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 형, 현석 형보다는 제가 더 행복하지 않을까요?”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지난 4일 밤 신사동 모 카페에서 기자들과 술잔을 나누며 이렇게 말했다. 데뷔 20주년을 맞아 기자들과 편하게 자리를 마련한 그는 술이 들어가자 즉석에서 공연도 했다. 신청곡이 나오자 ‘날 떠나지마’ ‘너의 뒤에서’ god의 ‘거짓말’ 등을 건반을 치며 노래했다. “여러분 이 부분에서 제가 ‘god 짱’이라고 하면 그 다음부터 합창을 해주셔야 해요.” 노래하며 환하게 웃는 모습은 기획사의 수장이 아닌 천상뮤지션이었다.박진영은 한 회사의 대표임과 동시에 데뷔 20년차 댄스가수다. 이것이 이수만, 양현석과 다른 점이다. JYP 직원들과 회의를 하는 것 못지않게 몸 관리에 철저하다. “몸 관리요? 거의 운동선수만큼 한다고 보시면 되요. 저는 무대에서 춤을 춰야 하니까요. 운동 좋아하냐고요? 꼬박꼬박 하는 건 정말 괴로워요. 아마 제가 세상을 떠날 때가 되면 운동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거 하나는 만족스러울 것 같아요.”
올해는 박진영이 1집 ‘블루 시티(Blue City)’로 데뷔한지 20주년이 되는 해다. 그 전에 박진영은 이미 알려진 것처럼 이수만에게 데모테이프를 들고 찾아갔고, 90년대 가요계 ‘미다스의 손’으로 군림한 김창환 밑에서도 일하며 신승훈, 김건모, 노이즈의 백댄서도 했다. 1994년에 기자는 중학생이었다고 말하자, 박진영은 꽤나 놀란 눈치였다. “벌써 20년이 지났나요? 언젠가부터 저보다 어린 기자 분들과 인터뷰를 하게 되더라고요. 오래 할 수 있는 비결이요? 글쎄요. 전 바르게 온 것에 의미를 두고 싶어요.”
박진영은 지난 20년간 자작곡 총 508곡을 발표했으며, 그 중 무려 42개의 1위곡을 선보였다. 특히 20년간 한해도 빠지지 않고 1위곡을 낸 것(멜론차트 1위 포함)은 독보적인 숫자로 그의 상업 작곡가로서 재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히트곡이 많은 만큼 표절 논란도 잦았다) “20년간 히트곡을 낸 것은 저 자신도 자부심을 느끼는 부분이에요. 제가 존경하는 데이빗 포스터, 베이비페이스, 그리고 제 작곡 스승인 (김)형석이 형도 20년 동안 히트곡을 내지는 못했죠.”박진영은 한국에 R&B 풍의 가요가 정착하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특히 섹시한 소울의 어법에 그는 집중했고, 그러한 방식으로 걸그룹, 보이그룹을 훈육했다. “록은 듣지 않느냐?”라는 질문에 그는 “R&B만 듣는 것은 아니다. 록은 아무래도 소울의 성향이 있는 경우에 좋아하게 되더라”라고 답했다.
기자들과 술잔을 기울이다 즉석 공연을 연 박진영.
최근 들어 박진영은 작곡을 하는 빈도가 줄었다. 한때는 JYP에서 나오는 히트곡의 작곡 크레디트에는 거의 그의 이름이 올라있었다. “잡스가 죽고 애플의 주가가 떨어졌을 때 깨달은 바가 많아요. 한 사람의 카리스마로 운영되던 회사는 오래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죠. 저 혼자의 힘으로만 운영되는 회사는 오래 갈 수 없죠. 요 몇 년간 저 혼자가 아닌 시스템으로 운영될 수 있는 모델을 시험했어요.” 최근 작품의 수가 줄어든 것도 이러한 시스템과 관련이 있다. JYP는 소속 작곡가들의 저작권을 따로 관리하는 ‘JYP 퍼블리싱’을 가지고 있다. 예은도 여기에 소속돼 있다.예은이 핫펠트란 이름으로 발표한 솔로앨범 ‘미?(Me?)’는 걸그룹 출신이 싱어송라이터로서 앨범을 낸 이례적인 경우였다. “소속 아티스트들이 하고 싶은 것, 잘 할 수 있는 것을 살리고 싶어요. 언제까지 제가 다 만들어줄 수 없잖아요. 그 아이들이 각자의 역할을 갖게 되면 그게 JYP의 힘이 될 수 있을 거예요.”JYP는 화기애애한 회사로도 알려져 있다. 원더걸스 선예는 현역 걸그룹 멤버임에도 회사와 아무런 마찰 없이 결혼식을 마쳤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한다는데 말릴 수 없잖아요. 축해줘야죠. 그 친구는 아마도 지금 선교 활동으로 바쁠 거예요.”
박진영이 성공시킨 대표적인 보이그룹인 god는 최근 다시 부활했다. “그때는 정말 god 친구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음악을 만들었어요. 그 친구들과 함께 살면서 인성을 파악한 상태에서 음악을 만들었기 때문에 결과물이 참 좋았던 것 같아요. 앞으로는 그런 식으로 밀접하게 프로듀싱을 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박진영은 JYP를 미국의 유니버설, 소니, 워너와 같은 음악 그룹으로 만들 거라고 말했다. 풀어 설명하자면 유니버설과 같은 글로벌 회사들이 다양한 아티스트들을 확보해 성격이 다른 레이블을 운영하듯, JYP 역시 레이블화를 추진한다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SM도 YG도 1년 12개 이상의 앨범을 내기 힘들어요. 그런 구조로는 시가 총액 1조의 벽을 넘을 수 없죠. 하지만 레이블 체제를 구축하면 대량생산이 가능해져요. JYP 퍼블리싱 팀을 통해 제2, 제3의 박진영이 나와서 곡을 만들 수 있는 거죠.”
뮤지션으로서 행보도 이어간다. 내년에는 솔로앨범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작년에 나온 앨범 ‘하프타임’을 통해서는 본인의 음악인생을 돌아본 바 있다. 새 앨범에는 한껏 야해질 거라 말했다. “그 누구보다도 야한 노래를 많이 만들어왔잖아요. 제가 가장 잘하는 음악이죠. 섹시한 R&B.” 박진영은 JYP 사업에 대한 계획보다 본인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눈이 더 빛나는 것 같았다. 하긴, 한 기업의 대표보다는 뮤지션의 위치가 더 행복할 게다. 박진영은 “60살까지 무대에서 춤추며 노래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순간, 박진영은 음악을 오래 하기 위해 JYP를 차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SNS DRAMA][텐아시아 뉴스스탠드 바로가기]
[EVENT] 뮤지컬, 연극, 영화등 텐아시아 독자를 위해 준비한 다양한 이벤트!! 클릭!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