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11년차 배우에게 유망주라고 하는 건 실례일 수 있다. 하지만 매번 새롭게 발견되고자 하는 것이 배우라는 점에서, 유망주라는 단어에 경력과 나이를 따질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주저 없이 꼽아봤다. 요주의 유망주는 ‘한공주’의 천우희다.
(‘한공주’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공주. 이름 자체가 거대한 농담 같다. 행복하게 살라는 의미로 부모가 지어줬을 법한 이름인데, 현실은 정반대다. 천우희가 연기한 ‘한공주’의 공주에게 삶이란 견뎌내야 하는 정글과 같다. 술주정뱅이 아빠,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엄마… 급기야 또래 아이들에게 집단성폭행을 당하는 일까지 발생한다. 하지만 사회는 공주를 보호해줄 생각이 없어 보이고, 어른들은 책임 떠넘기기에 바쁘다. 영혼을 짓밟힌 공주는 눈물 흘리거나 소리 지르는 대신, 떠돌거나 숨죽인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항변해본다. “전, 잘못한 게 없는데요.”
“전, 잘못한 게 없는데요.” 애잔한 공주의 시선은 곧 세상에 대한 외침과 경계다. 플래시백을 하나씩 흘리며 퍼즐을 끼워 맞춰가는 영화에서 공주는 도통 속을 드러내지 않는다. 감정을 읽어낼 수 없는 굳은 표정, 무미건조한 말투, 있는 듯 없는 듯 그림자처럼 세상을 배회하고 정체를 숨긴다. 공주의 과거가 밝혀지는 장면의 충격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면, 그것은 천우희의 절제된 연기 덕분이다. 그녀는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배우이고, 묵묵히 기다릴 줄 아는 영리한 배우다.‘한공주’는 천우희를 위해 쓰여진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천우희에 관한 영화라고는 할 수 있다. 천우희가 곧 한공주이고, 한공주가 곧 천우희 같다. 하루하루를 묵묵하게 견뎌내는 공주의 말투, 표정, 흐느낌, 잔상… 어느 것 하나 천우희의 것이 아닌 게 없다.
‘한공주’ 스틸(위) ‘써니’ 스틸
# 관전 포인트: 배우에게 가장 필요한 건 뭐요? 연기죠 연기! 천우희의 말을 빌리면 그녀는 눈에 띄는 얼굴이 아니다. 하지만 그 지점에 그녀의 장점이 자리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외모, 분위기, 말투 등 천우희는 TV를 틀면 나오는 전형적인 여배우들과는 다르다. 평범해 보이는 얼굴이라는 말은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 얼굴이라는 의미이기도 한데, 그걸 또 잘 활용한다. 본드를 부는 불량학생 ‘본드걸’(‘써니’)과 승부욕 넘치는 아이돌 그룹 리더(‘뱀파이어 아이돌’)와 아픔을 묵묵히 이겨내는 공주(‘한공주’)를 이물감 없이 오고간다. ‘마더’에서 상대배우 진구를 바라보는 시선은 요염하기까지 하다.# 미스 포인트: 매번 재발견?
데뷔 후 그녀는 여러 번 재발견이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마더’에서 ‘써니’에서. 그리고 이번 ‘한공주’를 통해서도 ‘천우희의 재발견’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이것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신인 같은 풋풋함이 느껴진다는 점에서는 좋지만, 재발견에서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했다는 의미이니 나쁘기도 하다. 결정적인 도약이 필요한 시점임에 분명하다.# 잠재력 포인트: 그녀의 20대
작품 안에서 천우희는 줄곧 교복을 입은 10대였다. 그녀가 보여줄 20대 캐릭터는 아직 미스터리 영역인 셈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보여준 것 보다 앞으로 보여 줄 게 더 많다’고 하면 너무 상투적인 표현일까. 마침 부지영 감독의 ‘카트’를 통해 첫 20대 연기를 선보인다고 하니,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도 좋을 듯하다. 천우희의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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