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페스티벌에 선 신중현은 70대 노장이 아닌 혈기 넘치는 로커의 모습이었다. 장관이었다. 신중현의 음악에 수만 명의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수 만 명의 관객들이 ‘미인’과 ‘아름다운 강산’을 합창했다. 록페스티벌에서 울려 퍼진 그 어떤 ‘떼창’보다도 가슴이 짠해지는 순간이었다.

신중현은 아들들인 신대철과 신윤철과 함께 신중현 그룹으로 18일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시티브레이크’(이하 시티브레이크)에서 공연했다. 이것은 단순한 부자(父子)의 공연이 아닌 ‘로얄 패밀리’의 공연이었다. 한국 록 기타의 레전드 신중현과 현역 중 최고 기타리스트들이라 할 수 있는 신대철, 신윤철의 잼세션을 록페스티벌에서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다.

신중현의 올해 나이 75세. 이 나이의 뮤지션이 록페스티벌에 오르는 것은 해외에서도 드물다. 신중현은 여러 번 은퇴를 선언한 바 있지만 세상은 그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결국 그는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이날 신중현의 음악은 록페스티벌에 걸맞게 강한 편곡으로 연주됐다. ‘안개를 헤치고’로 시작해 ‘빗속의 여인’, ‘커피한잔’ 등 익숙한 곡들이 초반에 이어졌다. 가녀리게 떨렸던 신중현의 목소리는 곡이 거듭될수록 점점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거짓말이야’부터는 나이를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한 소리가 나왔다.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에서는 어린이들로 이루어진 합창단이 무대에 나와 신중현을 보좌했다.

원래 이날 함께 무대에 오르기로 했던 셋째 아들 신석철은 방송(슈퍼스타K) 관계로 나오지 못했다. 신중현은 “원래 아들이 드럼을 치기로 돼 있었는데 방송 때문에 못 나오게 돼 사과드린다. 대신 최고의 드러머가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했다”며 원로 연주자 동포(문영배)를 소개했다. 이어진 ‘리듬 속의 그 춤을’에서는 동포가 약 3분가량을 넘어가는 긴 드럼 솔로를 펼쳐보였다. 신대철과 신윤철의 기타 배틀도 뜨거웠다. 신중현은 신대철, 신윤철이 번갈아 멋진 기타솔로를 연주할 때마다 자랑스럽게 바라봤다. 특히 신대철은 ‘리듬 속의 그 춤을’에서 한국적인 가락부터 테크니컬한 연주에 이르기까지 포효하며 살벌한 기타 솔로를 들려줘 관객을 흥분시켰다.

신중현이 “오늘 보니 미인들이 많이 오셨다. 남자 분들은 한 분도 빠짐없이 따라 불러 달라”며 대표곡 ‘미인’을 노래하자 객석에서는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신중현이 연주하는 와우 기타에 이어 두 아들의 기타 연주가 앙상블을 이루자 멋진 순간이 연출됐다. ‘미인’의 합창은 한국 록의 고전이 록페스티벌에서 울려 퍼지는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특히 신중현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미인’을 노래해 부활을 알리는 듯했다. 마지막 곡 ‘아름다운 강산’에서는 신중현의 수신호로 폭죽이 터지면서 무대 위에 태극기가 펼쳐지며 클라이막스를 장식했다. 신중현은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약속을 드릴 순 없지만 언젠가 다시 보자”라고 말하고 무대 뒤로 들어갔다.

이날 ‘시티브레이크’에는 메탈리카, 김창완 밴드, 라이즈 어게인스트, 애시, 재팬드로이즈 등이 슈퍼 스테이지, 컬쳐 스테이지, 뮤직 스테이지에서 공연을 펼쳤다. 페스티벌 첫날인 17일에는 이기 앤드 더 스투지스, 뮤즈, 림프 비즈킷 등이 무대에 올랐다. 주최 측에 따르면 17일(3만 5,000명), 18일(4만 명) 이틀간 총 7만 5,000명(연인원)의 관객이 ‘시티브레이크’를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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