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득이, 팽헌 등 코믹한 캐릭터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 잔상은 흐려졌다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 그래서 그가 ‘액션’의 옷을 입는다고 했을 때 쉽게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기도 하다. ‘역린’에서 을수 역을 맡은 조정석은 또 다른 모습으로 대중 앞에 섰다. 광백(조재현)에 의해 길러진 살수인 을수를 통해 전에 볼 수 없었던 강렬한 액션 카리스마를 뽐냈다. 사람 한두 명 죽이는 건 순식간이다. 웃음기, 당연히 쫙 뺐다. 외형부터 모든 게 변했다. 그의 모습이 다소 낯설게 느껴질 정도다. 조정석 본인도 “역할이 역할이니만큼 액션 장면에 공을 들였다”고 자신했다. 맞다. ‘역린’에서 조정석의 액션만큼은 분명 멋있다.

그리고 그가 3년 만에 다시 뮤지컬 무대로 향했다. 지난해 ‘관상’ 때도 그렇게 애타게 가고자 했던, ‘고향’ 같은 곳이다. 이 때문에 지금 조정석은 그 어느 때보다 들떠 있었다. 조정석이 직접 전한 ‘역린’, 그리고 뮤지컬 이야기다.Q. ‘역린’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조정석 : 드라마 ‘최고다 이순신’ 촬영할 때 시나리오를 받았다. 정말 재밌고, 맘에 들었다. 그래서 참여하게 됐다.

Q. 드라마 할 때와 영화 할 때, 다른 점이 있다면.
조정석 :
속도감이 좀 다른 것 같다. 드라마는 빨리빨리 찍는 편이고, 그래야 한다. 영화는 여유 있게 시간을 할애하면서 공을 들일 수 있다.

Q. 그럼 ‘역린’을 촬영하면서 조정석이 가장 공을 들이고 싶었던 부분은 어디인가.
조정석 :
아무래도 역할이 역할이니만큼 액션 장면이다. 존현각 격투 장면은 정말 공을 들여 잘 찍어내고 싶었다.Q. 존현각 장면만 한 달 넘게 찍었다고 하던데.
조정석 :
한 달도 넘었다. 존현각 들어가기 전 마당에서 싸우는 장면만 3주 걸렸다. 12월 촬영인데 살수차를 이용해 비를 뿌려야 했다. 그런데 날이 춥다 보니 한 번 찍고 나면 모든 게 언다. 한 테이크 찍고 나면 얼어붙은 걸 다 녹여가면서 촬영하다 보니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Q. 촬영은 오래 걸렸지만, 영화 속 상황은 24시간 안에 일어나는 일이다.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조정석 :
근데 굉장히 다행인 건, 영화에서 을수가 처음 등장하는 게 나룻배타고 오는 장면인데 그게 첫 촬영이기도 했다. 시간의 흐름대로 촬영 날짜가 잡혀 개인적으로 좋았다. 존현각 결투장면은 영화에서도, 촬영도 거의 막바지였다. 그런 면에서는 부담이 덜했다. 단지, 쌓아온 감정을 액션을 통해 표출해야 해서 그런 점에서 조금 힘들긴 했다.


Q. 조정석이 생각하는 ‘역린’은 어떤 영화인가.
조정석 :
중용 23장에 대해 많은 분이 이야기하는데 정말 그게 우리 영화의 메시지 같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소재로, 많은 인물의 관계성을 소재로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인물의 관계성은 우리 영화의 카피에 다 나와 있다. ‘살아야 하는 자, 죽여야 하는 자, 살려야만 하는 자의 엇갈리는 운명’이다. 정유역변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그거에 대한 관심과 흥미는 별로 없었다. 시나리오에 흥미를 느꼈던 건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관계성이다. 정조(현빈)와 갑수(정재영), 갑수와 을수, 을수와 월혜(정은채), 정조와 정순왕후(한지민) 등 그런 관계성에 흥미를 느꼈던 것 같다.Q. 그 관계성이 영화에 잘 담긴 것 같나.
조정석 :
담긴 것 같다. 재밌고 만족스럽다.

Q. 영화 개봉 전 혹평이 많았는데 그 혹평 중 하나가 그 관계성에 대한 부분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 입장인가.
조정석 :
이해한다. 호평이든, 혹평이든 관심이라 생각한다. 어떤 영화든 기호와 취향이 다르므로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결과론적으로 흥행이 되면 좋은 게 아닌가. 물론 내가 출연한 영화니까 혹평이 나면 서운한 건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많이 개의치 않는 편이다.

