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을 만나러 가는 길. 그의 지난날을 생각했다. 로 얼굴을 알리고, 로 깊은 인상을 남긴 후, 에서 가능성을 인정받고, 과 로 뭇 여성들의 마음을 뒤흔들기까지.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속에서 옆집 소년 같던 김수현은, 더 이상 손에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한없이 멀리 있는 환상 속의 남자가 됐다. 특히 을 통과한 직후인 지난 1년은 김수현에게 매일 매일이 새로움과 놀라움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충무로 기대주’, ‘광고시장의 블루칩’, ‘연기력과 스타성의 공존’ 등으로 이어지는 찬사와 관심들. 자신을 둘러싼 이 호들갑스러운 반응 앞에서 그는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영화 홍보 인터뷰를 빙자해 인간 김수현의 속마음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싶었던 건, 이 때문이다. 마침 그를 만난 시간은 해가 저물어가는 아늑한 저녁이었고, 창밖으로는 비가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마음과 마음을 맞대기 더 없이 좋은 시간이었다.

Q. 비 오는 날, 좋아하나?
김수현:
오늘 같은 날씨. 비가 멈췄다 다시 내렸다, 변화하는 날씨를 좋아한다. 특유의 비 비린내도 마음에 들고. 며칠 전부터 공기가 미지근해지면서 여름 냄새도 나기 시작했는데, 풀 비린내 같은, 그런 자연의 향을 좋아한다. 그런데 장마는 조금… 너무 지겹게 오는 건 별로다.Q. 후각이 예민한가봐.
김수현:
조금. 지금은 다 잘 먹는데, 예전에는 냄새 때문에 편식도 심했다. 특히 해산물은 입에도 못 댔었다. 그런데 친구가 그러더라. “바다에 있는 음식을 안 먹으면 지구상에 있는 70%의 먹거리를 포기하는 거”라고, “해산물을 먹고 남자가 되라”고.(웃음) 해산물을 먹으면 남자가 되는지는 지금도 의문이지만, 그 날 이후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Q. 당신을 만나러 오기 전에 이전 인터뷰 기사들을 쭉 훑어봤다. 대개 비슷하더라. ‘김수현은 연기를 잘 한다’, ‘예의가 바르다’, ‘겸손하다’ 등등. 그런 게 진짜 김수현 같나?
김수현:
그때그때 다른 것 같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나. 집에서 다르고, 학교에서 다르고, 인터뷰할 때 다르고. 다 그렇게 살지 않나 싶다. 그 중에서 인터뷰할 때는… 딱 필요한 행동과 얘기만 하는 게 없지 않아 있겠지. 아마도.

Q. 인터뷰 자리에서도 하고 싶은 얘기를 거리낌 없이 하는 배우들이 있다. 그런데 당신은 뭐랄까. 모범 답을 내놓고 있다는 느낌이 없지 않았다.
김수현:
내가? 아… (매니저를 바라보며) 그렇다면 잘 하고 있는 것 같은데?(웃음).Q. (웃음) 타인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는 타입이 아닐까하는 유추도 해봤다.
김수현:
작년 한해는 유독 그랬다. 신경을 너무 많이 쓰다보니까, 말을 제대로 못할 정도였다. 말실수를 할까봐. 그러다보니, 사람들과 친해지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걸 깨부수고 들어와 주는 사람이 아니면 가까이 지내는 것조차 힘들었다.

