Q. 감독 구혜선은 배우 구혜선의 스타일을 지향하지 않는다고 했다. 구혜선을 주인공으로 한 시나리오는 안 쓸 것 같다고도 했다. 뭔가 큰 변화가 있었나 보다.
구혜선 :
제작비 부분도 있지만, 앞서 말했던 것처럼 많은 게 변했다. 외모적인 느낌도 그렇다. 그동안 여성성을 드러내는 것에 불편했던 것 같다. 그래서 짧은 머리를 고수했고. 아마도 소모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10대 때 ‘얼짱’으로 알려지면서 잡지 화보를 찍는데, 그럴 때마다 촬영해주시는 분이 매섭다며 많이 웃으라고 조언했다. 그래서 항상 웃어 보였는데, 2년 공백기를 가지면서 잘 웃지 않았다. 그러다가 웃지 않는 역할을 하게 된 거고. 시도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는데, 나는 나한테 어려운 상대는 아니니까.

Q. 감독 구혜선이 보는 배우 구혜선의 모습이 지금은 괜찮은 건가.
구혜선 :
요즘은 괜찮은 것 같다. 찍을 땐 마음에 안 들었는데, 편집하고 나서 ‘오 괜찮은 것 같은데’ 그랬다. (웃음) 본인만 예쁘게 찍는다는데 그것도 감독 권한인 거지.(웃음)

Q. 그리고 자신의 연기를 객관적으로 볼 준비가 돼 있었던 건가. 본인이 연기한 걸 본인이 판단해야 하는 거 아닌가.
구혜선 : (준비가) 된 줄 알았다. 그래서 스태프하고 친해지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친해져서. (웃음) 연기를 해야 하는데 혹시라도 누군가 웃으면 큰일이다 싶었는데 다행히 그러지 않았다. 촬영 감독님이 현장을 집중시켰고, 내 일을 대신해줬다. 조감독이 컷과 오케이를 하고. 내가 연기하는 순간 모두가 감독이었다. 모니터를 보면 민망한데, 아무도 민망해 하지 않고 진지했다. 그 덕분에 나도 진지해질 수 있었다. 내 준비보다는 스태프의 마음이 달랐던 것 같다. 그동안 연기를 하면서 누구와 공유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Q. 영화 연기는 처음인데, 드라마 할 때와 다른 점이 있던가.
구혜선 :
아무래도 드라마만 하다 보니 뭔가를 계속 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영화는 큰 스크린으로 보이는 거니까 미묘하게 차이가 있었다. 뭘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감정을 전달해야 했다. ‘다우더’ 끝나고 드라마 ‘엔젤아이즈’를 했는데, 뭔가 느낌이 바뀐 것 같다고 하더라. 잘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Q. 이번 영화에서 음악도 했는데. 영화의 모든 공정을 혼자 다 하는 것 같다.
구혜선 :
삽입하려고 했던 곡인데, 영화 나왔을 때는 결국 빠졌다. 그래서 싱글로 냈는데, ‘다우더’와 의미가 있어서 ‘다우더’를 타이틀로 했다.

Q. 그런데 모든 걸 혼자 다하려고 하는 건 욕심일 수도 있다.
구혜선 :
사실 뿌리는 같다. 그림으로 시작했다가 글을 넣으면 소설이 되고, 그게 시나리오가 되고, 그걸 찍으면 영화가 된다. 그 근원은 같은데 누군가가 정리정돈을 잘해놓은 거다. (웃음) 또 근래 든 생각인데, 내가 능력이 많은 게 아니라 남들보다 조금 느린 것 같다. 아직도 전공을 못 찾은 거다. 그래서 아직도 대학(원래 03학번인데, 11학번으로 다시 입학했다.)에 다니고 있고, 졸업할 생각도 당분간 없다. 남들보다 10년 정도는 느린 것 같다. 중2병이 20대 때 왔고, 사춘기도 20살 되고 나서 겪었다. 없던 반항도 20대 때였고. 중학교 때 겪어야 할 것들인데. 이제 내가 생각하는 수준이 20대 수준인 거다. 원래 말도 좀 느렸다고 하더라. 그리고 20대와 지금, 에너지가 다르다. 40대라면 감독 데뷔를 못 했을 것 같다. 그럴만한 깡도 없고, 무너졌을 때 다시 일어설 용기가 있을까 싶다. ‘복숭아나무’에 투자하고 손해도 봤는데, 20대라 얼마나 다행인지. 40대였다면 정말 무너졌을 거다.

Q. 이제 20대를 지나 30대에 접어들었다. 구혜선의 30대를 그린다면.
구혜선 :
30대…. 사실 목표한 건 다 이뤘다. 어렸을 때 그림을 그리고, 전시회를 하는 게 소원이었는데 전시회도 했다. 배우를 시작한 다음에는 주인공을 해보고 싶었는데 주인공도 했고. 또 다른 목표를 세우는 것뿐이지, 어렸을 때 생각한 목표와 꿈은 현실화시킨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은 평화를 찾고 싶다. 누굴 이길 거야, 100만 감독이 되겠어, 이런 것보다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향유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싶다. 잘나서 잘 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정말 작은 사람이더라. 30대가 돼서 한 꺼풀 벗겨지고 나니까 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덜어내고 지내는 마음의 대비 말이다. 30대 때는 그 연습을 하는 시간이다. 이 생각을 한 것 자체만으로도 불행하곤 바이바이 한 것 같다. 이에 대한 희망은 있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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