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라디오헤드가 왔을 때까지 ‘밸리 록 페스티벌’은 국내 록페스티벌 중 대세를 점하고 있었다. 이유는 라인업이었다. 경기도 이천 지산 포레스트 리조트에서 열린 지난 4회 동안의 행사에 라디오헤드, 뮤즈, 오아시스, 펫 샵 보이스, 스톤 로지스, 스웨이드, 위저, 매시브 어택, 엘비스 코스텔로 등 국내에서 볼 수 없던 최고의 뮤지션들을 섭외하며 록페스티벌 붐을 견인했다. 리조트에서 열리는 쾌적함 덕분에 젊은이들 사이에서 더욱 각광받았다. “‘지산밸리’가 강남이면 ‘펜타포트’는 강북”이라는 말도 돌았다. 그런 ‘밸리 록 페스티벌’이 올해부터 안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터가 바뀌면 많은 것이 따라 변하는 법. 지난 26일부터 28일까지 안산 대부도 바다향기테마파크에서 열린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이하 안산밸리)은 지산 시절의 ‘밸리 록 페스티벌’과는 상당히 달랐다. 과거의 강력했던 위상은 한풀 꺾인 듯 보였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느낌이다.

관객 수 감소, 다시 적자
주최 측인 CJ E&M은 올해 ‘안산밸리’에 약 7만8,000명(연인원)의 관객이 몰렸다고 말했다. 이는 10만1,000명(연인원)을 동원한 작년에 비해 무려 2만3,000명이 줄어둔 숫자다. 사흘 동안 둘러본 ‘안산밸리’는 수많은 인파로 붐볐던 작년에 비해 한산했다. 행사부지가 작년 대비 두 배 정도 커진 탓에 피부로 느껴지는 한산함은 더 컸다. 올해 관객 수는 지난 5회 동안의 행사 중 딱 중간에 위치하는 숫자(1회 5만, 2회 7만, 3회 9만2,000, 4회 10만1,000명(연인원))다. 작년에 사상 첫 흑자를 기록한 ‘밸리 록 페스티벌’은 올해부터 다시 적자로 돌아서게 됐다. CJ E&M은 안산에 새로운 록페스티벌 부지를 마련하기 위해 적지 않은 돈을 투자했기에 올해 출혈은 더욱 컸다.
포올스

‘역대급’ 없었지만 여전히 탄탄한 라인업
볼거리 풍부한 라인업은 여전했다. 과거의 오아시스, 라디오헤드와 같이 막강한 티켓 파워를 지닌 라인업은 없었지만 훌륭한 공연들이 이어졌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을 거라 여겨졌던 큐어를 비롯해 단독 내한공연에서 관객동원의 참패를 맛봤던 나인 인치 네일스, 마니아들도 잘 알지 못했던 포올스, 코히드 앤 캠프리아 등을 비롯해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스티브 바이, 뱀파이어 위크엔드, 스테레오포닉스, 허츠, 펀, 스크릴렉스 등 최고의 뮤지션들이 ‘안산밸리’를 장식했다. 이 중에 나인 인치 네일스는 사운드, 영상, 연출 등에서 골고루 합격점을 받으며 ‘밸리 록 페스티벌’ 역대 최고의 공연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큐어는 무려 세 시간 동안 녹슬지 않은 음악을 선보였으며 스크릴렉스는 ‘안산밸리’를 거대한 댄스클럽으로 만들어버렸다.

신인급인 포올스와 펀은 패기 넘치는 무대로 ‘안산밸리’를 들썩이게 했다. 작년에 빌보드차트 1위와 그래미상을 거머쥔 펀, 그리고 평단의 극찬을 얻어낸 포올스, 허츠, 더 엑스엑스와 같은 밴드도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높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각자 출중한 무대를 선보이며 관객들의 열기를 임계점 위로 올려놨다. 특히 펀은 최고로 물이 오른 밴드답게 혈기왕성한 무대로 상당한 감동을 전했다. 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스티브 바이는 녹슬지 않은 초절기교에 혀로 기타 줄을 퉁기는 등 전대미문의 퍼포먼스로 마치 단독공연과 같은 열기를 연출했다.
허츠

보완해야할 점은?
새로 터를 옮긴 탓에 보완해야 할 점들이 보였다. 먼저 각 스테이지의 소리가 겹치는 바람에 관객들의 원성을 샀다. 대중음악평론가 김성환 씨는 “빅 탑 스테이지와 그린 스테이지가 둘 다 한 방향을 보고 자리한 결과 공연 스케줄이 10분이라도 겹치면 서로의 공연 소리를 망치는 결과를 낳았다. 박정현이 어쿠스틱으로 ‘꿈에’를 부르는 데 스테레오포닉스가 공연을 시작하고, 스티브 바이가 ‘For The Love of God’을 멋지게 연주하고 있는데 펀의 드럼 소리가 그걸 가려버리면 음악 팬의 입장에선 난감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지산 시절부터 골치를 앓았던 교통 문제도 지적됐다. 대중음악평론가 한명륜 씨는 “안산이라는 장소가 페스티벌에 적합하지 못한 이유가 있다면 바로 교통”이라며 “특히 대중교통수단 문제에 있어서는 안산시와의 협조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티가 역력했다. 4호선 안산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들어가면 도로가 ‘안산→시흥→안산’ 식으로 걸쳐 있기 때문에 시도경계 할증이 두 번 붙게 된다. 거의 대부분은 4만원에 가까운 운임을 내고 왔을 테지만, 이 정도면 양반. 둘째 날부터는 정말 바가지요금이 횡행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 씨는 “내년에도 교통부분에서 같은 현상이 반복된다면 안산에서 첫 행사를 꾸리느라 노고가 많았을 기획자들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결과가 될 터”라고 덧붙였다.입지조건은 오히려 낫다는 의견이다. 송명하 파라노이드 편집장은 “지산에는 언덕이 있었지만 안산은 전체가 평지로 돼 있어서 이동이 용이했다. 지산에 비해 입지조건은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반면 각 시설의 동선 배치는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다.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 씨는 “체력소모가 많을 수밖에 없는 현장에서 불필요한 이동거리가 많다는 것은 큰 약점이다. 행사장 주변의 효율적인 동선 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CJ E&M 측은 안산시 및 기업체와의 협력을 더욱 공고히 해 400억 원의 기업 마케팅 효과와 150억 원의 지자체 지역 경제 효과를 기대한다고 말한다. 페스티벌 티켓 판매 외에 부수적인 경제효과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CJ E&M 측 관계자는 “안산시와 손을 잡고 불과 1년 전만 해도 갈대밭이었던 부지를 땅을 고르고 잔디를 심어 페스티벌 현장으로 탈바꿈시키느라 예년에 비해 10배 이상의 작업이 필요했다. 앞으로의 성장을 위해 기업과 지자체의 협업을 통해 다채로운 가치를 창출하겠다”고 말했다. 콘텐츠 면에 있어서는 “‘안산밸리’는 장기적으로 미래를 내다보고 있다. 티켓 파워가 있는 슈퍼스타를 데려와 반짝 인기를 누리기보다는 대중에게 덜 알려졌더라도 문화적인 나비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좋은 아티스트들을 선별해 데려올 것”이라고 말했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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