Q. 뭐가 그렇게 힘들게 했을까.
김수현:
갑작스럽게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어깨에 큰 짐이 내려앉는 기분을 받았다. 그러다보니, 겁을 잔뜩 집어먹고 안으로 안으로 계속 가라앉게 되더라. 자꾸 숨고, 도망치고, 방어하고. 조심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인해, 나라는 사람이 비밀이 돼 가면서, 많이 위축됐던 것 같다. 사람이 괜히 작아지는 것 같고. 아우…그런 게 너무 싫었다. 작아지는 기분, 그런 기분이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Q. 지난해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사실 너무 빨리 성공했다가 그 인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어그러진 스타들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봐왔다. 다행히 당신은, 그런 뜨거운 인기를 어느 정도 경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김수현:
그렇게 보이나? 나는 심지어 그런 생각까지 했다. ‘내가 그릇이 아닌가… 왜 이렇게 겁을 내지?’ 한참 작아지는 동안에는 집밖으로 나가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문득 ‘이건, 정말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 내 안에 억압돼 있는 걸 깨려고 억지로 밖으로 나가고, 능동적으로 친구들을 만났다. 그러다가 를 마치고 학교에 복학했는데, 학교라는 울타리가 좋은 게, 특별히 깨 부수는 작업을 하지 않아도 자유를 찾게 해 주더라. 학교에 나가면 자연스럽게 또래 친구들을 만날 수 있고, 내 생활을 할 수 있으니까. 덕분에 얼굴이 좋아졌다는 얘기를 최근들어 많이 듣는다.

Q. 소심한 성격을 바꾸기 위해 연기를 시작한 걸로 아는데, 연기를 하면서도 스스로가 달라지기 위해 계속 뭔가를 찾는 것 같다.
김수현: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거지(웃음)!

Q. 조금 더 자기 자신을 믿고 자신감을 가져도 되지 않나 싶은데.
김수현:
자신감도 분명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겁도 그만큼 많은 게 문제일 뿐.Q. 그럼, 김수현이 가장 자신감을 가지는 순간은 언제인가?
김수현:
나를 놓았을 때. 나를 놓고 연기할 때, 그럴 때. 이번 가 그랬다. 바보 연기를 하면서 많은 부분에서 나를 포기할 수 있어서 개운했다. 왜, 우리는 사람을 만나면 일정한 격식을 차려야 하잖나. 연예인은 특히나 여기저기 조심해야 하는 것들이 많고. 그런 것들을 바보 연기 하면서 많이 해소할 수 있었다.

Q. 영화로는 첫 주연 작품이다. 설레는 마음과 부담감이 왔다 갔다 할 텐데, 개봉을 앞둔 지금 어떤 마음이 더 큰가.
김수현:
지금은 설렘이 더 크다. 부담은 촬영 들어가기 전에 컸다. 인기 웹툰이 원작이기 때문에 잘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고, 첫 주연 작품인데다가, 강도 높은 액션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북한 사투리도 준비해야 했고. 어떻게 보면 1인 2역 개념이어서 부담이 더 컸다.

Q. 데뷔작 에서 ‘국가대표급 찌질이’ 캐릭터를 연기했던 게, 이번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김수현:
그때부터 내 안에 그런 모습이 있었던 것 같다(웃음).Q.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의 김수현과 지금의 김수현은 많이 달라진 것 같나?
김수현:
조금 애매한 상태인 것 같다. 이전에는 더 용감했다! 연기할 때, 나를 스스럼없이 던지곤 했는데, 지금은 애매한 지점에 서 있다. 왜, 그런 거 있잖아. 많이 아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모르는 것도 아닌 상황. 적당히 아니까 창피하고, 적당히 아니까 도리어 겁먹고 뒤로 빠지게 되는, 그런 거. 지금 그런 상태다.

Q. 그래서 그럴까. 당신 연기를 보면, 가끔 열심히 하는 걸 넘어서서 굉장히 결사적으로 연기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김수현:
엇! 어제( 시사회) 그렇게 보였나?



Q. 음. 그러니까 ‘김수현이 연기를 잘하고 열심히 하는 배우’라는 건, 이제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부분 같다. 다만 ‘어떤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압박하고 있다’는 느낌도 살짝 든다.
김수현:
빈틈은… 그건 조금 애매하고 위험한 것 같다. 작년을 기점으로 조선시대 가상 왕, 막내 도둑, 동네 바보 등 다양한 인물들에 도전했다. 캐릭터를 제대로 소화했는데도 불구하고 작품이 실패했다면, 그건 어쩔 수 없다고 본다. 그런데, 작품은 잘 됐는데 캐릭터에서는 빈틈이 보였다? 실패를 했으면 했지, 빈틈을 보이는 건, 지금의 나에겐 오히려 더 무서운 일이다.

