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 “나는 지금이 좋아요. 앞으로 더 나이 먹어가면서 더 찌그러지겠지만, 그 때는 또 그 때가 좋을 것 같아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는데 봄은 봄대로 예쁘고, 가을은 가을대로 아름답잖아. 산에 올라갈 때 숨찰 때 빼고는 나이 먹는 것에 대한 답답함은 느끼지 않아요. 나이 먹으면서 성격도 많이 누그러지고, 타협의 방법도 배우게 되고. 그런 게 얼굴에 나타나는 거겠지. 예전에는 그런 게 없었지. 화도 많이 내고.”
– 김영철, 한 인터뷰에서

험했던 청춘은 지나갔다. 머리카락은 회색으로 변했다. 하지만, 이 남자의 멋은 그 때부터 시작된다.
김영철
김영철
이정길: 배우. 김영철은 이정길이 출연한 연극 을 보고 “커다란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고 연극을 시작한다. 이후 그는 주변에서 “배우가 안 됐으면 큰 일 날 뻔 했다”는 말을 들을 만큼 달라진다. 김영철은 어린 시절 과외 교사가 집에서 숙식을 하며 공부를 가르칠 정도로 부자였다. 하지만 부모의 사업이 망한 뒤 중학교 때부터 다른 사람의 집에 얹혀살았고, 중학교 시절 이미 당구 300을 넘었고, 사람들의 돈을 빼앗을 만큼 엇나갔다. 중학시절 사귀던 여자친구에게 “옷에 흙도 묻히고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돈을 받아내기도 했다고. 무대 위에서 훌륭하게 쓰일 연기력을 나쁜데 쓰고 있었던 셈. 그가 작품 속에서 온갖 고초 끝에 성장하는 남자를 연기하는 일이 많은 건 이런 청년 시절의 궤적 때문일지도.

이문희: 아내. TBC 단막극 에 함께 출연, 보름동안 함께 지내다시피하며 촬영을 하면서 사랑을 느꼈고, 결혼에 성공했다. 이후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었지만 30년 이상 결혼 생활을 하며 안정적인 삶을 유지했다. 이문희는 김영철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결혼 후 스스로 연기를 관뒀고, “애들 아빠가 수입 걱정 안하고 연기를 할 수 있어 좋다”며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다. 연기를 시작한 후 김영철은 단막극, 그 중에서도 “사형수, 독립군, 건달 등 순탄치 않은 역할”을 주로 했지만 아내와의 결혼 이후 차츰 자리를 잡아가며 자신의 연기 색깔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한다.

김민종: KBS 에 함께 출연한 배우. 김영철은 , 등 1980년대 KBS를 대표하던 굵직한 시대극에 연이어 출연하며 연기파 배우로 확실한 입지를 다진다. 하지만 당시 강렬한 개성을 가진 성격파 배우가 출연할 수 있는 작품의 폭은 지금만큼 넓지 못했다. 1998년 출연한 는 그런 그의 고민을 보여준 작품. 당시 실제 나이는 45세였지만 작품에서 김민종의 60대 아버지를 제의받고 이 배역을 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고. 하지만 그는 캐릭터를 위해 독특한 억양과 걸음걸이를 개발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한다. 연기자로서 기로에 선 상황에서 자신을 다잡던 시절.

이환경: KBS 의 작가. 주인공 못지않은 배역인 궁예에 “김영철이 아니면 안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해 그를 캐스팅했다. 당시 김영철은 점점 연기할 기회를 잃어가면서 슬럼프에 빠졌고, 연기를 관둘까도 생각했지만 “다른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 막막했던 상황. 김영철은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궁예를 연기하기 위해 늘 안대를 하고 다니다 시력이 0.2까지 떨어지는 고생을 했다. 하지만 김영철은 광기에 찬 폭군이면서도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할 만큼 우울하고 상처 입은 내면을 가진 궁예의 캐릭터를 무겁지만 미묘하게 변하는 표정 연기와 독특한 말투로 생생하게 표현했다. 이후 대하사극에서도 복잡한 내면을 가진 악역, 또는 악역이라 할 수 없는 굴곡 많은 한 인간의 캐릭터가 전면적으로 부상했다. 인생과 연기 양쪽에서 오랫동안 다양한 경험을 가진 연기자가 자신에게 꼭 맞는 작품을 만나 고뇌에 찬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안재모: SBS 에서 김영철이 연기한 김두한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배우. 김영철은 젊은 시절 권투와 유도를 한 경험을 살려 적지 않은 나이에 액션 연기에 도전했다. 으로 얻은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시대극의 핵으로 자리 잡은 셈. 하지만 김두한에 대한 역사적 평가보다는 그의 활극에 초점을 맞춘 에서는 궁예처럼 격변의 시대 속에서 고뇌에 찬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기 어려웠다. 배우이면서 스타가 된 김영철의 이미지가 소비됐다고 할 수 있는 작품. 또한 MBC 에서는 불륜에 빠진 유약한 성격의 남자를 연기하면서 기존의 이미지를 뒤집기도 했지만 작품의 내용이 갈수록 불륜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이유로 한 때 촬영을 거부하고 제작진에 항의를 하기도 했다. 연기자의 내공은 천천히 쌓았지만, 인기는 너무 갑자기 찾아왔다.