Q. 조정석이 연기한 을수는 허구의 인물이다. 그 때문에 영화에서는 보이지 않는 을수의 히스토리를 탄탄하게 만들어야만 했을 것 같다.
조정석 :
많이 생각했던 부분이다. 텍스트 안에 나오는 을수의 히스토리는 좀 부족했다. 어린 시절 살막으로 들어온 이후 을수가 어떻게 자랐는지 모른다. 그 이후 행보들은 연상하고 상상했던 것 같다. 단면적으로 고문을 당하거나 아파도 참아냈을 것 같다. 또 감정을 표출하지 못하니까 자꾸 억눌렀을 거다. 그렇게 자라온 을수한테 감정 표출은 굉장히 드물고 어색한 일이다. 분노를 표출하더라도 억누르는 분노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취약점이나 약점을 건드렸을 때 분노가 표출되는 사람, 그게 을수라고 생각했다. 이와 함께 짓눌린 과거, 어두운 과거가 있는 사람일수록 희망에 대한 갈급함이 클 거로 생각했다. 그 희망이라는 게 또 다른 인생일 수 있고, 월혜일 수도 있다. 그런 희망을 앗아갈 지경까지 오니까 내 목숨을 걸고 왕을 죽이러 가는 것일 수도 있다.Q. 극 중 월혜와의 멜로도 있다. 분명 멜로가 있는데도 상대배우와 만남은 제한적이다. 멜로는 맞는데 멜로가 없는 그런 상황이다.
조정석 :
을수와 월혜가 처음 만나는 장면이 편집됐다. 그 장면이 들어갔다면, 러브라인에 대해 좀 더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사실 영화에서 적절하게 편집된 것 같다. 왜냐면, 이야기가 산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은 우려가 있었다. 이 영화는 을수와 월혜의 러브스토리가 아니다. 그런 관점에서 적절하게 편집된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단지 필요했던 건, 을수가 왕을 죽이러 가는 명분이다. 그게 월혜와 사랑인데 그만큼 표현된 것 같다.


Q. 원래 장면이 더 있었던 걸로 아는데, 배우로선 아쉽지 않나.
조정석 :
월혜가 존현각에서 죽은 을수를 보는 장면이 있다. 그게 들어갔다면 약간은 다른 방향으로 갔을 것 같다. 을수를 연기한 조정석으로선 아쉬움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영화 전체적으로 봤을 땐 그것도 적절한 것 같다.

Q. 그래서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선택해 원 없이 멜로를 한 건가. 하하.
조정석 : 아주 많이 분출했다. 하하.Q. 현빈과는 마지막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존현각에서 마주한다. 오래 호흡을 맞춘 건 아니지만, 여하튼 어떤 배우던가.
조정석 : 무대인사 할 때였는데 빈 씨한테 그 당시 정조 이산이 네가 연기한 정조일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정조는 강해야만 하는, ‘나는 강해야 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게다가 자신 스스로 자기를 지켜야 했기 때문에 영화 속 정조처럼 몸도 그렇게 만들었을 것 같다.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을 용서할 줄 아는 넓은 아량과 감성을 지녔다. 그게 느껴졌다. 이 이야기를 직접 빈 씨한테 했다. 그리고 존현각 결투에서도 보면, 정조 입장에서 을수는 그냥 자객일 뿐이다. 그런 가운데 나 자신을 지킬 것이라는 눈빛과 기운이 느껴졌던 것 같다. 강한 여운이 남을 정도로 좋았다.

Q. 현빈은 조정석이 부러웠다고 하던데.
조정석 :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거 아닐까. 촬영 당시 부러웠던 게 딱 한 번 있다. 존현각 안에 들어가서 정조와 맞닥뜨린 상황인데 그럼에도 나는 비를 반쯤 맞고 있고, 정조는 안 맞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부럽다’ 했다. 하하.

Q. 극 중 대사가 많이 없다. 눈빛이나 표정만으로 많은 감정을 전해야 했다. 어렵진 않았나.
조정석 :
어렵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다만 장점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것 같다. 감독님도 그렇게 디렉션을 주셨다. 광백을 만나서 얘기하는 장면 역시 두려움도 있지만, 내 희망을 지키겠다는, 당신에게서 떨어지고 싶다는 그런 여러 가지 감정이 눈빛에 담았다.

Q. 그런데 을수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광백을 그냥 죽일 수 있었을 텐데.
조정석 :
처음에 그 점을 고민하긴 했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분석했다. 코끼리에 비유하자면, 어릴 때부터 말뚝에 박혀 있던 코끼리는 자라서 말뚝을 뽑아낼 힘이 생겨도 못 벗어난다더라. 을수도 마찬가지다. 광백을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광백이 처음 등장했을 때 내 눈빛과 느낌은 순간의 동요, 두려움, 흔들림, 미세한 떨림 등이었던 것 같다.


Q. 이번 영화에선 특히 육체적으로 몸을 많이 썼다.
조정석 :
힘들었다. 비가 와서 더 힘들었다. 액션도 액션인데 겨울에 비 맞는 게 장난이 아니었다. 그리고 액션은 최대한 대역을 쓰지 않았다. 다행히 멋있고, 좋게 나온 것 같아 기분 좋다.

