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폰부스의 베이스기타 멤버는 박한으로 결정될 때까지 몇 차례 우여곡절을 겪었다. 라인업 구축 초창기에 인터넷 악기사이트 ‘뮬’에 올린 베이스 기타 구인광고를 보고 첫 지망자가 찾아왔다. 당시 악기가 없었던 지망자는 박한의 베이스 기타를 ‘연습을 하겠다.’고 빌려간 후 잠수를 타버리는 대형 사고를 쳤다. 이에 멤버들은 싸이월드를 뒤져 지망자를 찾아내 악기 반환을 통고했다. “악기를 연습실 문 앞에 놓고 도망을 가버려 그 친구를 잡지는 못하고 기타만 간신히 되돌려 받았습니다.”(이상민)

두 번째로 찾아온 지망자는 여성 베이시스트 박보람이다. 그녀는 2005년 7월 클럽 FF의 첫 공연에 함께 한 후 밴드활동에 흥미를 잃어 탈퇴를 했다. 그 빈자리에 세 번째 베이스기타 멤버로 고등학교 동창 박한이 들어왔다. 착하고 준수한 외모의 박한은 전라북도 익산에서 섬유사업을 했던 집안에서 2남 중 막내로 1985년 7월 10일 태어났다. 어린 시절 조용한 성격의 박한은 놀이터 모래 바닥에서 3살 터울의 형과 그네를 타며 멀리뛰기를 했던 기억과 7살 때, 동네 친구 집에 놀러갔다 영화 ‘터미네이터2’을 보고 경험했던 공포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특별히 음악적 환경은 아니었기에 일반적인 아이들처럼 그도 TV에서 나오는 서태지와 아이들, H.O.T.의 유행음악을 좋아했다.
박한

당시 킹스턴 루디스카의 보컬 이석율은 친하게 지냈던 이웃집 형이다. “제 기억에는 흐릿하지만 같이 목욕을 하고 뛰어 놀며 마주보고 있던 베란다에서 서로 이름을 부르고 놀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홍대에서 같이 인디밴드를 하고 있으니 보통이 인연이 아닌데 2007년부터 2010년까지 같이 공연도 몇 번했지만 처음엔 서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박한)

익산 동산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서울 독산동으로 전학을 갔다. 1년 후 안산으로 다시 이사해 매화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시흥시로 이사해 시흥중학교를 마치고 한국애니메이션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이 청소년기는 그의 음악에 중요하다. “그때가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였어요. 초등학교 때 전교회장과·부회장을 했고 중학교 때도 줄곧 반장을 했습니다. 그땐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얌전히 공부만 하는 평범한 학생이었죠. 고등학교에 올라가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 김용천을 만나면서 인생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게 되었습니다.”(박한)

사연은 이렇다. 초등학교 전교회장 시절 박한은 회의를 마치고 회의록을 챙겨 교장선생님께 결제도장을 받으러 가는 도중 교감선생님과 만났다. 회의에서 아이들이 결정한 사항들을 자신의 뜻대로 바꿔놓는 부당한 일을 겪었다. “당시 교감선생님에게 무시를 당하면서 어린 저의 생각과 행동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른들은 제 고민에 관심도 없었지만 친구가 그림을 통해서 보여주는 이야기에는 관심을 보이는 것을 봤습니다. 그림을 통해서 내 생각을 이야기하면 남들이 들어줄지 모른다는 생각에 학업도 제쳐두고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박한)

그림에 몰두했던 당시, 경인방송 ITV에서 해외 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오아시스, 콜트플레이, 비틀즈 같은 밴드음악을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후 밴드 음악을 찾아 들었던 그의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화가 난 그의 부모님으로 인해 그림 그리기는 엄청난 반대에 부닥쳤다.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부모님은 아는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화가에게 그의 그림 소질을 검증 받고서야 허락을 했다. 박한이 한국애니메이션 고등학교 영상연출과로 진학할 수 있었던 과정이다. “그림을 잘 그렸다기보다 하고 싶어 하는 열의를 그 화가분이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제가 그림을 그린 이유는 그림 자체보다는 무언가 떠오르는 질문과 그것에 대한 저의 생각과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죠. 영상이란 매체는 저에게 그림보다 훨씬 효과적인 도구로 다가왔습니다.”(박한)
박한의 그림들

고교시절 다큐멘터리 작품 제작에 열중했던 그는 EBS, 서울국제 청소년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까지 많았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 주최한 통일에 관한 만화, 카툰 공모전에서 동상을 받아 노무현대통령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상을 받는 것보다 제 자신의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 준 사실이 기뻤습니다.”(박한)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홍광선과 친하게 지냈던 그는 고1때부터 기타를 잘 쳤던 학교친구들에게 기타를 배우면서 교외에서 음악친구들과 카피 곡을 연주했다. 고3이 되자 밴드에 대한 로망이 생겨 콜트 베이스 기타를 구입했지만 본격적인 밴드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수상 경력이 도움이 되어 성균관대 영상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너무 많은 노력, 시간, 자본을 투자해야 되는 영상작업은 그를 지치게 만들었다. 그때 시가 다가왔다. 대학신입생 때 그는 학교에서 만난 시인 김일영과 교류하면서 인문학과 글쓰기 공부를 시작했다. 현재 밴드 폰부스에서 베이스 연주와 노래 가사쓰기를 전담하고 있는 이유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밴드 초기에는 겉멋도 많이 부리고 잔뜩 힘이 들어간 글과 음악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한 것 같아 반성을 하게 됩니다. 점점 경험이 쌓이면서 설명과 설득이 아닌 공감과 감동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조금씩 그 목표에 가까워지는 결과물을 발표하고 호응해주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지금이 너무 즐겁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음악과 글을 통해 많은 분들과 소통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박한)



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사진제공. 박한
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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