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4′로 데뷔해 프로 연기자 못지 않은 연기력을 보여준 바로와 도희
지난 해 신드롬급 인기를 끌며 케이블 드라마 사상 가장 많이 회자된 히트 드라마 tvN ‘응답하라 1997′에 이어 같은 제작진이 후속으로 선보인 ‘응답하라 1994′가 2013년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가운데, 이 시리즈는 여러 측면에서 지상파를 능가하는 힘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그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우수한 배우의 자질을 가진 신인 발굴. 지상파 드라마가 스타들의 높은 몸값에 허덕이면서도 이를 포기하지 못하는 모습과 상반되는 행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지난 시리즈에서 주인공을 연기한 아이돌그룹 에이핑크의 정은지와 Mnet ‘슈퍼스타K’ 출신 가수 서인국은 모두 이 작품으로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만천하에 증명했다. 정은지의 경우, 첫 연기도전으로 주연으로 발탁됐음에도 불구하고 합격점을 받았고, 서인국은 드라마 ‘사랑비’에서의 경험이 있긴 하지만 역시 첫 주연작인 ‘응답하라 1997′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현재 영화 ‘노브레싱’에서도 배우로서의 역량을 인정받기에 이른다.제작진은 이번 시리즈에서도 모험에 가까운 캐스팅을 감행했다. 영화 ‘건축학개론’, ‘늑대소년’ 이나 드라마 ‘구가의 서’를 통해 승승장구 중이었던 유연석이나 ‘범죄와의 전쟁’, ‘이웃사람’ 등으로 충무로 신스틸러인 김성균(그러나 35살 김성균을 20살로 캐스팅한 것 역시 일정부분 모험적인 선택이 됐다)을 제외하고 주연 고아라, 정우는 물론 인지도가 낮았던 손호준과 연기는 첫 도전인 아이돌스타 타이니지 도희와 B1A4 바로 모두가 그러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번에도 성공적이다. 이들 중 그 누가 연기력면에서 혹독한 평가를 들었나.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모두가 최고의 성적표를 거머쥐는데 성공했다.
물론 배우 개인의 역량이 우수했기에 빚어진 결과로도 볼 수 있다. 이미 검증된 배우인 김성균과 유연석은 차치하고, 정우와 손호준 역시 출연작인 영화 ‘바람’이 매니아층을 만들 정도로 몰입도가 높은 작품이었으며, 이 작품에서 이들 두 배우가 보여준 연기는 이미 높이 평가할 만했다. 고아라 역시도 그의 데뷔작인 청소년 드라마 ‘반올림’에서의 설익은 모습 이후 인상적인 행보가 없었던 탓에 그간 배우보다는 청춘스타로 인식돼왔지만, 지난 해 개봉한 두 편의 영화 ‘파파’와 ‘페이스메이커’에서 보여준 연기는 그녀가 과소평가 돼왔음을 증명하는 좋은 연기였다.
그러나 정은지와 서인국에 이어 이번에도 연기 초짜인 도희와 바로를 주목할 만한 배우로 재탄생시킨 점. 분명 이것에는 ‘응답하라’ 제작진만의 비결이 있었다.극중 빙그레를 연기 중인 바로를 예로 들어보자. 바로가 연기하는 빙그레라는 인물은 결코 연기하기 쉬운 캐릭터가 아니다. 그의 성향이나 성격을 드러내는 강한 의사표현이나 감정표현이 나오는 신이 없을 뿐더러, 극중 쓰레기(정우)를 향한 동경과 동성애 사이에 놓인 듯한 미묘한 감정은 신인 배우가 표현하기에 난이도가 높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의 연기는 프로 연기자 못지 않은 수준이었다. 연기 수업을 수년에 걸쳐 받으며 트레이닝을 한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물론 이런 훌륭한 연기는 바로 개인이 가진 연기자로서의 재능 탓일 수도 있고, 그것을 포착해낸 제작진의 매의 눈에서 빚어진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연기라는 것은 타고난 재능을 가진 배우도 어느 작품에서는 어색한 순간이 발견되고, 색깔이 분명한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가 어느 감독과의 호흡에서는 또 다른 결의 연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생각해보면 ‘응답하라’ 시리즈가 번번이 걸출한 신인들을 배출하는 것의 비결은 감독과 출연진들이 소통하는 과정에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바로는 최근 텐아시아와 인터뷰에서 쓰레기를 향한 빙그레의 미묘한 감정을 연기할 당시의 자신의 감정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것을 정리해보면, 1) 빙그레의 감정에 대해 감독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감정이 애매모호했다. 하지만 감독은 딱 그 정도가 좋다고 했다. 3) 그 단계를 벗은 지금은 편안하게 임하고 있다 이다.여기서 신원호 PD의 배우를 다루는 디렉션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다. 배우가 등장인물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며 인물의 감정을 형성하도록 내버려두는 식이다. 만약 신원호 PD가 바로에게 ‘빙그레는 지금 쓰레기에게 동성애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어’ 라거나 ‘빙그레가 쓰레기에게 느끼는 감정은 동경에 불과해’라는 명확한 디렉션을 줬다면 지금의 연기를 끌어낼 수 있었을까. 오히려 연기하는 배우 본인 역시 인물의 감정을 모호하게 받아들인 점, 다시 말해 배우를 그런 모호한 상황에 방치해뒀던 점이 자연스러운 연기를 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것은 명확하게 모든 것이 정해진 상황에서 펼쳐지는 드라마가 아닌 모든 것이 불명확하고 즉흥적인 리얼 버라이어티 연출에 익숙한, 지극히 예능PD 다운 디렉션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도리어 드라마 연기를 하는 배우에게 최상의 디렉션이 돼버린 결과가 됐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연기 스튜디오에서 배우들을 지도하는 주디스 웨스턴은 그의 저서 ‘감독을 위한 연기 연출법’에서 감독이 배우에게 어떤 명확한 설정이나 감정을 디테일하게 던져주는 디렉션은 그리 좋은 방식이 아니라고 말한다. 명확하게 감정을 설계하는 방식보다 어떤 인물의 성격을 표현하기 위해 연기 가능한 행동들을 쪼개어 보거나 혹은 배우가 등장인물을 미리부터 ‘어떤 인물이다’라고 평가하기보다 경험적으로 다가가게 내버려두는 복합적이고 애매모호한 상황에서 관객들이 만족하는 연기가 나온다고 이야기 한다.실제 오늘날 연기를 잘 한다는 평가를 받는 배우들은 작품 속에서 선과 악, 1차원적인 감정을 전달하는 식의 연기를 보여주지 않는다. 흔히 연극적이라고 말하는 과잉된 연기도 오늘날의 배우들이 지양하는 방식의 연기다. 지극히 자연스러우면서 디테일한 연기, 그것이 오늘날 선호되는 연기다.
‘응답하라’ 시리즈에 출연한 배우들 모두가 그런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 그것은 신원호 PD라는 사람이 깔아놓은 아주 모호하고 즉흥적인 판의 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신인을 쓴다는 것은 큰 모험이라는 핑계로 스타들의 높은 몸값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만 의존하는 연출자들은 배우들의 역량을 탓하는 것을 그만두고 스스로를 돌이켜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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