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직이 내뱉는 말 한마디마다 간절함이 넘친다. 어린 시절 우연히 영화 현장에서 마주한 배우 최민식을 보고 꿈을 키운 소년은 영화 ‘백야행’, ‘사이코메트리’, ‘마이웨이’, 드라마 ‘내 손을 잡아’, ‘골든 크로스’ 등 다수 작품의 조·단역을 거치며 무너져가는 ‘배우의 꿈’을 되살렸다. 그리고 2014년, 이 남자는 성장통과 같이 쓰라렸던 무명시절을 지나 결국 일일드라마의 조연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성공한다. 7일 종방하는 KBS2 ‘뻐꾸기 둥지’의 최상두 역으로 악역에 한 획을 근 배우 이창욱에 대한 이야기이다.

Q. 정말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6개월을, 그것도 극악무도한 악역으로 살았으니 말이다.
이창욱: 마지막 촬영을 한 뒤 울컥했다. 다른 작품도 그렇지만, 이번 작품이 감정이 더 올라왔다. 나를 알린 작품이기도 하고, 그만큼 힘들기도 했으니까. 6개월 동안 감정을 쏟아내다 보니 한 뼘 더 성장한 기분이다.Q. 최상두는 악역임에도 과거사를 돌아보면 아픔이 많은 인물이었다. 선뜻 손을 대기 어려운 캐릭터였을 것 같다.
이창욱: 작품 들어가기 전에 회사에서 걱정을 많이 했다. 극 중 설정상 10년 동안 거칠게 산 인물이라 말도 거칠고, 다리까지 절었다. 근데 그런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하고 싶어졌었다. 뭔가 내가 표현해 낼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 같더라.

Q. 전작들에서 연기한 배역의 비중이 작았던 터라 그런 욕망이 강했을 듯하다.
이창욱: 물론이다. 연극 ‘햄릿’ 속 햄릿이나 드라마 ‘선덕여왕’의 비담과 같이 표현 방법에 따라 달라지는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생각 이상으로 센 캐릭터 때문에 당황도 했다. 분량이 많지는 않았지만, 차차 나만의 캐릭터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현장에서 선배들이 “쟤 누구냐?”고 묻고 그러셨다고 하더라. 노력을 알아봐 주신 거지, 하하.

Q. 다리를 저는 연기도 실감 났다. 왠지 의식하고 연기한다는 느낌이 안 들더라.
이창욱: 아, 정말? 그렇게 봐주셨다니 다행이다. 초반부만 해도 NG를 많이 냈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선택한 게 정말 다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거였다. 신발에 돌도 넣고, 무릎에 압박붕대도 감았다. 몸이 불편하니 연기가 한결 자연스러워졌다.

Q. 감정 연기도 안정적으로 느껴졌다. 자신을 속인 화영(이채영)과 붙는 장면이 많았는데, 고함치고 오열하는 등 지르는 장면이 많음에도 어색함이 없더라.
이창욱: 성악으로 발성을 잡은 게 이제야 빛을 본 느낌이다. 사실 발성은 내 콤플렉스였다. 그래서 ‘뻐꾸기 둥지’에 대한 애착이 크다. 뭔가 나의 진짜 목소리를 찾아 준 작품인 것 같다.

Q. 성악을 배웠다는 건 정말 의외다. 취미로 배운 건가.
이창욱: 학부생일 때 부전공이 성악이었다. 영화예술학과 복수 전공한 거다. 계획적인 건 아니었다. 군 복무 중에 ‘나는 발성이 약하니까 성악을 한 번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게 출발점이 됐다. 연극이 강한 러시아에서는 연기 과목에 성악과 화술이 다 포함돼 있다. 그만큼 발성은 연기에 필수적인 부분이다.Q. 비전공자가 타 과목을, 그것도 성악을 한다는 게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이창욱: 운이 좋았다. 나름 여러 나라 가곡을 준비해가긴 했는데,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내가 왜 성악을 배우려 하는지를 진정성 있게 어필한 게 통했다. 그때 인연을 맺은 스승님이 큰 도움을 주셨다. 성악가 정은숙 교수님인데, 나를 보시더니 “배우들 가르쳐봐서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 널 도와주고 싶다”고 하셨다. 이후 1년 반 정도를 배웠다. 2010년에는 ‘어른으로 분류되는 시기’라는 연극도 한 편 올렸다. 그즈음부터 “발성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콤플렉스가 많이 극복된 거다.



Q. 여러모로 ‘뻐꾸기 둥지’는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됐을 것 같다. 자극적인 소재와 빠른 전개 속에 당신이 가진 여러 장점을 내보이는 데 성공했으니까.
이창욱: 작품에 들어갈 때부터 ‘내가 맡은 캐릭터를 살리자’는 생각뿐이었다. 내가 날 드러내는 것보다 인물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거다.Q. 상두는 거친 인생과 고독으로 지친 인물이었다. 또 자신의 아이를 숨겨버린 화영 때문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인물이기도 하고. 상상하기도 힘든 상황들을 어떻게 공감하며 연기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이창욱: 연극 수업 중에 ‘매직 이프’(magic if)라는 게 있다. ‘사람은 경험하지 않은 일도 상상력으로 연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서 착안해 계속 상상해봤다. ‘내가 정말 딸이 있다면, 십 년 전에 딸을 잃고 계속 찾아 헤맸다면, 그 상황이 밝혀진다면 어떻게 될까?’라고. 쉽지는 않았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더라.

Q. 굉장히 체계적으로 연기에 접근하는 느낌이다. 원래 배우를 꿈꿔왔었나.
이창욱: 그건 또 연기하는 것과는 별개다, 하하하. 정말 우연한 계기가 나를 이쪽으로 이끈 것 같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를 따라 영화 엑스트라를 한 적이 있다. 그게 영화 ‘취화선’이었다. 그때 최민식 선배님을 봤는데, 정말 그 연기란…. 말하자면 ‘진짜 배우’에게 첫눈에 반한 셈이다. 그 후로 연기 학원도 다니고 대학도 그쪽으로 알아봤다.

Q. 헌데 이쪽 일이 본인의 능력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지 않나. 다 운 때도 맞아야 하고.
이창욱: 물론 꿈을 품는다고 해서 일이 생각만큼 잘 풀린 건 아니었다. 일은 간간이 했지만, 자리를 못 잡아서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다만 모두가 다른 꽃이고, 그 꽃들의 피는 시기 또한 저마다 다르다고 생각한다.Q. 그렇다면 당신이 꽃 피우는 시기는 언제일까.
이창욱: 꽃이라…. 개화 시기는 모르겠지만, 요즘 들어 꽃봉오리가 조금씩 보이는 것 같다. 하하하.



Q. 어렵게 잡은 기회인 만큼 앞으로의 행보가 더 중요할 것 같다.
이창욱: 주인공이 되는 것? 하하. ‘주인공 아니면 안 할 거야’ 식의 심보는 아니다. 다만 비로소 내가 하고 싶고, 즐길 수 있는 일을 찾은 터라, 이 분야에서 인정받는 배우가 되고 싶은 욕심은 있다. 차기작에서는 최상두와는 다른 ‘이창욱의 매력’을 보여드리고 싶다.

Q. 마지막 질문이다. ‘배우 이창욱’의 최종 목표가 있다면.
이창욱: 믿음을 드리고 싶다. 내가 어디에 출연하든 믿고 보실 수 있도록 말이다. 유행에 휩쓸려 사라지는 스타가 아닌, 전문직으로서의 배우를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 다양한 작품을 통해 인사드릴 계획이다. 계속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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