Q. 예전에 “아이도 아니고 남자도 아닌, 소년과 남자 사이, 그 경계에 서 있는 것 같다”고 스스로를 규정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어떤가? 지금도 그 경계에 서 있는 것 같나? 애매한 건 위험하다고 해서, 묻는 질문이다.
김수현:
아, 그런데 애매한 색깔들은 또 좋아한다. ‘애는 직업이 뭔데, 나이가 몇 살인데, 재벌 아들인데’ 이런 거 말고, ‘무슨 색이야?’ 하는 건 되게 좋아한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소년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턱을 만지며)수염도 이렇게…

Q. 어떤 때 스스로가 남자(어른)라고 느끼고, 어떤 때 소년(아이)이라 느끼나?
김수현:
느낀다기보다는 보는 느낌인데, 사진들을 찍잖아. 인터뷰 사진이 나갈 때도 있고, 화보가 나갈 때도 있고. 사진들을 통해 ‘예전하고는 얼굴이 다르구나. 얼굴 윤곽이 달라졌구나’를 확인할 때, 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런 사진들을 보면, 괜히 슬프다.

Q. 아니, 왜? 얼굴 윤곽이 잡혀 간다는 건, 그만큼 무게가 더해간다는 의미일 수 있는데.
김수현:
아무리 그래도 당장 작년 사진과 올해 사진이 너무 차이나니까(웃음). 그런데 변한다는 것이 살짝 슬플 뿐, 특별히 겁이 나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요즘은 궁금하다는 생각이 더 크다. 서른의 김수현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

Q. 남자가 되기 위한 통과의례가 있다면, 어떤 걸까?
김수현:
흠… 뭐가 있을까. 눈? 내 목표이기도 한데, 눈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면서 장난을 치고 싶다. 상대가 여배우이든 남자배우이든 상관없다. 눈만 가지고 거리 조절을 하는 거다. 상대를 밀었다 당겼다, 하면서. 이게 어느 정도 소화가 된다면, 그때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김수현, 남자네!’ 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까 싶다.

Q. 그런 눈을 가진 배우가 누가 있을까.
김수현:
하정우 선배님 눈을 보면 수컷으로서의 굉장히 센 에너지가 느껴진다. 나에게는 없는 색깔인데, 마초라고 해야 하나? 하정우 선배님 눈에는 강렬한 것에서 오는 뭔가가 가득 들어차 있다. 들어가려하면 밀쳐낼 것 같은,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 그러면 큰일 날 것 같은, 그런 힘 같은 게 있다. 그런 부분에서 어떻게 보면 섹시하다는 말이 나오기도 하고 말이다. 그와 달리 내가 목표로 하는 눈은 당기는 눈이라고 할까? 이를테면, 거리를 좁히려는 눈이다. ‘내 (사정)거리로 들어와! 들어와!’ 하는 그런 느낌의 눈빛을 내고 싶다.

Q. 갑자기 훤의 대사가 생각난다.
김수현:
“감히 내 앞에서 멀어지지 마라!” 이거? 하하하.

Q. (웃음) 왼손으로 글을 꾹꾹 눌러쓰는 영화 속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왼손잡이라고. 과학적으로 의견은 분분하지만, 우뇌가 발달한 왼손잡이는 창의력이 뛰어나다고 하던데, 스스로 창의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나?
김수현:
연기를 표현하는 것도 창의력에 포함된다면, 없지는 않은 것 같다. 컷으로 표현돼 있는 웹툰 속 동구를 재생하는 부분이라든지, 바보 연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든지, 캐릭터의 동선을 돌보며 연기하는 지점에서라든지. 그런 부분에서 창의력이 조금은 나오는 것 같다.