Q. 액션 촬영하면서 카메라에 부딪혀 다쳤다고 들었다.
조정석 :
마당에서 존현각에 돌진하는 장면인데 지미집 카메라 앞까지 전력 질주를 해야만 했다. 그런데 내 속도에 못 이겨서 지미집에 들이받았다. 다행히 모서리에 부딪히지 않아 멍만 크게 들었다. 모서리에 부딪혔으면 찢어졌을 거다. 그거 말곤 가벼운 부상은 계속 있었다.

Q. 그런데 여전히 납득이와 팽헌의 잔상이 남아 있는 것 같다. 다음에 또 코믹한 역할을 하면 납득이와 팽헌이 또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이를 이겨낼 필요성도 있는 것 같다.
조정석 :
그 생각은 안 한다. 그 자체가 나를 더 깎아 먹는 거로 생각한다. 매 작품에 충실한 게 가장 좋은 행보라고 생각한다. 배우로서도, 조정석으로도 그렇다. 납득이 잔상, 꼬리표는 어쩔 수 없다. 무대 인사를 가면 아직도 ‘납득아’ 그러시는 분들도 많다. 차차 그런 것들이 흐려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부러 떨쳐내려고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Q. 그럼 조정석에게 ‘역린’은 어떤 영화로 남을 것 같은가.
조정석 :
지금까지 가장 힘들었던 영화. 하하. 농담이다. 내 필모 중 ‘역린’에 출연하게 돼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캐스팅된 이름을 보면, ‘내가 이런 영화에 출연하는구나’ 싶다. 이런 영화에 출연한 것 자체가 정말 좋다. 자부심 돋는 영화로 남을 것 같다.

Q. ‘역린’ 홍보 활동도 거의 끝나가고,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도 촬영을 마친 것으로 알고 있다. 조금 여유를 보내고 있겠다.
조정석 :
지금 뮤지컬 ‘블러드 브라더스’ 연습에 들어갔다.

Q. 지난 ‘관상’ 인터뷰 당시 올해쯤 무대에 서는 게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너무너무 하고 싶다고 했는데 드디어 무대에 서게 됐다.
조정석 :
‘드디어’라고 말씀해주시면 감사하다. 드디어라는 게 기대를 해주는 거니까. 기분은 날아갈 것 같다. 정말 좋다. 어쩌다가 오프라인에서 팬들을 만나게 되면 ‘꼭 내년에는 작품을 하려고 해요’라는 말을 많이 했다. 그럴 마음이 많았고, 좋은 작품을 만나서 이번에 하게 됐다.


Q. 무대를 3년이나 쉬웠다. 정말 오랜만에 무대에 서는 건데 쉽게 되는지 궁금하다. 적응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조정석 :
연습한 지 오래되지 않아서 아직 괜찮다. 하하. 연습을 더 해보면 어떨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고향에 온 느낌이다. 가장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Q. 정말 오랜만에 뮤지컬 동료 배우들을 다시 만나게 됐다. 다시 무대로 돌아온 조정석에게 뭐라 하던가.
조정석 :
뮤지컬 같이 했던 선배들은 ‘더 열심히 책임감 있게 하라’는 말을 해준다. 열심히 하는 신인배우들이 많을 텐데, 꽤 많이 신인배우들이 나를 보고 ‘으?으?’하는 게 있다는 거다. 그래서 책임을 지고, 더 열심히 ‘화이팅’ 해달라고 하더라.

Q. 지금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작품 활동을 하는 것 같다.
조정석 :
과거 공연을 하면서도 거의 쉰 적이 없다. 아주 잠깐 보름가량 쉰 적 있는데 그때 아팠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하다가 쉬면 아플 것 같다. 물론 가끔은 아파도 쉬고 싶다. 하하. 여하튼 지금은 즐겁고 행복하다. 공연 오랜만에 하는 거라 들떠있다.

Q. 뮤지컬 끝날 때까지는 여기에 ‘올인’하는 건가.
조정석 :
9월 중순까지 뮤지컬 공연이다. 지금 상황에서 차기작은 섣부른 것 같다. 최근에 차기작 기사가 나왔는데 아직 그 작품을 못 본 상황이다. 회사에서만 시나리오를 받은 것 같다.

Q. 뮤지컬 다음에는 어떤 걸 하고 싶나.
조정석 :
예전엔 멜로 하고 싶다고 했는데… 지금은 하고 싶은 게 많아서 모르겠다. 어떤 장르든 구미가 당기면 다 하고 싶다. 드라마가 될지 영화가 될지, 또 공연이 될지 그건 모르겠다.

Q. 배우를 벗어나서 해보고 싶은 건
조정석 :
음… 음… 떠오르는 건 휴가밖에 없다. 하하. 진짜 여행을 좋아해서 세계 일주 한번 해보고 싶다. 전국 일주도 좋고. 옛날엔 혼자 여행 많이 다녔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제공. 올댓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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