김수현: 김영철이 출연한 SBS 의 작가. 그는 평생 바람을 피다 집에 들어온 아버지도, 동성애자임을 밝힌 아들도 모두 끌어안는 가장을 연기했다. , 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 하지만 아들이 동성애자임을 아는 순간, 그의 표정은 무섭게 변한다. 그건 자식의 일 앞에서는 너그러울 수만은 없는 아버지의 감정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로서, 또는 보스로서 감정 표현은 절제해야 한다. 하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뜨겁다. 너그러운 가장이든 잔인한 보스이든, 김영철은 남성의 욕망과 고뇌를 품위가 느껴질 만큼 무게감 있게 표현한다. 에서 관객이 그가 연기한 사형수의 진심을 끝까지 알 수 없었고, 에서도 명백한 악역임에도 속을 알 수 없는 캐릭터라는 느낌을 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인생에 대한 자기연민에 가까운 애착과 사회적 위치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것의 갈등을 절묘하게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어쩌면 젊은 시절 끓어오르는 피를 연기와 가정생활로 다스렸던 인생이 만들어낸 결과 아닐까.

이병헌: 영화 에 함께 출연한 배우. 과거 KBS , 등에 함께 출연했고, 에서는 김영철이 죽는 연기를 할 때 앞에 있던 이병헌이 리얼하게 연기를 해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며 NG를 내기도 했다. 김영철은 ‘오야’를 ‘아버지’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며 감정을 누르는 보스이자, 대학생 연인을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게 하려는 욕망을 가진 남자의 모습을 한 표정 안에서 모두 보여줬다. 감정을 억누른 목소리와 안면 근육의 사용을 최소화한 연기는 오히려 그 뒤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욕망과 곧 튀어나올 것 같은 폭력성을 표현할 수 있었다. 광기 어린 복수와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결단이 모두 가능할 것 같은 보스. 김영철은 에 이르러 작품에서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작품에 영향을 미치는 절대적인 존재감을 가졌다. 김영철은 이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조직 폭력배 보스는 하지 않았다고.

문채원: KBS 에 함께 출연하는 배우. 김영철이 연기하는 수양대군은 명백한 악인이다. 권력을 위해 죄없는 사람을 죽이고, 심지어는 딸 세령이 사랑하는 남자를 이용해 음모를 꾸미기도 한다. 수양대군은 단 한 번도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거나, 타인에게 해를 입히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그럼에도 김영철이 연기하는 수양대군은 그의 결정에 보다 복잡한 마음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수양대군이 세령을 속이고 그의 감정을 이용할 때, 그는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표정과 냉정한 정치가의 표정을 순간적으로 함께 보여준다. 자신이 살기 위해, 자신의 욕망을 위해 칼을 들고 나선 정치가. 그럼에도 만약 자신이 죽은 뒤 가족의 일을 걱정해야 하는 아버지. 김영철이 MBC 에서 어려운 테크닉 없이도 중후한 분위기만으로도 심사위원의 극찬을 받은 건 자신의 인생을 묵묵히 살아온 사람의 품위 때문일 것이다. 거칠게도 살아봤고, 가족과 일을 함께 유지하며 고민도 많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고민과 어려움은 계속된다. 하지만 그것을 묵묵히 버티며 살아온 중년 남성에게는 선이든 악이든 그만의 색깔이 생긴다. 김영철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건 이 남자는, 한국에서 보기 드문 멋진 중년이다.

Who is next
김영철이 출연한 영화 의 신민아가 주연을 맡은 영화 에 특별출연한 인순이

10 Line list
김정은윤종신김종국최지우휘성박찬호이효리장서희최양락다니엘 헤니이수근권상우소지섭이민호최명길정형돈김남주박진영손담비김태원신해철송강호김아중김옥빈이경규김혜자고현정원빈이승기닉쿤지진희박명수김혜수신동엽현빈윤은혜G드래곤하지원타블로김C유승호양현석강호동김태희김연아장동건장근석김병욱 감독정준하손석희정보석고수이병헌이수만김현중김신영장혁김수로이선균신정환김태호 PD강동원송일국노홍철조권김제동문근영손예진김수현 작가하하이미숙전도연유영진강지환김구라박지성탁재훈오연수최민수유재석유진크리스토퍼 놀란이하늘신민아장미희이휘재믹키유천조영남송승헌엄태웅안내상이승철김성근 감독유아인토니 안류승범싸이윤상현김희철심형래정우성하정우진중권박신양배용준임성한 작가MC몽나탈리 포트만김희애이소라염정아김건모유세윤양준혁임재범이지아차승원박정현김수미성유리윤계상정재형김범수김여진에릭김선아테디최강희 – 김영철

글. 강명석 기자 two@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