Q. (웃음) 조금 다른 질문인데, 최근 자신을 위해 돈을 쓴 게 뭔가?
김수현:
날 위해 쓴 돈? 음. 회식비?

Q. 에이, 그건 타인을 위해 쓴 거 아닌가.
김수현:
아니야. 결과적으로 나에게 돌아온다. “야, 수현이가 밥 샀어!” 이러면서. 하하하.

Q. 그런 거 말고. 왜, 20대 남자로서 흔히 사고 싶은 아이템 같은 거. 그런 거 하나정도는 있을 법도 한데, 특별한 게 없나봐?
김수현:
아, 배드민턴 가방! 최근에 배드민턴 가방을 하나 사긴 했다. 라켓들을 많이 넣고 다니고 싶어서. 그것 말고는…
홍보사 대표: (지켜보다가) 유추해 볼 수 있네. 우리가 지금 얼마나 많은 스케줄을 잡고 있는지. 수현씨, 미안.
김수현: 아우~ 전혀 그런 의미는 아니었다! 하하하.

Q. 작품을 하면서 억눌린 것들을 많이 푼다고 했는데, 실생활에서는 어떤 식으로 푸나?
김수현:
에너지 넘치는 학교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푼다. 학교 수업이 오후 6시 즈음에 끝난다. 그러면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고 볼링장으로 간다. 우리가 볼링장에서 게임을 꽤 많이 친다. ‘더 이상 공이 안 굴려지는데?’ 할 때까지. 이후 코스는 배드민턴이다. 볼링부터 배드민턴까지 소화 가능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평범하지만 시끄러운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Q. 어떻게 보면 그건 우리가 모르는 ‘은밀한 김수현’의 모습인데, 친한 사람들 속에서의 김수현은 어떤 것 같나?
김수현
: 개구쟁이들 사이에서, 나 역시 개구쟁이가 된다. 그땐 정말 오롯한 김수현이다.

Q.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땐, ‘배우 김수현’은 크게 의식 안 하나?
김수현:
그땐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혼자 있을 땐 스스로를 방어하느라 온 신경을 나에게 쓰는데, 학교에 가면 그 신경이 자연스럽게 친구들에게 옮겨간다. 그리고 행여나, 함께 있는 사진이 찍혀서 인터넷에라도 올라가면 어쩌나. 나는 괜찮은데, 친구들이 불편해지잖아. 그러다 친구들이 “너랑 놀면 불편해서 안 놀아” 이러면 또 안 되니까, 괜히 친구들을 더 살피게 되는 것 같다(웃음).

Q. 는 남자들 간의 우정이 도드라지는 영화다. 퀴어 요소가 살짝 묻어나기도 하고(웃음). 의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김수현:
이번에 복학할 때, 동기이자 동갑인 친구도 함께 복학을 했다. 오랜만에 만나서 술 한 잔 하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그 친구가 불쑥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와 줘서 고맙다”며 오래 전 이야기를 꺼내더라. 1학년 때, 그 친구 할머니 장례식에 조문을 갔었거든.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고맙다는 말을 들으니까 이상했다. 그러면서 문득 ‘내가 고맙다는 말을 몇 년 만에 듣는 거지?’ 라는 생각을 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될지 모르겠는데, 내 생각은 그렇다. 거창한 것만이 의리가 아니라, 소소한 감정을 일깨워주는 것도 의리라고. 그런 감정도 의리의 일부분이라고. 그렇게 생각한다.

Q. 그나저나, 평소에도 ‘다나까’ 말투(김수현은 인터뷰 내내 ‘~습니다’, ‘그렇습니까’ 식의 말투를 구사했다.)를 사용하나?
김수현:
내가 좀.(웃음) 말투가 딱딱하다보니, 선배님들과 거리 좁히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다. “안녕하세요!” 이게 아니라, “식사는 하셨습니까?” 이렇게 말을 하니까, 선배님들도 괜히 어려워하시고.(웃음)

Q. ‘다나까’ 체를 쓰는 건, 낯을 많이 가려서인가?
김수현:
본능적으로 이게 ‘안정적’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

Q. 그것 또한 어쩌면, 스스로에 대한 방어일 수 있겠다.
김수현:
그럴 수 있다. 내 안에 있는 방어막을 완전히 푸는데,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다. 앞으로 풀어내야 할 숙제다.

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사진. 채기원 ten@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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